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85)
'일말의 인간적인 따스함', '일말의 희망', '일말의 기회' 다듬기
ㄱ. 일말의 인간적인 따스함
.. 그의 마음속에 있는 일말의 인간적인 따스함마저 일찌감치 죽어버렸고, 결국 그는 스스로 밉살스러운 인간이 되어갔다 .. <작은 인디언의 숲>(어니스트 톰슨 시튼/햇살과나무꾼 옮김, 두레, 1999) 19쪽
"그의 마음속에 있는"은 "그 사람 마음속에 있는"으로 손봅니다. "인간적(人間的)인 따스함마저"는 "애틋한 따스함마저"나 "사람으로서 남아 있던 따스함마저"로 고쳐 줍니다. '결국(結局)'은 '끝내'나 '마침내'로 다듬습니다.
┌ 일말(一抹) : 한 번 스치는 정도라는 뜻으로, '약간'을 이르는 말
│ - 일말의 후회 / 일말의 불안감 / 일말의 가능성
│
├ 일말의 인간적인 따스함마저
│→ 조금 있던 사람다운 따스함마저
│→ 마지막 남은 따스함마저
└ …
"일말의 후회(後悔)가 된다"는 말은 "조금 후회가 된다"로, 또는 "조금 아쉽다"로, "일말의 불안감(不安感)"은 "조금 불안하다"로, 또는 "조금 조마조마하다"로, "일말의 가능성(可能性)"은 "조금 가능성이 있다"나 "그럴 수도 있다"로 다듬어 봅니다. 이렇게 다듬고 싶지 않다면야 그럭저럭 써도 나쁘지 않다 할 텐데, 한자말 '일말'이란 무엇을 뜻할까요? 우리 어른들은 이런 말투가 어느 만큼 입에 붙어서 그러려니 하고 쓴다지만, "일말의 후회"나 "일말의 가능성"이라고 말하는 우리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고 있기나 할까요? 대충대충 말하거나 글쓰는 우리들은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말뜻을 제대로 살피며 누구한테나 쉽고 살갑게 이야기를 펼치려는 매무새를 잃거나 내친 우리들이 아니랴 싶습니다.
┌ 그 사람 마음속에 있는 아주 작은 따스함마저
├ 그이 마음속에 있는 아주 작은 따스한 기운마저
├ 그 사람은 아주 조그마한 따스함마저
├ 그이는 아주 작은 따스한 마음마저
└ …
토씨 '-의'를 붙이거나 한자 '-적'을 붙여서 쓰는 말투는 옹글게 일본 말투입니다. 아마, 오늘날 이런 말투가 옳지도 않고 바르지도 않은 줄을 모르는 한국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이런 말투가 옹글게 일본 말투임을 알면서도 털어내려고 애쓰는 한국사람 또한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몰라서 쓰는 말투가 아니라 알면서 쓰는 잘못된 말투입니다. 모르고 써 버린 말투가 아니라 아는 가운데 그냥저냥 쓰는 얄궂은 말투입니다.
스스로 아름답게 거듭나지 못합니다. 스스로 알차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스스로 싱그럽게 꽃피우지 못합니다. 스스로 튼튼하게 뿌리내리지 않습니다.
말 한 마디에 따스함을 담지 않는 우리들입니다. 글 한 줄에 따스함을 싣지 않는 우리들입니다. 건네는 말이나 건네받는 말이나 조금도 따스하지 않은 우리 삶입니다. 나누는 말이나 펼치는 글이나 하나도 넉넉하지 못한 우리 하루하루입니다.
ㄴ. 일말의 희망
.. 날씨는 맑은데 바람은 좀 세게 분다.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갖고서 12시에 바로 전화를 했는데 안 뜬단다 .. <자전거 전국일주>(박세욱, 선미디어, 2005) 86쪽
"날씨는 맑은데 바람은 좀 세게 분다"는 말이 좋습니다. 이런 말이 좋은 말이라고 느낍니다. 쉽고 깨끗하거든요. "날씨는 화창(和暢)하고 바람은 좀 강(强)하게 분다"고 쓰지 않아서 반갑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좋게좋게 잘 쓸 수 있는 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부드럽고 알맞게 펼칠 수 있는 말을 넉넉히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제자리에 제대로 못 쓰거나 안 쓸 뿐입니다.
