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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타운 '사기', 시프트 '과장'...'공존의 대안' 찾자

[10대 어젠다② - 주거] 시민과 함께하는 개발 위한 5가지 조건

등록|2010.02.16 08:59 수정|2010.03.08 16:42
<오마이뉴스>는 올해 창간 10주년 기획의 일환으로 국내 11개 진보싱크탱크들과 공동으로 '지방선거 10대 어젠다'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삽보다 사람'이라는 주제가 붙은 이번 기획을 통해 거대 담론보다는 주민들의 삶과 밀접한 과제를 구체적으로 선정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내놓을 계획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 지난해 12월 서울 동대문구 전농·답십리뉴타운 내 전농7구역에서 아직 떠나지 못한 세입자들이 철거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 선대식



지자체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종종 지방자치단체장이 무슨 힘이 있느냐는 이야기를 한다. 지자체는 그저 보도블록이나 교체하고 가로수나 정비하는 곳으로 알고 있다. 술자리에서는 대통령을 비롯해 유력 정치인이 친구라도 되는 양 이름을 불러대지만, 정작 내가 사는 지자체의 단체장이나 기초의원 이름은 대부분 모른다.

그러는 사이 전국 시장·군수·구청장의 1/3 이상이 임기 중 검찰에 기소됐다. 심지어 어느 곳에서는 현직 시장이 선거 빚과 인허가 비리에 좇겨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기초·광역의원 상당수가 건설업이나 부동산업과 관련이 있다는 것도 우려사항이자 비판거리 중의 하나다. 중앙정치에 대한 높은 관심에 비해 지방정치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냉소적인 태도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자체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바로 도시계획과 개발에 대한 권한이다. 서울시의 1년 예산은 구청의 예산까지 다 합해도 30조 원 남짓이다. 그러나 만약 서울의 개발밀도를 10%만 올리게 되면 약 250조 원의 개발이익이 발생한다. 여의도의 오래된 아파트 단지를 상업지역으로만 바꿔도 수조 원의 개발이익이 보장된다. 단체장 비리도 대부분 이런 개발사업 과정에서 발생한다.

더구나 지자체의 개발권한은 법률에 의해 보장받고 있다. 토지의 이용은 공익에 부합해야 한다는 헌법 정신에 따라 광범위한 권한이 지자체에 맡겨져 있다. 어떤 곳은 최대 5층밖에 못 짓지만, 또 다른 곳은 30층을 지을 수 있도록 하는 권한을 지자체가 가지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재개발·뉴타운·재건축 사업의 수익성을 좌우하는 용적률이나 공원, 도로용지 기부채납 등도 지자체가 결정한다.

도시는 끊임없이 변한다

도시는 살아있는 생명체이기에 끊임없이 변화한다. 더구나 기존 도시가 워낙 날림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이를 바로 잡는 것은 당연한 과제이다. 불과 20여 년 전 지은 주택들이지만 놀이터나 공원은 말할 것도 없고 주차할 공간조차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도시재생은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한때 현대화의 상징이었던 고가도로나 육교, 지하도 등은 이제 교통소통에 오히려 방해되거나 시민들의 보행권을 저해하는 주범이 돼버렸다. 곳곳에서 이를 철거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들 도시재생 과정이 여전히 구시대적인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청계천 복원이 제대로 된 복원인가 하는 점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어떻든 시민들이 원하는 시대정신을 제때 반영했다는 점에서 도시재생의 성공모델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후 청계천 모델에 고무된 각 지자체들이 내세우는 사업을 보면 오히려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다. 서울 시청 앞의 교통섬을 광장으로 만든 것은 옳았지만, 광장의 주인이 되어야 할 시민은 구경꾼의 자리에 머물고 있다.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하며 수시로 조잡한 전시물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중이다.

광화문 광장은 더 심하다. 도심의 건물사이 협곡에다 고급 석재로 덕지덕지 치장한 모양새다. 광장의 기본이 사라졌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각 지자체의 호화청사 문제도 같은 맥락이다. 비록 시민을 위한 휴식 및 여가공간을 겸한다고 하지만, 권위적이고 집중적인 공간개발에 주력해 왔다. 일종의 상징공간을 만들고, 여기에 수십, 수백만 명이 몰려드는 것을 자랑으로 삼은 것이다.

반면 생활공간에 대한 대책은 전면적인 철거와 재개발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도로·주차공간·공원 등이 부실하니 한 번에 헐고 새로 짓자는 것이다. 기존의 공간은 없애야 할 싸구려 공간으로 취급할 뿐이다. 강남 닮아가기에 몰두하다 보니, 도시의 역사나 자연환경과의 조화 같은 문제는 뒷전이다. 이미 서울 주택의 약 60%가 아파트로 바뀌는 중이다.

