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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표에 갇힌 한자말 (52) 허(許)하다

[우리 말에 마음쓰기 853] '거름주기'와 '시비(施肥)'

등록|2010.02.07 10:50 수정|2010.02.07 10:50
ㄱ. 시비(施肥)

.. 채소를 기르려면 땀을 많이 흘려야 했다. 해 돋기 전에 일어나서는 시비(施肥)를 하고, 한낮에 잎이 힘을 잃을 때에는 김을 매고 ..  <이숙의-이 여자, 이숙의>(삼인,2007) 141쪽

'채소(菜蔬)'는 그대로 두어도 나쁘지 않으나, '푸성귀'나 '남새'로 고쳐 주면 한결 낫습니다. "해 돋기 전(前)에"는 "해 돋기 앞서"나 "해가 아직 안 돋았을 때"로 손봅니다.

 ┌ 시비(施肥) = 거름주기
 │   - 나뭇잎이나 꽃도 시비하여
 │
 ├ 시비(施肥)를 하고
 │→ 거름주기를 하고
 │→ 거름을 주고
 └ …

농사말이라고 하는 '시비'입니다만, '거름주기'도 농사말입니다. 요즈음 사람들 가운데에는 '肥'도 모르고 '거름'도 모르는 사람도 있을 터이나, '주기'를 모르고 '施'만 아는 사람이란 없습니다. 또한, "시비를 하고"라고만 적어 놓으면, 이 한자말 '시비'가 거름을 주는 일을 가리키는지 시시콜콜 따지는 일을 가리키는지 헷갈릴 수 있어요. 그러니, 어느 낱말을 가리키는지 알려주려고 묶음표까지 치면서 한자를 넣고야 맙니다.

 ┌ 나뭇잎이나 꽃도 시비하여 (x)
 └ 나뭇잎이나 꽃도 거름을 주어 (o)

그러고 보면, 우리는 언제나 '콩'을 먹고 '팥'을 먹지만, 농협에서 쓰는 낱말이나 정부가 쓰는 낱말이나 농학자가 쓰는 낱말은 오로지 '대두(大豆)'와 '적두(赤豆)'입니다. 게다가 '흑임자(黑荏子)'이니 '복분자(覆盆子)'이니 하면서, '검은깨'와 '산딸기(나무딸기)'라 가리켜야 할 낱말을 우리 스스로 멀리합니다.

참말하고 멀어지며 참생각하고 멀어지는 셈입니다. 참글을 손사래치면서 참삶 또한 손사래치는 노릇입니다. 옳게 가다듬을 말을 잊고, 바르게 가눌 글을 잃는 모습입니다. 사랑스레 붙잡을 마음을 놓치고, 아름다이 가꿀 삶을 놓아 버리는 노릇입니다.

ㄴ. 허(許)하다

.. 어느 날부터 무답이가 식음 전폐하고 알을 품는 순간, 품도록 허(許)하자 ..  <정상명-꽃짐>(이루,2009) 144쪽

"식음(食飮) 전폐(全廢)하고"는 "밥도 안 먹고"나 "밥까지 멀리하고"로 다듬고, "품는 순간(瞬間)"은 "품을 때"나 "품는 무렵"으로 다듬어 봅니다.

 ┌ 허(許)하다 : 다른 사람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게 하다
 │   -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입국을 허하다 / 그 남자에게 마음을 허한 뒤에
 │
 ├ 알을 품도록 허(許)하자
 │→ 알을 품도록 하자
 │→ 알을 품도록 해 주자
 │→ 알을 품도록 내버려 두자
 │→ 알을 품도록 도와주자
 │→ 알을 품으라고 하자
 └ …

여러 해 앞서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라는 이름으로 책 하나 나온 적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글투를 고스란히 따와 붙인 책이름으로, 이런 '낡은 말투'를 재미 삼아 따라하는 분들이 꽤 생겨나도록 하고야 말았습니다.

낡은 말투에는 낡은 말투대로 맛과 멋이 있기 마련이고, 낡은 말투라 하여도 새로운 흐름을 알뜰히 담아낼 수 있습니다. 말이란 쓰기 나름이니까요.

그런데, 우리들은 굳이 이러한 말투를 되살려 내야 했을까 궁금합니다. 이러한 말투 되살리기가 재미있거나 뜻깊거나 무언가 뒷통수를 긁어 주는 말투가 될는지 궁금합니다. '추억'이나 '문화'나 '역사'라는 이름을 섣불리 내세우면서 군사제국주의 냄새가 나는 낱말과 말투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일이 얼마나 바르고 알맞는지를 돌아볼 노릇이 아닌가 궁금합니다.

 ┌ 입국을 허하다 → 입국을 받아들이다 / 이 나라에 들어오도록 하다
 └ 마음을 허한 뒤에 → 마음을 준 뒤에 / 마음을 받아들인 뒤에

어떻게 바라본다면 똑같은 말이 아니랴 할 텐데, 이 보기글에서 '허하다'가 아닌 '허락(許諾)한다'나 '허가(許可)한다'나 '허용(許容)한다'를 넣었다면, 글을 읽으면서 '덜컥' 걸리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허락-허가-허용' 모두 한자말입니다만, 이 한자말들을 쓸 때만큼은 따로 묶음표를 쳐서 한자를 밝히지 않으니, '허하다' 같은 외마디한자말마냥 걸리적거리거나 껄끄럽다는 느낌을 받지 않습니다. '허하다'가 낡은 말투요, 우리가 씻어내야 할 말투인 까닭은 다름아닌 '허하다'라고만 적으면 뜻이나 느낌이 살지 못해 '許하다'나 '허(許)하다'처럼 적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문을 아는 권력자와 지식인 계급이 여느 사람을 내리누리던 때에 으레 쓰던 말투대로 적어 놓아야 비로소 알아채거나 받아들일 만한 말투이니, 우리 말투라 하기 어렵습니다.

 ┌ 무답이가 끼니를 거르며 알을 품는 때, 기꺼이 받아들이자
 ├ 무답이가 밥도 안 먹으며 알을 품으면, 즐겁게 도와주자
 ├ 무답이가 밥까지 잊으며 알을 품는 날, 고이 내버려 두자
 └ …

우리가 할 만한 말을 해야 우리 말입니다. 우리가 쓸 만한 글을 써야 우리 글입니다. 우리 생각을 담는 말이라 하여 모두 우리 말이지 않습니다. 껍데기뿐 아니라 속알맹이까지 우리 말이어야 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 그러니까 한글로 적어 놓았다고 해서 우리 글이지는 않습니다. 말마디와 말느낌이 고스란히, 글줄과 글투가 송두리째 우리 말이요 글이 되어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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