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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마디 한자말 털기 (90) 향香

[우리 말에 마음쓰기 860] '꽃향-꽃향기'와 '꽃내-꽃내음-꽃냄새'

등록|2010.02.16 12:04 수정|2010.02.16 12:04

- 꽃향

.. 숲속에 봄꽃들 참 작다. 저만 오냐오냐하고 키우는 손이 없는 탓이다. 꽃색 곱고, 꽃향도 짙은 게, 그 덕분이겠지! ..  <이철수-당신이 있어 고맙습니다>(삼인,2009) 72쪽

'춘화(春花)'라 하지 않고 '봄꽃'이라 하니 반갑습니다. 그렇지만 '꽃빛'이 아닌 '꽃색(-色)'이라 적어 아쉽습니다. "짙은 게"는 "짙은 까닭"으로 손질합니다. "그 덕분(德分)이겠지"는 그대로 두어도 되고, "그 때문이겠지"로 손볼 수 있습니다.

 ┌ 향(香)
 │  (1) 불에 태워서 냄새를 내는 물건
 │   - 향을 사르다 / 향을 피우다
 │  (2) 향기를 피우는 노리개의 하나
 │  (3) = 향기(香氣)
 │   - 향이 독특한 나물 / 이 술은 맛도 순하고 향도 좋다
 ├ 향기(香氣) : 꽃, 향, 향수 따위에서 나는 좋은 냄새
 │   - 진한 커피 향기 / 짙은 향기 / 은은한 향기
 │
 ├ 꽃향도 짙은 게
 │→ 꽃내음도 짙은 까닭
 │→ 꽃냄새도 짙은 까닭
 │→ 꽃내도 짙은 까닭
 └ …

사람들이 널리 사랑하는 <장미>라는 노래는 "당신에게선 꽃내음이 나네요" 하면서 첫머리를 엽니다. 흔하디 흔하게 부르는 노래입니다만, 이 노래말을 곱씹으면 우리가 우리 말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잘 읽을 수 있습니다. 먼저 "당신에게 꽃내음이 나네요"가 아닌 '당신에게선(당신에게서는)'입니다. 요즈음 우리들은 '-에게(-한테)'와 '-에게서(-한테서)'를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데, 이 노래말에서는 올바르게 '-에게서(-한테서)'를 넣었습니다. 그리고, '꽃향기'가 아닌 '꽃내음'이라고 하면서 우리 말 '-내음'을 뒷가지로 삼아 얼마든지 새말을 빚을 수 있다고 보여줍니다. 이를테면 '책내음'이나 '가을내음'이나 '봄내음'이나 '산내음'이나 '보리내음'이나 '바다내음'이나 '사람내음'이나 '차내음'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한 마디를 줄여 '책내-가을내-봄내-산내-보리내-바다내-사람내-차내'로 적어도 되고요.

그렇지만 이와 같이 꽃에서 맡는 냄새를 '꽃냄새'나 '꽃내음'이나 '꽃내'로 일컫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날이 갈수록 더욱 줄어듭니다. 모두들 '꽃향기'나 '꽃향'이라고 이야기할 뿐, 우리 말빛을 살리거나 우리 말결을 북돋울 줄 모릅니다.

'냄새'는 "코로 맡는 기운"을 가리키는 토박이 낱말인데, '냄새'라고 하면 마치 '코를 찌르는 나쁜 기운'만을 가리키는 듯 잘못 생각해 버릇합니다. 우리 말로 '똥'과 '오줌'은 더럽다 여기고 '대변'과 '소변'은 덜 더럽거나 안 더럽다 여겨 버릇하는 모습하고 매한가지입니다.

있는 그대로 나타내는 말이건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우리들입니다. 꾸밈없이 보여주는 글이건만 꾸밈없이 헤아리지 않는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우리 말이건 우리 넋이건 우리 삶이건 고이 돌보지 않습니다. 우리 글이건 우리 얼이건 우리 터이건 알차게 가꾸지 않습니다.

 ┌ 향이 독특한 나물
 │→ 냄새가 남다른 나물 / 내음이 사뭇 다른 나물
 ├ 이 술은 맛도 순하고 향도 좋다
 │→ 이 술은 맛도 부드럽고 내음도 좋다
 │→ 이 술은 맛도 말끔하고 냄새도 좋다
 └ …

꽃을 보면서 느끼는 빛깔이라면 '꽃빛'이나 '꽃빛깔'입니다. '꽃색'이나 '꽃색깔'이 아닙니다. 꽃한테서 받는 느낌이라면 '꽃느낌'입니다. 꽃마다 붙이는 말이면 '꽃말'이요, 꽃을 바라보면서 '꽃이름'을 붙입니다.

그렇지만 국어사전을 뒤적여 보면 '꽃이름'은 한 낱말로 안 실립니다. 오로지 '화명(花名)'만 실립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꽃에 붙이는 이름을 놓고 '화명'이라고 일컫는 사람이 있을까요. 꽃에 붙이는 이름이니 '꽃이름'이라 하고, 나무에 붙이는 이름이기에 '나무이름'이라 하며, 풀에 붙이는 이름이라서 '풀이름'이라 합니다.

놀랍게도 '풀이름' 한 가지는 '초명(草名)'이라는 한자말과 함께 국어사전에 실려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용케 한 가지만 싣는 국어사전이어서는 안 되고, '-이름'을 뒷가지로 삼아, '책이름-글이름-사람이름-산이름-강이름-회사이름-물건이름'처럼 적도록 새 틀을 마련해야 알맞습니다. 모든 이름을 놓고 한 낱말로 삼기 어려운 만큼, 쓰는 자리에 따라 알맞게 붙이거나 한 낱말로 삼도록 말문을 열어 놓아야 합니다.

 ┌ 진한 커피 향기 → 짙은 커피 내음 / 짙은 커피내
 ├ 짙은 향기 → 짙은 냄새 / 짙은 내음
 └ 은은한 향기 → 그윽한 냄새 / 그윽한 내음

이 땅에서 자라는 봄꽃 여름꽃 가을꽃 겨울꽃을 들여다보면서 저마다 다 다른 아름다움을 느끼며 즐거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터에서 뿌리내리는 시골꽃 도시꽃 모두 아름답게 빛나는 모습을 싱그러이 바라보면서 우리 가슴에도 싱그러운 빛깔을 곱게 품으면 좋겠습니다. 고운 꽃을 보며 고운 눈길을 가다듬고, 고운 눈길을 가다듬으며 고운 매무새로 추스르고, 고운 매무새로 추스르며 고운 삶을 꾸리는 한편, 고운 삶을 꾸리며 고운 말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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