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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없애야 말 된다 (298) 수적/숫적

― '수적 열세', '숫적으로 많기는 해도' 다듬기

등록|2010.03.02 13:48 수정|2010.03.02 13:48
ㄱ. 수적 열세

.. 그리고 곧 수적 열세에 밀려 주민과 학생은 뿔뿔이 청량리 중학교의 담을 넘고 마을 뒤편 공터 쪽 길을 통해서 마을 밖으로 빠져나갔다 ..  <청량1동 9년의 이야기>(미누기획,2000) 35쪽

'열세(劣勢)'는 여리거나 모자라다는 이야기입니다. 앞말과 이어 "숫자에 밀려"로 다듬거나 "숫자가 모자라"로 다듬어 줍니다. "중학교의 담을 넘고"는 "중학교 담을 넘고"로 손보고, "공(空)터 쪽 길을 통(通)해서"는 "빈터 쪽 길로"나 "빈터 쪽으로 해서"로 손봅니다.

 ┌ 수적(數的) : 수를 기준으로 하는
 │   - 수적 우위 / 전문가의 수적 팽창 / 수적인 손실이었을 뿐 아니라
 │     우리 응원단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
 ├ 수적 열세에 밀려
 │→ 숫자가 모자라 밀려
 │→ 숫자가 적은 탓에 밀려
 │→ 숫자에 밀려
 │→ 사람이 모자라 밀려
 └ …

"수를 기준으로 하는"을 뜻한다는 '-的'붙이 낱말 '수적'입니다. 수를 잣대로 살폈을 때에 더 많다고 하니 "수적 우위"이고, 수가 더 늘었다고 해서 "수적 팽창"이며, 수를 잃었다고 해서 "수적인 손실"이라고 합니다. 말뜻과 쓰임새를 살피면 이러합니다.

그런데, 이 같은 말뜻이요 쓰임새라 한다면 처음부터 "수가 많음"이나 "수가 늘음"이나 "수가 줄음"처럼 적으면 넉넉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때로는 "많음"이나 "늚"이나 "줆"이라고 적어 주면 될 테고요.

"수적 열세"에서도 매한가지입니다. "수가 열세"라고 하거나 "수에서 밀린다"라고 하면 됩니다. 또는 "열세이다"나 "밀린다"라 하면 되고요. 한자말을 더 좋아한다면 '열세'를 쓸 노릇이고, 굳이 한자말로 안 써도 된다고 생각하면 '밀리다'나 '모자라다'를 적어 줍니다.

 ┌ 수적 우위 → 수자가 많음 / 더 많음
 ├ 전문가의 수적 팽창 → 전문가 숫자가 늘어남 / 전문가 숫자가 늚
 ├ 수적인 손실이었을 뿐 아니라 → 숫자가 줄었을 뿐 아니라
 └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 숫자가 적은데에도 / 숫자가 적으면서도

자꾸 써 버릇 하니 다시금 쓰면서 익숙해지는 말투입니다. 늘 쓰는 가운데 차츰차츰 길드는 말씨입니다. 으레 쓰는 동안 하나둘 몸에 배는 말결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옳고 바르고 고우며 알찬 말매무새가 자리잡을 수 있지만, 그릇되고 틀리고 미우며 어설픈 말차림새가 뿌리내릴 수 있습니다.

슬기롭고 힘차게 내 말마디를 추스른다면 내 말마디는 언제나 슬기롭고 힘차게 뻗어 나갈 테지만, 어영부영 아무렇게나 내 말밭을 내팽개친다면 노상 어영부영이요 아무렇게나 휩쓸리는 내 말밭이 되고 맙니다.

우리한테는 좋은 버릇이 들기도 하지만 나쁜 버릇이 들기도 하는 줄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한테는 좋은 마음이 샘솟기도 하지만 궂은 마음이 일어나기도 하는 줄을 헤아려야 합니다. 우리 몸가짐을 알차게 가누면 우리 말 또한 알차고, 우리 마음가짐을 얄궂게 내버리면 우리 글 또한 얄궂은 굴레를 뒤집어씁니다.

