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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시대 공중화장실, 지금 써도 괜찮겠네

[그리스, 터키, 네덜란드 패키지 여행, 해볼 만하다] ⑩ 에페수스 유적지 1

등록|2010.03.02 15:00 수정|2010.03.02 15:03
정말 대단한 유적지 에페수스

▲ 남쪽에서 바라 본 에페스 유적지: 동서로 바실리카 도로가 이어진다. ⓒ 이상기


아르테미스 신전 터를 나와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에페수스 유적지다. 에페수스 유적지는 아르테미스 신전의 남서쪽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므로 에페수스로 가는 길은 파나이르 산을 끼고 남쪽과 서쪽 두 군데로 나 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남쪽 입구로 간다. 남쪽 입구에서 대리석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내려가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남쪽의 마그네스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광장이 나타난다. 왼측에는 뷜뷜산에 우뚝하고, 오른쪽에는 파나이르 산이 나지막하다. 두 산 사이 평지를 따라 에페수스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이 도시에서 우리가 처음 만나는 유적은 공중목욕탕인 바리우스 욕장이다. 로마시대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유적으로 지금은 욕장의 벽과 문 그리고 바닥의 잔해만 보인다.

▲ 황토관으로 연결된 수로 ⓒ 이상기


일부 역사가들은 로마 사람들이 목욕이나 하고 사치하고 방탕해서 망했다고 하지만, 관점을 달리하면 목욕문화에서 그들의 여유를 찾을 수 있다. 그 시절 대중탕에서 목욕을 즐길 수 있을 정도라면, 그들의 삶이 정말 여유 있고 풍요로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목욕문화는 여가를 즐기는 최선의 방법이다.

목욕탕 주변을 보니 땅에 묻힌 황토색 관이 보인다. 물을 끌어들여 도시에 공급한 수로이다. 예나 지금이나 물은 생존의 필수조건이기 때문에 상하수도를 제대로 만들지 않고는 도시를 건설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길 한쪽으로는 발굴되어 나온 붉은색 관들이 쌓여 있다. 지금도 에페스유적은 계속 발굴 중이어서 주변에 유물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이곳 목욕탕에서 서쪽으로 보면 똑 바로 길이 나 있다. 이 길은 헤라클레스 문까지 서쪽으로 평탄하게 내려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방향을 북서쪽으로 틀어 셀수스 도서관 앞까지도 역시 내리막길이다. 이 내리막길을 우리는 쿠레테스 길(Curetes Street)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집중적으로 보게 되는 에페수스 유적지는 동서로 1㎞, 남북으로 1.5㎞ 정도이다.

오데온은 음악당이다

▲ 에페수스 유적지 지도: 남쪽 아래 지역, 동서로 난 길과 북서로 이어지는 길 주변의 유적을 소개한다. ⓒ 이상기


이들 동서로 난 길 왼쪽에는 시장 겸 집회장소인 아고라가 있고, 오른쪽에는 시청과 음악당 같은 정치와 문화시설이 있다. 우리는 먼저 음악당인 오데온으로 간다.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은 도시를 만들면서 반드시 음악당을 만들었다. 사실 소리라는 것은, 색깔 다음의 원초적인 감각으로 대중을 즐겁게 하고 또 하나로 모으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데온은 예술과 오락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정치적인 측면에서 꼭 필요한 시설이다.

오데온은 극장과 마찬가지로 무대가 아래 있고, 객석이 위에 있는 구조를 하고 있다. 이곳도 가운데 반원형의 무대가 있고, 그 위로 3단의 객석을 마련했다. 1500명의 관객을 수용했다고 한다. 이들 객석 좌우에는 아치형의 출입문이 있다. 객석에 앉아 무대를 내려다보니 앞이 탁 트였다. 2층 또는 3층으로 만들어졌을 스케네 건물이 없기 때문이다.

