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일간 신문을 통해 고교 시험제를 부활해야 한다며 목청 돋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평준화가 가져온 대표적인 병폐를 거론하면서 내거는 표어 중에 '하향 평준화' 라는 게 있다. 고등학교를 평준화 시킨 결과 학생들의 학력도 평준화 되었는데, 그게 실력이 다같이 낮아지는 쪽으로 평준화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교 평준화는 1등 실력을 가진 1등 국민을 없애자는 망국적 제도(?)나 다름없다고 목청 높이며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우리 시대의 대학 시험이라는 게 어떤 것인가. 혹자들은 대학 시험이 종합적 사고력을 측정하는 문제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이는 일종의 사기다. 객관식 5지 선다형 문제로 그것도 답이 딱 하나로만 떨어지는 문제로 종합적 사고력을 측정한다는 게 정말 웃기는 소리냐는 말이다. 답이 하나라는 말은 곧 단순 사고라는 뜻이다.
종합적 사고력을 측정하려 한다면 그 문제는 일단 답이 여럿 나올 수 있어야 정상이다. 현재 우리네 상황에서 답이 여럿 나오는 문제가 가능한가. 우리네 시험은 오직 그것 외에는 다른 답이 있어서는 안 되는 외통수 문제만을 요구한다. 그러니 종합적 사고력 운운하는 것은 말장난일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네 인생을 비추어 보아도 명확히 알 수 있다. 인생살이에서는 결코 답이 하나일 수가 없다. 살아본 사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을 행복하게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정말 종합적 사고력이 필요하다. 너무도 다양한 상황에 갖가지 복잡한 인간관계가 얽혀져 있어 삶이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애비가 의사가 되었다고 자식 농사가 잘 되는 것도 아니고, 가족 관계가 행복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인생의 답(목표)은 의사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네 대학입시는 다르다. 대학입시에서는 답이 하나다. 대학입시의 상황은 단순하다. 그 본질은 암기력 테스트다. 물론 여기에 기타 다른 종류의 능력이 조금씩 가미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주관식이든 객관식이든 논술이든 여하를 불문하고 본질적으로는 암기력 테스트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왜 그럴까. 우리 사회에서는 대학 입시가 일종의 '신분 결정 시험(어느 대학 출신이냐가 평생 영향을 미친다)'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답이 여럿 일 수 있다면 너도나도 자기의 답이 맞다며 목숨 걸고 분쟁을 일으킬 소지가 너무도 많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시험 문제의 답이 여럿일 수 있다는 정황은 도무지 용납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군말 없이 승복할 수 있는 절대적 객관성이 꼭 필요하다. 단순 사고력(암기력) 말이다.
우리 사회의 이전 세대들은 후진국형의 학력에 물든 사람들이다. 어찌해서든지 간에 선진국이 만들어 놓은 것을 빨리 암기해서 그대로 모방해 내야만 먹고 살 수 있었던 시대에 살았다. 그때는 태정태세 문단세를 줄줄이 암기해 내고, 난해한 수학공식을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척척 외워대고, 평생 한번 써먹지도 않을 이상한(?) 영어 단어의 스펠링이나 악센트를 잘 외우는 것도 학력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이제 우리나라는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을 외워서 모방하는 것만으로는 지탱하기가 힘든 위치에 서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발전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남들이 하지 못한 것을 앞서서 개척하고 이끌어 가야 하는 자리에 와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더 요긴한 능력은 암기력이 아니라, 다양한 상상력과 기발한 창조력이다. 남들이 생각하지도 못하는, 어찌 보면 미친 짓 같은(객관성이 없어 보이는) 것에 매달리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누가 더 많이 외울 수 있는가' 라는 유일한 기준으로 아이들을 경쟁시켜서 그 결과에 따라 쭉 서열을 매긴 후, 암기력이 좋은 아이들만을 따로 모아 가르쳐야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너무도 후진적이다. 암기력에만 몰두하다 보면 상상력과 창조력이 빈곤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암기력은 다소 처지지만 뛰어난 상상력을 가진 아이들을 머리 안 좋은 아이로 규정함으로서, 그 놀라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도적으로 억압하는 장치를 만들어서, 국가 경쟁력에 득이 될 게 뭐 있겠는가. 암기력에만 몰두하는 기계적 바보보다는 적당한 암기력을 바탕으로 상상력과 창조력을 키워 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암기력에만 매달려 학원과 과외와 독서실을 오가는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고교 평준화는 암기력 위주의 경쟁을 다양한 방면의 경쟁으로 변화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암기 시험이 주는 서열화에서 자유로워진 아이들이 다양한 방면으로 자신의 소질과 능력을 발산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학력이 하향 평준화 한 것이 아니라, 학력이 다양해진 것이다. 학력이라는 것이 암기력이라는 제한된 영역에서 상상력과 창조력이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되어짐으로써 오히려 진보한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상상력과 창조력 키워줄 수 있는 방법은 무얼까. 그것은 다양한 경험이다. 인간의 과학 기술은 결국 자연을 흉내 내는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말하고 놀고, 자연과 더불어 경험하기를 통해 자신의 상상력과 창조력을 키워나가도록 가르쳐야 한다. 천편일률적으로 '공부(암기 학력) 잘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 고 말해도 되던 시대는 갔다. 우리는 과거 일제고사시험에 대한 강박적 향수에 젖어서 학력의 하향 평준화 타령만을 하고 있을 겨를이 없다. 암기력 위주만의 학력이 아닌, 기발하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새로운 학력을 추구해야 할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 시대의 대학 시험이라는 게 어떤 것인가. 혹자들은 대학 시험이 종합적 사고력을 측정하는 문제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이는 일종의 사기다. 객관식 5지 선다형 문제로 그것도 답이 딱 하나로만 떨어지는 문제로 종합적 사고력을 측정한다는 게 정말 웃기는 소리냐는 말이다. 답이 하나라는 말은 곧 단순 사고라는 뜻이다.