ㄴ. 숫적으로 많기는 해도

.. 하지만 숫적으로 많기는 해도, 농민들이 군인들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  <히로세 다카시/육후연 옮김-체르노빌의 아이들>(프로메테우스출판사,2006) 83쪽

'하지만'은 '그렇지만(그러하지만)'으로 고쳐씁니다. "군인들의 뜻을"은 "군인들 뜻을"이나 "군인들을"로 다듬어 줍니다.

 ┌ 숫적으로 많기는 해도
 │
 │→ 숫자로 치면 많기는 해도
 │→ 숫자가 많기는 해도
 │→ 숫자가 많아도
 └ …

이 자리에서는 "숫자가 많기는 해도"로 손질하면 됩니다. 아니, 처음부터 이렇게 적어야 올바릅니다. 숫자가 많거나 적은 일이지, '수적(숫적)'으로" 많거나 적은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농사꾼이 많기는 해도"라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글월 앞쪽을 이와 같이 적어 놓으면, 글월 뒤에 다시 '농민들'을 넣지 않아도 되니, 글월은 한결 단출합니다.

 ┌ 그렇지만 농민들이 많기는 해도, 군인들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 그러나 농사꾼들이 많기는 해도, 군인들을 꺾을 수는 없었다
 ├ 그런데 농사꾼들이 더 많았지만 군인들을 꺾을 수는 없었다
 └ …

곰곰이 헤아려 보면, 우리 말투에서 '수'나 '숫자'라는 낱말은 잘 안 쓰였습니다. "너희 집에 책이 얼마나 있니?" 하고 묻지, "너희 집에 있는 책 숫자가 얼마나 되니?" 하고는 잘 안 묻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되니?" 하고 묻지, "사람들 숫자가 얼마나 되니?" 하고는 잘 안 묻습니다. 낱낱을 세어 모두 몇이 되는가를 물을 때이든 어림 잡아 어느 만큼 되는가를 물을 때이든 '수-숫자' 같은 낱말이 없이 묻는 우리 말투입니다. 임자말이 없이 글월을 짜듯, 어느 모로 보면 단출하고, 어느 모로 보면 좀 엉성하다 싶은 우리 말투입니다. 어느 쪽으로 생각하든 우리 말에는 우리 말 빛깔이 있기에, 이 같은 빛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알차게 가누고 보듬으며 갈고닦아 즐기면 됩니다.

 ┌ 농사꾼들이 숫자로는 더 많아도 군인들을 꺾을 수는 없었다
 ├ 농사꾼들 숫자가 더 많다 하지만 군인들을 꺾을 수는 없었다
 ├ 농사꾼들이 숫자를 내세워 군인들을 꺾을 수는 없었다
 └ …

글월 짜임새로 여기자면 어떤 눈길에서는 어설픈 우리 말투입니다만, 토씨 쓰임새로 보자면 어떤 눈길에서는 끝없이 달라지고 새로워지는 우리 말투입니다. 이 보기글에서도 토씨를 어떻게 붙이고 씨끝을 어떻게 달아 놓는가에 따라서 말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말뜻은 같아도 말느낌은 달리할 수 있습니다. 말하거나 글쓰는 사람마다 살짝살짝 달리 나타낼 수 있습니다. 때와 곳과 흐름을 살피며 달리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수'와 '숫자' 같은 낱말을 아예 안 써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같은 낱말은 마땅히 써야 합니다. 다만, 쓰든 덜든, 또 마땅히 쓰든, 우리는 우리 말투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알맞고 올바로 펼쳐 내어야 합니다. 우리 말맛을 살리는 길을 찾고, 우리 말멋을 북돋우는 길을 일구어야 합니다. 내 생각을 알뜰살뜰 보여주는 한편, 내 넋을 깊이 드러내고, 내 말씨를 내 깜냥껏 살가이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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