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보다 좋은 우리 '상말' (86) 혼연일체
[우리 말에 마음쓰기 859] '문명과 자연이 혼연일체', '혼연일체로 생활' 다듬기
ㄱ. 문명과 자연이 혼연일체
.. 그 방향은 이제까지처럼 개인과 개인이 대립하며, 문명과 자연이 상반하는 전개가 아니고 모든 사람이 밑바탕으로부터 조화를 이루고, 문명과 자연이 혼연일체가 된 새로운 발전이 되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 <야마오 산세이/이반 옮김-여기에 사는 즐거움>(도솔,2002) 253쪽
"그 방향(方向)은"은 "그 길은"으로 다듬고, "개인(個人)과 개인(個人)이 대립(對立)하며"는 "나와 네가 맞서며"로 다듬으며, "문명과 자연이 상반(相反)되는 전개(展開)가 아니고"는 "문명과 자연이 엇나가는 길이 아니고"로 다듬습니다. "밑바탕으로부터 조화(調和)를 이루고"는 "밑바탕부터 어우러지고"로 손보며, "새로운 발전(發展)이 되어야 함은"은 "새롭게 발전해야 함은"이나 "새롭게 발돋움해야 함은"으로 손봅니다. "말할 것도 없다"는 "두말할 까닭이 없다"나 "마땅하다"로 손질해 줍니다.
┌ 혼연일체(渾然一體) : 생각, 행동, 의지 따위가 완전히 하나가 됨
│ - 노사가 혼연일체가 되어 위기를 극복하였다 /
│ 근대 실증 과학의 정신과 철학의 정신이 혼연일체가 되어 있다
│
├ 문명과 자연이 혼연일체가 된 새로운 발전
│→ 문명과 자연이 한마음 한뜻이 된 새로운 발전
│→ 문명과 자연이 오롯이 하나가 된 새로운 발전
│→ 문명과 자연이 어깨동무를 하는 새로운 발전
└ …
말뜻만 살핀다면 '혼연일체'란 네 글자 한자말은 더없이 좋습니다. 그래서 이 말마디를 여러 곳에서 퍽 널리 씁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된다는데, 생각과 움직임이 하나가 된다는데, 이렇게 뜻깊은 말마디를 널리 안 쓸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여기에서 한 가지를 더 살펴보고 싶어요. 이렇게 좋은 뜻과 느낌을 나타낼 만한 그지없이 살갑고 좋은 우리 말을 찬찬히 헤아리고 찾아나서고 북돋우면 어떨까 하고요.
┌ 노사가 혼연일체가 되어 위기를 극복하였다
│→ 노사가 하나가 되어 어려움을 이겨냈다
│→ 노사가 한몸이 되어 어려움을 딛고 섰다
│→ 노사가 한마음 한뜻으로 어려움을 물리쳤다
├ 혼연일체가 되어 있다
│→ 하나가 되어 있다
│→ 하나로 어우러져 있다
│→ 하나로 모두어 있다
└ …
아직은 한 낱말이 아닌 '한마음 한뜻'이요, 곰곰이 따지면 굳이 한 낱말로 삼지 않아도 될 '한마음 한뜻'입니다. 그러나 '한마음한뜻'을 한 낱말로 삼아도 괜찮겠다고 느낍니다. 또한, '한몸'이나 '한생각'을 한 낱말로 삼아서 때와 곳에 따라서 알맞게 써도 좋습니다. '하나됨'과 '하나되기' 또한 한 낱말로 삼을 수 있고요.
이렇게 생각줄기를 넓힌다면 '한삶'이나 '온삶'을 한 낱말로 엮으면서 구태여 '일생(一生)'이나 '평생(平生)' 같은 낱말을 안 써도 됩니다. '어깨동무'라는 낱말을 살리면서 '어깨동무삶'과 '어깨동무넋'을 이야기해도 괜찮습니다.
우리 깜냥껏 알맞게 살려쓸 길을 찾으면 됩니다. 우리 슬기를 뽐내어 알차게 고쳐쓸 길을 마련하면 됩니다. 살려쓸 길을 찾으면 얼마든지 살려쓸 수 있고, 고쳐쓸 길을 찾으면 넉넉하게 고쳐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살려쓸 길을 찾지 않고 대충대충 쓰면 대충대충 살아가는 길이요, 고쳐쓸 길을 마련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쓰면 아무렇게나 꾸리는 삶길로 마무리됩니다.
