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비판하면 회사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향>, 김상봉 칼럼 미게재 관련 입장 밝혀... "대기업에 더욱 엄정한 잣대 들이대겠다"
▲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 ⓒ 권우성
<경향신문>이 24일자 지면을 통해, 삼성을 비판한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의 삼성그룹 비판 칼럼이 17일자 신문에서 누락된 사태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혔다.
<경향>은 이날 1면에 편집국 명의로 "대기업 보도 엄정히 하겠습니다"라는 사고(社告)를 냈으며, 21면 미디어면에서는 "본지, 삼성 비판 '김상봉 칼럼' 미게재 전말"이라는 기사를 통해 칼럼 누락 배경과 그동안의 진행 상황을 상세히 보도했다.
<경향> 편집국은 1면 '알림'을 통해 "<경향신문>은 최근 본지 고정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는 전남대 김상봉 교수의 칼럼을 싣지 않은 바 있다"며 "김 교수의 칼럼이 삼성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내용이어서 게재할 경우 자칫 광고 수주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우려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편집국은 "편집 제작 과정에서 대기업을 의식해 특정 기사를 넣고 빼는 것은 언론의 본령에 어긋나는 것이지만 한때나마 신문사의 경영 현실을 먼저 떠올렸음을 독자 여러분께 고백한다"고 밝혔다.
<경향> 편집국은 "앞으로 정치권력은 물론 대기업과 관련된 기사에서 더욱더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겠다"며 "옳은 것을 옳다고 하는데 인색하지 않되 그른 것을 그르다고 비판하는 것에도 결코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광고로 길들이려는 시도와 자기 검열 강요하는 압력에 굴하지 않겠다"
또 <경향>은 21면 미디어면에서 기사 "'광고주 의식한 누락' 내부서 거센 비판"를 통해 ▲ 김 교수 칼럼 미게재 경위 ▲ 칼럼이 <프레시안>, <레디앙> 등 인터넷 매체에 실린 배경 ▲ 내부 기자들의 반발 ▲ 편집국 대응 등을 상세히 보도했다.
<경향>은 이 보도를 통해 "(김 교수의 칼럼은) 이건희 전 회장의 '황제식 경영' 스타일과 삼성의 자본력 앞에 움츠러든 국내 언론의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이었다"며 "칼럼 내용을 검토한 박노승 편집국장은 김 교수와 전화통화를 하고 신문사의 어려운 경영현실을 설명하면서 '하루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지만, 김 교수는 '내일 아침 신문에 나의 글이 실리지 않으면 인터넷 언론에 기고하겠다'며 거절했다"고 칼럼 미게재 과정을 설명했다.
또 <경향>은 "김 교수의 칼럼이 들어가면 회사가 한동안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으나 기자들의 문제 인식에 대해서도 충분히 공감한다"며 "이번 일로 정론보도에 대한 우리의 원칙은 더욱 확고해질 것"이라는 박노승 편집국장의 발언도 보도했다.
김 교수의 칼럼이 누락된 이후 <경향> 기자들은 기자총회를 개최하는 등 내부 비판을 강도 높게 진행했다. 특히 지난 2008년에 입사한 <경향> 47기 기자들은 성명서를 통해 "이번 사건은 <경향신문>이 이명박 정부는 비판할 수 있어도 삼성은 함부로 비판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 아닌가"라고 편집국의 보도원칙을 따져 물었다.
한국기자협회 <경향신문> 지회는 "우리는 광고로 언론을 길들이려는 부당한 시도와 자기 검열을 강요하는 내부 압력에 굴하지 않고 정론직필·불편부당이라는 사시를 지킬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번 사태에 대해 <경향>의 한 기자는 "직접적인 외압은 없었다 하더라도 삼성을 의식한 사전 자기 검열이 있었다는 걸 회사와 편집국 간부가 인정했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경향>은 앞으로 더욱 정부와 대기업 등 권력 비판과 감시 기능을 강화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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