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옥류관 여종업원들, 요즘엔 먼저 말 걸어요

[세계의 한국식당⑤] 남북이 상생하며 발전하는 중국 속 한식

등록|2010.02.08 18:44 수정|2010.02.12 17:45
낯선 외국 거리를 걷다가 한국식당을 만나면 그리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간만에 입맛에 맞는 우리 음식을 먹을 수도 있지만, 이렇게 먼 곳까지 와서 우리 음식문화를 전파하는 사람들이 고맙기도 합니다. '음식 한류'가 불고 있다고 하는데, 과연 한국식당은 세계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까요? 오마이뉴스 해외통신원들이 새해를 맞아 전세계의 한국식당들을 집중 탐구해봤습니다. 일반 시민기자 여러분들도 자신들이 겪은 한국식당의 추억이나 제안이 담긴 글을 올려주시면 적극 배치하겠습니다. [편집자말]
"한국 음식 좋아하십니까?"
"물론 좋아하지요. 제 안사람은 일주일에 한번 이상은 꼭 한국 음식을 먹으러 가자고 해요."
"그 정도면 정말 한국 음식 마니아네요."
"예. 가끔은 조선 음식점에 가기도 합니다."

중국에서 갖가지 일로 만나는 중국인들과 대화 속 일부다. 실제로 베이징 올림픽 당시 물가 급등으로 인해 중국에 사는 한국인들은 급속히 줄었지만 한국 음식점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지 않았다. 이미 중국내 한식당의 고객층에 중국인들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중국 최대의 미식 사이트인 디엔핑(www.dianping.com)에 가면 선명하게 나타난다.

베이징만 살펴도 한국 음식점은 아주 높은 만족도를 나타내고 있다. 크지 않은 가게지만 한국인 거리의 중심인 왕징4구에 자리한 화로화(火炉火)를 비롯해 애강산(爱江山) 장타이루 본점이나 시쓰환점(西四环店), 우다코우 성한궁(星漢宮), 서라벌(萨拉伯尔) 옌샤점, 시단점(西单店) 한라산(汉拿山)의 롱더광장점(龙德广场店)-중관춘점(中关村店), 왕징의 본가(家韩国料理), 왕징 자하문(紫霞门韩国料理) 등 상당수의 한국 음식점들이 최고점인 5점을 받았다. 또 평양해당화(平壤海棠花), 옥류궁(玉流宮) 등 북한 음식점들도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또 지난달 14일 중국 시사지 <샤오캉(小康)>의 보도에 따르면 칭화(清华)대학 미디어서베이랩과 함께 중국인 1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음식문화 실태' 조사 결과 응답자의 12.3%가 한식을 최고의 외국 요리로 꼽았다. 한식에 이어 일식(10.3%)과 프랑스 요리(3.5%)가 2~3위를 차지했다. 또한 한식을 좋아하는 이유도 '건강을 위해 먹는다'는 사람이 44.1%여서 한식에 대한 긍정적 사고를 보여줬다.

중국 내 한식진출의 선도자는 북한 음식점

▲ 대표적인 북한 음식점인 '평양해당화'는 점심과 저녁으로 종업원들이 공연을 펼쳐 손님의 흥을 돋운다 ⓒ 조창완


그럼 베이징 등 중국 대도시에서 한식의 역사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우선 옌볜 조선족 자치주 등을 비롯해 동북 3성에서 거주하던 중국 동포들이 베이징 등에서 '연길 냉면' 등 '조선족 음식점'을 내면서 대도시의 중국인들은 한국 음식에 대한 맛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포 음식은 확산 속도나 메뉴 등에서 빠른 발전을 보이지 못하다가 1990년을 전후로 한국인들이 급속히 중국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1992년에는 한중수교가 이뤄지며 사정이 달라졌다. 그 당시 주목받았던 우리 음식은 베이징에 있었던 '유경식당'이나 '해당화', '옥류관' 등에서 파는 북한음식이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 음식점이 없어서 북한 식당은 중국 출장 한국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고, 식사와 공연을 곁들인 문화나 한국에서는 흔히 맛보지 못했던 '가자미식해' 등이 관심을 끌었다. 특히 관심을 끈 것은 이곳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이 모두 북한에서 직접 파견된 아리따운 여성이라는 것도 작용했다.

북한음식점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은 몇 년 전만 해도 잘 웃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손님이 요구하면 다정하게 사진을 함께 찍는 것은 물론이고 단골들에게는 미리 말을 거는 등 한결 친절해졌다. 또 북한식당을 찾는 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때는 공연시간이다. 과거에는 정치성이 많은 노래를 불렀지만 최근에는 '심장에 남는 사람' 등 서정적인 노래를 많이 부른다. 또 '목포의 눈물' 등 한국 노래도 불러서 방문자들의 흥을 돋우기도 한다.