▲ 오른쪽이 음악당인 오데온이고, 그 앞에 동서로 이어진 바실리카 길이 보인다. ⓒ 이상기


스케네 뒤 길에는 석주들이 이어져 있다. 이오니아 양식이다. 그리고 길 너머로는 아고라가 자리하고 있었다. 아고라 너머에는 뷜뷜산이 있는데 전성기에는 그곳에까지 사람들이 살았다고 한다. 오데온을 보고 나서 서쪽으로 작은 문을 통과하면 시청사가 있다. 그런데 이곳은 거의 허물어져 흔적을 찾기 어렵다. 몇 개의 석주가 서 있고, 바닥에는 건축부재들이 널려 있다.    

묘도 있고 샘도 있고 신전도 있다

▲ 메미우스 묘 ⓒ 이상기


이곳 시청사에서 서북쪽으로 있는 헤라클레스 문까지는 완만한 내리막길이다. 길에서 내리막길로 들어서기 전 오른쪽에 보면 두 개의 조각상과 석주가 보인다. 이곳이 메미우스(Gaius Memmius) 묘이다. 메미우스 형제는 쌍둥이로 율리우스 시저와 동시대 사람이다. 그들은 처음에 폼페이우스의 편에 섰으나 나중에 시저의 편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다시 시저와 관계가 나빠져 아테네를 거쳐 에페수스까지 쫓겨나게 되었다.

메미우스에 대한 기록은 루크레티우스의 서사시집 <사물의 본질(De rerum natura)>에 나온다. 이 책은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대중들에게 설명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메미우스는 로마시대를 살았지만 그리스의 모델을 따르려고 노력한 사람으로 되어 있다. 조각상은 많이 마모되었지만 곱슬머리를 한 얼굴의 강인한 의지는 확인할 수 있다. 옷은 가슴을 드러낸 헐렁한 로마 귀족 복장이다. 옆에 서 있는 석주는 코린트 양식이다.

▲ 아스클레피우스 상징조각 ⓒ 이상기

▲ 양을 몰고 가는 신의 조각 ⓒ 이상기

이들을 지나 조금 더 내려가면 뱀이 지팡이를 칭칭 감고 있는 조각이 있다. 이것은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우스(Asclepius)의 상징이다. 그렇다면 이곳은 지금으로 말하면 병원이나 의원이라는 뜻이다. 그 옆면, 길의 양쪽으로는 양을 몰고 가는 신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이것 역시 상징하는 바가 있을 텐데 그 뜻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이곳에서 우리는 잠시 남쪽 방향에 있는 도미티아누스 신전으로 간다. 이 신전은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기원후 51-96)에게 바쳐졌다. 여기서는 쿠레테스 거리와 셀수스 도서관 그리고 아고라가 내려다보인다. 그리고 우리가 지나 온 오데온과 위층 아고라 사이로 이어지는 바실리카 길도 보인다.

▲ 도미티아누스 신전의 아치 ⓒ 이상기

▲ 꽃무늬가 새겨진 조각 ⓒ 이상기

도미티아누스 신전에는 폴리오 샘으로 알려진 건물이 있고, 그 옆으로는 아름다운 아치도 보인다. 아치 뒤쪽의 벽면은 절반이 허물어져 쓸쓸하다. 그런데 주변에 널려있는 석재의 조각이 상당히 정교하다. 당초문이 보이고, 아치를 장식한 꽃무늬가 보인다. 꽃잎이 여섯 개로 꽃잎의 가운데 줄까지 표현해 놓았다.

옆의 안내판에는 이 신전의 중심건물이던 물의 궁전(Water Palace) 정면도가 그려져 있다. 여기 물의 궁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아 이곳이 물을 공급하던 수원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는 또한 비문으로 보이는 석재들이 발견된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발굴과정에서 이곳으로 옮겨진 것 같다.