뉴타운은 실패했다

▲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참사 발생 355일 만에 거행된 지난달 9일 오전 서울 한남동 순천향병원에서 열린 발인식에서 유가족들이 고인들의 넋을 위로하며 절하고 있다. ⓒ 유성호


이명박 시장이 2003년 뉴타운사업을 들고 나왔을 때, 강북지역 주민들은 열광했다. 지지부진하던 재개발사업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봤고, 강남처럼 아파트를 짓고 더 나아가 돈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세훈 후보는 26개이던 뉴타운을 50개로 늘리겠다는 공약을 내놓기도 했다.

급기야 2008년 총선에서는 '욕망의 정치'로 불리는 뉴타운 열풍이 한바탕 몰아쳤다. 여야 할 것 없이 뉴타운을 약속했고, 너도나도 오세훈 시장으로부터 추가 지정 약속을 받았다고 자랑하기에 이르렀다. 공짜로 헌집을 아파트로 바꿔줄 것 같은 환상이 난무할 때였다. 때마침 강북지역 단독주택 값이 치솟기 시작하면서 주민들의 기대는 금방 실현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뒤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 뉴타운사업은 사실상 사기극으로 밝혀지고 말았다. 우선 높은 추가부담 때문에 가옥주들 스스로 사업을 원치 않는 곳이 많아졌다. 뿐만 아니라 이미 철거까지 마무리된 곳에서도 법원이 사업무효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과장된 정보로 주민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추진했기 때문이다. 어떻든 현재 뉴타운사업 구역의 2/3는 채산성이 없어 사업추진이 불가능한 상태에 있고, 대부분 지역에서 소송과 주민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 현재 뉴타운사업은 서민들의 주거지를 헐어 중산층들에게 필요한 아파트를 공급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서울의 뉴타운사업 구역에는 약 19만 가구의 세입자들이 살고 있지만, 여기에 새로 짓는 임대주택은 5만호에 불과하다. 14만 가구는 어떻든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하지만, 싼 동네는 대부분 뉴타운사업 대상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원래 살던 돈으로 집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새 아파트만 공급하면 집값도 안정되고 세입자들도 결국 혜택을 볼 것이란 게 시장만능주의자들의 주장이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10%도 안 되는 재입주율 속에서 서민들의 주거사정은 더 악화될 뿐이다.

급기야 2009년 초에는 용산참사가 터졌다. 주택재개발과 사업방식은 조금 달랐지만, 이명박 정부와 오세훈 시장이 집착해 온 상업적 재개발사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그동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영업세입자 문제가 현안으로 부각되었다. 권리금을 포함한 영업권 보상이 제도적인 공백상태에 있기 때문에 싸움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다.

시프트주택은 과장 광고다

최근 시프트주택이 인기를 끌고 있다. 좋은 위치의 아파트를 인근 전세시세의 80% 이내로 빌려 최장 20년간 살 수 있으니 큰 기대를 가질 만도 하다. 일부 단지의 경우 10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보일 정도였다. 이런 인기에 따라 오세훈 시장은 가판대와 지하철 곳곳에서 시프트 주택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한마디로 집에 대한 생각을 '사는 것'에서 '사는 곳'으로 바꾼다는 개념이라고 한다. 광화문 광장·디자인 거리·한강르네상스 등과 함께 오세훈 시장의 치적으로 알리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대대적으로 광고 중인 시프트주택은 얼마나 공급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오세훈 시장 재임기간 중에는 1만호도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서울 전역에 광고판을 설치한 것에 비하면 너무 적은 양이다. 더구나 가장 인기 있었던 재건축 단지의 시프트주택은 이명박 정부가 재건축사업 임대주택 의무건설제도를 폐지했기 때문에 더 이상 공급되지 않는다. 이렇게 양이 적다는 문제 외에도 전세금 2억 원이 넘는 아파트를 서울시가 세금을 들여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문제다. 정작 철거민을 위한 임대주택은 제대로 공급하지 않으면서 중산층용 임대주택에 집중하는 것은 모순이다.

공존하는 개발을 위한 다섯 가지 의제

▲ 뉴타운 지역인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주택가에 대한 철거가 시작된 가운데, 조합과 비상대책위원회·세입자간의 분쟁이 가열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답십리 뉴타운 주택가의 모습이다. ⓒ 선대식


도시는 변해야 할 운명이다. 그러나 그 변화는 대개 있는 사람들에게 더 큰 부를 안기는 반면 서민들은 절대적·상대적으로 더 나쁜 상황에 놓이게도 한다. 거대 개발프로젝트들이 화려한 조감도를 자랑할 때, 서민들의 생활세계는 여전히 불편과 궁핍에 방치되기도 한다. 부자와 서민이 공존하고, 아파트와 단독주택이 공존할 수 있는 개발은 가능할 것인가? 지자체가 가지고 있는 막강한 개발권한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그 다섯 가지를 생각해 보자.

