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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모습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형상들

[그리스, 터키, 네덜란드 패키지 여행, 해볼 만하다] ⑦ 국립 고고학박물관 2

등록|2010.02.17 10:22 수정|2010.02.17 10:22
대리석 소품들의 아름다움

▲ 흰 대리석 조각 ⓒ 이상기




이와 같은 금동제 장식품 외에도 눈에 띄는 것은 에게해 키클라데스(Kiklades) 섬들에서 발굴된 유물이다. 키클라데스는 영어의 원(Circle)과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다. 이들 섬이 달팽이처럼 원형을 그리며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청동기 시대(기원 전 3200-1100) 이들 섬에서 문명이 발달했는데 이것을 키클라데스 문명이라 부른다.
  
이 시대에 만들어진 예술품으로는 대리석 인간상, 도자기, 무기류, 악기류, 프레스코 벽화가 있다. 이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대리석상이다. 그 중 하나가 아주 밝으면서도 간결한 인체 조각상이다. 낮은 돋을새김으로 전신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길고 도드라지게 표현한 코, 봉긋한 젖가슴, 마주잡은 두 팔, 다리 사이의 갈라짐이 입체감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조각상에서는 왠지 신성함이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적인 경배의 대상물로 여겨진다.

▲ 하프를 연주하는 사람 ⓒ 이상기




또 하나 재미있는 대리석상이 하프를 연주하는 사람이다. 양팔의 일부가 부러진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완벽한 상태이다. 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하프를 올려놓고 줄을 튕기는 모습이다. 그러나 줄은 없다. 하프의 틀에 손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줄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연주자의 턱이 들리고 머리가 약간 뒤로 넘어가게 표현된 것으로 보아, 연주자가 무아지경에 이른 듯하다. 그 옆으로는 플루트를 부는 조각상도 보인다.

여러 가지 면에서 그리스인은 음악을 좋아했던 것 같다. 이들은 모두 낙소스 섬과 아모르고스 섬 사이에 있는 케로스 섬의 무덤에서 발굴되었다. 그렇다면 이들 대리석 조각은, 망자가 천국으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넣어준 부장품이라는 얘기가 된다.

대리석 조소의 백미 코로스

▲ 코로스의 변화 모습: 사진 속의 제목 '코로이'는 코로스의 복수 형태다. ⓒ 이상기



코로스의 변화 모습

ⓒ 이상기



대리석 조소의 백미 코로스는 1층 왼쪽 7번방부터 볼 수 있다. 처음에 이집트의 영향을 받은 것 같은 작품이 몇 개 보이더니 이내 그리스의 전형적인 코로스(Kouros)가 나타난다. 코로스란 벌거벗은 청년상을 말한다. 기원전 7세기 후반에 나타나 6세기까지 약 130년간 유행했던 대리석 조소상이다.

그런데 이 쿠로스의 용도가 궁금하다. 아직까지 정설은 없다. 그렇지만 처음에는 신전에 바치는 봉헌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적인 의미가 컸다. 그래서인지 큰 것은 높이가 3m에 이른다. 그런데 코로스가 차츰 종교적인 의미를 상실하면서 좀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만들어졌고, 장례용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죽은 자를 기억하기 위해 무덤 앞에 세우는 일종의 석상 개념으로 말이다. 코로스는 신 중심사회에서 인간 중심사회로 변모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술품이다. 우리는 코로스를 통해 그리스 휴머니즘의 태동을 확인할 수 있다.

▲ 기원전 600년경 코로스 ⓒ 이상기




이들 코로스의 변화를 알기 위해서는 세 가지 작품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가 기원전 600년경 만들어진 코로스(Nr. 2720)이다. 높이가 3m에 이르며 몸의 윤곽선이 선명하다. 코와 입술 그리고 뺨의 일부가 훼손되었지만 표정은 약간 엄숙한 편이다. 신적인 모습을 담으려고 한 장인의식이 엿보인다.

▲ 기원전 550년경 코로스 ⓒ 이상기




두 번째가 기원전 550년경의 코로스(Nr. 1558)이다. 높이가 2.2m이며 얼굴 표정에 은근한 미소가 나타난다. 인간을 이상화해서 표현해서인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셋째가 기원전 500년경에 제작된 코로스(Nr. 3938)이다. 이것은 높이가 1.9m로, 가장 인간적이다. 얼굴 표정에서 삶의 고뇌를 느낄 수 있다. 머리도 짧아져 경건한 느낌은 사라지고 없다.

