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10만원 용돈은 너무 많으니 반만 줘요"
금전출납부로 본 61세 내 용돈의 변천사
"용돈은 한 달에 10만 원씩 드릴 게요."
"10만 원이라니, 나야 많을수록 좋지만, 자기가··."
"부산에도 동창들이 산다면서 만나면 밥도 먹고, 소주도 한 잔씩 할 텐데 어쩌려구요. 참, 담뱃값도 있지!"
"담배는 반으로 줄이고, 동창회도 활동할 만큼 했으니까, 못 나간다고 얘기하면 되거든. 그러니까 5만 원씩만 줘도 된다고."
"......"
이상은 <오마이뉴스> 공지를 읽다가 2002년 3월 10일 아내와 했던 대화가 떠올라 붙인 것이다. 아내는 이삿짐을 다 챙기고 나더니 한 달 용돈으로 10만 원씩 주겠다고 했다. 고마웠다. 하지만, 너무 많다며 절반을 잘라 5만 원씩 받았다. 그러다 2년쯤 지나서는 3만 원으로 내렸다.
그 속에서도 절약에 절약을 해서 한 달에 5천 원~1만 원씩 모을 수 있었고, 가끔 누님과 조카들이 주는 용돈도 감춰두었다가 아내에게 줄 선물도 사고, 2008년 고향으로 이사를 앞두고는 그동안 모아둔 비자금 뭉치를 내놓기도 했다. 이때는 아내가 깜짝 놀라면서 기뻐했다.
5년 전에는 담배도 끊었다. 아내를 위한 금연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내 건강을 위한 일이었다. 아내는 무척 고마워하더니 지금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눈치다. 조금 서운한데, 그래도 서운하고 말아야지 담배를 다시 피울 수는 없다. 어리석은 짓이니까.
금전출납부를 통해 본 '용돈 변천사'
22일 밤에는 지갑을 열어보았더니, 만 원권 6매, 오천 원권 4매, 천 원권 4매, 오만 원권 2매 합해서 18만 4천 원이 지갑을 지키고 있었다. 그중 8만 4천 원은 이달 말까지 생활비이고, 10만 원은 1년이 넘도록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비상금이다.
30년 넘게 하던 사업을 홀라당 까먹고, 백수로 지내면서 아내에게 생활비를 받는 주제에 무슨 비상금이냐고 묻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살다 보면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거든. 그래서 꼬불치고 꼬불쳐 놓았던 비상금을 지갑 깊숙이 모시고(?) 다닌다. 작은 지혜라고 생각해서다.
생활비는 간호사인 아내에게 20만 원씩 받아오다, 2009년 3월에 5만 원 인상되어 25만 원씩 받고 있다. 병원에서 일하는 사모님들이 너무 짜다고 했다나 어쨌다나···. 아무튼 고마울 따름인데, 돈을 쓰면서도 내 용돈은 한 달에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른다. 쥐꼬리만 한 생활비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생각하기도 싫었다.
매월 아내에게 받는 생활비 25만 원은 호주머니가 두둑한 애주가들의 한자리 술값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그렇게 남이 알까 무서울 정도로 창피한 액수이지만, 나에게는 2백만 원이나 다름없는 금액이다. 그래서 받을 때마다 감사한 마음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빼놓지 않는다.
1년에 한 두 번 보너스도 나온다. 강화도 오마이스쿨에서 열렸던 '시민기자 기초강좌' 참가 경비, 이달 초부터 1주일에 한 번씩 '김대중 배우기'에 다니는 교통비. 설날이면 조카들 세뱃돈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받으니까, 마음이 편하고 행복하다. 마냥 퍼질러 놀면서 받는 것도 아니고, '인생학교 5학년' 때부터 모범생이 되려고 아내 허드렛일을 도와주며 받기 때문에 떳떳하고 보람도 느낀다. '6학년'이 된 지금도 설거지도 하고, 집안 청소도 하고, 내 속옷은 내가 빨아 입고, 흰머리를 계급장처럼 생각하면서 시장도 보러 다닌다.
특히 손이 더 가는 검정 가마솥에 밥을 해서 고소한 누룽지도 끓이고, 퇴근해서 갈증 나면 마시라고 구수한 숭늉도 준비해서 여름에는 냉장고에, 겨울에는 뜨겁게 끓여 대기시켜 놓는데 맛있고 시원하다며 마시는 아내를 보면 덩달아 즐겁고 보람을 느낀다.
그렇다고 아내가 편하게 받아먹느냐면 그것은 아니다. 나이트(밤 근무)가 2-3일 이어지는 날을 대비해 반찬을 만들어 놓는다. 특히 꽃게 무침과 젓갈, 된장찌개는 돌아가신 어머니 손맛을 떠올리게 해서 나를 마누라 자랑하는 '팔불출'로 만들기도 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맛있으니까 맛있다고 해야지···.
