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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모니카 연주로 '남북소통' '부부소통'

이현숙-김영만씨 강연장에서 벌어진 '부부소통' 이야기

등록|2010.02.13 14:39 수정|2010.02.13 14:39
지난해 말 일이었다.

집을 막 나서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저~ 여보, 지금 나 있는 곳으로 좀 오면 안 될까?" 남편으로부터 온 전화다. 평소답지 않게 좀 피곤하고 지친 듯한 목소리다.

30분 전 쯤에 창원 어느 성당에서 통일을 주제로 강연을 하러 간다고 나갔고 나는 건어물 점포를 운영하는 후배를 만나 차 한잔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어 집을 막 나서던 참이었다.

"나 아까 당신한테 말했는데, 후배 만나러 간다고…." "알고 있기는 한데, 음…. 그래, 그냥 나중에 봅시다"하고 남편이 더 할 말이 있을 듯 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 이현숙씨의 남편 김영만씨가 강연 도중 하모니카를 연주하고 있다. ⓒ 이현숙



오래 전부터 시민운동을 해오던 남편은 자기가 하는 일과 관련하여 가끔씩 강사로 초청받아 가는 일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같이 가자고 한 일이 없었기에 무슨 일이 생겼나하고 의아하게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여보, 아무리 생각해봐도 오늘 당신이 꼭 필요할 것 같아, 사실 집에서 출발하기 전 당신한테 부탁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누구 만나러 간다기에 그냥 나오긴 했는데…. 강연 중에 당신이 노래 한곡만 해주면 청중들이 아주 좋아 할 것 같아서 그래, 당신 노래 잘하잖아."

남편 말대로 내가 노래를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몰라도 사람들과 어울려 노래 부르기를 즐겨하는 것은 사실이고 이제 나이가 60이 넘어가니 부끄럼도 많이 없어져 누가 노래를 부르라고 하면 웬만해선 사양하지 않는 편이다.

50개 정도 놓은 의자, 모조리 텅 비어

이렇게 남편이 나를 절실하게 원한다는 데 맘이 흔들지 않을 수 없었다. "시작 시간은요?" "아직 40분 정도 여유는 있어." 후배에게 전화로 양해를 구하고 서둘러 강연 시작시간인 저녁 8시에 맞추어 강연장소로 급히 들어서는 순간,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것을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

이미 시작시간이 5분 정도 지났건만 50여개쯤 깔려 있는 의자는 모조리 텅 비어있었고 남편과 이 일을 주선한 단체의 사무국장 두 사람만 어색한 미소를 짓고 서 있었다. 당황해서 안절부절못하는 사무국장이 급히 위층으로 뛰어 올라가더니 좀 있다 내려왔다.

조금 전 저녁 미사를 마친 신자들이 여러 방에 흩어져 모임을 하고 있는데 서둘러 마치고 강의실로 내려가라고 신부님이 방송을 하셨단다. 주최 측과 신부님 사이에 심각한 소통의 문제가 있었었나 보다.

이 난감한 사태에 내가 왜 그런지 남편 얼굴 보기가 민망해 나도 덩달아 계단을 오르내리며 서성이는 사이에 4,50대 주부 네 사람이 강의실로 들어섰다. 그들도 사태를 직감했는지 "조금 있으면 레지오(가톨릭 평신도 조직) 마치고 여기로 오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하며 자리를 잡아 앉자마자 성가책을 펴들고 성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도 그들 옆에 앉아 같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니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짓고 빙긋 웃기는 했지만 좀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런 와중에 오늘 나에게 무슨 노래를 시키려고 했느냐고 묻지도 못했고 남편 역시 아무 말이 없었다.

▲ 6.15남북공동선언실천 경남본부 김영만 상임대표가 창원의 한 성당에서 통일운동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 이현숙



"데모할 때 부르는 노래인데요"


예정시간보다 무려 30분이 지나자 50여개의 의자가 거의 차기 시작했다. 사회자의 소개로 강의를 시작한 남편이 "반갑습니다"하고 인사를 하니 모두가 반사적으로 "반갑습니다"하고 호응했다.

"진짜 반가우면 우리 반갑다는 노래 하나 하고 시작할까요?" 하면서 호주머니에서 하모니카를 꺼내들었다. 오늘 주제가 통일이니까 남과 북의 노래 몇 곡을 메들리로 불러드리겠다며 남쪽에도 널리 알려진 북의 노래 '반갑습니다'를 시작으로 곡이 바뀔 때마다 사이사이에 '반갑습니다'를 몇 소절씩 끼워 넣고 마지막도 그 노래로 끝을 맺었다.