ㄴ. 혼연일체로 생활
.. 남자친구의 허리둘레에 그다지 사랑스럽지 않은 핸들 하나가 더 생긴 것도 자동차와 혼연일체로 생활했던 탓은 아닐까 .. <장치선-하이힐을 신은 자전거>(뮤진트리,2009) 58쪽
"남자친구의 허리둘레"는 "남자친구 허리둘레"로 다듬고, '핸들(handle)'은 '손잡이'로 다듬으며, "생긴 것도"는 "생긴 까닭도"로 다듬어 봅니다. '생활(生活)했던'은 '살았던'이나 '지냈던'이나 '지내온'으로 손질합니다.
┌ 혼연일체로 생활했던
│
│→ 하나되어 살았던
│→ 한몸 되어 지냈던
│→ 너무 가까이 붙어 지낸
│→ 늘 어울리고 있던
└ …
자동차를 너무 오래 타면 온몸이 무너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몸을 움직일 일이 없을 테니까요. 짧은 길은 걸어다니고 조금 먼 길도 걸어다니며 퍽 먼 길은 자전거를 타면 얼마나 좋으랴 싶습니다. 때로는 버스를 탈 수 있고, 어느 날은 차를 얻어타고 갈 수 있겠지요. 그러나 웬만큼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라 하더라도 되도록 걸어다니는 우리 삶일 때 비로소 우리 몸이 튼튼하도록 지킬 수 있다고 느낍니다. 따로 운동을 하거나 운동모임에 나갈 까닭이 없이, 언제나 힘껏 온몸을 쓰고 움직이는 삶이어야 바야흐로 내 몸을 내 몸다이 가꾸면서 내 마음은 내 마음다이 일굴 수 있으리라 봅니다.
내 삶결이 고스란히 생각결이 되고, 내 생각결이 그대로 말결이 되니까요. 내 삶자락이 시나브로 생각자락이 되며, 내 생각자락이 솔솔 말자락이 되고요.
┌ 언제 어디서나 자동차를 타고다닌 탓은
├ 늘 자동차만 타고다닌 탓은
├ 어디를 가도 자동차를 끌고 나온 탓은
├ 자동차를 너무 가까이한 탓은
├ 자동차로만 돌아다닌 탓은
└ …
저는 "자전거와 함께 살기"라는 이름으로 책을 하나 써 냈습니다. 이 이름을 돌아본다면, 이 보기글에 나오는 남자친구는 "자동차와 함께 살기"를 한 셈입니다. 저는 "자전거와 하나되기"로 살아온 셈이고, 이 보기글에 나오는 분은 "자동차와 하나되기"로 살아온 셈입니다.
어느 쪽이 더 낫거나 좋다고 잘라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 스스로 자동차와 한몸까지는 되지 않으면 더 낫지 않으랴 싶습니다. 텔레비전을 즐겨도 "텔레비전과 한마음 되기"까지는 되지 않아야지 싶고, 돈을 신나게 번달지라도 "돈과 한뜻 되기"로 나아가는 일은 슬프지 않으랴 싶습니다.
.. 그 방향은 이제까지처럼 개인과 개인이 대립하며, 문명과 자연이 상반하는 전개가 아니고 모든 사람이 밑바탕으로부터 조화를 이루고, 문명과 자연이 혼연일체가 된 새로운 발전이 되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 <야마오 산세이/이반 옮김-여기에 사는 즐거움>(도솔,2002) 253쪽
┌ 혼연일체(渾然一體) : 생각, 행동, 의지 따위가 완전히 하나가 됨
│ - 노사가 혼연일체가 되어 위기를 극복하였다 /
│ 근대 실증 과학의 정신과 철학의 정신이 혼연일체가 되어 있다
│
├ 문명과 자연이 혼연일체가 된 새로운 발전
│→ 문명과 자연이 한마음 한뜻이 된 새로운 발전
│→ 문명과 자연이 오롯이 하나가 된 새로운 발전
│→ 문명과 자연이 어깨동무를 하는 새로운 발전
└ …
말뜻만 살핀다면 '혼연일체'란 네 글자 한자말은 더없이 좋습니다. 그래서 이 말마디를 여러 곳에서 퍽 널리 씁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된다는데, 생각과 움직임이 하나가 된다는데, 이렇게 뜻깊은 말마디를 널리 안 쓸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여기에서 한 가지를 더 살펴보고 싶어요. 이렇게 좋은 뜻과 느낌을 나타낼 만한 그지없이 살갑고 좋은 우리 말을 찬찬히 헤아리고 찾아나서고 북돋우면 어떨까 하고요.
