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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미 없는 중앙분리대, 광화문광장에 서다

[걸으면서 느끼는 서울의 역사와 문화 22] 광화문 인근을 걷다

등록|2010.02.28 14:11 수정|2010.02.28 14:11
지난 22일(일) 아침, 종로 중구 걷기모임 회원들은 청계천의 시작점인 청계광장에 모여 광화문, 경희궁, 정동 지역 도보답사를 시작했다. 청계광장에는 지난 2006년 9월 청계천 복원 1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스프링(spring, 샘)'이라고 하는 큰 고동모양의 철재조각이 서있다.

스프링청계천의 스프링 조각 ⓒ 김수종


스프링은 스웨덴 출신의 미국인으로 세계적인 팝아트 미술가인 '클래스 올덴버그'와 그의 부인인 '코샤 반 브루군'이 공동 제작한 작품이다. 높이 20m에 폭 6m, 무게 9t으로 제작비만 34억 원인데, KT가 제작하여 서울시에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올덴버그는 준공식에서 "스프링을 제작할 당시, 도자기와 한복, 보름달 등 한국적인 아름다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일부 풍수학자들은 청계천 시작지점에 들어선 스프링의 위치와 모양 등이 화(火)를 부르는 것 같다고 하여 이전이나 폐기를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스프링동아일보사 앞에서 찍은 스프링 ⓒ 김수종


또 미술계에서는 "솔직히 한국적인 미를 찾아보기 어렵고 주변 풍경과도 잘 어울리지 않으며, 반자연적인 작품이다"라고 혹평을 하기도 했다. 나 역시 이상한 모양과 구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위적으로 복원한 대형어항 같은 개천 옆에 위치한, 이상한 모양의 인공 조형물이 주는 감동은 크지 않았다.

한국전쟁사진전청계천에서 열리고 있는 ⓒ 김수종


또 조형물 옆에는 6.25 전쟁사진전이 한 보수 단체 주관으로 열리고 있었다. 왜 2월 중순에 한국전쟁에 관한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지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일요일 아침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휴일을 맞아 한국을 찾은 중국, 일본인 관광객들만이 전시장 주변을 맴돌며 이색적인 풍경을 촬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광장 좌우측에는 조선일보사와 동아일보사가 보인다. 이곳 주변은 온통 보수언론사가 판을 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큰 고동 혹은 똥을 닮은 조각이 이들과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엉뚱한 상상을 하니, 그저 웃음이 나온다. 

일민미술관옛 동아일보 사옥 ⓒ 김수종


광화문 쪽으로 동아일보사 안에 위치한 신문박물관 표식이 보였다. 또 '조선총독부를 감시하기 위해서는 광화문에 신문사 건물을 세워야 한다'며 1926년에 세웠다는 일민미술관 안내판도 보였다. 일민미술관(一民美術館)은 인촌 김성수 선생의 장남으로 동아일보 명예회장을 지낸 일민 김상만 선생을 기념하여 1996년에 설립된 미술관이다.

이 앞을 자주 지나면서도 조·중·동이 하는 행태가 싫어 단 한 번도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최근 일민의 탄생 100주년을 알리는 벽보가 걸려있어 흥미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안을 둘러볼 생각은 없어 그저 약속 장소로만 잡았다.

미술관 안은 1926년에 지어진 동아일보사의 옛 사옥을 개조하여 3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있으며, 고려와 조선시대의 도자기와 서화, 근대기의 회화 등과 동아일보, 신동아, 여성동아에 실렸던 회화, 삽화, 사회적 메시지가 담겨있는 현대미술작품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나의 흥미를 끈 것은 신문사나 미술관보다는 동아일보사 정문 앞에 있는 조선시대 우포도청(右捕盜廳)터 임을 알리는 표지석이었다. 포도청은 요즘의 경찰서로 흔히 포청(捕廳)이라고 했다.

우포도청터를 알리는 표식포도청 ⓒ 김수종


조선 중기에 포도청을 좌포도청, 우포도청으로 나누었다. 좌포도청은 현재의 단성사 터에 두고 한성부의 동, 남, 중부와 경기좌도 일원을 관할하였고, 우포도청은 동아일보사 인근에 두고, 한성부의 서, 북부와 경기우도를 관할하였다고 한다.