"자, 지금 저가 모두 몇 곡을 불렀을까요?"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여기저기에서 "다섯 곡입니다"하는 소리가 나왔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남편은 아니라고 머리를 흔들며 모두 네 곡이라고 했다.

그리고  곡명을 알아맞혀보란다. 가장 빨리 나온 답은 역시 '반갑습니다'와 '학도가'였다. 학도가와 같은 유의 노래는 계몽기 노래라고 하는데 남북이 다 잘 아는 노래란다. "나머지 두 곡은요?"라고 하자 뒤에서 누군가가 "데모할 때 부르는 노래인데요" 하는 소리에 "맞아, 맞아!" 하며 모두들 까르르 웃었다.

양희은의 '늙은 군인의 노래'가 시위 현장에서 늙은 노동자나 투사로 개사하여 부르는 것을 두고 하는 말들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한곡은 나도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은데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옆에 앉아있던 50대 초반쯤으로 보이던 여성이 "소나무 아닌가요?"하며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맞습니다! 그런데 반만 맞습니다. 이 노래가 바로 남쪽 사람들이 그 곡명만 들어도 몸이 움츠려드는 '적기가'라는 노래입니다." 남편의 이 말에 난 움찔했다. '국가보안법'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나도 중학교에 다닐 때 음악 교과서에 실린 독일 민요 소나무라고 배웠습니다." 본래 독일민요 탄넨바움(젓나무)이 역사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되었고 또 노래가 요렇게 조렇게 편곡이 되어 1930년대 일본에서 한반도로 건너와 일제에 저항하는 투쟁가, 노동가로 불리다가 분단이 되면서 남에서는 금지곡으로, 북에서는 혁명가요로 불리고 있단다.

그리고 몇 년 전, 우리 국민 1000만 명이 넘게 본 영화 '실미도'에서 북파요원들이 버스를 탈취하여 청와대로 간다며 달리다 군경에게 저지당하자 수류탄으로 자폭하기 직전 이 노래를 비장하게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노래가 바로 '적기가'였단다.

이를 두고 국가보안법 위반 운운하며 문제를 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후 잠잠해진 걸보니 별 일은 없었던 모양이라고 하면서도 주의사항이라며 "앞으로 이 노래를 옛날 학교에서 배운 '소나무'라고만 알고 아무데서나 흥얼거리지 마세요. 국가보안법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말에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 6.15남북공동선언실천 경남본부 김영만 상임대표가 창원의 한 성당에서 강연하고 있다. ⓒ 이현숙



"이 노래 부를 줄 아는 사람 있습니까?"


일단 강사와 청중이 한번 시원하게 소통이 되고 나면 강연장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화기애애, 흥미진진하게 진행되기 마련이다.

남편은 남과 북이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지 않으면 통일은 어렵다며 서로 다른 것보다 서로 같은 것부터 먼저 볼 줄 알아야 하며 그렇게 하다보면 처음엔 도저히 이해 안 되는 것도 나중에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통일이 왜 남과 북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여러 사례를 들어가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특히 남북이 사랑을 표현하는 노래의 예를 들면서 몇 년 전 북에서 대단히 유행했던 '심장 속에 남는 사람'이라는 노래를 소개하다가 갑자기 나를 쳐다보며 "혹시 여러분들 중에서 이 노래 부를 줄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그 순간 "아하! 바로 이 노래 때문에 나를 오라고 했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저요"하며 손을 들었다. 남편은 정말 반갑다는 둥 대단하다는 둥 능청을 떨면서 어디서 오신 누구냐고 물었다. 나도 마치 서로가 모르는 사람인 듯 시치미를 잡아떼고 마산에서 온 가톨릭신자 아무개라며 능청스럽게 앞으로 나가 마이크를 잡았다.
  
"인생의 길에 상봉과 이별 그 얼마나 많으랴 
헤어진대도 헤어진대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아~아~그런 사람 나는 못 잊어

오랜 세월을 같이 있어도 기억 속에 없는 이 있고
잠깐 만나도 잠깐 만나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아~아~ 그런 사람 나는 귀중해."