┌ 노사가 혼연일체가 되어 위기를 극복하였다
│→ 노사가 하나가 되어 어려움을 이겨냈다
│→ 노사가 한몸이 되어 어려움을 딛고 섰다
│→ 노사가 한마음 한뜻으로 어려움을 물리쳤다
├ 혼연일체가 되어 있다
│→ 하나가 되어 있다
│→ 하나로 어우러져 있다
│→ 하나로 모두어 있다
└ …
아직은 한 낱말이 아닌 '한마음 한뜻'이요, 곰곰이 따지면 굳이 한 낱말로 삼지 않아도 될 '한마음 한뜻'입니다. 그러나 '한마음한뜻'을 한 낱말로 삼아도 괜찮겠다고 느낍니다. 또한, '한몸'이나 '한생각'을 한 낱말로 삼아서 때와 곳에 따라서 알맞게 써도 좋습니다. '하나됨'과 '하나되기' 또한 한 낱말로 삼을 수 있고요.
이렇게 생각줄기를 넓힌다면 '한삶'이나 '온삶'을 한 낱말로 엮으면서 구태여 '일생(一生)'이나 '평생(平生)' 같은 낱말을 안 써도 됩니다. '어깨동무'라는 낱말을 살리면서 '어깨동무삶'과 '어깨동무넋'을 이야기해도 괜찮습니다.
우리 깜냥껏 알맞게 살려쓸 길을 찾으면 됩니다. 우리 슬기를 뽐내어 알차게 고쳐쓸 길을 마련하면 됩니다. 살려쓸 길을 찾으면 얼마든지 살려쓸 수 있고, 고쳐쓸 길을 찾으면 넉넉하게 고쳐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살려쓸 길을 찾지 않고 대충대충 쓰면 대충대충 살아가는 길이요, 고쳐쓸 길을 마련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쓰면 아무렇게나 꾸리는 삶길로 마무리됩니다.
ㄴ. 혼연일체로 생활
.. 남자친구의 허리둘레에 그다지 사랑스럽지 않은 핸들 하나가 더 생긴 것도 자동차와 혼연일체로 생활했던 탓은 아닐까 .. <장치선-하이힐을 신은 자전거>(뮤진트리,2009) 58쪽
"남자친구의 허리둘레"는 "남자친구 허리둘레"로 다듬고, '핸들(handle)'은 '손잡이'로 다듬으며, "생긴 것도"는 "생긴 까닭도"로 다듬어 봅니다. '생활(生活)했던'은 '살았던'이나 '지냈던'이나 '지내온'으로 손질합니다.
┌ 혼연일체로 생활했던
│
│→ 하나되어 살았던
│→ 한몸 되어 지냈던
│→ 너무 가까이 붙어 지낸
│→ 늘 어울리고 있던
└ …
자동차를 너무 오래 타면 온몸이 무너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몸을 움직일 일이 없을 테니까요. 짧은 길은 걸어다니고 조금 먼 길도 걸어다니며 퍽 먼 길은 자전거를 타면 얼마나 좋으랴 싶습니다. 때로는 버스를 탈 수 있고, 어느 날은 차를 얻어타고 갈 수 있겠지요. 그러나 웬만큼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라 하더라도 되도록 걸어다니는 우리 삶일 때 비로소 우리 몸이 튼튼하도록 지킬 수 있다고 느낍니다. 따로 운동을 하거나 운동모임에 나갈 까닭이 없이, 언제나 힘껏 온몸을 쓰고 움직이는 삶이어야 바야흐로 내 몸을 내 몸다이 가꾸면서 내 마음은 내 마음다이 일굴 수 있으리라 봅니다.
내 삶결이 고스란히 생각결이 되고, 내 생각결이 그대로 말결이 되니까요. 내 삶자락이 시나브로 생각자락이 되며, 내 생각자락이 솔솔 말자락이 되고요.
┌ 언제 어디서나 자동차를 타고다닌 탓은
├ 늘 자동차만 타고다닌 탓은
├ 어디를 가도 자동차를 끌고 나온 탓은
├ 자동차를 너무 가까이한 탓은
├ 자동차로만 돌아다닌 탓은
└ …
저는 "자전거와 함께 살기"라는 이름으로 책을 하나 써 냈습니다. 이 이름을 돌아본다면, 이 보기글에 나오는 남자친구는 "자동차와 함께 살기"를 한 셈입니다. 저는 "자전거와 하나되기"로 살아온 셈이고, 이 보기글에 나오는 분은 "자동차와 하나되기"로 살아온 셈입니다.
어느 쪽이 더 낫거나 좋다고 잘라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 스스로 자동차와 한몸까지는 되지 않으면 더 낫지 않으랴 싶습니다. 텔레비전을 즐겨도 "텔레비전과 한마음 되기"까지는 되지 않아야지 싶고, 돈을 신나게 번달지라도 "돈과 한뜻 되기"로 나아가는 일은 슬프지 않으랴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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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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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