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82)
― '눈앞의 뉴스', '엄마의 차', '수유의 계절' 다듬기
ㄱ. 눈앞의 뉴스
.. 굳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쓰나미의 지원으로 갈아타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눈앞의 뉴스에 움직이게 마련이다 .. <소노 아야코/오근영 옮김-왜 지구촌 곳곳을 돕는가>(리수,2009) 15쪽
┌ 눈앞의 뉴스에
│
│→ 눈앞에 보이는 소식에
│→ 눈앞에 펼쳐지는 이야기에
│→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에
└ …
토씨 '-의'만 덜고 "눈앞 뉴스에 움직이게 마련이다"처럼 적어도 괜찮습니다. 이렇게라도 마음을 쓰면 반갑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적으면 어딘가 어설프거나 모자라다고 느끼는지, 모두들 '-의'를 살며시 붙여 버리고 맙니다. '-의'를 붙이지 않으면 말이 안 되는 줄 느끼며, 읽거나 들을 때 알맞지 않은 듯 생각하고 맙니다.
┌ 눈앞에 닥친 시험 (o)
└ 눈앞의 시험 (x)
언제나 그렇습니다만, 어딘가 어설프거나 모자라다고 느낀다면, 왜 어설프거나 모자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얼마나 어설퍼 어떻게 가다듬어야 하는가를 곱씹어야 하고, 어느 만큼 모자라서 어찌어찌 추슬러야 하는가를 헤아려야 합니다.
손쉽게, 또는 대충, 아니면 이냥저냥 '-의' 하나 붙이고 끝내려는 얕은 움직임이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예부터 어떻게 말해 왔는지 돌아보고, 우리가 오늘날 어떻게 말할 때가 가장 알맞을까 살피며, 우리가 앞으로 어떤 말마디를 뒷사람한테 물려주면 더없이 나을까를 찾아보아야 합니다.
┌ 눈앞까지 다가온 그날 (o)
└ 눈앞의 그날 (x)
말은 생각이요 삶입니다. 말마디에는 생각과 삶을 고루 담습니다. 말투는 우리 마음투이고, 말씨는 우리 마음씨이며, 말결은 우리 마음결입니다.
저마다 어떤 말투와 말씨와 말결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느냐 하는 매무새는, 바로 그 사람 마음투와 마음씨와 마음결이 어떠한 가운데 사람들을 어찌어찌 마주하느냐를 보여주는 셈입니다. 이리하여 글을 처음 쓰는 사람이나, 이렇게 쓰인 글을 매만져 책이나 잡지나 신문에 싣는 사람이나, 서로서로 내 매무새가 어떠한가를 되짚고 톺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삶을 어떤 글줄에 담았는지를 되짚어야 합니다. 어떤 생각을 어떤 글투로 엮어 놓았는지 톺아보아야 합니다.
ㄴ. 엄마의 차
.. 그러면 엄마의 차를 몰고 친구들 집으로 가서는 애들을 태우고 영화관이 있는 시내로 방향을 돌리는 거지요 .. <마르크 캉탱/신성림 옮김-왜 하지 말라는 거야?>(개마고원,2009) 16쪽
"방향(方向)을 돌리는 거지요"는 "방향을 돌리지요"나 "가는 길을 돌리지요"나 "돌리지요"로 손질해 줍니다.
┌ 엄마의 차를 몰고
│
│→ 엄마 차를 몰고
│→ 엄마가 타는 차를 몰고
└ …
비슷한 말투일 때에도 마찬가지인데, "누나 차"나 "오빠 차"나 "언니 차"나 "동생 차"나 "할아버지 차"라 해야 올바릅니다. "사장님 차"나 "아저씨 차"나 "과장님 차"나 "직원 차"라 해야 알맞습니다.
사이에 토씨 '-의'를 넣을 까닭이 없습니다. 사이에 토씨 '-의'를 넣는다고 느낌이 살아나거나 뜻이 새로워지지 않습니다.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를 말놀이처럼 읊기도 하는 우리들인데 "아버지 가방"이지 "아버지의 가방"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말놀이를 즐길 수 있습니다.
말삶과 말놀이와 말흐름과 말매무새와 말씀씀이 모두를 차근차근 돌아보면 됩니다. 말버릇과 말투와 말무늬와 말느낌 모두를 곰곰이 되씹으면 됩니다. 아름답게 말한다고 모두 아름다운 사람이지는 않으나, 아름답게 말하려는 매무새 없이 아름다운 내 모습과 얼굴과 몸을 가꾸지는 못합니다.
ㄷ. 수유의 계절
.. 매년 수유의 계절이 되면 열매의 무게로 가지가 휘어질 정도다 .. <이가라시 다이스케/김희정 옮김-리틀 포레스트 (1)>(세미콜론,2008) 5쪽
'매년(每年)'은 '해마다'로 다듬고, '계절(季節)'은 '철'로 다듬어 줍니다. "휘어질 정도(程度)다"는 "휘어지곤 한다"나 "휘어질 만큼 가득하다"나 "휘어지도록 가득하다"로 손봅니다.
┌ 수유의 계절이 되면
│
│→ 수유가 익는 철이 되면
│→ 수유를 따는 철이 되면
│→ 수유철이 되면
└ …
감이 익을 무렵이면 "감이 익을 무렵"이면서 "감이 익는 철"이요 "감철"입니다. 능금이 익을 때라면 "능금이 익을 때"이면서 "능금이 익는 철"이요 "능금철"입니다.
우리는 '수박철'과 '딸기철'과 '참외철'과 '호박철'과 '살구철'과 '대추철' 들을 이야기하면서 요즈음 날씨가 어떠한지를 헤아리곤 합니다. 우리 입맛에 따라 철을 생각하고, 산과 들에서 무르익는 열매를 떠올리며 철을 생각합니다.
┌ (열매나 푸성귀나 온갖 먹을거리 이름) + 철
└ 수유철 / 능금철 / 배추철 / 감자철 / 바지락철 / 전어철
이제는 웬만한 가게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따로 없이 온갖 열매가 널려 있고 갖은 푸성귀가 펼쳐져 있습니다. 굳이 철을 살피지 않더라도 언제나 딸기를 먹고 수박을 먹고 바나나를 먹습니다. 집이나 일터 또한 요즈음 철이나 날씨가 어떠한가를 몰라도 한결같이 따뜻하거나 시원합니다. 자가용으로 움직이든 전철이나 버스로 움직이든, 우리는 바깥 날씨를 느낄 겨를이 없습니다.
꼭 바깥 날씨를 알뜰히 느끼거나 깨달아야 한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 몸이 바깥 날씨를 잊거나 잃는 가운데, 우리 마음으로 무엇인가를 잊거나 잃지 않느냐 싶습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이 잊거나 잃는 무엇인가는 우리 삶에서 또다른 무엇을 잊거나 잃도록 줄줄이 이어지지 않느냐 싶습니다.
┌ 열매의 무게로
│
│→ 열매 무게로
│→ 열매들 무게로
└ …
우리 스스로 삶다운 삶을 잊거나 잃는 가운데 우리 삶을 밝히는 생각을 함께 잊거나 잃지 않느냐 싶습니다. 다른 누가 괴롭히거나 들볶지 않았어도 우리 스스로 우리 터전을 일구는 생각을 잊거나 잃었다면, 우리는 우리 뜻과 넋을 담아낼 말과 글 또한 우리 손으로 내버리거나 내치지 않느냐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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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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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