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이러다 미니스커트도 벗기시겠네

[주장] 한나라당은 야간집회 제한 논의를 멈춰라

등록|2010.02.17 14:07 수정|2010.02.17 14:07
미군정청에 의해 1945년 시작된 야간통행금지(이하 '통금')는 1982년 1월 폐지될 때까지 실시됐다.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통행을 금지했는데, 통금을 어긴 이들은 경찰서에서 밤을 보낸 뒤 새벽 4시가 되어야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유신체제 하에서의 통금이 유신독재를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음은 물론이다.

야간집회 허용 제한 논의, 떠오른 '통금'의 추억

▲ 헌법재판소가 야간에 옥외집회를 금지하고 있는 집회 시위에 관한 법률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를 결정한 가운데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야간집회금지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청구인측 기자간담회'에서 헌법소원 청구인인 안진걸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조직팀장이 헌법불합치 결정에 대한 환영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유성호


1982년, 전두환 정권은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고 광주민주항쟁을 짓밟은 학살정권이라는 딱지를 포장하기 위해 '통금'을 해제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엄청난 자유를 선물한 것처럼, 그리하여 민주국가가 된 것처럼 행세했다.

아무튼, 1982년 그 당시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인 나로서는 밤 12시가 넘어서도 거리를 배회할 수 있는 자유를 얻은 게 참으로 신기했다. 고등학생 때까지 억눌렸던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자유로워졌다는 느낌, 밤 12시가 넘어서도 광화문 네거리에 사람들이 걸어 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생소한 '24시간 편의점'의 등장, 과연 그런 가게가 성공을 할까 싶었지만 지금은 24시간 영업을 하는 업소가 지나칠 정도로 넘쳐난다. 물론 장단점은 있겠지만, 국민들의 통행을 제한했던 것은 비민주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16일 야간 옥외집회를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완전 금지하는 내용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하고 법안 처리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 ⓒ 오마이뉴스


여야의 논쟁 끝에 개정안을 법안 심사소위로 넘기지 않고 공청회를 연 뒤 논의하기로 했다고 하지만, 촛불정국에 화들짝 놀란 정부 여당의 과민반응이요,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려는 시도로밖에 안 보인다. 

통행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든지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해서는 아니된다'는 개정안은 통금조치보다도 더 비민주적이고 비합리적인 악법이 될 소지가 많은 것이다.

깽판 놓고 싶은 심정 알지만, 이건 아니잖아

▲ 촛불집회에는 부모님과 함께 나온 어린이들도 많았다. 광주 촛불집회에는 밤 9시 현재 약 5천여명의 시민이 모여있다. ⓒ 이주빈


16일 참여연대 강당에서 열린 'MB정부 2년을 평가 토론회'에 참석한 토론자들의 평가는 한 마디로 '민주주의 후퇴'다. 이미 현 정부는 자신들의 정책을 비판하는 이들을 포용할 자세가 없다. 비판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기보다는 좌파로 매도하고, 불순세력으로 몰아가는데 여념이 없다.

국민들의 민주주의 의식과 정권을 평가하고 바라보는 눈은 높아졌는데, MB정권의 국민을 평가하고 바라보는 눈은 한껏 낮아졌으며, 이런 개정안을 내어놓는 것을 보면 국민에 대해 오만방자하기까지 하다. 그들이 이런 개정안을 내어 놓은 이유는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훤히 보인다.

촛불정국에서 화들짝 놀란 현 정부와 여당은 국민이 아주 작은 잘못에도 민감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더는 국민 속여먹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안 것이다. 게다가 연대까지 잘한다. 이전처럼 화염병과 돌이 난무하는 시위가 아니라 문화행사처럼 이어지니 집회현장에 머무는 시간도 많아지고, 그럴수록 자신들의 잘못은 더 널리 퍼진다.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질서정연하다.

그런데 이걸 가만 보고 있을 수는 없다. 어떤 형태로든 '깽판'을 놓아야 한다. 자신들의 편이라 여겨지는 보수단체를 동원해도 안 되니 경찰력을 동원한다. 이 과정에서 집회를 해산시키기 위해 물리력을 행사하고, 그에 대한 반응들을 폭력으로 규정하고, 결론은 '자신들을 지지하는 집회는 철저하게 보호하되, 자신들을 반대하는 집회는 원천봉쇄'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MB정권 출범 이후 민주주의는 후퇴했다는 평가는 학자들뿐 아니라 국민 대다수가 느끼는 객관적인 평가다. 그걸 믿고 싶지 않겠지만,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개정안을 발의한 여당 의원들은 알았던 것이다. 국민들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하고. 이대로 두었다가는 정권누수현상이 생각보다 빨리 올 수도 있고, 차기 정권을 잡는데 실패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으로 객관성을 상실한 이런 황당한 개정안을 내놓게 되는 것이다.

권력 혹은 돈에 눈이 멀면(그러고 보니 사랑도 그렇다) 보이지 않는다고 했던가! 조금만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다 보이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리하여, 권력을 잡기 전에 혹은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을 때에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까지 척척 보던 비범한 이들이 멍청한 바보가 되는 것이다.

심지어는 정치하고는 전혀 무관한 초등학생들이 봐도 뻔히 잘못된 것을 그들만 모른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초등학생들까지도 촛불집회에 참여해 반정부 구호(?)를 외치는 데까지 확대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확대된 민주주의, 초등학생들 혹은 유모차 어린아이들에게까지 확대된 민주주의, 그것을 봐주지 못하겠다는 것이 이번 개정안의 골자가 아닌가 묻고 싶다.

제발, 정치를 저질 개그로 만들지 말라

그렇게도 자신이 없는가? 국민의 의견을 묻기도 전에 사업을 강행하고, 한쪽 귀는 막고 자신들에게 좋은 말을 하는 귀만 열어놓고 그것이 국민의 뜻이니 뭐니 하는 이런 개그 수준의 정치를 하면서 또 국민들에게 표를 구걸하고 싶은가 말이다. 그런 정신이라면 감히 나라를 위한다고 나서지 말고, 국민의 세금으로 녹을 먹는 일일랑 하지 않는 것이 죄를 덜 짓고 사는 일일 게다.

이런 식의 개정안을 내는 이들이 원단 회사의 매출을 늘리기 위한 미니스커트 단속, 이미용실 활성화를 위한 장발단속 법안 같은 것들까지 만드는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 단속하자면 단속요원도 필요할 것이니 일자리 창출도 된다. 일거양득이 아닌가?

제발, 정치를 저질 개그로 만들지 말라. 그렇게 법 개정이 된 후에 당신들이 정권 재창출을 하지 못하면 어찌하려고 그러는가?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