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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숨쉬는 곳 '드레스덴'

건물이 스스로에 관한 역사를 말하는 곳

등록|2010.02.18 14:24 수정|2010.02.20 19:16
드레스덴은 베를린에서 체코를 넘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었다. 역에서 내려 짐을 역 안 유로 락커에 넣어놓고 밖으로 나와 둘러본 드레스덴은 그러나 너무나 황량했다. 굳이 프랑크푸르트나 베를린 같은 대도시는 아니더라도 뷔르츠부르크나 울름과 같은 독특한 색을 뿜어내는 도시는 아니더라도, 이건 너무 한 것이 아닐까, 그저 한국 같은 커다란 콘크리트 안의 쇼핑몰들이 유별날 것 없다는 듯 조용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곳, 가도 가도 눈에 들어오는 건 새로 땅을 파고 건물을 짓는 소음과 울퉁불퉁한 길들 뿐이었다. 

그러나 아, 실수였구나. 괜히 왔구나 할 무렵부터 눈에 이어지는 드레스덴의 광경은 그야말로 탄성이 절로 나오는 곳이었다. 여행을 다녀와 독일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을 추천해 달라고 하는 이들에게 내가 빼놓지 않고 이름을 넣는 독일의 또 하나의 보석 드레스덴.

지난 여행 때의 드레스덴 작센 왕조의 예술적이고 호화로웠던 수도로서 긴 역사를 지니고 있었던 이곳은 예로부터 독일 남부 문화·정치·상공업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 배수경


냉전 시절 동독에  위치해 있던 이곳은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이라고 불리는 주 (州) 소유의  Art Collections 과 함께 비록 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극심한 파괴를 거쳤으나 여전히 너무나 아름다운 박물관들과 오페라 극장, 교회 등의 수많은 건물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내게 지난 드레스덴의 여행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 중 하나는, 이렇게 멋진 건물들 그 겉모습이 아니라 독일인들이 이 건물들과 공간을 매개삼아 드러내고자 했던  '역사에 대한, 시/공간에 대한  태도'였다. 물론 이는 독일 국민으로 묶여지는 사람들에 대한 일반론일 뿐 그 중에는 여러 스펙트럼이 존재한다는 것을 몰라서는 아니다.

그러나 독일을 여행하면서 나는 그들이 과거를 현실 속에서 진행시키는 방식에 적잖은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번화한 수도 베를린 한 중심에 히틀러와 그에 찬성했던 자들에 의해 저질러진 만행을 솔직히 드러내고 이를 인정하는 태도, 그리고 독일 전역 곳곳에, 그러나 구석이 아니라 보통 그 도시 중앙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곳에 설립되어있는 유대인 기념관들과 무덤들은 스스로 과거의 과오를 드러낼 줄 아는 용기를 엿보기에 충분했다.

또한 과거의 건물들에 남아있는 전쟁의 상처들이 독일 곳곳에 그대로 전시되어지는 일 또한 흔히 목격되어질 수 있었다. 히틀러가 가장 사랑했다던 뷔르츠부르크 역시 해당 건물들 바로 옆에 그 건물이 지난 1, 2차 세계대전 때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리고 어떤 노력들을 통해 지금의 모습들로 자리 잡을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그마한 박물관들이 반드시 존재하고 있었듯, 드레스덴도 그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왕궁과 오페라 극장들의 폭격 그대로의 검은 상처들이 마치 외관의 그 벽돌 하나하나가 이미 각각의 박물관들인 듯 빛나는 곳, 드레스덴 

드레스덴 의 건물들폭격의 그을음이 그대로 남아있는 건물과 조각들 ⓒ 배수경


그건 과거를 한낱 없애고 지워야할, 저발전의 상태로 보는 우리나라의 방식과는 분명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었다. 지금의 서울에서는 불과 몇 십년전의 과거의 모습조차 찾아보기가 너무나  힘들다. 그건 한국사회를  '저발전 -개도국- 선진국'이라는 '선형적 발전론'에만 입각해 어떻게 하면 선진 국가로 만드느냐에 있어 도시의 근대화, 외모상의 현대화만 중요했던 우리의 발전론에 대한 시각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엇이든지 부수고 새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나라, 과거는 선별 삭제 당하고 미래만 바라보는 나라의 모습에 익숙해 있다가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볼 수 있도록 도시 계획에 대한 사고가 정립된 곳, 과거의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바로 그 위에서 그로 인한 상처와 치유, 좀 더 깊은 시각의 발전을 꿈꾸는 곳을 보면서 부럽고 서글픈 마음이 동시에 들었던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지 않았을까.