문도 있고 저택도 있고 목욕탕도 있고 또 다른 신전도 있다

▲ 헤라클레스 문 ⓒ 이상기


이들을 보고 나서 다시 길을 내려가다 보면 헤라클레스 문이 나온다. 헤라클레스는 힘과 용기 그리고 재치가 있는 영웅이다. 그는 사자 가죽을 쓰고 에페수스의 길을 지키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헤라클레스는 무서운 악마인 네메아스의 사자를 죽이고 그 가죽을 벗겨 입고 다닌다. 그런데 이곳에 표현된 헤라클레스는 그렇게 용맹스럽거나 재치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의지가 강하면서도 완고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일종의 문지기처럼.

더 아래로 내려가면서 보니 좌우에 석주가 줄지어 서 있다. 이 길이 바로 쿠레테스 거리다. 길을 내려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트라야누스 샘이 나온다. 2세기 초 트라야누스 황제(기원후 97-117)에게 바친 샘에 있는 건물로 석주와 정문은 거의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이곳 역시 도시에 물을 공급하는 수원지 중 하나였을 것이다.

▲ 경사주택의 모자이크화 ⓒ 이상기


트라야누스 샘 건너 도로변에는 로마시대 모자이크화가 그려져 있다. 색색의 대리석을 사용하였으며, 석주 밖으로 폭 3m, 길이 80m 정도 공간에 아름다운 장식을 했다. 마치 대리석 양탄자를 깐 것 같다. 이곳은 부유한 저택의 앞부분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들의 사교공간으로 쓰였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경사주택(Slope Houses)으로 부린다.

이 저택 건너편에는 대중목욕탕이 있다. 바리우스 욕장으로 2세기에서 6세기 사이에 사용되었다. 더 이상의 설명이 없어 정확한 역사를 알 수 없지만 로마황제 바리우스(203-222)에게 바쳐진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목욕탕 옆으로는 하드리아누스 신전이 있다. 하드리아누스 신전은 쿠레테스 거리에 남아있는 건물 중 가장 아름답다. 신전 입구 현관과 정문 그리고 그 안의 성소가 잘 남아 있다.

▲ 하드리아누스 신전 ⓒ 이상기


특히 정문 아치에 새겨진 부조는 정교하고 섬세하기 이를 데 없다. 부조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에페수스를 건설한 왕 안드로클로스가 멧돼지를 죽이는 장면을 새겨 넣었다. 이 신전은 퀸틸루스(P. Quintilus)에 의해 지어져 하드리아누스 황제(117-138)에게 바쳐졌다. 

화장실과 함께 쿠레테스 거리 끝나

▲ 공중화장실 ⓒ 이상기


하드리아누스 신전을 지나 쿠레테스 거리 끝에 이르면 공중 화장실이 있다. 그러므로 경사지의 가장 아래에 화장실이 있는 셈이다. 이곳은 쿠레테스 거리와 대리석 거리가 만나는 지점으로 도시의 중간지점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하수도를 이용하여 자연스럽게 수세식 화장실을 만든 것이다.

좌변기 형태의 대리석 바닥에 구멍을 내서 소변과 대변이 아래로 떨어지도록 했다. 이렇게 떨어진 오물은 바로 물에 씻겨 내려가도록 한 구조다. 아래 하수도가 경사졌기 때문에 오물이 바로 바로 아래로 내려갈 것이고 위생 문제도 걱정할 필요가 없도록 했다.

또 변기 앞에는 분수시설을 만들어 사람들의 시선을 모을 수 있도록 했다. 용변을 보면서 느끼는 쑥스러움을 줄이기 위한 배려로 보인다. 또 화장실 뒤로는 벽을 높이 쌓아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도록 했다. 전체적으로 고급의 화장실이다.

▲ 쿠레테스 거리 ⓒ 이상기


쿠레테스 거리에서 우리는 신을 모시는 경건한 공간부터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하는 삶의 공간까지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로마의 문화수준이 상당히 높았음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만이 아니다. 다음에 보게 될 대리석 거리에서는 또 다른 고급의 문화와 저급의 문화를 동시에 볼 수 있는 행운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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