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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의 방송사 손보기는 왜 계속되는가?

엄사장의 사퇴는 제2의 "문예위 사태" 부른다

등록|2010.02.08 16:21 수정|2010.02.08 16:21
엄기영 MBC사장이 결국 사퇴의사를 밝혔다.

오늘 방송문화진흥회 임시이사회를 마치고 나온 엄기영 사장은 "도대체 무얼 하라고 하는 것인지..."란 말로 그간의 심정을 대변했다. 이로서 KBS사장, MBC사장 모두 외압에 의해 물러난 진기록이 나왔다.

방송사 사장은 정치에 휘둘려서는 안되는 자리다.그럼에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갖가지 명분으로 정연주 KBS사장을 물러나게 했고 그 이후 계속되는 압력으로 MBC 엄기영 사장마저도 물러나게한 전대미문의 악역을 이 정권이 담당하고 있다.

"방송은 장악해서도 안되고 장악할 이유도 없다"고 공언해온 이명박 대통령의 뜻을 거스른
충신들은 과연 무얼 위해 악역을 자처하고 있을까? 물론 그것이 고위층의 뜻을 가훈처럼 받드는 충신들의 대리행위라는 것쯤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정치가들은 방송을 왜 그토록 매력적으로 보는가? 그건 지금까지의 방송행태가 정치적으로 자유롭지 못했고 그걸 방송사 구성원들이 정치적 외압으로부터 지켜내지 못했다는데 상당 부분 원인이 있다. 거기에 방송을 정치 도구로 삼아 입신양명을 꾀하고 자신의 경력을 정치적 욕망에 보태온 방송정치꾼들의 공로가 보태진 결과다.

그리하여 정치꾼들의 음탕한 야욕과 방송정치꾼들의 어설픈 방송논리가 힘을 더해 방송사를 옥죄는 무기로 탈바꿈 하는 것이다.그런 무기앞에 맞서거나 장애물이 되는 민주세력내지 방송토착세력은 제거의 대상이지 방송을 천직으로 여기는 전문가그룹으로 보지 않는다.

정치행위에 있어서 방송만큼 단시간에 광고효과를 누릴 수 있는 좋은 무기는 없거니와 기회비용도 적게 들어간다. 더구나 상당수의 방송정치꾼이 대기하는 상황에서 그들을 잘 이용하면 어렵지 않게 방송과 정치의 동거가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래서 정치가들은 방송을 자기 손아귀에 넣고 싶어하고 또 쉽게 방송을 장악해 왔다.

그러나 KBS의 정연주사장을 내쫒고 나서 KBS가 새로워진 징후도 없거니와 MBC사장을 내쫒는다고 해서 앞으로 MBC가 보다 건강해질 거라는 기대는 오산이다.어차피 방송사 사장들의 역량과 평가는 방송사 구성원들의 몫이고 앞으로의 개혁과 진로방향도 그들에 의해서 움직여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허약한 방송사구성원들의 체질을 꿰뚫는 정치가들의 야욕이 끊임없이 하이애나처럼 방송사를 물고 뜯고 있다.

방송사가 이렇게 허약체질로 바끤데는 전적으로 방송사 구성원들의 책임이다. 방송사 사장은 사장대로 청와대의 입김으로 자리를 차지한 후 청와대 동정에 오감을 동원하고 그들을 보필하는 간부들은 방송제작보다는 자리보전과 정치적 풍향에 더 관심을 기울여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선 방송프로그램 제작자들은 입사때의 패기와 도전정신을 발휘하지 못한채 서서히 병들고 있는 것이다.

그 회한을  풀기 위해서는 무자비하게 외주제작사나 외부인력을 닥달하여 제작비 절감의 명목으로 인건비를 줄이고 동료나 선배를 구조조정이란 이름하에 밖으로 내보내는데 혼신을 다한다. 그런 와중에서 정치인과의 인과관계를 형성한 꾼들이 방송개혁이란 미명하에 방송사를 손보겠다고 나서는 아이러니가 연출되는 것이다.

엄기영 사장이 정치적으로 자유롭지 못한데는 이러한 내부적 사슬고리가 크게 신경이 쓰이기 때문이다. 방문진의 횡포와 독단에 맞서 홀연히 자리를 지켜온 의로움도 방송사를 지켜내야 한다는 의무감도 끝내 못 지킨채 자리를 던진데는 앞으로 진행될 정치적 연결고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본다. 이미 야당이나 여당의 정치권에서는 강원도지자체 선거에 그를 영입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만큼 엄기영 사장의 효용가치는 정치권 안팎에서 입증되고 있다. 그래서 방송인 엄기영보다는 정치인 엄기영이 더 필요해졌으리라

지금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두 사람의 위원장체제로 가고 있다. 참으로 코미디 같은 현실이 벌어진 것은 정권초기 무자비하게 단체장들을 쫒아낸 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정연주 전 KBS사장도 소송을 통해 해임의 부당성을 알리고 법적 승리를 거두었지만 이미 임기가 다 되어 방송사로 돌아오지는 못했다. 그러나 앞으로 방송사 손보기가 계속되는 한 방송사의 두사람 사장체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정의와 민주를 늘 앞세우면서 법적으로 임기가 보장된 단체장과 기관장들을 입맛대로 갈아치우는 정치인들의 식성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그건 앞으로도 방송사 구성원들의 자생능력과 정화능력이 크게 달리지지 않으리라는 암울한 가정에서 나온다. 그들은 이미 연봉 1억원에 육박하는 귀족그룹으로 보살핌을 받고 있고 그 수혜와 정치적 배려가 그들이 그토록 미워하는 정치가들로부터 나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가들을 미워하면서도 그들이 정치판을 동경의 대상으로 삼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오늘 사퇴의사를 밝힌 엄기영 MBC사장을 보면서 그에게 방송사의 정치적 독립과 방문진의 횡포를 온몸으로 막아주길 기대한 건 너무 무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정연주 KBS사장이 자리는 뺐겼지만 부당한 혐의는 벗기 위해 고군분투한 것처럼 적어도 엄기영MBC 사장이 그토록 허망하게 사장직을 헌납하면서 하이애나처럼 달려드는 무리들을 향해 큰 소리 한번 지르지 않고 말을 아끼는 것이 못내 안스럽다.

엄기영 사장에게는 그토록 절박함이 없는 걸까?
아니면 앞으로의 정치판 공조를 위해 말을 가슴에 묻어두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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