드레스덴의 건물들폭격의 그을음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는 모습 ⓒ 배수경


2009년 3월 12일자의 한 외국의 신문에는 독일의 The Neues Museum 신 박물관이 전쟁의 상처를 부정하지 않은 채 다시 문을 열게 되었다는 기사가 실렸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공간이란 독일의 현재의 모습에 대한 일종의 상징'이라는 의미 심장한 글과 함께 작은것이든 큰것이든, 크기에 관계없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파편과 잔여물들의 조각들이, 심지어 총알까지도 그 건축물에 포함되도록 했으며 이 과정에는 수만 번의 기술적, 심미적, 정치적인 결정들이 수반되었음이 함께 언급되었다. 지난 여행 때 역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들리기 시작했던 재건축의 현장들에도 이러한 공간과 건축에 대한 독일인들의 철학은 녹아 담겨지고 있는 중이었으리라.

드레스덴 역 내부의 모습드레스덴 역 내부의 모습 ⓒ 배수경


수세기 전의 건물들이 20세기의 전반의 대 전쟁과 후반의 냉전의 소용돌이에 휩쓸려야 했던, 그리고 한해 엄청난 양의 돈을 통일 비용으로 지불하고 있는 독일의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수많은 재개발과 건축의 현장에 있는 드레스덴은 그러나 그 두개의 시점에만  멈추어 있는 곳이 아니다.

동독 시절의 모습을 슬쩍 엿보게 하는 건물들역을 사이에 두고 왼쪽으로 걸어가면 저 뒤의 건물처럼 예전 동독 식 건물들이 눈에 많이 띄인다. ⓒ 배수경


비록 UNESCO 세계문화유산 위원회의 권고를 무시한 채 엘베강을 가로 질러 다리들을 건설하는 반 (反) 환경적인 정책을 펴기는 했지만 어떻게 하면 드레스덴만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을지에 관한 수 많은 고민들을 도시 곳곳에서 또한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유수한 대학들, 특히 과학 기술분야에 있어 명성이 자자한 대학들과 <학생수가 3만 5천명이 넘는 Technische Universität Dresden 을 비롯한 )  Max Planck Institute of Molecular and Cell Biology (MPI-CBG)와 같은 훌륭한 연구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그리고 엘베강을 사이로 두고 멋진 미래형 건축들과 새로운 도시계획들이 기획되고 있다는 데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통독 이후 감소했던 이곳의 인구가 갈수록 증가 중이라는 사실도.

드레스덴 안의 조각과 건물깨어지고 부서지고 녹이든 그대로지만 산 그대로의 역사가 숨쉬던 드레스덴 ⓒ 배수경


중세의 도제제도에서 이어져 온 독일인들의 성향인 정확함과 철저함에 더하여 같이 사는 사회에 대한 강력한 책임감을 띠는 공동체 의식 그리고 튼튼한 기술과학과 기반연구들의 노력이 이 멋진 드레스덴에 앞으로 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는 두고볼 일이다. 그러나 많은 한국 여행객들에게 그저 남부의 한 지역, 베를린에서 체코로의 여행 길에서 만나는 하나의 중간 역쯤으로 인식되던 이곳이  일제치하의 상처와 비슷한 분단의 역사를 지녔던 우리에게 어떤 말들을 건네주고 있는지에는 좀 더 귀 기울여 봐야하지 않을까?  

좁은 자기애에 갇혀 보여주고 싶은 부분 이외의 모든 흔적을 지워버리는 것이 마치 유행 같은 우리에게 하나의 국가 이데올로기를 넘어서서 '재단 되어지는 역사'가 아니라 '진실을 말해주는 역사의 도시'를, 그래서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숨쉬며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살아 움직이는 도시를, 나를 파괴했던 자에 대한 원망을 넘어 누구보다 먼저 내가 그 파괴에서 무엇을 배울지를 고민하는 도시를, 신 나치주의라는 또 다시 살아 돌아온 망령의 폭력을 시민들이 손에 손을 잡고 인간 띠를 만들어 막아내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일을 독일의 한 도시인 드레스덴은 그 자리에 묵묵히 서서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이제 공간과 시간에 대한 새로운 철학을 이 땅, 한반도 역시 좀 더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할 시점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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