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다시 읽는 김대중의 '대중경제론'

"지역, 산업, 계층간 소득 격차는 날로 확대되고 있다!"

등록|2010.02.19 20:38 수정|2010.02.19 20:38

▲ 세 번째 강의가 열린 김대중 도서관 지하 1층 컨벤션 홀 모습. 기말고사를 앞둔 교실처럼 분위기가 진지했다. ⓒ 조종안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상과 정책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연세대학교 김대중 도서관(관장 김성재)이 개설한 '김대중 배우기' 세 번째 강좌가 2월18일 오후 7시 김대중 도서관 지하 1층 컨벤션 홀에서 열렸다.

세 번째 강좌는 <다시 읽는 김대중의 '대중경제론'>을 주제로 임원혁 박사(KDI 국제개발협력센터 정책연구실장)의 강의가 있었다. 낮에 녹았던 눈이 꽁꽁 얼어 빙판길이 될 정도로 추웠는데도 수강생들이 만원을 이루었는데 연령층이 다양했고, 표정도 진지했다.

임 박사는 '대중경제론의 기원과 진화', '경제위기 전후 한국경제'에 대해 1시간 10분에 걸쳐 설명했고, 10분 동안 휴식을 취한 뒤 30분간 질의응답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질문지가 넘쳐 모두 답변을 못하고 예정 시간을 넘겨 9시 20분에 강의를 마쳤다.

대중경제론의 기원과 진화

▲ <다시 읽는 김대중의 ‘대중경제론’>을 주제로 강의하는 임원혁 박사. 햇볕전도사로 유명한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 장남이라고. ⓒ 조종안


강의에 앞서 임 박사는 일반 대중이 본인의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충실한 투표를 하기 전에는 정책의 변화가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소득이 낮은 계층에서 상속세 폐지 찬성 비율이 높게 나왔던 2년 전 라디오방송을 예로 들었다. 기득권을 정당화해주기 쉬운 착각과 환상이 지속하는 한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은 어렵기 때문이라고.

그는 1997년 12월19일 김대중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 주창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론'과 이후 추진된 경제개혁을 '대중경제론'의 배반과 신자유주의의 무비판적 수용으로 보는 시각도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1969년 11월 당시 신민당 국회의원 김대중이 신동아에 기고한 '대중경제(大衆經濟)를 주창(主唱)한다'는 주제의 글을 소개했는데, 내용은 박현채의 영향을 받기 전 창안한 '경제론'으로 정치·경제적 특권주의를 부정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옹호하고 있었다.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생활수준이 향상되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생산력이 빈약했단 과거와 대비해서 그렇게 말라 할 수 있을 뿐이고, 오늘날 비약적으로 증대된 사회적 생산력을 전제로 할 때, 과연 대중의 생활이 그러한 생산력의 발전에 대응하여 비약적으로 향상되고 있는가?"

"정치권력과 결탁한 특수재벌과 특수층 위주로 세워진 '정치공장'과 '정치공사'에 집중된 일체의 경제정책과 특혜·보호성책은... 농업과 중소기업을 몰락과 도산으로 몰아넣고, 이 때문에 국민경제는 이질적인 상하구조로 철저히 분해되어 가고 있다"(1969년11월 신동아)

▲ 69년 11월 당시 신민당 국회의원이었던 김대중이 신동아에 기고한 글. ⓒ 조종안


'지역, 산업, 계층간 소득 격차는 날로 확대되고 있다!'는 소제목에서 알 수 있듯  오늘날에도 심각한 문제인 '양극화' 문제가 60년대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고, 김대중은 그러한 문제를 '국민경제가 이질적인 상하구조로 철저히 분해되어가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농어촌과 도시, 독과점 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이질적인 이중구조를 단절하려 했던 김대중은 '이중곡가제도'를 주창했고, 박정희가 결국 받아들여 농가소득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키고 일차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는데 대중경제의 일원으로 해석된다. 

박현채는 특권주의보다는 종속주의를 더 강하게 비판했고,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생산재 공업이 선도하는 내포적 공업화를 주창했다. 그러나 신동아 글에서 나타나듯 김대중은 마르크스에 대해 비판적이고 시장경제와 개방에 우호적이며, 비교우위를 존중하고 있다. 

경제위기 이후 김대중이 추진한 정책도 신자유주의보다는 질서자유주의에 근거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현실주의자인 김대중이 주창하고 박정희가 수용했던 '이중곡가제'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는 것.

임 교수는 신자유주의는 대공황 이전의 자유방임주의를 복원하려는 사상으로, 정부에 대한 불신과 시장에 대한 신뢰에 기초하고, 질서자유주의는 대공황 이후 확대된 정부의 사회·경제적 역할을 일정 부분 인정하면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의 확립을 모색한 데서 차등을 두었다.

김대중은 서거하는 날까지 민주주의를 신봉했으며,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가 아니라 권위주의 대 민주주의의 대결 구도로 정리했다. 부연하면 재벌과 손잡고 개발독재를 해온 군사정권과 국민이 선택한 민주정부의 대결이 되겠는데, "국민과 함께하지 않는 민주주의는 참다운 민주주의가 아니다!"는 글귀에서도 김대중의 기본사상이 잘 나타나고 있다.  