┌ 일말의 희망을 갖고서
│
│→ 조금이나마 희망을 품고서
│→ 아주 작은 희망을 품고서
│→ 실낱같은 희망으로
└ …
"한 번 스치는"을 뜻하는 '일말'입니다. 이 말뜻을 헤아리며 보기글을 살피면, "조금이나마 희망"이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희망이 조금이나마 있다면 '실낱만큼' 또는 '터럭만큼' 또는 '손톱만큼'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안 될 듯하지만 한번 믿어 보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루지 못하리라 생각하지만 '어쩌면' 하는 마음 하나를 품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보기글은 "그래도 어쩌면 하고 생각하면서 12시에 바로 전화를 했는데"라든지 "그래도 설마 하는 생각으로 12시에 바로 전화를 했는데"로 고쳐쓸 수 있습니다. 이밖에 우리 깜냥껏 '아주 조그맣게 품는 마음'이 어떤 모습인가를 찬찬히 나타내 보면 됩니다.
ㄷ. 일말의 기회
.. 모르는 사람들은 도대체 피 중령이 항공학교에서 어떻게 근무를 했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멀쩡히 근무하고 있는 사람을 신체검사 결과를 가지고 일말의 기회도 주지 않고 공중 자격 해임을 시켰으며 병원에 입원시키려 하겠느냐고 합니다 ..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피우진, 삼인, 2006) 233쪽
'근무(勤務)했으면'은 '일했으면'으로 다듬고, '근무하고 있는'은 '일하고 있는'으로 다듬습니다. "병원에 입원(入院)시키려"는 그대로 두어도 되나, "병원에 넣으려"로 손볼 수 있습니다.
┌ 일말의 기회도
│
│→ 아무런 기회도
│→ 조금도 기회를
│→ 자그마한 기회도
│→ 기회를 한 번도
└ …
'一抹'은 '조금'을 뜻하는 한자말이라지만, 한자로 적어 놓아도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한자로 적은 이 낱말을 올바로 읽어내는 분이 있을까요. 있다면 얼마나? 우리는 이 한자말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모르면서 그냥 쓰고 있지 않나 모르겠어요. 뜻을 모를 뿐더러, 뜻을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느낌대로 아무 데나 쓰지는 않나 궁금합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워낙 입에 굳은 말투대로 적었으니 이렇게 되었지만, 이 굳어 버린 말투를 말랑말랑하게 가다듬으며 "조금도 기회를 주지 않고"라 하면 어떠할까 생각해 봅니다. 조금도 기회를 안 준다는 말은 "아무 기회가 없다"나 "아무런 기회가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할 테지요. 그래서 "자그마한 기회"라고 해 보아도 썩 어울립니다. 조금도 기회가 없었다니, 어쩌면 "기회라고는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해도 잘 어울립니다.
┌ 신체검사 결과를 가지고 갑작스레 공중 자격 해임을 시켰으며
├ 신체검사 결과를 가지고 곧바로 공중 자격 해임을 시켰으며
├ 신체검사 결과를 가지고 무턱대고 공중 자격 해임을 시켰으며
├ 신체검사 결과를 가지고 매몰차게 공중 자격 해임을 시켰으며
└ …
말뜻을 새기고 말느낌을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앞뒤 흐름을 살피고 글월 짜임새를 곰곰이 되새겨 봅니다. 어떻게 해야 한결 손쉽고 알맞으며 싱그럽게 적바림할 수 있는가 하고 길을 찾아봅니다. 어떻게 할 때 좀더 부드럽고 튼튼하며 야무지게 우리 생각을 펼칠 수 있을까 하고 톺아봅니다.
다시금 보기글을 살펴본다면 "일말 같은 기회"나 "일말이라는 기회"쯤으로는 적어야 우리 말투에 걸맞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토씨 '-의'를 넣는 "일말의 기회"라고만 할 뿐, 우리 말투를 올바르게 가누지 못합니다. 한자말을 쓰느냐 마느냐를 떠나, 우리가 참답게 붙잡아야 할 우리 말투가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합니다. 쓸 만한 말은 무엇이고 가꿀 만한 말투는 무엇이며 나눌 만한 말 문화는 어떠한지 생각하지 못합니다.