생활비에 포함된 내 용돈은 얼마?
그렇다면 생활비 25만 원 가운데 내 용돈은 얼마나 될까? 그동안은 무심코 지나쳤는데, 용돈 얘기가 나오니까 호기심이 발동해서 금전출납부를 열어보았다. 가게를 개업하던 71년부터 일지(日誌)를 쓰던 버릇이 남아서인지 그날그날 메모를 한다.
그래서 '어뤈지'에 '강부자' '고소영 내각'으로 불리는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던 2008년 2월과 2009년 2월, 2010년 2월의 금전출납부에서 주요 지출항목을 분류해보기로 했다. (중복되는 항목은 제외)
[# 2008년 2월]아내와 떨어져 혼자 부산에서 밥을 해먹던 2008년 2월 용돈은 돌아가신 셋째 매형에게 드린 과잣값 외에 세뱃돈, 호떡, 귤, 비빔밥, 목욕, 해장국, 택시비, 자장면을 사먹은 정도이고 부식비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용돈으로 지출한 금액은 모두 합해 8만 원 정도.
정리를 하다 보니까 눈에 띄는 게 있는데, 2년 사이에 군산 택시비 기본료가 1800원에서 2200원으로 올랐고, 목욕요금은 3500원에서 4000원으로, 자장면은 3000원에서 4000원으로 올라 물가 인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부식비 주요 지출항목은 배추김치, 파김치, 멸치볶음, 쌀, 쇠고기, 무, 상추, 콩자반, 파래무침, 파, 김, 소금, 바지락 무침, 라면 등이었고, 병원 진료비와 인사돌 구입비, 건강보험료와 아파트 관리비, 전기료도 기록해놓고 있었다.
[# 2009년2월] 고향으로 이사해서 6개월째 되는 2009년 2월도 1년 전과 별스럽게 다르지 않았다. 객지에서 혼자 지낼 때는 한 달에 2-3회 외식을 하면서 하루 부식비 4천-5천 원으로 유지하다, 형제들이 사는 고향으로 이사해서는 씀씀이가 커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작년 2월은 그렇지 않았다. 용돈 항목이 택시, 찰떡, 땅콩, 교통카드 충전, 아귀탕, 이발, 사우나, 자장면, 찐빵 등으로 오히려 2008년 2월보다 3만 원 정도 줄었다. 결혼기념일(20일)이 들어 있어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는데. '얼마나 짠돌이 짓을 했으면!' 소리가 절로 나오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 부식비는 배 가까이 늘었다. 2월9일이 정월 대보름이어서 그랬던 모양인데 주요 부식비 항목은 계피, 땅콩, 김, 팥, 도토리묵, 잣, 아주까리잎, 고사리, 고구마순, 도라지, 취나물, 명태, 무, 파, 김치만두, 떡대, 계란 등이었다.
[#2010년2월] 그럼 22일 열어본 지갑에 8만 4천 원이 남아있던 2010년 2월은 어떨까? 설날과 결혼기념일이 들어 있어 지출이 상당할 것 같았다. 그런데 세뱃돈과 수강료를 빼면 작년과 비슷했다. 작년 결혼기념일에는 아내와 아귀탕이라도 먹었는데, 올해는 아내가 근무하는 날이라서 전화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세뱃돈도 아내가 설날 아침에 보너스로 10만 원을 주기에 많다며 5만 원으로 해결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마음 변하기 전에 받으라고 할 텐데, 작년 여름에 구입한 프라이드 월부금을 불입하느라 그런 모양인지 한두 번 권하더니 집어넣었다.
1일부터 22일까지 지출한 용돈 명세는 녹음기 건전지, 율무차, 우편요금, 이발, 양복 드라이, 택시비, 자장면, 땅콩엿, 꽈배기, 커피, 도넛, 김밥, '김대중 배우기' 수강료 등이었다. 나이가 들면 아이들처럼 과자를 많이 사먹는다고 하던데 놀라웠다. 내용이 초등학생 일기장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맛좋은 생선이 널려 있는 고향이고, 물가까지 인상되어 시간이 갈수록 부식비는 늘어날 것이다. 부산에 있을 때는 구경도 못하던 생선을 사먹으니까 증가할 수밖에 없겠는데, 박대와 조기가 부식비 증가의 키워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꿈이 하나 있다.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이름을 날리는 것도 아니고, 용돈과 건강을 지금처럼 유지하는 것이다. 지금도 완전한 몸이 아니고, 경제적으로도 어렵지만, 61년을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한 때로 생각하고 만족하기 때문이다.
"'용돈 타령'만 해댔지 정확한 액수는 지금도 모르겠네!"