임 박사는 야당 의원시절부터 부정부패와 정경유착 차단 등 특권경제 비판에 치중해온 점을 예로 들며 김대중의 경제사상을 '경제민주주의'로 분류했다. 이어 박현채와 교류 후에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생산재 공업의 선도적 역할과 국내 산업 연판을 강조하는 시각을 '대중경제론 100문 100답'에 반영했으며 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며 시장경제와 개방에 우호적이었던 원래 기조가 더 강화된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처럼 1967년부터 개발독재와 특권재벌 지배 연합의 현실을 동시에 비판했던 김대중의 경제 이론은 훗날(1994년) 이광요와의 아시아 가치 논쟁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론'으로 발전한다.

경제위기 전후 한국경제

▲ 메모지에 메모까지 해가며 열심히 강의를 경청하는 수강생들. ⓒ 조종안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한 한국 경제에서 김대중의 '대중경제론'은 지속적으로 진화해왔다고 볼 수 있겠다.

97년 12월19일 대한민국 15대 대통령에 당선된 김대중은 정경유착이 극도에 달했던 70-80년대와 달리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을 도모하면서 공기업의 민영화와 부실기업의 매각에 있어 특혜를 배제하고 경쟁적인 입찰 절차를 통해 부실기업을 하나씩 정리해나갔다. 

외환위기 정국에서 태어난 노사정 위원회, 중소기업 지원과 벤처 붐, 2001년 우리사주제도가 상징하는 '종업원 지주제 강화' 사회안전망 강화와 기초생활 보장 등이 실용을 추구했던 김대중의 대중경제론을 잘 설명하고 있다.

임 박사는 사회통합 측면에서의 '한국 경제체제의 변천 과정'을 박정희, 전두환 시절은 노동권을 제안하고 경제성장에 치중했던 시기로, 노태우, 김영삼 정부 때는 노동권이 확대되고 복지 정책을 도입하는 시기로,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1998년 이후에는 노동권 보장, 노동시장 유연성 강조,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시기로 정리했다. 

외환위기 당시 정경유착이 사라지면서 수많은 대기업이 몰락하는 것을 지켜본 기업들이 정부의 암묵적 보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고 무리한 투자를 자제하는 바람에 경제성장이 둔화하는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기업들의 투명한 경영과 외국인들의 직·간접적인 투자가 꾸준히 늘어 35억 불에 불과했던 외화 보유액이 2천억 불을 넘어서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우리나라가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견뎌내는 힘이 되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질의응답

▲ 수강생들이 제출한 질의서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놀라며 정리하는 최경환 객원 교수의 손놀림이 바쁘다. ⓒ 조종안


질의응답은 첫 번째 강의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작성해서 제출했는데 시간이 촉박한 데다 너무 열정적이어서 그런지 너무 많은 양이 들어와 질문을 3-4개 묶어 했는데 나머지는 진행자가 이러한 내용의 질문이 있었다고 낭독하는 것으로 마쳤는데 두 가지만 소개한다.

질문1. 규제 완화, 감세, 정부기능 축소 등 신자유주의 정책 발전이 오히려 민주주의 경제 분야에서의 민주주의, 나아가 정치 분야 민주주의까지 후퇴시키는 것은 아닌지?

"신자유주의 정책이 민주주의 후퇴라는 말씀에 본인도 동의한다. 자칫하면 자유주의까지 부정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어 사상의 기원부터 따져보는 게 필요하다."
"중세에 억압적인 질서에 대항해서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사상으로 출발한 자유주의는 정부 역할을 확대하는 질서자유주의와 대공황 이후 확대된 정부 역할을 부정하는 신자자유주의로 나뉜다. 두 번째 질문과 연결되는데 그래도 정치민주주의는 1인 1표에 근거해서 작동하는 시스템인데 다른 방법을 택한다면 민주주의는 후퇴할 것이다."

질문2. 국민이 자신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맞게 투표를 하더라도 1인 1표에 불과한데 시장은 개인이 보유한 자본의 양에 따라 작동한다. 이로 인한 격차를 어떻게 보완할 수 있나?

"1인 1표제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경제학적으로도 상당히 타당하다고 본다. 시민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충실히 해도 개혁에는 비용이 드는데 그냥 참고 살겠다며 투표를 포기하는 예도 있어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경제적 약자를 가장 많이 대표하는 체제이니 자신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연대해서 적은 비용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길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이날 강의에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삼남 김홍걸씨와 김 전 대통령을 지근에서 모시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다음 학기부터 경원대에서 강의하게 될 김한정 전 비서관이 참석, 끝까지 자리를 지켜 눈길을 끌었다.  

'하의도 농민 운동사'를 집필한 김학윤(75) 선생은 '김대중 배우기'에 참석한 사람들이 동문수학의 이면을 발전시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친목회를 결성하자고 제의했다. 특히 날이 풀리면 김 전 대통령의 태자리가 있는 하의도를 방문했으면 좋겠다. 하의도에 오면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해서 환호와 박수가 터지기도.

(사단법인) '행동하는 양심' 준비위원회와 <오마이뉴스>가 후원하는 '김대중 배우기' 네 번째 강좌는 오는 25(목)일 오후 7시 같은 장소에서 '김대중 정부와 복지사회의 비전'이란 주세로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김연명 교수의 강의가 있을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