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과 교회 우뚝우뚝 솟아 행복해졌을까
[서평] 청전 스님 <나는 걷는다 붓다와 함께>
▲ 표지<나는 걷는다 붓다와 함께> ⓒ 한겨레출판
출가한 지 30년, 한국을 떠나 인도의 다람살라에서 20년간 수행생활을 하고 있는 청전 스님이 잠시 들른 한국에서 보고 느낀 모습이다. 20년간 한국은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었고, 천문학적 수출 실적을 자랑하고 있는데, 사람들의 표정은 왜 전보다 더 힘들고 지친 모습일까. 인도 사람들보다 망명 티베트 사람들보다 더 힘들고 지친 사람들의 표정이 주는 의미는 뭘까?
30년 수행 생활을 한 청전 스님이 쓴 책이라 깊고 큰 울림을 주는 책일 거란 생각을 했다. '지리산에서 히말라야까지 이어지는 만행'이란 소개 글도 그렇고 <나는 걷는다 붓다와 함께>란 제목도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라 그런 생각이 더 앞섰다. 평생을 수행 정진해서 깨달음을 얻은 큰 스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책을 읽었다.
책 내용은 그런 선입견과 거리가 있었다. 평생을 한 길로 수행 정진해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깨달음을 전해주는 큰 스님의 개인적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스님과 인연을 맺었던 다양한 사람들 이야기가 중심이다.
아들과 남편을 사별하고 혼자 사는 강원도 산골 할머니 이야기,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한 집에서 공양하시라고 닭고기를 내놓았던 노부부 이야기, 방광암 걸려 죽을 날 기다리고 있는 할아버지와의 인연을 쓴 '관시염보살' 이야기, 비둘기호 열차에서 만난 가출 할아버지 이야기, 태어나 출가 전까지 나고 자란 고향에서 있었던 어머니,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 꽃장화 벗어주고 엿 사먹던 이야기, 눈도 안 뜬 강아지 이야기, 천축(인도)와 티벳에서 만나 인연을 맺은 거지에서 스님까지 다양한 사람들 이야기, 그리고 20년 만에 잠시 들러 본 한국 사람들의 표정….
불가에 귀의한 사람들을 얘기할 때 속세를 떠났다는 표현을 쓴다. 세속적 사람들의 삶을 떠나서 수행하며 사는 사람들이란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불가에 귀의해 사는 삶 또한 세속적 사람들의 삶에서 완전히 벗어나 살 수도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될 일이다. 불가에 귀의한다는 뜻이 혼자 고행하고 깨달음 얻고 큰 스님 되어 신도들 앞에서 권위 세우기 위함이 아닌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청전 스님은 책 머리글 제목을 '붓다를 닮은 사람들과의 동행'으로 정했다. 불교와 인연을 맺은 사람이든 아니든 가리지 않고 맑고 깨끗한 심성을 가진 사람들과의 아름다운 인연을 있는 그대로 들려준다. 조금도 과장하지 않고.
책 말미에는 한국 유력 일간지 신문에 게재될 뻔했지만,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짤려 버린 글이 있다. '이 땅에서 종교의 역할은 무엇인가'란 제목의 글인데, 스님이 가지고 있는 종교관을 뚜렷이 보여준다.
보시나 기부를 종용하며 성직자 운운하는 당사자들은 자신의 세 치 혀를 이용해 얻어낸 물질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 곳곳에 우뚝 솟아 있는 사원과 신전 수에 비례해서 이 세상은 그만큼 평화로워졌으며, 이 세상 사람들은 그만큼 행복해졌는가? (맺는글 '나의 종교는 민중입니다' 중에서)
경제가 발전할수록 사람들 표정은 힘들고 지친 표정이 되고, 곳곳에 절과 교회 우뚝우뚝 솟아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살기가 어렵다는 우리들의 삶을 되새겨 돌아볼 수 있는 책이다. 책을 읽다보면 책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다름아닌 우리들의 모습이란 걸 깨닫게 된다.
덧붙이는 글
청전 스님/한겨레출판/2010. 1/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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