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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쓴 겹말 손질 (83) 늙은 노인

[우리 말에 마음쓰기 851] '경제적으로 돈이 없다'라는 소리란

등록|2010.02.03 12:01 수정|2010.02.03 12:01

ㄱ. 늙은 노인

.. 그중 한 사람은 자기 오두막집 밖에 앉아서 가죽 끈으로 채찍과 올가미 줄을 꼬고 있는 아주 늙은 노인이었는데, 그 지역 일대에서는 그 솜씨로 유명했다 ..  <조안 하라/차미례 옮김-빅토르 하라>(삼천리,2008) 173쪽

'그중(-中)'은 '그 가운데'로 다듬고, "그 지역(地域) 일대(一帶)에서는"은 "그곳 둘레에서는"이나 "그 둘레에서는"으로 다듬습니다. '유명(有名)했다'는 '이름이 높았다'나 '널리 알려져 있다'나 '잘 알려져 있다'로 손봅니다.

 ┌ 노인(老人) :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
 │   - 노인을 공경하다 / 평범하게 산 노인보다
 │
 ├ 아주 늙은 노인이었는데
 │→ 아주 노인이었는데
 │→ 아주 늙은 사람이었는데
 │→ 아주 늙었는데
 └ …

나이가 어리니 '어린이'요, 나이가 젊으니 '젊은이'이며, 나이가 늙어 '늙은이'입니다. 그러나, 나이 어린 사람을 두고 '소년(少年)'이라 하고, 젊은 사람을 두고 '청년(靑年)'이라 하며, 늙은 사람을 가리켜 '노년(老年)'이라고도 하는 우리들입니다.

'어린이'라는 낱말은 방정환 님이 처음 만들어서 썼다고 합니다. 우리한테는 '아이'라는 낱말이 있어, 굳이 '어린이' 같은 낱말을 새로 빚어내지 않아도 괜찮다고 할는지 모르는데, 나이에 따라서 꾸밈없이 가리키는 말틀인 '젊은 + 이'와 '늙은 + 이'임을 헤아린다면, 넉넉히 빚어낼 만했어요. 이렇게 하면, 씩씩하기에 '씩씩이'이고, 튼튼하기에 '튼튼이'이며, 똑똑하기에 '똑똑이'입니다.

 ┌ 노인을 공경하다 → 어른을 섬기다 / 어르신을 모시다 / 늙은 분을 받들다
 └ 평범하게 산 노인 → 수수하게 산 늙은이 / 수수하게 산 어르신

그런데 어린이를 어린이라 하지 않으니 "늙은 노인"처럼 잘못 쓰듯 "어린 소년"처럼 잘못 쓰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젊은이를 젊은이라 하지 못하는 가운데, "젊은 청년"처럼 엉뚱하게 쓰지 않을까 근심스럽습니다.

 ┌ 많이 늙은 사람 / 조금 늙은 사람
 ├ 아주 늙은 사람 / 덜 늙은 사람
 └ …

많이 늙었으면 '많이 늙었다' 하면 됩니다. 나이가 무척 많으면 '나이가 무척 많다'고 하면 됩니다. 꾸며야 할 때는 꾸미되, 있는 그대로 써야 할 때는 있는 그대로 써 주어야 말다운 말이 자리잡고 글다운 글이 뿌리내립니다.


ㄴ. 경제적으로 돈이 없다

.. 아름답고 풍요로운 문화와 환경을 가진 나라죠. 경제적으로 돈이 없다고 네팔을 가난한 나라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  <이매진피스 임영신,이혜영-희망을 여행하라>(소나무,2009) 145쪽

"풍요(豊饒)로운 문화와 환경을 가진 나라죠"는 "넉넉한 문화와 환경으로 이루어진 나라죠"나 "넉넉한 문화와 환경을 누리는 나라죠"로 다듬습니다. "가난한 나라라고 부르는 것은"은 "가난한 나라라고 하면"이나 "가난한 나라라고 하는 일은"으로 손봅니다.

