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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잔 속에서 눈 뜨는 봄

[7080음악 에세이] 노고지리의 <찻잔>

등록|2010.02.09 14:19 수정|2010.02.09 14:19
늘 그랬다. 수직으로 치솟는 가파른 울렁임에 하루 종일 낭떠러지에 서 있는 것 같을 때, 계절의 이동을 쫓는 바깥 풍경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동안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속마음을 서늘하게 식히고 싶을 때, 나는 늘 말문을 닫았다.

하루 종일 커피를 달고 사는 것도 그때였다. 선잠 깬 듯 어수선한 마음자리, 내가 나에게조차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 억지로 서늘해지는 방법을 배웠다. 커피를 거푸 마시는 동안 맨발로 떨어지는 커피 향처럼 나는 다시 조용해지고 있었다. 말문을 닫은 입에선 달큰하게 휘도는 쓸쓸한 평화가 나를 맴돌았다. 

문득 돌아보니 봄이 오고 있다. 순서도 바뀌지 않고 늘 예정된 손님처럼 다가오는 계절을 나는 한 번도 자연스럽게 맞이하질 못했다. 벨소리에 놀라 허겁지겁 현관문을 열듯 언제나 계절은 나에게 문득 다가오곤 했다.

눈으로 보여지는 풍경과 마음으로 들어오는 풍경이 늘 엇갈렸던 상황조차 나는 눈치 채지 못했다. 어느 날 문득, 그래, 갑자기 계절이 바뀌었음을 느끼곤 뒤늦은 탄성과 거기에 비례한 곱절의 비애감 속에서 나는 한 살 씩 나이를 먹어왔다.

왜 그랬을까? 일상의 평화는 느끼지 못하다가 작은 충격에도 마음이 깨지고 몸이 아프고서야 나를 둘러싼 세상을 받아들일 힘이 나는 건 왜일까?

오늘도 난 묵은 음반 상자에서 '노고지리'의 테이프를 찾아내기 전까진 지금이 2월이며 봄이 온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군대 간 아들로부터 날이 많이 풀려서 수월하다는 전화를 받을 때도, 드라이크리닝 맡겼던 겨울 외투를 찾아 커버를 씌워 옷장에 챙겨 넣으면서도 그것이 내 마음 속의 계절을 바꿔주진 못했다.

커튼을 바꿔 달고 침대 커버를 얇은 것으로 바꾸는 것조차 계절이 바뀌어서라기보다는 오래된 습관에서 나오는 일상적 행동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속에서 '노고지리'를 찾았다. 문득 지금이 봄이 오는 길목이란 자각이 든 것도 그때였다.

80년, 대학에 입학하여 학교 앞 음악다방에서 처음 들었던 노고지리의 노래 '찻잔'. 커피 맛도 잘 모르면서 커피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이 좋았고, 그 어떤 향기보다도 서늘하게 가슴을 열게 하던 커피 향이 좋았던 그때, 쌍둥이 남자가수였던 노고지리가 불렀던 '찻잔'은 막 대학생이 된 80년의 봄을 다소곳한 모습으로 채색시켰다.

너무 진하지 않은 향기를 담고
진한 갈색 탁자에 다소곳이
말을 건네기도 어색하게
너는 너무도 조용히 지키고 있구나
너를 만지면 손끝이 따뜻해
온몸에 너의 열기가 퍼져
소리 없는 정이 네게로 흐른다
        - 노고지리 <찻잔>

사랑하는 사람을 찻잔에 대입시켜 상대로부터 느끼는 온기와 정을 그렇게 과장 없이 이야기를 들려주듯 노래한 가요가 또 있을까? '찻잔'은 사랑의 격정을 웅변한 노래가 아니다. 사랑을 느끼는 상대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차를 마실 때의 그 안락한 평화와 조심스러운 감정의 떨림, 모세혈관 하나하나 꽃이 피는 것 같은 순결한 사랑의 희열을 느끼게 하는 노래다.

이성에 대한 그리움보다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막연한 설렘과 그리움에 한쪽 가슴이 늘 조금은 시렸던 그때. 학교 앞 음악다방에서 예쁜 종이에다 신청해서 듣곤 했던 노고지리의 '찻잔'과 함께 나는 조금씩 커피와 젊음에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상큼하게 물오르던 버드나무, 수줍게 벌어지던 목련의 입술, 겨울과는 분명히 다른 마알간 햇살, 서툰 고백처럼 주저함이 느껴지는 노고지리의 음성을 들으며 나는 대학 1학년의 봄을 익혀 나갔다.

스무 살, 무언지 모를 감정의 혼란 속에서도 진한 향기보다는 소리 없는 조용함으로 누군가에게 따스한 위안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나는 했던 것 같다. 누군가를 따사롭게 가슴에 들이려면 내 안의 열정은 서늘하게 식혀야 했다.

'너무 진하지 않은 향기!' 절제된 젊음과 피어나는 갈망 속에서 나는 서늘하게 식힌 나 자신을 사랑했다. 그러면서 내 안의 나를 몰아내는 삶이 차라리 편했다. 어떤 동기 없이는 계절의 변화를 못 느끼게 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문득 봄을 맞았고, 하늘이 노랗도록 어지럽게 쏟아지는 햇살을 보며 여름이 왔음을 깨달았다. 가을도 그랬다. 퍼붓듯 사방에 날리는 낙엽도 무심한 풍경이다가 비 내린 날 차창에 달라붙은 젖은 은행잎을 떼 내며 나는 "아, 가을"이라고 입술을 열어 불러보곤 했다.

겨울 역시 다르지 않았다. 유난히 추위에 약해 움츠린 어깨가 아프다고 징징 대면서도 겨울이라서 춥다는 생각은 못했던 것 같다. 오후 4시면 아파트 단지 밖에서 어김없이 들려오는 두부장수의 종소리가 유난히 차가운 금속성으로 들리는 걸 깨달은 날, 어느덧 내가 겨울 한가운데 들어와 있음을 느끼곤 했다.

이미 겨울이 저만치 가고 있는 오늘, 노고지리의 '찻잔'을 들으며 조금은 서둘러 봄을 느껴본다. 시간은 거꾸로 달려가 30년 전의 봄이 그때 그 모습으로 마악 내 앞에 당도해 있다. 언제부턴가 친구들을 만나면 마음은 스무 살 그대로인데 몸만 황혼이 가깝다는 말들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쓸쓸함을 바라볼 때가 많다.

여자 나이 쉰. 누군가는 이 나이를 팽팽한 긴장에서 벗어나 이완된 원숙함으로 아름답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도 나이를 점령하고 있는 불안정한 나를 본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자지러지게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은 오늘도 칼날 같은데, 내 속에 사는 열두 개의 나는 시시각각 내가 걸어 잠근 마음의 빗장을 다시 확인한다. 쉰 번 째 맞는 이른 봄 햇살이 찻잔 속으로 떨어지는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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