"나이 들었다고 밥만 먹고 사냐?"
개관 1주년 맞은 실버영화관 허리우드 극장... 상영작 다양화 등 과제
▲ 극장 내 상영관실버 영화관은 옛날 그 모습 그대로다. ⓒ 황윤주
1월 29일 오후 허리우드 극장에서 만난 한 어르신의 말이다. 허리우드 극장을 자주 찾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곧바로 대답한다.
곁에서 지켜보던 다른 분이 말한다.
허리우드 극장은 2009년 1월 21일 '실버 영화관'으로 개관했다. 정식 이름은 '실버영화관'이지만 지금까지도 '허리우드극장'이라고 부르는 어르신들이 많다.
그리고 지난 1월 29일 1주년 기념식을 치렀다. 다음 날인 실버 영화관을 찾아가 보았다. 이날 상영작은 '셜록 홈즈'. 물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주드 로가 나오는 최신 영화가 아니다. 1940년에 미국에서 개봉한 바실레스 본, 앨런 마샬 주연의 컬러 영화다.
실버 영화관은 57세 이상의 어르신들에게는 표 값이 2천원이다. 영화를 본 뒤 영화표를 가지고 낙원상가 옆에 있는 국밥집에 가면 국밥을 500원에 먹을 수 있다. 1년 전부터 허리우드 극장은 한 대기업의 후원을 받고 있는데 올해부터는 서울시의 지원도 함께 받는다.
"2천원은 우리 자존심이야"
▲ 실버 영화관 영화표김모 어르신께서 보여준 작년 2월 1일 허리우드 극장 영화표. 57세 이상의 노인에게는 관람료를 2천원으로 할인해준다. ⓒ 황윤주
"앞으로 나이든 사람들이 많아지면 복지국가를 지향해야 되는데 노인을 위한 이런 장소, 이런 공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말한 중후한 노신사는 혹시 허리우드 극장이 사라지지 않을까 노파심을 드러냈다.
또 다른 어르신(정아무개, 65)은 무료로 보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돈을 내는 것도 하나의 기쁨이라고 말했다. "이 2천원은 우리 자존심이야. 공짜로 받지 않고 당당하게 누리겠다는 품위유지비지"라고 말하며 "예전에 복지관에서는 천원짜리 초대권을 줬는데 그건 정해진 날짜에만 갈 수 있어. 노인들 할인해 준답시고 이용은 불편하게 하면 어떻게 하라고?"라고 말하며 이 곳을 찾는 이유를 밝혔다.
많은 어르신들이 이곳을 정기적으로 찾고 있었다. 기자가 만난 13명 중 6명이나 일주일에 2~3번씩 찾는다고 말했다. 어르신들끼리 편히 쉬고 영화에 대한 토론을 벌일 수 있는 곳은 허리우드 극장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했던 어르신들 모두 영화를 보지 않을 때는 등산 가는 것이 유일한 여가활동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요즘처럼 추운 날에는 그마저 여의치 않는다.
여기를 찾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이아무개(76) 어르신은 "이 곳은 서울에서 변하지 않은 유일한 곳이야. 의자도 매표소도, 극장 입구도... 옛날 생각이 나"라고 밝혔다.
"실버영화관? 소문 만큼은 별로..."
▲ 필름영사기사디지털화가 되면서 필름 영사기가 사라져간다. 필름영사기와 마찬가지로 노인들도 설 자리를 잃는다. ⓒ 황윤주
이곳에서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필름 영사실. 허리우드 극장은 필름을 돌리기도 한다. 비록 취재를 하러 간 날에는 DVD를 상영하고 있었지만 필름을 받으면 필름 영사기사가 직접 영사기를 움직인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영사기사 일을 시작했다는 기사는 "내가 30년 가까이 일했는데 여기는 몇 군데 안 남은 필름 돌리는 곳이야"라고 말했다.
극장이 대형화되고 필름 대신 디지털로 상영이 되면서 필름 상영기사를 찾는 극장이 줄었다. 허리우드 극장 필름영사 기사는 "나처럼 나이든 사람은 경력이 많은 것도 문제가 된다고. 보수를 많이 줘야 하니까"라며 어르신들이 일할 수 있는 장소가 없어지는 현실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실제로 영화관을 후원하는 대기업과 연계해 허리우드 극장에서는 5명의 노인이 일하고 있다. 후원 관계자는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를 더욱 늘려 2012년까지 모두 61명을 고용하겠다"고 말했다.
물론 이 극장에 만족하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극장을 찾은 한 노부부는 "신문에 크게 나와서 왔는데, 영화는... 실망이네.."라고 말했다. "옛날 한국영화를 보러 왔는데 외화 자막을 읽느라 힘들었다"며 한국 영화를 더 많이 상영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곁에 있는 부인은 "그것도 그런데 오늘은 필름이 아니라 DVD로 상영하더라구... 옛날 생각에 일부러 와봤는데 난 잘 모르겠어"라며 고개를 저었다.
"잘해봐, 너도 여기 올 수 있어"
▲ 영화관을 찾은 사람들영화관을 찾은 마음은 나이 든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똑같다. ⓒ 황윤주
그녀는 어르신들이 옛날 영화를 찾는 이유를 "어르신들은 대부분 70, 80대인데 식민지를 경험하시고 6.25를 겪은 세대예요. 그 분들에게 문화생활은 '영화'가 유일했다"라며 어르신들을 위한 문화공간이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주위의 다른 극장과 연계할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영화는 기본적으로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에요. 저도 여기까지 오는데 너무 너무 힘들었고 이걸 다른 극장도 잘 알기 때문에 연계하려면 시간이 걸릴 거예요"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한국에 있는 문화 공연들은 대부분 20, 30대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 김 대표이사는 "뮤지컬이나 퍼포먼스 공연들은 어르신들이 자연스럽게 즐기기엔 힘들고, 그나마 익숙한 영화라도 최근 작품들은 정신없어 하세요"라며 기회가 된다면 어른들만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고 밝혔다.
작은 매표소, 좁은 로비, 허름한 영화관 속 낡은 의자와 상영이 끝난 영화 포스터들. 이 모든 것들은 노인들이 사랑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불편하다고 생각하지마라. 취재 중 어르신 한 분이 다가오더니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잘해, 너도 나중에 이곳에 찾아올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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