그런데 수교 이후 한국 유학생이 봇물처럼 늘어나면서 베이징의 우다코우(五道口)나 톈진의안산시다오(顔山西道), 선양의 시타(西塔)에 한국 음식점이 늘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성공사례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장 첫 사례로 꼽을 만한 이가 '파파스'의 이기영 사장이다.

중의학을 공부하러 유학 온 이 사장은 1994년 창춘시에 첫 한국음식점 '파파스'를 차렸다. 우리 음식점이었지만 약간 퓨전의 개념을 넣었고, 체인망을 가동하면서 이 브랜드는 급성장했다. 음식점 자체의 성장세는 약간 꺾였지만 이사장은 '산천어' 웰빙 음식 체인이나 병원 등으로 사업 분야를 넓히면서 아직까지도 성공사례로 꼽힌다.

다음 성공사례로 꼽히는 것은 '설악산 불고기'의 홍순대 사장이었다. 이기영 사장보다 먼저 사업을 시작했던 홍 사장은 사업 10년째인 2001년에는 30여 개의 체인점을 낼 만큼 성공했다. 홍 사장의 성공 비결은 고기의 질을 유지하고, 주방을 공개하는 한편 구워먹는 문화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선양, 베이징, 톈진 등으로 너무 빨리 체인망을 넓혔고, 관리 부실 등으로 얼마되지 않아서 체인망들을 접고 지금은 선양의 본점에 치중하고 있다.

중국인 손님 끌지 못하면 위기 맞는다

▲ 베이징을 중심으로 발전한 '서라벌'은 전 중국에 체인을 두고 있다 ⓒ 조창완


그런데 1997년부터 시작된 한국의 경제위기는 중국내 한식업계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한국인이 줄면서 주 고객이 한국인이었던 식당들의 매출은 급감했다. 우선 중국인을 고객으로 끌지 못했던 식당들이 위기를 맞았다. 다행히 한국의 경제 상황이 호전되면서 2004년 정도를 기점으로 서서히 한국 음식점은 성장했다.

이미 94년에 옌샤의 고급 백화점 건물에 고급 한식당인 '서라벌'이 들어서 인지도를 높였다. 이 시기 한인타운인 왕징(望京)의 입주가 본격화되면서 왕징은 베이징 한국 음식점의 메카가 됐고, 톈진도 안산시다오가 한국 음식점 거리로 이미지를 굳건히 했다.

베이징의 경우 한인회 사무국장을 했던 종철수씨가 운영하는 '전주관'도 옌샤 쪽에서 왕징으로 옮기면서 규모를 키웠다. 또 두산그룹이 투자한 '수복성'은 베이징의 중심지에 있는 헝치중신(恒基中心)에 자리해 고급식당으로의 이미지를 굳혔다.

특히 후진타오 주석이 방문해서 유명세를 탔는데, 이 식당을 관리하던 온대성 사장은 화장실에서 음식을 먹는 시범을 보일만큼 열성적으로 식당을 이끌어서 관심의 초점이 되기도 했다. 온 사장은 현재 비빔밥 등을 중심메뉴로 한 '대장금'을 체인화해서 다양한 이벤트를 벌이는 방법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2000년대 후반의 가장 큰 특징은 북한음식점의 약진과 한국음식점의 대형화였다. 또 한국에 본점을 둔 음식점의 진출도 눈에 띄었다. 우선 북한 음식점이 베이징만 해도 십여곳 이상으로 늘어났다. 북한 대사관 인근에 자리한 '해당화'는 체인점을 3곳 늘렸고, '옥류관', '평양관' 등도 체인을 늘렸다.

이 북한 음식점은 대게, 송이 등의 비싼 재료를 쓰면서 음식값 상승을 이끌기도 했다. 특히 '옥류관'은 왕징에 300석 수용 규모의 대형 식당을 오픈해서, 관광객들이 꼭 들르는 식당으로 자리잡았다.

한국 음식점들도 급속히 커졌다. 우선 왕징 인근 리두(麗都)공원에 자리한 '애강산'은 20억원이 투자된 고급식당인데,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예상과 달리 성공한 음식점으로  꼽히고 있다. 또 LG가 만든 쌍둥이 빌딩에도 대형 한식당인 '가온'이 자리했는데, 투자금만 30억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첫 고급 한식당이었던 '수복성'도 옌샤 현대자동차 빌딩에 분점을 냈으며, '서라벌'도 고급 한식체인으로 7개의 분점을 낸 베이징은 물론이고 전 중국에 분점을 늘렸다.

