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궂은 한자말 덜기 (93) 활용
[우리 말에 마음쓰기 862] '노는 장소로 활용'과 '놀이터로 삼기'
- 노는 장소로 활용
.. 그리고 헛간 등을 정리하여 식사를 하거나 아이들이 노는 장소로 활용하곤 한다 .. <임세근-단순하고 소박한 삶, 아미쉬로부터 배운다>(리수,2009) 62쪽
┌ 활용(活用) : 충분히 잘 이용함
│ - 컴퓨터의 보급으로 문서 작성에서 타자기의 활용 가치는 떨어졌다 /
│ 제품 생산에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 정책 결정의 자료로 활용되기를 /
│ 잘 활용하는 사람만이 / 곧잘 활용하고 있었다 / 주차 공간으로 활용하다
│
├ 노는 장소로 활용하곤 한다
│→ 노는 곳으로 쓰곤 한다
│→ 노는 자리로 살려쓰곤 한다
│→ 놀이터로 삼곤 한다
│→ 놀이터가 되곤 한다
└ …
한자말 '이용(利用)'은 두 가지 뜻으로 씁니다. 첫째, "필요에 따라 이롭게 씀"입니다. 둘째, "자신의 이익을 채우기 위한 방편(方便)으로 씀"입니다.
우리 말 '쓰다'는 여러모로 쓰임새가 넓습니다. 한자말 '이용'과 같은 뜻으로는 어떻게 다루는가를 살피니 세 가지 쓰임새가 있습니다. 첫째, "어떤 일을 하는 데에 재료나 도구, 수단을 이용하다"입니다. 둘째, "사람에게 일정한 돈을 주고 어떤 일을 하도록 부리다"입니다. 셋째, "사람을 어떤 일정한 직위나 자리에 임명하여 일을 하게 하다"입니다.
한자말 '이용'은 "제 뱃속을 채우다"라는 뜻이 따로 있으나, '이용' 첫째 뜻은 '쓰다' 첫째 뜻하고 같습니다. 그런데 '쓰다'를 풀이하면서 '이용'이라는 낱말을 넣고, '이용'을 풀이하면서 '쓰다'라는 낱말을 넣습니다. 돌림풀이입니다. 두 낱말 모두 바탕말(기본 낱말)이라 할 만하기에 이와 같이 돌림풀이를 할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무리 바탕말이라 할지라도 오락가락하도록 쓰는 일은 알맞지 않습니다.
국어사전을 덮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쩌다가 우리 국어사전을 이렇게 엮고 마는가요. 우리는 어이하여 우리 말글을 이렇게 다루고 마는지요.
말글을 다루는 학자만 탓할 노릇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날마다 말하고 글쓰는 우리 스스로를 깊이 돌아보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말글을 다루는 학자는 더더욱 당신들 학문밭을 두루 톺아보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날마다 말과 글을 주고받는 우리들은 우리 삶을 담아내거나 나타내는 좋은 마음그릇답게 우리 말을 옳고 알차게 가꾸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 타자기의 활용 가치는 떨어졌다
│→ 타자기는 값어치가 떨어졌다
│→ 타자기를 쓸 일이 줄어들었다
│→ 타자기는 쓰일 일이 없어졌다
├ 제품 생산에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 제품 생산에 자주 쓰이곤 한다
│→ 제품을 만들 때에 자주 쓰인다
│→ 제품을 만들며 널리 쓰인다
└ …
그러고 보면, '쓸 용(用)'이라는 한자를 뒷가지로 삼으며 '활용'이니 '이용'이니 '사용(使用)'이니 '전용(專用)'이니 '겸용(兼用)'이니 '애용(愛用)'이니 '패용(佩用)'이니 '착용(着用)'이니 하고 이야기하는 우리들입니다. '살려 쓰다', '널리 쓰다', '두루 쓰다', '혼자 쓰다', '한곳에 쓰다', '함께 쓰다', '고루 쓰다', '즐겨 쓰다'처럼 '쓰다'를 알맞게 살리지 못합니다. 옷에 '달다'라 말하지 못하고, 옷을 '입다'나 옷에 '걸치다'라 말하지 못합니다. 아니, 이런저런 갖가지 '-用'붙이 말마디가 일제강점기에 이 땅에 들어온 뒤 그예 뿌리내렸다고 해야겠지요.
