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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4년, 알파벳도 안 가르치고 읽고 쓰라?

[초등교육과정과 교과서 분석①] 교과부는 초등 학습결손 대책 세워야

등록|2010.02.04 18:04 수정|2010.02.04 18:04
올 3월이면 초등학교 3, 4 학년 아이들이 2007개정교육과정에 따라 만든 새로운 교과서로 수업을 하게 된다. 그런데 전교조 초등교육과정 모임 분석에 따르면 올해 4학년에 올라가는 아이들(현재 3학년)에게 심각한 학습결손이 예측된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에 전교조는 지난 2월 1일 보도자료를 내고 교과부에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4학년 내용이 3학년으로 내려와서 못배워

이 아이들은 2009년에는 7차 3학년 교육과정으로 배우고, 2010년에는 2007개정 4학년 교육과정으로 배우게 된다. 그런데 7차에서 4학년에 있던 일부 내용이 3학년으로 내려가 못배우는 내용이 많다.

모든 교과에서 이런 결손이 있는데, 이 중 사회와 과학, 영어는 3학년 내용을 모르면 다음 단계 학습이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한다. 바뀐 4학년 교과서대로만 공부하면 아이들이 내용을 이해 못 해 부진아가 될 수도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교과부에서 교과별로 문제가 되는 내용을 파악하여 전국 학교에 교재와 학습 자료들을 제공해야 한다고 요구하였다. 내년에 5학년에서 6학년이 되는 아이들(현재 4학년)도 똑같은 문제가 예상되므로 미리 대비할 것도 주문하였다.(관련 내용 아래 보도자료 참고)

과학 동물 영역 보충학습 내용7차 4학년 2학기 내용인데 2007개정교육과정에서는 3학년으로 내려가서 올해 4학년 되는 아이들이 못배우는 내용입니다. 이 외에도 여러 영역에서 학습 결손이 있습니다. ⓒ 신은희



알파벳도 안 배웠는데 단어를 쓰라고?

이 중 영어가 가장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3학년 때는 영어가 주당 1시간이었는데, 올해부터 적용되는 2007개정교육과정에서는 영어가 2시간으로 늘어났다. 새 4학년 교과서는 3학년들이 주당 2시간 배운 것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즉 1학기 내용을 건너뛰어 4학년 내용을 따라가야 한다는 뜻이다.

3-2 영어 알파벳 학습 내용2007개정교육과정 3학년 2학기 9월 진도입니다. 4학년 1학기동안 알파벳을 몇 글자씩 배웠는데, 올해 4학년이 되는 아이들은 1학기 내용을 못배우고 바로 단어쓰기에 들어가야 합니다. ⓒ 신은희


내용도 문제다. 7차 교육과정에서는 3학년때 놀이 중심으로 듣기와 말하기만 공부하고 알파벳은 4학년에 가서 배운다. 올해 적용되는 2007개정교육과정에서는 알파벳을 배우는 것이 3학년 2학기로 내려오고, 4학년에 가자마자 낱말을 배워야 한다.

그러니 이 아이들은 알파벳도 안 배웠는데 낱말을 읽고 써야 하니 사교육에서 영어를 안 배운 학생들은 시작부터 따라갈 수가 없다. 2008년 12월에 MB정부가 공교육에서 영어를 책임지겠다고 시수를 무작정 늘렸는데 시작도 하기 전에 부진아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를 모르는 교사들은 아이들이 3학년때 제대로 안 배웠다고 혼낼 지도 모른다.

교과부는 모르거나 알고도 방치하거나

지금 전국의 학교는 학년을 마무리하고 새 학년 준비를 하고 있다. 조금 마음이 바쁜 학부모는 학원에서 선행 학습을 하거나 서점에 나온 참고서를 미리 사서 공부를 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학교에는 아직 3, 4학년 교과서가 오지 않았다. 지역에 따라 편차는 좀 있다.

교과부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을까? 수학은 2008년에 결손 부분 자료집을 만들었다.(관련기사:중학교 신입생, 수학 못배우는 내용 있다) 2009 학년도에는 3학년과 6학년이 해당된다. 하지만 교사용 자료만 주고 학생 것은 주지 않아서 학교에서 일일이 30여 장을 복사해서 썼다. 하지만 다른 교과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몰라서 그러는 건지 알고도 안하는 건지는 알 수 없다.

서울만 알려주고 지방은 아예 몰라

서울시 교육청에서는 과학 보충 학습 대책을 내놓았다. 12월 말에는 내용도 안 가르쳐주고 과학 결손이 있으니 3학년에 보충하라는 공문만 내려왔다. 1월에 다시 단원을 알려주고 가르치라고 공문이 내려왔다. 여전히 교사와 학생들에게 교재도 안 주어서 답답해하고 있지만, 서울 학생들은 상황이 낫다.


서울시교육청은 2009년에도 모든 1, 2학년 교사들에게 2월 초 봄방학 기간을 이용해 새 교육과정과 교과서 연수를 진행했다. 다른 지역은 2월말이나 3월 2일에 담임을 맡고 나서야 교과서를 봤으니 여기에서부터 격차가 생기는 건 당연하다.

그래도 1, 2학년은 교과가 5개라 좀 낫다. 3, 4학년은 교과가 9개나 된다. 양도 많고 내용도 어렵다. 서울은 올해 3, 4학년 교과서 연수도 진행할 예정이라는데, 지방은 이런 데에서도 설움을 당해야 한다.

작년 말에 교과부에 이 사실을 이야기하고 지방에도 이런 연수를 해 달라고 하니 이런 건 시도교육청에서 할 일이라고 한다. 지방에서는 연수에 가도 교육과정 해설서에 나온 어려운 내용과 "무엇이 좋아졌다"는 홍보만 하지 실제 이야기는 듣기가 어렵다.