"10만 원이라니, 나야 많을수록 좋지만, 자기가··."
"부산에도 동창들이 산다면서 만나면 밥도 먹고, 소주도 한 잔씩 할 텐데 어쩌려구요. 참, 담뱃값도 있지!"
"담배는 반으로 줄이고, 동창회도 활동할 만큼 했으니까, 못 나간다고 얘기하면 되거든. 그러니까 5만 원씩만 줘도 된다고."
"......"
이상은 <오마이뉴스> 공지를 읽다가 2002년 3월 10일 아내와 했던 대화가 떠올라 붙인 것이다. 아내는 이삿짐을 다 챙기고 나더니 한 달 용돈으로 10만 원씩 주겠다고 했다. 고마웠다. 하지만, 너무 많다며 절반을 잘라 5만 원씩 받았다. 그러다 2년쯤 지나서는 3만 원으로 내렸다.
5년 전에는 담배도 끊었다. 아내를 위한 금연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내 건강을 위한 일이었다. 아내는 무척 고마워하더니 지금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눈치다. 조금 서운한데, 그래도 서운하고 말아야지 담배를 다시 피울 수는 없다. 어리석은 짓이니까.
금전출납부를 통해 본 '용돈 변천사'
▲ 지갑을 착실히 지키고 있는 생활비 잔액. 볼수록 사랑스럽다. ⓒ 조종안
22일 밤에는 지갑을 열어보았더니, 만 원권 6매, 오천 원권 4매, 천 원권 4매, 오만 원권 2매 합해서 18만 4천 원이 지갑을 지키고 있었다. 그중 8만 4천 원은 이달 말까지 생활비이고, 10만 원은 1년이 넘도록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비상금이다.
30년 넘게 하던 사업을 홀라당 까먹고, 백수로 지내면서 아내에게 생활비를 받는 주제에 무슨 비상금이냐고 묻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살다 보면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거든. 그래서 꼬불치고 꼬불쳐 놓았던 비상금을 지갑 깊숙이 모시고(?) 다닌다. 작은 지혜라고 생각해서다.
생활비는 간호사인 아내에게 20만 원씩 받아오다, 2009년 3월에 5만 원 인상되어 25만 원씩 받고 있다. 병원에서 일하는 사모님들이 너무 짜다고 했다나 어쨌다나···. 아무튼 고마울 따름인데, 돈을 쓰면서도 내 용돈은 한 달에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른다. 쥐꼬리만 한 생활비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생각하기도 싫었다.
매월 아내에게 받는 생활비 25만 원은 호주머니가 두둑한 애주가들의 한자리 술값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그렇게 남이 알까 무서울 정도로 창피한 액수이지만, 나에게는 2백만 원이나 다름없는 금액이다. 그래서 받을 때마다 감사한 마음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빼놓지 않는다.
1년에 한 두 번 보너스도 나온다. 강화도 오마이스쿨에서 열렸던 '시민기자 기초강좌' 참가 경비, 이달 초부터 1주일에 한 번씩 '김대중 배우기'에 다니는 교통비. 설날이면 조카들 세뱃돈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받으니까, 마음이 편하고 행복하다. 마냥 퍼질러 놀면서 받는 것도 아니고, '인생학교 5학년' 때부터 모범생이 되려고 아내 허드렛일을 도와주며 받기 때문에 떳떳하고 보람도 느낀다. '6학년'이 된 지금도 설거지도 하고, 집안 청소도 하고, 내 속옷은 내가 빨아 입고, 흰머리를 계급장처럼 생각하면서 시장도 보러 다닌다.
특히 손이 더 가는 검정 가마솥에 밥을 해서 고소한 누룽지도 끓이고, 퇴근해서 갈증 나면 마시라고 구수한 숭늉도 준비해서 여름에는 냉장고에, 겨울에는 뜨겁게 끓여 대기시켜 놓는데 맛있고 시원하다며 마시는 아내를 보면 덩달아 즐겁고 보람을 느낀다.
그렇다고 아내가 편하게 받아먹느냐면 그것은 아니다. 나이트(밤 근무)가 2-3일 이어지는 날을 대비해 반찬을 만들어 놓는다. 특히 꽃게 무침과 젓갈, 된장찌개는 돌아가신 어머니 손맛을 떠올리게 해서 나를 마누라 자랑하는 '팔불출'로 만들기도 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맛있으니까 맛있다고 해야지···.
생활비에 포함된 내 용돈은 얼마?
그렇다면 생활비 25만 원 가운데 내 용돈은 얼마나 될까? 그동안은 무심코 지나쳤는데, 용돈 얘기가 나오니까 호기심이 발동해서 금전출납부를 열어보았다. 가게를 개업하던 71년부터 일지(日誌)를 쓰던 버릇이 남아서인지 그날그날 메모를 한다.