기운 센 터의 기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죄인들의 울부짖음도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권력이 있어 죄를 짓고도 당당하게 사는 사람들을 단죄하기 위해 이곳 광화문 인근에 새롭게 포청이 하나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종 칭경기념비 기념비 ⓒ 김수종


이후 큰 길을 건너 교보빌딩 옆에 있는 작은 비각인 '고종즉위40년칭경기념비(高宗卽位四十年稱慶紀念碑)'옆에 섰다. 예전에 친구들과 약속장소를 잡을 때 장난삼이 교보빌딩 인근에 있는 칭경기념비 앞에서 보자고 하면 누군가는 나중에 항의성 전화를 해왔다. '그게 어디에 있냐?'고. 그러면 나는 '역사 공부 많이 하라!'고 꾸짖는다. 

징경기념비는 고종의 즉위 40주년이 되는 1902년 나이 51세에 '장수를 기원하는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간 것을 기념한 비다. 또 이 비에는 1897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의 칭호를 사용했던 것을 기념하는 뜻도 담겨져 있다.

비는 현무암과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있다. 비신의 상단에는 "대한제국대황제 보령육순 어극사십년 칭경기념비(大韓帝國大皇帝寶齡六旬御極四十年稱慶紀念碑)"라는 전서 제목이 황태자 순종의 예필로 새겨져 있다.

이 기념비전은 덕수궁의 여러 건물과 함께 조선 말기를 대표하는 목조 건축물이며, 기념비전 앞에는 서울과 전국 각 지역과의 거리를 알리는 '도로원표(道路元標)'가 있다. 쉽게 말하자면 한국의 중심인 '종로 1번지'를 알리는 표식인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문화한국을 만들기 위해 한국의 중심에 교보문고라고 하는 큰 서점을 세운 교보생명 사주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도로원표 한국도로의 중심이라는 표시석 ⓒ 김수종


이곳에 있는 도로원표는 구한말의 도로원표가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아래로 이동했다가 현재의 위치로 이동하여 한국 도로의 중심지로 자리를 잡을 것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이제 '광화문광장(光化門廣場)'안으로 들어선다. 작년 8월에 조성된 광화문광장은 사실 처음 들어가 본다. 늘 횡단보도만을 지나다가 안쪽의 이순신 장군 동상과 그 뒤편의 세종대왕 동상 등을 보기 위해 안으로 들어선 것은 처음이다.

이순신 충무공의 동상 ⓒ 김수종


이순신 장군 동상을 보면서 1968년 고등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동상제조회사에 취업하여 장군의 동상 만드는 일을 했다는 예술주조 장인인 류용규 선배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서울대 미대에서 실기조교 일을 오랫동안 하다가 예술주조를 담당하는 주물공장과 조각공원을 운영했었다. 최근에 고향 봉화군 청량산 인근에 조각공원을 만들기 위해 귀향했다.

교보생명 빌딩, KT빌딩, 미국대사관, 문화체육관광부가 우측에 있고, 좌측에 세종문화회관, 정부종합청사가 보이고, 뒤편으로 공사 중인 광화문과 북악산이 멀리 보인다.

세종대왕세종 ⓒ 김수종


세종로 중앙에 길이 557m, 너비 34m로 조성된 광장은 바닥에 돌로 되어 있고, 동상을 중심으로 '광화문의 역사를 회복하는 광장' '육조거리의 풍경을 재현하는 광장' '한국의 대표 광장' '시민이 참여하는 도시문화 광장' '도심 속의 광장' '청계천 연결부'로 나뉘어져 있다.

세계 최고의 중앙분리대답게 광장 안은 지나가는 차들의 소리로 너무 시끄러웠고, 구조와 설계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바닥을 잔디로 하고, 주변에 나무를 심고, 차선을 양편에 두지 않고 세종문화회관 앞마당을 크게 만들었으면, 차선을 교보생명 앞에만 양방향으로 만들었으면 더 크고 조용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할 광장에는, 집회를 막기 위해 순찰을 도는 경찰들이 너무 많았다. 

세종문화회관세종 ⓒ 김수종


별로 재미없는 광화문광장을 둘러 본 다음, 일행은 세종문화회관(世宗文化會館)으로 이동했다.
덧붙이는 글 역사문화와 함께하는 종로 중구걷기 모임
네이버 카페 http://cafe.naver.com/daipapa.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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