첫째, 천천히 하라

무엇보다 천천히 해야 한다. 도시재생이 시대상황과 안 맞게 된 공간을 정상화시키는 일이라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심사숙고하며 진행해야 한다. 모두 청계천 모델을 흉내 내느라 임기 중 마치는 데 집착해 있다. 시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이리저리 재보고 할 일이다. 공간이란 한번 굳어지면 다시 고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최근 우리 도시가 직면한 새로운 과제들을 공간에 반영해야 한다. 저출산·고령화 추세는 인구의 도심회귀, 소형주택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생태공간을 복원하는 일도 중요하며, 변화된 산업환경에 맞추어 경쟁력 있는 공간도 만들어내야 한다. 특히 공간을 복합적으로 이용하고, 교통량 발생 자체를 줄일 수 있는 콤팩트 시티 개념도 각광받고 있다. 서울의 경우, 사라져버린 4대 문 안의 600년 역사를 복원하는 일도 이제는 현안이다.

둘째, 공공이 나서야 한다

우리 도시가 해결해야 될 중요한 과제는 공공성의 회복이다. 공간개발이 모두 시장에 맡겨져 있는 한, 수익성이 높은 곳만 개발하고 또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서민들을 밀어내고, 나아가 서둘러 개발하는 방식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우선 공공의 인·허가권을 엄정히 사용해야 한다. 제대로 주민들의 동의도 받지 않고, 더구나 주민들의 추가부담과 손실을 강요하는 개발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단체장들은 개발업자의 이익이 아니라 주민의 이익에 입각해서 판단해야 한다. 이와 함께 투명한 절차와 충분한 정보공개 나아가 주민들을 현장에서 지원하는 행정이 필요하다. 서울시에서 시행하고 있는 공공관리자 제도에 머물지 말고 '도시재생지원단'을 설치하여 상시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낫다.

또한 공공의 재정지원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장에서 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공공재정이 필수적이다. 선진국의 도시재생 모델들은 모두 재정지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서울을 예로 들면 향후 20년간 매년 1조 원을 도시재생 재원으로 지원하게 되면 종전과 같은 상업주의 방식 일변도가 아닌 균형 잡힌 개발이 가능하다. 서울시의 재정규모로 본다면 장기계획을 세워서 차근차근 추진할 경우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는 금액이다.

셋째, 뉴타운사업을 서민주거 확대의 계기로

현재의 뉴타운사업 방식은 더 이상 안 된다. 서민주거를 개선하고 임대주택을 늘리는 진정한 뉴타운이 필요하다. 전면 철거방식 일변도에서 소규모 블록형 재개발을 통해 중층 타운하우스 개념을 도입하고, 저출산·고령화 추세에 맞춰 소형 주택을 확대하는 재개발 기법을 도입해야 한다.

임대주택을 늘리는 것은 단순히 세입자 보호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득계층이 살아가는 도시생태계를 보호하는 방법이다. 주변지역의 전세금 상승 등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순환개발을 늘리고, 사업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물론 공공의 재정지원이 전제가 된다.

넷째, 생활세계를 살리는 개발

2010년대의 도시개발은 생활공간을 복원하고 정상화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안심하고 걸을 수 있는 골목길, 문 밖에만 나서면 있는 놀이터, 10분만 나가면 걸을 수 있는 동네올레, 조금 걷더라도 편안히 차를 댈 수 있는 주차공간. 동네를 모두 철거하고 아파트를 짓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생활공간을 정상화할 수 있는 비전을 내놓아야 한다. 이를 위해 반경 500미터 생활공간별로 필수서비스를 정하고, 각 지자체는 이를 10년 내에 충족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다섯째, 개발이익을 나눠 쓰는 개발

도시공간을 고층으로 활용하여 발생하는 개발이익은 전적으로 토지주나 개발업자의 것일까? 헌법정신에 따르면 이는 국민들이 함께 향유할 권리이다. 선진국들은 어떤 경우에도 이를 소유자가 독점하도록 하지 않는다. 이들 개발이익을 도시전체와 나눔으로써 부족한 공공용지와 편의시설을 확보하는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 개발자체를 억제하지 않는 대신 개발이익을 나누는 식으로 타협할 필요가 있다.

재건축사업에서도 임대주택을 공급하거나 서민주거 확보를 위한 부담금을 늘려야 한다. 반드시 아파트 방식이 아니어도 기존 주택을 매입하여 임대주택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미 전국적으로 약 3만호 가까운 매입임대주택이 있는데 입주민들의 만족도도 대단히 높다. 또한 현재 서울시가 제한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월세 임대료 지원제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 전체 주택의 10%를 공공임대주택으로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되, 거기에 이를 때까지는 임대료 지원을 합해 10% 가구에 혜택을 주는 것을 중간 목표로 할 수 있다.

▲ 지난해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재개발지역에서 농성중인 철거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특공대가 크레인에 매달린 컨테이너 박스를 타고 고공진압 작전을 벌이는 가운데 옥상에 설치된 농성 가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해 시커먼 연기와 불길이 치솟고 있다. ⓒ 권우성


덧붙이는 글 글쓴이 김수현은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정책위원장(세종대 도시부동산대학원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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