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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제발 인간들의 탐욕도 씻어주기를"

[SOS 강화갯벌⑤] 하루에 두 번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신비의 땅

등록|2010.02.14 15:16 수정|2010.02.14 16:14
인천광역시·강화군·한국중부발전·(주)대우건설 컨소시엄은 신재생에너지 생산과 지역발전이란 미명 아래 강화군 창후리-교동도-서검도-석모도-내리를 연결하는 강화조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강화도 마니산에 단군 참성단이 생긴 이래 최대의 토목건설사업인 조력발전을 반대하는 강화지역 시민모임에서 갯벌파괴·홍수피해·생태계 파괴 등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연속 기고문을 보내왔다. <편집자말>
갯벌. 기나긴 시간 동안 조금씩 아주 조금씩 쌓이고 또 쌓여 만들어진 삶의 터전이자, 하루에 두 번씩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신비의 땅. 그 갯벌을 지척에 두고 살아온 내겐 남다른 애착이 있다.

▲ 마리산에서 내려다본 강화도 남단 갯벌. 멀리 영종도부터 장봉도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 박건석


어린 시절 어느 여름날, 동네 또래들과 함께 찌그러진 냄비, 어렵사리 구한 텐트 등을 둘러메고 찾은 동막해수욕장은 장소가 비좁아 고개 너머 다른 백사장에서 야영을 해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바다에 가까이 가고 싶어 낮은 곳에 설치한 텐트에 물이 들어와 한밤중에 텐트를 옮겨야 했던 그곳은, 이제 더 이상 그런 추억을 상상조차 할 수 없게끔 변해 버렸다.

 

▲ 동막해수욕장 인근 해변. 영종도 주변의 갯벌을 막아 공항을 건설한 이후 바닷물 흐름이 바뀌어 퇴적물이 쌓여감에 따라 염생식물로 뒤덮이면서 점점 육지화되고 있다. ⓒ 박선석



해변 석축이 모래 및 토사 유실의 주범이라는 연구 결과가 수십 년 전부터 있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강화도 내에서 일부 암반지대를 제외하고 자연 그대로의 해변을 찾아보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어디 강화도뿐이겠는가?

▲ 갯벌에 찍힌 두루미 발자국에 바닷물이 채워진다. 그렇게 바닷물이 드나들면서 두루미의 흔적을 지우는 동안, 누군가 그곳에 또 다른 흔적을 남긴다. ⓒ 박건석


자칭 만물의 영장이라며 우리 인간들이 갯벌을 향해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있음에도, 갯벌은 그저 묵묵히 자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그 대표적인 기능이 육지로부터 흘러 들어온 유기물들을 분해하는 것인데, 수질 정화뿐만 아니라 수많은 흔적과 아픔 또한 씻어준다. 오! 제발 인간들의 탐욕도 깨끗이 씻어주기를...

시지프스가 한없이 바위를 굴리듯이 거듭해서 지우고 또 지워가면서 득도한 것일까? 갯벌은 언제나 의연하고, 갯벌엔 항상 넉넉함이 있다. 그 넉넉함은 여유를 잉태하고, 갯벌에 기대어 살아가는 뭇 목숨붙이들의 공생을 먹고 자란다.

▲ 갯벌을 쏘다녀 피부가 마른 탓에 가까운 남의 집에 들어가 몸에 물을 묻히고 나오면서 멋쩍어하는 말뚝망둥어를 집주인인 암컷 농게가 바라보고 있다. ⓒ 박건석



갯골을 타고 바닷물 선발대가 들어온다. 물을 따라 새우, 망둥어, 숭어, 동어(새끼 숭어)들도 몰려온다. 이제부터 만찬이 시작된다. 넓은 갯골에서는 사람들이 그물과 낚시로 배(船)를 채우고, 좁은 갯골에서는 부리를 이용하여 새들이 배(腹)를 채운다.

▲ 가을이 되면 고향인 강화도를 떠나 월동지로 이동하게 될 저어새들이, 사냥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무리를 지어 특식(새우, 동어 등)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 박건석


사람을 포함한 많은 생명들이 풍요로운 갯벌에 의지하며 삶을 꾸려 나간다. 어떤 이는 일탈과 휴식을 위해 갯벌을 찾고, 어떤 이는 살아가기 위해 갯벌을 찾고, 어떤 이는 살아남기 위해 갯벌을 찾는다. 저마다 짊어진 삶의 무게만큼 갯벌은 말없이 베풀기만 한다.

▲ 조개를 잡고 돌아오는 아낙들. 수없이 오가면서 다져져 걷기에 편하기도 하지만, 주변의 생명들을 보호하고자 그들은 늘 다니던 길로만 다닌다. ⓒ 박건석


어느덧 갯벌에 가을이 무르익으면 그 치열했던 순간들을 뒤로하고 이제 정리를 해야 하지만, 갯벌엔 그럴 여유가 없다. 여름 손님이 가고 나면 가을, 겨울 손님이 연이어 찾아와, 숨 돌릴 틈도 없이 또다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 이제 갯벌은 휴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갯벌은 휴식을 취할 수 있을 만큼 사치스럽지 못하다. 계속해서 손님을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휴식이 덜 필요하게끔, 우리가 좀 더 어루만져주면 어떨까?

▲ 동검도에서 바라본 강화도 남단 갯벌. 예쁜 옷으로 갈아입은 염생식물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지만, 급속하게 군락지가 넓어지고 있어 마냥 멋지다고만 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 박건석


▲ 갯벌에 물이 들어차 더 이상 먹이활동을 못하게 된 두루미 한 쌍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 평온함 또한 치열한 삶의 연장이다. ⓒ 박건석



자연의 선물인 갯벌. '자연(自然)'이란 그 말뜻 그대로 갯벌이 온전하게 갯벌로 남아 있기를, 그리하여 내 아들딸들이 또 아들딸들에게 온전한 갯벌로 계속해서 물려줄 수 있기를...
덧붙이는 글 박건석 기자는 1968년, 강화군 화도면 출생. 강화군 화도면에서 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짓고 있음. 강화도시민연대 생태보전위원이자 한국물새네트워크 이사, 한국야생조류협회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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