 ┌ 경제적(經濟的)
 │  (1)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 분배, 소비하는 모든 활동에 관한
 │   - 경제적으로 어렵다
 │  (2) 돈이나 시간, 노력을 적게 들이는
 │   - 장기적으로 보아 훨씬 더 경제적이다
 │
 ├ 경제적으로 돈이 없다고
 │→ 경제가 어렵다고
 │→ 돈이 없다고
 │→ 나라에 돈이 없다고
 │→ 나라벌이가 적어 돈이 없다고
 │→ 사람들이 돈이 없다고
 └ …

돈이 있다면 얼마나 잘사는 셈이고, 돈이 없다면 얼마나 못사는 셈일까 궁금합니다. 돈이 많다면 얼마나 넉넉한 셈이며, 돈이 적다면 얼마나 가난한 셈인지 궁금합니다.

돈이 있어도, 몇몇 있는 사람한테만 있다면 어떠한가요. 돈이 없어도, 서로서로 오순도순 나누며 돕고 산다면 어떠한가요.

우리네 나라님들은 한결같이 돈있는 사람만 살 수 있는 아파트로만 동네 개발을 밀어붙입니다. 돈없는 사람이 넉넉히 모여살 수 있도록 자그마한 동네를 꾸밈없이 보듬지 않습니다. 우리가 내는 세금은 직접세보다 간접세가 훨씬 크다고 하는데, 살림이 가난하여 직접세를 거의 못 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날마다 끊임없이 간접세를 내고 있음을 돌아본다면, 가난한 동네는 가난한 모습 그대로 남더라도 서로 옹기종기 모이며 사랑과 믿음을 나눌 수 있게끔 껴안는 정책이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살림살이와 견주어 가난하다고 하는 나라와 손을 잡는다든지 돕는 손길을 보낸다든지 할 때에도, 도움을 받을 나라에서 지내는 사람들 삶과 문화를 다치지 않게 하면서 손길을 보내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 보기글에서도 한두 줄로나마 말하고 있습니다만, "돈이 없어"도 "문화와 환경은 아름다운" 나라가 많습니다. 돈이야 어떻게든 번다지만, 문화와 환경은 어떻게든 아름답게 가꿀 수 있지 않아요. 어쩌면, 돈이 있기 때문에 문화와 환경을 아름다이 가꾸지 못하는지 모르며, 돈이 없기 때문에 문화와 환경을 아름다이 가꿀 수 있는지 몰라요.

 ┌ 살림이 쪼들린다고 네팔을 가난한 나라라고 한다면
 ├ 나라살림이 작다고 네팔을 가난한 나라라고 한다면
 ├ 나라벌이가 적다고 네팔을 가난한 나라라고 한다면
 ├ 사람들 벌이가 적다고 네팔을 가난한 나라라고 한다면
 └ …

돈이 넉넉해 책을 많이 사서 읽거나 영화를 자주 본다고 하여 문화가 높아지지 않습니다. 책 하나 읽지 못하여도 문화는 얼마든지 높일 수 있습니다. 책을 사읽지 못해도 도서관이 있어 빌려읽을 수 있으면 문화는 얼마든지 가꿀 수 있습니다. 영화 또한 동네 쉼터에 천을 걸고 등사기를 돌릴 수 있으며, 책이나 영화가 없어도 동네사람이 함께 일하며 함께 놀고 함께 춤추고 노래를 즐겨도 문화는 늘 꾸준히 가꾸는 셈입니다.

우리 곁에는 언제나 문화가 있습니다. 우리 둘레 어디에나 문화가 있습니다. 우리 삶이 곧 문화입니다. 내 이웃과 동무 살림새가 바로 문화입니다. 이리하여, 우리 곁에 언제나 있는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가슴이라면, 이와 같은 우리 문화를 가장 살갑고 알차게 우리 말틀에 담아낼 수 있습니다. 우리 둘레 어디에나 있는 문화를 헤아릴 수 있는 눈길이라면, 이러한 우리 문화를 가장 힘차고 튼튼히 우리 말밭에 심으며 가꿀 수 있습니다.

더 높은 문화가 아니라 한다면 더 높은 말이어야 하지 않습니다. 더 값나가거나 한결 값진 문화가 아니라 하면 더 값나가거나 한결 값진 말이 아니어도 됩니다. 있는 그대로 좋은 문화요, 나누는 그대로 좋은 말입니다. 꾸밈없이 좋은 터전이며 삶이고, 꾸밈없이 즐거운 말이며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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