수학 보충 교재도 교과서나 마찬가지이니 교과부가 자료를 만들어 물자도 아끼고 학생들에게 좋은 교재를 줘야 하지 않나 요구하면 바빠서 못하고 시도교육청에나 이야기하라고 한다.

4학년을 위한 특단의 대책 마련해야

교과부나 교과 담당자들은 열심히 새 교과서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올해 4학년 교과서만으로는 아이들 공부를 할 수가 없다. 교육과정개정 때문에 오히려 부진아가 되는 피해를 당할 상황이다. 일부 학부모들은 학습권 침해로 소송을 걸겠다고도 한다.

교과부는 하루 빨리 교과마다 어떤 결손이 있는지 밝혀내고 4학년에 올라가는 학생과 학부모가 불안하지 않도록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전교조 성명서 - 개정교육과정에 따른 초등 수업결손 대책마련을 촉구한다

1. 2010학년도는 초등 3, 4학년에 '2007개정교육과정'이 적용된다. 교과부는 2007개정교육과정을 발표하면서 교과별로 학습량과 수준을 적정화했다고 발표하였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3년간 개정교육과정에 대한 교사 연수가 이뤄지고 교과별로 교과서가 개발되고 실험되고 있다.

2. 그런데 올해 4학년에 올라가는 학생들은 학년이동 과정에서 여러 교과에 걸쳐 학습결손이 예상되고 있다. 개정 전 7차교육과정이라면 4학년에서 다루어야 할 일부 과정이 2007개정교육과정에서는 3학년에 편성되면서 배우지 못하는 내용이 생기는 것이다. 국어 교과는 상대적으로 수업결손이 적은 편이지만, 사회와 과학, 영어는 3학년 내용을 모르면 다음 단계 학습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학년수준에 맞지 않은 어려운 내용으로 편성되고, 영어 시수도 늘어난데다 이런 학습결손까지 생긴 심각한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다.

올해 4학년을 맡게 될 교사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교과서에 나온 내용을 가르치는 경우 그 피해는 학생에게 돌아가게 되며, 의도하지 않게 학생들을 부진아로 만들 수도 있는 상황이다. 

3. 교과부는 2008, 2009년의 경우 수학교과에 대해서 보충자료를 주었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학생용 보완 교재도 주지 않고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아, 보충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학교가 발생하고 있다. 더군다나 나머지 교과에 대해서는 학년이 올라가는 지금까지도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어, 일선 학교에서의 대책도 없는 실정이다.

4. 전교조는 지난 1월 11일부터 14일까지 열린 '제9회 참교육실천대회'에서 참교육실 초등교육과정분과는 3, 4학년 실험본 교과서를 분석한 결과 이런 사실을 확인하였다. 

<분석 내용 요약>
7차교육과정으로 바뀔 때는 어려운 내용이 고학년으로 올라가서 학년이 바뀌는 과정에서 내용이 중복되어 복습을 하여 학생들에게는 부담이 줄어들었다.

그런데 학습량을 적정화했다는 '2007개정교육과정'은 어려운 내용을 오히려 아래 학년에 배치해, 과연 그것이 적정한 것인지 밝혀야 할 것이다.

2009년에 1,2 학년을 가르친 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결 같이 내용이 어려워졌다고 한다. 2011년에 6학년이 되는 학생들은 사회(역사 영역)교과 1년치를 보충학습해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질 것이다. 이 때문에 앞으로 보충학습 과정에서 학생과 교사들의 부담도 커질 것이다.

게다가 개정 실험본 교과서는 소수 학교에 비밀리에 실험 적용하여 일반 교사들은 3월에야 받게 되니 이런 상황을 미리 예견하고 준비할 기회조차 상실해버렸다. 전교조는 교과부에 초등교육과정 개정에 대한 종합대책기구와 담당자가 필요하다고 수차례 요구하였음에도 묵살당한 바 있다.

그런데도 교과부는 하루가 멀다 하고 교육과정을 바꾸고 교과서도 보지 못한 교사들에게 수업시수 20%를 증감하라는 등 교육본질과 거리가 먼 지침만 남발하여 학교교육을 파행으로 몰아가고 있다. 연구와 현장적용 검토도 제대로 되지 않은 '2009개정교육과정'을 2011년부터 적용해도 혼란을 막기 힘든 상황인데도, 학교자율화라는 명목으로 2010년부터 조기 적용시키면서 전국의 초등학교는 몸살을 앓고 있다.

교과부는 하루빨리 2010학년도 4학년 학생들이 국가교육과정 개정으로 인한 학습결손 피해를 입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전교조에서 파악한 내용만 보더라도 보완할 양도 많고 시수도 많다. 지금까지처럼 억지로 끼워넣기 식의 보충수업이나 개별 교사에게만 책임을 미루는 방식이 아니라 학생용 교재, 교수학습 자료까지 마련하고, 2011년도 6학년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질 높은 수업을 할 수 있도록 교수학습자료와 교구에 대한 안내도 신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현장과 관계없이 교육과정을 자주 바꾸면 불가피하게 학생들이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유념하고 교육과정 개정에 신중해야 할 것이다.

- 교과부는 초등 3, 4학년 학습결손 방지 특별대책을 마련하라.
- 교과부에 초등교육과정을 총괄하는 기구를 마련하라
- 교과부는 교육과정 개정보다 학생 입장에서 현장 교육 상황을 제대로 연구조사하고, 초등학생 발달단계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부터 시행하라

2010년 2월 1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덧붙이는 글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개정교육과정 내용이 어렵기도 하지만, 교과부의 준비 부족으로 학생들에게 가는 피해가 매우 많습니다. 1,2 학년 교육과정과 3, 4학년 개정교과서의 문제점에 대해 계속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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