▲ 기원전 500년경의 코로스 ⓒ 이상기




이들 코로스 외에 꼭 보아야 할 것이 또 있다. 이곳에 유일하게 전시되어 있는 코레(Kore)다. 코레는 코로스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옷을 걸친 여인상을 말한다. 이 여인상의 이름은 프라시클레이아(Nr. 4889)다. 그것은 아티카 지방 메렌다에 있는 프라시클레이아라는 여인의 무덤 앞에서 이 여인상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 기원전 540년경의 코레 ⓒ 이상기




묘비명에 따르면 기원전 540년 파로스 출신의 유명한 조각가 아리스티온이 만들었다. 이 작품은 코로스에 비해 머리장식이나 목걸이장식 등이 더 섬세하고 화려하다. 그리고 옷의 문양도 꽃과 기하학적 표현을 넣어 아름답다. 코로스가 단순하고 소박하다면, 코레는 화려하고 섬세하다. 이 코레 옆에서는 같은 조각가의 작품으로 보이는 코로스(Nr. 4890)가 발견되었다. 학자들은 이 코로스와 코레를 남매로 추정하고 있다.

코로스 받침에 새겨진 평면 조각의 아름다움

코로스와 코레가 인간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면, 코로스 받침(Nr. 3476) 조각은 낮은 돋을새김 기법을 이용 평면적으로 표현했다. 코로스와 달리 이 부조에는 뭔가 이야기가 들어 있다. 3면에 부조된 그림으로 보아 이 무덤의 주인공은 운동선수였을 것이다. 아테네 근교 케라메이코스에서 발견된 기원전 510년경 작품이다.

▲ 레슬링하는 두 선수 부조 ⓒ 이상기




이들 부조 전면에는 레슬링을 하는 두 선수의 모습이 보인다. 그 뒤로 또 한 사람이 양 손을 딛고 뛰어 오르려 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막대기를 들고 선을 긋거나 구멍을 파려 하고 있다.

▲ 개와 고양이가 싸우는 모습 ⓒ 이상기




▲ 6명의 운동선수 ⓒ 이상기




왼쪽 면에는 고양이와 개를 싸우게 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 조각이 담고 있는 진정한 내용이 궁금하다. 요즘 말하는 다양한 스톨리텔링이 가능한 그림이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6명의 운동선수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두 선수의 연속동작을 각각 세 장면으로 표현한 것 같기도 하다. 요즘으로 말하면 슬로우 비디오다. 왼쪽은 포환던지기 모습 같고, 오른쪽은 창던지기 모습 같다. 이들 부조의 벽에는 붉은 채색 흔적이 보인다. 

청동상의 근엄하고 진지한 모습들

▲ 청동조각상 - 포세이돈 ⓒ 이상기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에서 대리석 조각상 외에 꼭 보아야 할 것이 청동 조각상이다. 그리스 전성기인 5세기와 말기인 기원전 2-4세기의 작품들로 그리스의 청동예술을 대표하는 걸작들이다. 그 중에서도 시기적으로 가장 오래된(기원전 460년) 것이 케이프 아르테미시온에서 발견된 포세이돈이다. 이것은 그리스에서 만들어져 로마로 가던 중 케이프 아르테미시온 근처에서 난파되었다가 발견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포세이돈 상은 왼손으로 균형을 잡고 오른손으로 뭔가를 던지려고 한다. 그런데 오른손을 자세히 보면 뭔가를 잡고 있는 모습이다. 이곳에 삼지창이 들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된다. 표정도 근엄한 편으로 위엄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천둥과 번개를 치려는 제우스로 보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조각이 역동적이면서도 차분한 느낌을 준다. 검푸른 청동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균형 잡힌 운동감과, 곱슬머리와 수염에서 나오는 풍기는 단호한 의지가 잘 어울린다. 만약 움푹 파인 눈만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면 좀 더 분명히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 자키보이: 말을 타고 달리는 소년상 ⓒ 이상기



청동상 중 중요한 것은 자키보이(Jockeyboy)로 알려진 말 타는 소년상이다. 포세이돈 상과 함께 1928년 케이프 아르테미시온에서 발견되었다. 말은 두 발을 들고 빠른 속력으로 질주하고 있다. 말 등에 앉은 어린 소년은 왼손으로 고삐를 잡고 오른 손으로 말에 채찍을 가하고 있다. 주마가편(走馬加鞭)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기원전 140년경 작품이다.

또 하나 중요한 작품이 안티키테라의 에페부스(Ephebus)이다. 여기서 안티키테라는 이 청동상이 발견된 지역을 말하고 에페부스는 사춘기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젊은이에게서는 사춘기 소년보다는 원숙한 청춘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원숙한 몸매와 진지한 표정 때문이다. 오른손은 뭔가를 잡기 위해 가볍게 움켜쥐고 있다. 눈에서는 은은한 빛이 나오는데, 먼 곳의 뭔가를 응시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몽환적이고 환상적이다.

▲ 아우구스투스 황제상 ⓒ 이상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작품이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기원전 63-기원후 14) 동상이다. 허리 이상만을 보여주는 상반신상으로 아우구스투스의 모습을 가장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청동상이다. 아우구스투스는 오른손으로 뭔가 지시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그는 황제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차분하고 점잖아 보인다. 이 작품은 기원후 1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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