이는 우리네 인생을 비추어 보아도 명확히 알 수 있다. 인생살이에서는 결코 답이 하나일 수가 없다. 살아본 사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을 행복하게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정말 종합적 사고력이 필요하다. 너무도 다양한 상황에 갖가지 복잡한 인간관계가 얽혀져 있어 삶이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애비가 의사가 되었다고 자식 농사가 잘 되는 것도 아니고, 가족 관계가 행복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인생의 답(목표)은 의사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네 대학입시는 다르다. 대학입시에서는 답이 하나다. 대학입시의 상황은 단순하다. 그 본질은 암기력 테스트다. 물론 여기에 기타 다른 종류의 능력이 조금씩 가미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주관식이든 객관식이든 논술이든 여하를 불문하고 본질적으로는 암기력 테스트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왜 그럴까. 우리 사회에서는 대학 입시가 일종의 '신분 결정 시험(어느 대학 출신이냐가 평생 영향을 미친다)'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답이 여럿 일 수 있다면 너도나도 자기의 답이 맞다며 목숨 걸고 분쟁을 일으킬 소지가 너무도 많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시험 문제의 답이 여럿일 수 있다는 정황은 도무지 용납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군말 없이 승복할 수 있는 절대적 객관성이 꼭 필요하다. 단순 사고력(암기력) 말이다.
우리 사회의 이전 세대들은 후진국형의 학력에 물든 사람들이다. 어찌해서든지 간에 선진국이 만들어 놓은 것을 빨리 암기해서 그대로 모방해 내야만 먹고 살 수 있었던 시대에 살았다. 그때는 태정태세 문단세를 줄줄이 암기해 내고, 난해한 수학공식을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척척 외워대고, 평생 한번 써먹지도 않을 이상한(?) 영어 단어의 스펠링이나 악센트를 잘 외우는 것도 학력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이제 우리나라는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을 외워서 모방하는 것만으로는 지탱하기가 힘든 위치에 서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발전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남들이 하지 못한 것을 앞서서 개척하고 이끌어 가야 하는 자리에 와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더 요긴한 능력은 암기력이 아니라, 다양한 상상력과 기발한 창조력이다. 남들이 생각하지도 못하는, 어찌 보면 미친 짓 같은(객관성이 없어 보이는) 것에 매달리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누가 더 많이 외울 수 있는가' 라는 유일한 기준으로 아이들을 경쟁시켜서 그 결과에 따라 쭉 서열을 매긴 후, 암기력이 좋은 아이들만을 따로 모아 가르쳐야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너무도 후진적이다. 암기력에만 몰두하다 보면 상상력과 창조력이 빈곤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암기력은 다소 처지지만 뛰어난 상상력을 가진 아이들을 머리 안 좋은 아이로 규정함으로서, 그 놀라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도적으로 억압하는 장치를 만들어서, 국가 경쟁력에 득이 될 게 뭐 있겠는가. 암기력에만 몰두하는 기계적 바보보다는 적당한 암기력을 바탕으로 상상력과 창조력을 키워 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암기력에만 매달려 학원과 과외와 독서실을 오가는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고교 평준화는 암기력 위주의 경쟁을 다양한 방면의 경쟁으로 변화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암기 시험이 주는 서열화에서 자유로워진 아이들이 다양한 방면으로 자신의 소질과 능력을 발산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학력이 하향 평준화 한 것이 아니라, 학력이 다양해진 것이다. 학력이라는 것이 암기력이라는 제한된 영역에서 상상력과 창조력이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되어짐으로써 오히려 진보한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상상력과 창조력 키워줄 수 있는 방법은 무얼까. 그것은 다양한 경험이다. 인간의 과학 기술은 결국 자연을 흉내 내는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말하고 놀고, 자연과 더불어 경험하기를 통해 자신의 상상력과 창조력을 키워나가도록 가르쳐야 한다. 천편일률적으로 '공부(암기 학력) 잘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 고 말해도 되던 시대는 갔다. 우리는 과거 일제고사시험에 대한 강박적 향수에 젖어서 학력의 하향 평준화 타령만을 하고 있을 겨를이 없다. 암기력 위주만의 학력이 아닌, 기발하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새로운 학력을 추구해야 할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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