환호와 박수를 받고 자리에 돌아가니 주변 사람들이 가수냐고 물었다. 노래를 잘해서라기보다 이런 일에 익숙한 듯한 행동과 자연스러운 몸짓 때문이었을 것이다.

▲ 이현숙씨가 강연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 김영만



원래 초청 강사는 국회의원이었는데 ...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본래 초정강사는 모 정당 대표인 국회의원이었는데 여의도를 떠날 수 없는 정치적 상황 때문에 갑자기 남편이 대타로 나서게 되었다고 한다. 거절 할 수 없는 입장에 있었던 남편은 한 이틀 강연준비를 열심히 했지만 시간이 다가오자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준비했던 내용을 완전히 바꾸어야겠다고 고심하던 중 나에게 노래를 시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한다.

강연 말미에 남북 민중들이 다 함께 춤추며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불러보자며 하모니카로 노들강변을 신명나게 불어 제키자 모두 손뼉치고 노래 부르는 것으로 한 시간 강연은 끝났다. "여보! 오늘 당신 정말 멋진 강사였어요." 사람들이 다 떠난 주차장에서 남편 손을 꼭 잡으며 격려의 말을 건넸다. "당신 덕분이지 뭐…" 하면서 남편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몇 년 전, 어느 날 TV에서 째즈하모니카 연주자인 전재덕씨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모니카 연주를 하는 것을 보더니 "히야! 하모니카도 저렇게 훌륭한 악기가 될 수 있다니 정말 놀랍다. 나도 어릴 때 하모니카로 인기 짱이었는데…"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결혼 생활 40년 동안 남편이 하모니카 부는 소리를 들어 본 기억이 전혀 없기에 긴가민가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니 고등학교 졸업 이후 45년 동안 단 한 번도 불러 보지 못했다며 말꼬리를 흐렸다. 이후 하모니카 이야기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사실 언제부터인가 우리 부부 사이에 파인 감정의 골은 점점 깊어지기만 했다. 남편이 운동을 하면서 자연히 경제적인 책임을 내가 지게 되고 아이들 셋을 대학 보내고 결혼시키는 과정에서 남편에 대한 원망이 많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다 이태 전 친정어머니가 치매로 노인요양소에 입원을 하게 되고 동생들 때문에 이런저런 일로 속이 상하게 되어 우울증까지 생기게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도 겁이 났다. 눈만 뜨면 몸과 마음이 천근만근 무겁고, 또 경기불황은 언제 끝날지…. 이래저래 남편과 한마디 대화도 없는 날들이 점점 많아졌다.

"부부통일도 못하는 주제에 통일운동은 무슨"

부부사이가 이제 다시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던 지난해 봄 어느 날, 그날도 무거워진 몸과 머리로 아침 밥 준비를 하느라 싱크대 앞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봄봄봄봄 봄봄봄봄 새봄이 돌아왔건만…" 경쾌한 하모니카 소리가 들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남편이 하모니카를 불고 있었다.

내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니 '체리핑크 맘보', '베샤메 무쵸', '노들강변', '양산도'가 줄줄이 이어서 흘러나왔다. 그 순간 내 귀에 들리는 하모니카 소리는 어떤 오케스트라 연주보다 더 감동적이었다.

온 몸에 전율이 일면서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주체 할 수가 없었고 나중엔 너울너울 춤까지 추게 되었다. 나는 남편이 그렇게 하모니카를 멋지게 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후 우리 부부는 집에서 둘만의 음악회를 가끔 가지게 되었다.

하모니카가 우리 부부 사이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은 아니지만 다시는 가까워 질것 같지 않았던 사이가 가까워지면서 대화로 많은 감정의 맺힌 고리를 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날 강연장을 나서면서 남편에게 이 말도 꼭 해줘야 했는데 속으로 머뭇거리다 못한 말을 오늘 해야겠다.

"여보, 언젠가 당신에게 부부통일도 못하는 주제에 통일운동은 무슨 통일운동이냐며 당신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었지요. 지금도 그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았다면 깨끗이 치유되도록 노력할게요."
덧붙이는 글 필자는 올해 62살로, 현재 식품제조업(다시마 가공식품)을 하고 있습니다. 남편 김영만씨는 현재 코리아 평화연대 상임대표, 6·15남북공동선언실천 경남본부 상임대표로 있고, 2002년 아시안게임 때 북한 서포터즈인 '아리랑 응원단'을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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