▲ '정일미'의 남정일 사장은 베이징에만 30여개의 직영점을 내는 등 현지화로 성공한 사례다 ⓒ 조창완


대박으로 생각했던 올림픽이 오히려 위기로

그런 가운데 또 다른 성공사례도 나왔다. '정일미'(正一味)라는 돌솥비빔밥 체인이다. 역시 유학생 출신인 남정일씨가 운영하는 이 돌솥밥 체인은 1999년에 베이징에 문을 연 이래 급속히 성장해 현재 베이징에만 30개 직영 가게를 두고 있고, 상하이, 선전, 정저우, 신안 등 중국 대도시에도 체인을 두고 있는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정일미'는 대형 상가에만 입주해서 실속있는 브랜드로 자리하고 있다. 성공 비결에 대해 남정일 사장은 "사실 다른 나라에서 사업하는 게 쉽지 않다. 습관이나 꽌시가 없는 상황에서 사업이라는 게 얼마나 어렵겠나. 하지만 직원들을 철저히 중국인으로 고용하고, 중앙 집중의 물류시스템을 운영해 지속적으로 품질을 관리하기 때문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런 중국 속 한국음식의 백가쟁명 시대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나 환율급등으로 다시 한번 큰 곡절을 겪었다.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생각됐던 베이징 올림픽은 비자가 어려워지고, 여행 비용이 올라가서 중국 방문자수를 줄이게 했고, 특히 1위안에 120원 정도였던 환율이 250원까지 치솟으면서 베이징의 음식값은 한국과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가 됐다.

결국 유학생이 급감했고, 있는 거주자들도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식당들의 매출은 감소했다. 하지만 긍정적인 신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드라마 '대장금'이 인기를 끌면서 한식에 대한 이해가 커졌고, 중국인들의 씀씀이는 줄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인들에게 인기를 끈 식당들은 오히려 이전보다도 더 매출이 늘었다.

한국 여행객이 줄어들자 급속히 늘어났던 북한 음식점들도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왕징 옥류관을 채우던 한국 여행객들은 급감했고, 매출도 급속히 줄어들었다. 2010년에 들어서도 여행객이 별로 늘지 않으면서 여전히 순망치한의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다.

서울에 있는 음식점의 종류를 구분하라면 몇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까. 그런데 확실한 것은 베이징이나 상하이에서 그 종류를 구분하라면 최소한 3배 정도는 많다는 것이다. 우선 이런 도시에는 중국 22개성, 5개 자치구, 4개 직할시와 2개 특별자치구의 음식점이 모두 있다.

물론 그중에는 4대 요리, 8대 요리, 10대 요리처럼 번성한 음식도 있지만 각 성마다 독특한 음식이 있기 때문이다. 한 성이라고 해도 다 같은 요리가 아니다. 광둥음식에도 광저우쪽 요리와 차오저우 요리 등 수많은 갈래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워낙 다양한 외국인들이 거주하기 때문에 각 나라별 음식점도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한국음식은 그 가운데 한 종류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또 김치 등 인상적인 메뉴와 웰빙의 이미지까지 겹쳐 있어서 잘 안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한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이 아파트 단지 안 상가는 상당수가 한국음식점이다 ⓒ 조창완


"성공해도 절대 골프장에 가지 말라"

사실 중국에서 창업해서 성공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업은 음식사업이다. 중국인들 자체가 워낙 다양한 음식을 즐기고, 한국인이 직접 운영한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잇점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베이징의 왕징이나 선양의 시타, 상하이 구베이처럼 한국인들의 밀집지역이라면 성공을 장담하기는 어렵다. 이곳에는 한집 건너 한집이 한국음식점이기 때문이다.

또 과거에는 몇천만원 정도면 중국에서 작은 음식점의 창업도 가능했지만, 지금은 몇억원을 쏟아부어도 규모있는 음식점을 열기 어렵다. 또 중국의 사업 환경이 쉽지 않기 때문에 철저히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실제로 많은 음식점들이 인터리어를 마친 채 개업식조차 하지 못하고 허물어진 일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한국 음식점으로 자리 잡으려면 몇가지 원칙이 있다. ▲ 철저히 외로워질 각오를 해라. ▲ 두드려본 돌다리도 다시 두드리면서 건너라. ▲ 성공해도 절대 골프장에 가지 마라.(방심해지는 순간 손님은 외면한다) ▲ 중국어를 익혀라 등이 그런 계명들이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