.. 그의 마음속에 있는 일말의 인간적인 따스함마저 일찌감치 죽어버렸고, 결국 그는 스스로 밉살스러운 인간이 되어갔다 .. <작은 인디언의 숲>(어니스트 톰슨 시튼/햇살과나무꾼 옮김, 두레, 1999) 19쪽
┌ 일말(一抹) : 한 번 스치는 정도라는 뜻으로, '약간'을 이르는 말
│ - 일말의 후회 / 일말의 불안감 / 일말의 가능성
│
├ 일말의 인간적인 따스함마저
│→ 조금 있던 사람다운 따스함마저
│→ 마지막 남은 따스함마저
└ …
"일말의 후회(後悔)가 된다"는 말은 "조금 후회가 된다"로, 또는 "조금 아쉽다"로, "일말의 불안감(不安感)"은 "조금 불안하다"로, 또는 "조금 조마조마하다"로, "일말의 가능성(可能性)"은 "조금 가능성이 있다"나 "그럴 수도 있다"로 다듬어 봅니다. 이렇게 다듬고 싶지 않다면야 그럭저럭 써도 나쁘지 않다 할 텐데, 한자말 '일말'이란 무엇을 뜻할까요? 우리 어른들은 이런 말투가 어느 만큼 입에 붙어서 그러려니 하고 쓴다지만, "일말의 후회"나 "일말의 가능성"이라고 말하는 우리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고 있기나 할까요? 대충대충 말하거나 글쓰는 우리들은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말뜻을 제대로 살피며 누구한테나 쉽고 살갑게 이야기를 펼치려는 매무새를 잃거나 내친 우리들이 아니랴 싶습니다.
┌ 그 사람 마음속에 있는 아주 작은 따스함마저
├ 그이 마음속에 있는 아주 작은 따스한 기운마저
├ 그 사람은 아주 조그마한 따스함마저
├ 그이는 아주 작은 따스한 마음마저
└ …
토씨 '-의'를 붙이거나 한자 '-적'을 붙여서 쓰는 말투는 옹글게 일본 말투입니다. 아마, 오늘날 이런 말투가 옳지도 않고 바르지도 않은 줄을 모르는 한국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이런 말투가 옹글게 일본 말투임을 알면서도 털어내려고 애쓰는 한국사람 또한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몰라서 쓰는 말투가 아니라 알면서 쓰는 잘못된 말투입니다. 모르고 써 버린 말투가 아니라 아는 가운데 그냥저냥 쓰는 얄궂은 말투입니다.
스스로 아름답게 거듭나지 못합니다. 스스로 알차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스스로 싱그럽게 꽃피우지 못합니다. 스스로 튼튼하게 뿌리내리지 않습니다.
말 한 마디에 따스함을 담지 않는 우리들입니다. 글 한 줄에 따스함을 싣지 않는 우리들입니다. 건네는 말이나 건네받는 말이나 조금도 따스하지 않은 우리 삶입니다. 나누는 말이나 펼치는 글이나 하나도 넉넉하지 못한 우리 하루하루입니다.
ㄴ. 일말의 희망
.. 날씨는 맑은데 바람은 좀 세게 분다.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갖고서 12시에 바로 전화를 했는데 안 뜬단다 .. <자전거 전국일주>(박세욱, 선미디어, 2005) 86쪽
"날씨는 맑은데 바람은 좀 세게 분다"는 말이 좋습니다. 이런 말이 좋은 말이라고 느낍니다. 쉽고 깨끗하거든요. "날씨는 화창(和暢)하고 바람은 좀 강(强)하게 분다"고 쓰지 않아서 반갑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좋게좋게 잘 쓸 수 있는 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부드럽고 알맞게 펼칠 수 있는 말을 넉넉히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제자리에 제대로 못 쓰거나 안 쓸 뿐입니다.
