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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보다 따뜻했던 그 길의 공중전화 부스

7080 음악 에세이, 이문세 <난 아직 모르잖아요>

등록|2010.02.02 13:43 수정|2010.02.02 21:31
결국 삼십 년을 돌리고 만다. 아니다. 삼십 년을 되찾는다.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잠시 못 찾고 있었던 거라고 푸른 긍정의 마음을 내게 선물한다. 그래, 이렇게 돌아갈 수 있다. 헝클어진 비단 실타래도 천 일 밤낮을 공들여 풀면 숙면 뒤의 새벽처럼 영롱한 자태를 보여줄 것이다. 따뜻했던 기억이 영하의 겨울을 데운다. 스무 살, 그때 우리의 이마 위엔 두 사람만 보이는 그들만의 우주가 있었다.

창문을 연다. 새벽에 혹은 한낮에, 아니면 늦은 밤중에! 목안에 가시가 박힌 듯 그 무엇인가가 울컥대며 나를 흔들 때 나는 늘 창문을 연다. 겹겹이 창호지를 바르듯 빗장을 채웠던 마음을 열어 젖혀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세상과 교신하고 싶을 때. 나 아직 여기 살아있다고, 꿈이 아닌 시퍼런 이 현실에 내 이름 석 자 아직도 명료하게 박혀있다고 고함치고 싶을 때 나는 창문을 연다.

아파트 6층에서 내려다보이는 창문 밖 후문으로 나가는 길목엔 늘 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공중전화 부스가 있다. 한밤중에도 대단지 아파트를 밝히는 가로등, 그 길에 빈 채로 서 있는 세 칸짜리 공중전화 부스. 기댈 곳 없이 마음이 허전할 때 그래서 꿈속에서도 마음이 가난해서 울며 깨어났을 때, 나는 늘 창문을 연다. 그럴 때 보이는 공중전화 부스. 내 외로움을 지켜주고 보고픔을 다독여주던 세 칸짜리 비밀의 방, 그곳에서 나는 삼십 년 전의 나를 언제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제든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핸드폰이 출현한 세상은 꿈도 꿀 수 없었고 시외통화를 할 수 있는 공중전화도 버스를 타고 나가야 할 만큼 귀하고 드물었던 삼십 년 전.

언젠가 밤늦은 시간 맨발에 코트만 걸친 채 뛰어나가 그 공중전화 부스 속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온 적이 있다. 주머니에서 딸랑거리며 손에 잡히던 몇 개의 동전을 쥐었다 놓았다 하며 단 하나의 전화번호를 눈으로만 수없이 눌렀던 시간, 환청이었을까? 나를 불러주는 귀에 익은 목소리가 좁은 부스 안에 나비 떼를 날리며 들려왔던 건. 뜸하게 귀가하는 자동차들의 불빛이 비추일 때마다 점점 또렷하게 들려오던 그 목소리에 겨울밤 휑한 거리에서도 나는 외롭지 않았다.

사랑이란 그리고 그리움이란 직접적으로 행해지고 능동적으로 표현하는 것만이 그 완성은 아닐 것이다. 천상에서 잉태되고 키워진 단어라고 해도 사랑의 표현엔 턱없이 부족하고 얕게만 느껴지는 걸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냥!
그래, 그냥 사랑했었다.
공중전화 부스에서 그의 번호를 돌리지 않아도 이미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귀와 뺨을 따스하게 하는 그런 사람을.

혼자 걷다가 어두운 밤이 오면
그대 생각나 울며 걸어요
그대가 보내준 새하얀 꽃잎도
나의 눈물에 시들어 버려요
그대가 떠나가면 어디로 가는지
나는 아직 모르잖아요
그대 내 곁에 있어요
떠나가지 말아요
나는 아직 그대 사랑해요
    이문세 <난 아직 모르잖아요>중에서

'사랑이 깊은 만큼 이별은 더 큰 무서움'이라고 언젠가 나는 글에서 말한 적이 있다. 사랑이란 그리고 이별이란 극과 극의 감정을 거느리며 깊어지는 것이니만큼 사랑하는 동안 늘 곁에 있는 무서움이 이별인 것이다.

이문세의 <난 아직 모르잖아요>는 텅 빈 일상 속에서 기억의 원형을 회복시키는 공중전화 부스 같은 이미지로 다가온다. 번호를 누르지 않아도 그를 향한 신호음이 가고 이어 그의 목소리가 안개를 깨우는 청량한 바람이 되어 들려오는, 그리고 그 사람을 만나게 하는 작은 기적을 보게 한다.

그대 생각나 울며 걸을 때 그 모습인 듯 앞에 서 있는 작은 공중전화 부스. 그를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따뜻하던 그 안에서 오래 서 있어본 기억이 있는 사람은 나인가, 그대들인가?

눈발처럼 많은 공중전화 부스가 서 있는 길을 걸어도 생각나는 번호가 단 하나 밖에 없는 사람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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