일제강점기 말마디이기는 하나, 사람들은 이 한자말들을 쓸 만하다고 여겨 오늘날까지 두루 쓴다 할 수 있습니다. 일본 한자말이니 중국 한자말이니를 떠나, 우리 깜냥껏 우리 말글로 살려서 쓰는 낱말을 헤아리지 않거나 헤아릴 마음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우리 말 '쓰다'를 뒷가지로 삼아 보면 숱한 새말을 일굴 수 있습니다. 먼저 '활용'을 고이 살려낸 '살려쓰다'가 태어납니다. 즐겁게 쓴다고 하여 '즐겨쓰다'가 태어납니다. 골고루 쓰니 '고루쓰다'요, 여럿이 함께 쓰기에 '함께쓰다'입니다. 움직씨 꼴로 쓰기에는 아직 낯설거나 어렵다면 '살려쓰기-즐겨쓰기-고루쓰기-함께쓰기'처럼 써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이렇게 이름씨 꼴로 다루면서 쓰임새를 넓히면 됩니다. '-用'만 쓸 노릇이 아니라 '-쓰다/-쓰기'를 함께 쓸 노릇입니다.
┌ 정책 결정의 자료로 활용되기를
│→ 정책을 결정하는 자료로 쓰이기를
│→ 정책을 세울 때 자료로 살피기를
│→ 정책을 세우며 자료로 삼기를
├ 잘 활용하는 사람만이
│→ 잘 쓰는 사람만이
│→ 잘 살려쓰는 사람만이
│→ 잘 다루는 사람만이
└ …
1980년대에 이오덕 님은 《우리 글 바로쓰기》라는 책을 내놓았습니다. '바로쓰기'이든 '바로쓰다'이든 하는 낱말이 국어사전에 안 실려 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쓰기'라는 낱말을 지어서 쓰셨습니다. 그 뒤로 서른 해가 지난 오늘날에도 국어사전에는 '바로쓰기'나 '바로쓰다'는 안 실립니다. 그러나 이 땅 숱한 사람들은 '바로쓰기'와 '바로쓰다'라는 낱말을 한 낱말로 여기면서 쓰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쓰임새가 더 넓어질 테지요.
'바로쓰기'에서 '살려쓰기'가 가지를 칩니다. '살려쓰기'에서 '고쳐쓰기'가 이어집니다. 한자말로 '(국어를) 순화(純化)하기'가 '고쳐쓰기'입니다. 이 다음으로 '이어쓰기'가 태어납니다. '이어쓰기'란 '연재(連載)'입니다.
이오덕 님은 1960년대부터 '글짓기' 아닌 '글쓰기' 교육을 하면서 국어사전에 안 실린 '글쓰기'라는 말마디를 줄곧 써 오셨습니다. 이 낱말 '글쓰기'는 이제 국어사전에 실립니다. 거의 마흔 해 만에 이루어진 일이라 할 텐데, 오늘날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 가운데 이 낱말이 언제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알든 모르든 즐겁게 쓰고 있습니다.
┌ 곧잘 활용하고 있었다
│→ 곧잘 쓰고 있었다
│→ 곧잘 살려쓰고 있었다
│→ 곧잘 즐겨쓰고 있었다
├ 주차 공간으로 활용하다
│→ 주차 공간으로 쓰다
│→ 차 댈 곳으로 삼다
│→ 차 대는 곳으로 두다
└ …
누리그물을 열어 주는 '인터넷 익스플로러' 풀그림 차림판에는 '즐겨찾기'가 한 낱말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즐겨찾기'는 컴퓨터 낱말로 국어사전에 실려 있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한자로 무어라 썼을 텐데, 한자로 쓰던 낱말이 무엇인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우리 말을 더 깊이 생각한다는 사람들만 '즐겨찾기'라 하지 않고 누구나 '즐겨찾기'를 즐겨서 쓰고 있습니다. 이 낱말 엮음새를 돌아본다면 '즐겨-'를 앞가지로 삼아 '즐겨쓰기'를 일굴 수 있습니다.
이러면서 '즐겨부르다(← 애창)'나 '즐겨듣다(← 애청)'나 '즐겨읽다(← 애독)'를 하나하나 빚을 수 있어요. '즐겨먹다'와 '즐겨보다'와 '즐겨배우다'와 '즐겨살다' 같은 낱말을 지어도 괜찮습니다. 그야말로 쓰기 나름이요 생각하기 나름이며 껴안기 나름입니다.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살릴 수 있는 말입니다. 살리고자 하는 뜻을 품으면 살리고야 마는 말입니다. 살리고자 하는 넋을 담으면 그예 살리면서 사랑할 수 있는 말입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깊이 살펴야겠고, 말법과 글법도 곰곰이 돌아보아야겠지요.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삶을 얼마나 사랑하느냐를 살펴야지 싶습니다. 우리 삶자락을 어떻게 가꾸고자 하는가를 돌아보아야지 싶습니다. 더 알차게 가꾸고자 하는 삶이라 한다면 더 알차게 가꾸고자 하는 말이 될 테고, 더 슬기롭게 빛내고자 하는 삶이라 한다면 더 슬기롭게 빛내는 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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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