┌ 일말의 희망을 갖고서
│
│→ 조금이나마 희망을 품고서
│→ 아주 작은 희망을 품고서
│→ 실낱같은 희망으로
└ …
"한 번 스치는"을 뜻하는 '일말'입니다. 이 말뜻을 헤아리며 보기글을 살피면, "조금이나마 희망"이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희망이 조금이나마 있다면 '실낱만큼' 또는 '터럭만큼' 또는 '손톱만큼'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안 될 듯하지만 한번 믿어 보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루지 못하리라 생각하지만 '어쩌면' 하는 마음 하나를 품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보기글은 "그래도 어쩌면 하고 생각하면서 12시에 바로 전화를 했는데"라든지 "그래도 설마 하는 생각으로 12시에 바로 전화를 했는데"로 고쳐쓸 수 있습니다. 이밖에 우리 깜냥껏 '아주 조그맣게 품는 마음'이 어떤 모습인가를 찬찬히 나타내 보면 됩니다.
ㄷ. 일말의 기회
.. 모르는 사람들은 도대체 피 중령이 항공학교에서 어떻게 근무를 했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멀쩡히 근무하고 있는 사람을 신체검사 결과를 가지고 일말의 기회도 주지 않고 공중 자격 해임을 시켰으며 병원에 입원시키려 하겠느냐고 합니다 ..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피우진, 삼인, 2006) 233쪽
'근무(勤務)했으면'은 '일했으면'으로 다듬고, '근무하고 있는'은 '일하고 있는'으로 다듬습니다. "병원에 입원(入院)시키려"는 그대로 두어도 되나, "병원에 넣으려"로 손볼 수 있습니다.
┌ 일말의 기회도
│
│→ 아무런 기회도
│→ 조금도 기회를
│→ 자그마한 기회도
│→ 기회를 한 번도
└ …
'一抹'은 '조금'을 뜻하는 한자말이라지만, 한자로 적어 놓아도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한자로 적은 이 낱말을 올바로 읽어내는 분이 있을까요. 있다면 얼마나? 우리는 이 한자말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모르면서 그냥 쓰고 있지 않나 모르겠어요. 뜻을 모를 뿐더러, 뜻을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느낌대로 아무 데나 쓰지는 않나 궁금합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워낙 입에 굳은 말투대로 적었으니 이렇게 되었지만, 이 굳어 버린 말투를 말랑말랑하게 가다듬으며 "조금도 기회를 주지 않고"라 하면 어떠할까 생각해 봅니다. 조금도 기회를 안 준다는 말은 "아무 기회가 없다"나 "아무런 기회가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할 테지요. 그래서 "자그마한 기회"라고 해 보아도 썩 어울립니다. 조금도 기회가 없었다니, 어쩌면 "기회라고는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해도 잘 어울립니다.
┌ 신체검사 결과를 가지고 갑작스레 공중 자격 해임을 시켰으며
├ 신체검사 결과를 가지고 곧바로 공중 자격 해임을 시켰으며
├ 신체검사 결과를 가지고 무턱대고 공중 자격 해임을 시켰으며
├ 신체검사 결과를 가지고 매몰차게 공중 자격 해임을 시켰으며
└ …
말뜻을 새기고 말느낌을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앞뒤 흐름을 살피고 글월 짜임새를 곰곰이 되새겨 봅니다. 어떻게 해야 한결 손쉽고 알맞으며 싱그럽게 적바림할 수 있는가 하고 길을 찾아봅니다. 어떻게 할 때 좀더 부드럽고 튼튼하며 야무지게 우리 생각을 펼칠 수 있을까 하고 톺아봅니다.
다시금 보기글을 살펴본다면 "일말 같은 기회"나 "일말이라는 기회"쯤으로는 적어야 우리 말투에 걸맞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토씨 '-의'를 넣는 "일말의 기회"라고만 할 뿐, 우리 말투를 올바르게 가누지 못합니다. 한자말을 쓰느냐 마느냐를 떠나, 우리가 참답게 붙잡아야 할 우리 말투가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합니다. 쓸 만한 말은 무엇이고 가꿀 만한 말투는 무엇이며 나눌 만한 말 문화는 어떠한지 생각하지 못합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