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일본의 3월 1일, 비키니 데이를 아시나요?

[나가사키에서 온 편지⑧] 폭발적 반핵 운동의 도화선 된 비키니 섬 수폭실험 피해

등록|2010.03.02 10:29 수정|2010.03.02 10:29

▲ 비키니 섬 수소폭탄 실험 피해 56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시즈오카현에서 열린 <3.1 비키니 데이>대회 포스터. ⓒ 원수폭금지일본협의회

일본의 3월 1일은 '비키니 데이'다. 비키니 섬의 이야기를 잘 모르는 한국인이나 일본의 젊은 세대 중에서는 "비키니를 입고 하는 행사인가요?"라고 묻는 사람도 있으나, 반핵운동이 강한 일본 시민운동계에서 이날의 의미는 각별하다.

1954년 3월 1일, 미국은 서태평양 먀셜 제도의 비키니 섬에서 수소폭탄 실험을 실시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에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한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한 뒤, 미소 냉전 양국이 핵경쟁을 하면서 미국은 이 섬을 희생양으로 삼아 주민을 강제이주시키고 1946년부터 줄기찬 원폭실험을 실시했다.

그리고 1949년 소련이 원폭개발에 성공하자 미국은 수소폭탄 개발에도 착수하기 시작한다. 1952년 수폭 개발 성공후, 1954년 그날도 '브라보(Bravo)실험'이라는 어이없는 이름의 계획 아래 수폭 실험이 실시된다.

이 실험으로 인하여 비키니 섬 일대의 현주민들이 다수 방사능 피폭을 당하였다. 비키니 섬에서의 수폭실험은 총 67회에 이르는데, 브라보 실험의 수폭 위력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의 1000배(TNT 15Mt)에 달했다고 한다. 핵실험장이 있던 구소련 세미파라틴스크 및 이라크 걸프전쟁 당시 미군이 사용한 열화우라늄 등의 세계 핵실험 피해의 현장을 취재해온 사진작가 모리즈미 다카시(森住卓)씨에 따르면, 당시 폭심지로부터 180km가량 떨어져 있던 롱게리크 섬의 주민들이 사전 피난 통보도 받지 못한 채 방사능에 노출되어 피해가 심각했다고 한다.

수폭의 작열과 함께 강력한 충격파와 폭풍이 일어나고 방사능을 머금은 잿빛 산호가루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으나, 섬의 아이들은 그것이 죽음의 가루임을 알지 못한 채 마치 첫눈을 반기듯이 잿가루를 맞으며 신나게 뛰어놀았다고 한다. 이후 극심한 구토와 피부 염증, 탈모 현상이 나타났지만 아이들은 누구의 머리카락이 더 빠지는지 경쟁하는 놀이마저 했다고 한다.

모리즈미 다카시에 따르면, 당시 섬밖에서 무사했던 이들도 야시가니(게의 일종), 빵의 열매, 생선 등의 음식물을 통해 방사능을 섭취해 피해자가 속출했다. 1994년 아동 건강조사를 실시한 일본인 의사는 아이들에게서 빈혈, B형 간염, 수막염, 체내 암이 의심되는 경우가 비정상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고 한다.

▲ "핵도 기지도 없는 동아시아 그리고 세계로"라는 슬로건으로 개최된 2010년 3..1 비키니 데이 전국집회의 팜플렛. ⓒ 원수폭금지일본협의회

그런데 '브라보 실험'이 행해진 그날, 1954년 '브라보 실험'의 때 마셜제도 근해에서는 일본 시즈오카 현을 출발한 참치어선 '제5후쿠류마루'등이 조업 중이었다.

이 배에 타고 있던 선원 23명 전원이 방사능 피폭을 당하였고 그중 무선장 쿠보야마 아이키치(久保山愛吉) 씨가 "원수폭에 의한 희생자는 나를 마지막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39세를 나이로 약 반 년 뒤에 사망했다.

미국이 당초 위험 구역을 좁게 설정하여 위험 구역 밖에서 수백 척의 어선이 고기잡이를 하고 있었기에 방사능을 뒤집어 쓴 피해자는 2만 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원수금 평화운동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노자키(野崎)씨는 홈페이지에 올린 자료를 통해, "이때 마셜제도 인근에서 잡은 참지에서 강력한 방사능이 검출되어 야이즈, 미사키, 오사카, 고치 등 일본 각지의 어시장에서 대량의 참치 폐기가 이어졌다. 또 초밥가게나 생선가게에는 손님이 오지 않고 '방사능 공황'이 발생하여 도쿄의 도매 시장에서는 콜레라 유행 이래 처음으로 거래가 중지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고 적고 있다.

일본에서는 1945년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이후에도 미군정의 보도 통제 아래서 원폭 피해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으나 52년 미군정으로부터 독립한 뒤, 54년 이 비키니 섬 사건을 계기로 해 강력한 반원자력운동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당시 1년 동안 유권자의 과반수였던 3400만 명이 핵무기의 절대적인 폐기를 요구하는 원수폭 금지 서명운동에 참가하였다.

이것이 원동력이 되어 이듬해 55년 8월 히로시마에서 제1회 원수폭 금지세계대회가 열리고, 56년에는 나가사키에서 2회 원수폭 금지 세계대회가 개최된다. 당시의 원수폭 금지세계 대회는 일본의 국민적 행사이기도 하였으며, 국제적인 대회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3월 1일 비키니 데이 대회도, 이러한 일본 국민의 핵폐절에 대한 열망을 담아 해마다 3월 1일이면 일본의 피폭 참치어선 '제5후쿠류마루'가 출항했던 시즈오카현에서 개최되고 있다. 올해도 원수폭 금지 일본 협의회 주최로 시즈오카에서 2박 3일의 일정으로 비키니 데이 대회가 열렸다.

한편, 원자폭탄 피폭지인 나가사키에서는 <또 하나의 '3·1'을 생각하는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전혀 다른 측면에서 3월 1일을 되돌아보는 행사가 해마다 열리고 있다. 올해는 하루 늦은 3월 2일 저녁 '재한 피폭자 402호 통달 국가배상' 소송의 변호단장을 맡아온 자이마 히데카즈씨의 강연회를 준비하고 있다. 나가사키현 피폭2세 교직원 모임, 재외피폭자 지원연합회, 한국 원폭피해자를 지원하는 시민모임 나가사키 지부가 함께 주최한다.

일본인에게 있어서는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이어 세 번째로 핵 피해를 당한 잊을 수 없는 상처의 날을 이들은 "식민지였던 한국의 사람들이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며 3·1독립운동을 했던 기념일"로서 또 하나의 시점에서 3월 1일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27일 토요일에는 <'한국병합' 100년-3·1 조선 독립운동 91주년, 지금이야말로 100년에 이르는 비정상적인 관계에 종지부를!>이라는 이름의 집회가 한일민중연대전국 네트워크 주최로 도쿄에서 열렸고, 28일에는 사이타마현에서 임진왜란에서부터 일본의 침략적 역사를 시종일관 비판하고 있는 신간 <한일병합100년과 일본>(요시노리 요시오카 저) 독서회가 진행되었다. 또 1일 카나가와 현에서는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시민모임이 '조선 3·1독립운동 기념 집회'를 열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