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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현대차 회장, 700억 배상 판결 왜?

서울중앙지법 "배임은 경영 판단의 원칙은 적용될 여지가 없다"

등록|2010.02.09 15:43 수정|2010.02.09 17:50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불법행위로 끼친 손해에 대한 주주대표소송에서 회사에 700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그러나 법원은 손해액의 반만 배상하도록 했다.

이번 판결은 경영 판단이라고 해도 불법행위로 회사에 손해를 끼쳤으면 형사책임은 물론 민사책임도 져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중앙지법 제32민사부(재판장 변현철 부장판사)는 현대차 소액주주 14명과 경제개혁연대가 정몽구 회장과 김동진 전 현대모비스 부회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정 회장은 700억 원, 김 전 부회장은 이 가운데 정 회장과 연대해 50억 원을 배상하라"고 8일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정 회장은 손실이 발생할 위험성이 높은 반면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부실계열사인 현대우주항공과 현대강관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현대차에 손해를 입히는 배임을 저질렀고, 또한 유상증자에 펀드를 거쳐 우회적으로 참여하게 한 행위도 배임행위에 해당하므로, 배임행위로 인해 현대차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허용된 경영 판단에 따른 재량 범위 내에 있는 행위였다'는 정 회장 쪽 주장에 대해 "유상증자에 우회적으로 참여하게 한 행위는 형법상 범죄행위인 배임행위로서 법령에 위반된 행위이므로, 경영 판단의 원칙은 적용될 여지가 없다"고 일축했다.

또 '발생한 손해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설령 현대차가 유상증자에 참여함으로써 피고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이익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이익은 간접적이고 부수적인 이익에 불과해 그런 이익의 발생을 이유로 현대차가 손해를 입지 않았다고 볼 수 없어 피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주식회사 이사의 회사에 대한 임무해태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은 일반불법행위 책임이 아니라 위임관계로 인한 채무불이행 책임이므로 그 소멸시효기간은 일반채무의 경우와 같이 10년으로 봐야 한다"며 "원고들은 이 사건 각 범죄행위로 인한 각 손해가 발생한 시점으로부터 10년이 경과하기 이전인 2008년 5월 소를 제기했으므로 피고들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정 회장에게 책임이 있는 손해액을 소액주주들이 청구한 1445억 원에 근접한 1438억 원으로 판단하면서도 손해배상액은 여러 가지 책임제한 이유를 들어 그 절반에 못 미치는 700억 원으로 정했다.

재판부는 먼저 "정 회장은 IMF 외환위기 상황에서 대기업의 최대주주가 개인적으로 경영에 대한 법적 책임을 공유하도록 유도하는 정부의 정책과 채권금융기관들의 요구에 따라 부득이하게 계열사들이 부담하던 보증채무를 승계한 것으로 그 보증경위에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 주도로 이루어진 항공사업 부문의 빅딜 시 통합법인에 최소한의 부채만을 이양하라는 금융감독위원회의 요구조건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잔존채무 부담이 더 커진 점, 1차 유상증자 당시 정 회장 개인도 주주로서 참여해 일부 손실을 분담한 점 등을 고려하면 배임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할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또 "현대강관 관련 배임행위로 현대차가 직접적으로는 상당한 투자 손실을 입었으나, 결과적으로는 해외 투자자들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유치해 유상증자를 성사시킴으로써 정상화됐고, 이에 따라 주주인 현대차는 보유주식의 가치 상승, 배당수익 등을 통해 투자손실을 초과하는 이익을 얻은 점, 그 외에도 현대차 계열사로 유치함으로써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냉연강판 등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무형의 이익도 얻게 됐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정 회장이 배임행위 과정에서 개인적인 이득을 취득한 바도 없는 점 등을 고려하면 배임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은 상당 부분 제한함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히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의 총수로서 현대차를 직접 경영하면서 IMF 외환위기라는 비상상황을 단기간 내에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현대차를 세계적인 자동차 업체로 급성장시킴으로써 현대차그룹은 물론 국가경제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한 점, 또한 배임행위에 대한 형사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행위에 대한 반성 차원에서 개인재산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기로 약속했고, 그에 따라 최근까지 1500억 원을 환원한 점 등을 참작하며 정 회장이 배상해야 할 금액은 700억 원으로 정함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a href="http://www.lawissue.co.kr"><B>[로이슈](www.lawissue.co.kr)</B></A>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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