그래서 '어뤈지'에 '강부자' '고소영 내각'으로 불리는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던 2008년 2월과 2009년 2월, 2010년 2월의 금전출납부에서 주요 지출항목을 분류해보기로 했다. (중복되는 항목은 제외)
[# 2008년 2월]아내와 떨어져 혼자 부산에서 밥을 해먹던 2008년 2월 용돈은 돌아가신 셋째 매형에게 드린 과잣값 외에 세뱃돈, 호떡, 귤, 비빔밥, 목욕, 해장국, 택시비, 자장면을 사먹은 정도이고 부식비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용돈으로 지출한 금액은 모두 합해 8만 원 정도.
▲ 2008년 2월10일부터 20일까지 금전출납부, 지난 17일 무죄를 선고받은 김형근 선생이 감방에 있을 때 보내려고 구입한 책 ‘모든 별들은 음악소리를 낸다’가 세월의 빠름을 실감나게 한다. ⓒ 조종안
정리를 하다 보니까 눈에 띄는 게 있는데, 2년 사이에 군산 택시비 기본료가 1800원에서 2200원으로 올랐고, 목욕요금은 3500원에서 4000원으로, 자장면은 3000원에서 4000원으로 올라 물가 인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부식비 주요 지출항목은 배추김치, 파김치, 멸치볶음, 쌀, 쇠고기, 무, 상추, 콩자반, 파래무침, 파, 김, 소금, 바지락 무침, 라면 등이었고, 병원 진료비와 인사돌 구입비, 건강보험료와 아파트 관리비, 전기료도 기록해놓고 있었다.
[# 2009년2월] 고향으로 이사해서 6개월째 되는 2009년 2월도 1년 전과 별스럽게 다르지 않았다. 객지에서 혼자 지낼 때는 한 달에 2-3회 외식을 하면서 하루 부식비 4천-5천 원으로 유지하다, 형제들이 사는 고향으로 이사해서는 씀씀이가 커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2009년 2월6일부터 16일까지 금전출납부, 아내도 모르는데 처음으로 공개한다. ⓒ 조종안
그런데 작년 2월은 그렇지 않았다. 용돈 항목이 택시, 찰떡, 땅콩, 교통카드 충전, 아귀탕, 이발, 사우나, 자장면, 찐빵 등으로 오히려 2008년 2월보다 3만 원 정도 줄었다. 결혼기념일(20일)이 들어 있어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는데. '얼마나 짠돌이 짓을 했으면!' 소리가 절로 나오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 부식비는 배 가까이 늘었다. 2월9일이 정월 대보름이어서 그랬던 모양인데 주요 부식비 항목은 계피, 땅콩, 김, 팥, 도토리묵, 잣, 아주까리잎, 고사리, 고구마순, 도라지, 취나물, 명태, 무, 파, 김치만두, 떡대, 계란 등이었다.
[#2010년2월] 그럼 22일 열어본 지갑에 8만 4천 원이 남아있던 2010년 2월은 어떨까? 설날과 결혼기념일이 들어 있어 지출이 상당할 것 같았다. 그런데 세뱃돈과 수강료를 빼면 작년과 비슷했다. 작년 결혼기념일에는 아내와 아귀탕이라도 먹었는데, 올해는 아내가 근무하는 날이라서 전화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세뱃돈도 아내가 설날 아침에 보너스로 10만 원을 주기에 많다며 5만 원으로 해결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마음 변하기 전에 받으라고 할 텐데, 작년 여름에 구입한 프라이드 월부금을 불입하느라 그런 모양인지 한두 번 권하더니 집어넣었다.
1일부터 22일까지 지출한 용돈 명세는 녹음기 건전지, 율무차, 우편요금, 이발, 양복 드라이, 택시비, 자장면, 땅콩엿, 꽈배기, 커피, 도넛, 김밥, '김대중 배우기' 수강료 등이었다. 나이가 들면 아이들처럼 과자를 많이 사먹는다고 하던데 놀라웠다. 내용이 초등학생 일기장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맛좋은 생선이 널려 있는 고향이고, 물가까지 인상되어 시간이 갈수록 부식비는 늘어날 것이다. 부산에 있을 때는 구경도 못하던 생선을 사먹으니까 증가할 수밖에 없겠는데, 박대와 조기가 부식비 증가의 키워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꿈이 하나 있다.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이름을 날리는 것도 아니고, 용돈과 건강을 지금처럼 유지하는 것이다. 지금도 완전한 몸이 아니고, 경제적으로도 어렵지만, 61년을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한 때로 생각하고 만족하기 때문이다.
"'용돈 타령'만 해댔지 정확한 액수는 지금도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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