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영의 고별사 "공영방송 MBC를 지켜달라"
MBC 사내 인트라넷에 마지막 인사 올려
▲ 사퇴의사를 밝힌 엄기영 MBC사장이 8일 오후 여의도 본사를 떠나며 후배들에게 MBC를 부탁한다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 사진제공 독설닷컴(@dogsul)
8일 방문진 이사회의 후임 임원 인선 강행에 반발해 사퇴 의사를 밝힌 엄기영 사장이 사내 인트라넷에 고별사를 올렸다. 36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떠나는 마지막 인사말인 셈이다.
엄 사장은 "이 위중한 시기에 사장직을 내놓게 된 점에 대해 우리 구성원들에게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사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이 시점, MBC가 공영방송으로서 남을 가능성이 그나마 높아졌다는 것과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다른 방송사들보다 품격 있는 방송을 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에서 위안을 찾아본다"며 "평가는 역사와 후배들에게 맡긴다"고 전했다.
그는 끝으로 "후배들에게 무거운 짐만 넘기고 떠나는 것이 너무 미안하고 안쓰러울 따름"이라며 "앞으로도 좋은 방송 만들고 대한민국 최고의 일류 공영방송 MBC를 계속 지켜달라는 것이 물러가는 선배의 염치없는 부탁"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엄기영 사장이 남긴 마지막 인사말 전문이다.
▲ 엄기영 MBC사장이 8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에 참석한 뒤 굳은 표정으로 회의장을 나오고 있다. 엄 사장은 직후 기자들에게 "사장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 권우성
저는 오늘 무거운 마음으로 MBC 가족 여러분에게 작별 인사를 드리려 합니다.
저는 오늘로서 36년 간 가족처럼 사랑해 온 MBC에서 물러나고자 합니다.
우선 이 위중한 시기에 사장직을 내놓게 된 점에 대해
우리 구성원들에게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에게 닥친 어려움을 뚫고,
MBC를 두 번째 반세기의 길목에 안착시키고 나가자는 것이 저의 각오였지만
지금의 상황은 사장으로 남는 것이 MBC의 위상에 오히려 누가 될 수 있는 국면인 것 같습니다.
MBC는 한국에서 독보적인 위상과 전통을 지닌 언론사입니다.
어떤 언론사보다 양식이 있고, 부패를 허용하지 않는,
내부 정화능력을 갖춘 조직이기도 합니다.
사주의 입김과 정파적 편향성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최고의 인재들이 공정한 보도, 창의적인 프로그램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해 왔습니다.
그런 MBC에서,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책임 경영의 원칙은
양보할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돌이켜 보면 제가 사장으로 재임한 2년은 MBC 역사상
그런 2년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다사다난했습니다.
방통융합과 방송업계를 둘러싼 재편 논의가 대세였던 취임 초기,
저의 목표는 공영성을 강화해 공영방송으로서의 위상을 지키고 방송산업을 둘러싼
변화의 물결에 기민하게 대처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저의 예상을 훨씬 넘을 만큼 더 복잡한 것이었습니다.
고비 고비 마다, 또 결정마다 여러 면을 고려하고
회사의 이익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에게 모든 면을 설명해 드리지는 못했고
마음을 상하게 한 적도 있을 줄로 압니다.
회사를 위한 충정을 헤아려 너그러운 이해 바랍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MBC는 저와 그야말로 생사고락을 함께 한 사랑하는 직장이었습니다.
지금 이 시점, MBC가 공영방송으로서 남을 가능성이 그나마 높아졌다는 것과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다른 방송사들보다 품격 있는 방송을 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에서 위안을 찾아봅니다.
평가는 역사와 후배들에게 맡깁니다.
오늘 생각해 보니, 저는 MBC로부터 정말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후배들에게 무거운 짐만 넘기고 떠나는 것이
너무 미안하고 안쓰러울 따름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방송 만들고
대한민국 최고의 일류 공영방송 MBC를 계속 지켜달라는 것이
물러가는 선배의 염치없는 부탁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과 일하는 것이 저에게는 너무나 큰 영광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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