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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돼?

등록|2010.03.03 17:36 수정|2010.03.03 17:36
단조로운 일상에서 스포츠만큼 좋은 재밋거리가 또 있을까?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원초적인 패거리 정서를 끄집어내는 국가 대항전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거기다 예상하지 못한 메달까지 쏟아지고 연아의 환상적인 연기까지 봤으니... 김연아 선수가 프리 스케이팅을 실수 없이 마치고 눈물을 쏟을 때, 하마터면 나도 따라 울 뻔했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감동의 순간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순간 스스로가 참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살면서 저런 감동의 순간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없었다고 하면 인생이 너무 불쌍한 것 같지만 기억이 별로 나지 않는다. 세계적인 슈퍼스타와 자신을 비교하다니 욕심이 너무 많다고? 그런 건 아니다. 그런 환상에 빠져서 살 나이도 아니거니와 어릴 때부터 특별하게 큰 꿈을 꾼 적이 없으니. 부러웠던 건 무언가를 위해 땀을 흘리고 그것을 성취했을 때의 보람과 기쁨을 느낀다는 것 그 자체다.

바보 같은 놈, 네가 꿈도 꾸지 않고 노력을 안했으니 그렇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아무나 세계 최고가 될 수는 없고 개인의 재능과 노력에 따라 주어지는 보람과 기쁨, 보상도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고만고만한 재능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도 살면서 보람과 기쁨을 느끼며 살 권리는 있지 않은가. 그런데 나 같은 평범한 인간이 뭔가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땀을 흘리고 목표를 이룬 뒤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란 김연아가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것보다 더 힘든 일처럼 보인다. 사방이 가시덤불이고 진흙탕이다.

적당한 크기의 쾌적한 집과 마음 놓고 산책하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주변 환경, 깨끗한 공기, 훼손되지 않은 산과 강, 폭력 없는 학교, 적당한 월급... 40대에 접어든 나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실은 어릴 때부터 이런 평화로운 세상에 사는 것이 꿈이었다. 꿈이 크긴 크네. 혼자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대게 이렇게 '큰' 꿈, 혼자서는 이루기 힘든 꿈을 수밖에 없다. 왜냐고? 개인적으로 무언가 특별한 성취를 이루기가 어려우니까. 거기다 평범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기에는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너무 험하고 답답하고 화가 나니까.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인터넷을 뒤적이다 몇 가지 기사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가 소개한 한국 직장 여성들의 고충. 직장 다니는 사람이면 워싱턴 포스트의 기자보다 훨씬 더 잘 알지. 업무도 잘해야지 회식에도 빠지지 않아야지 출산휴가와 육아휴가는 눈치껏 알아서 줄여야지, 애들이 자라면 입시경쟁에 죽어라 한몫 해야지, 사교육비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집값은 비싸고... 결혼과 출산이 보통일이 아닌 거다. 그나마 선진국의 유수 언론에서 다뤄주니 포털에 기사나 실리는 거지. 정부에서는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며 난리를 피우면서도 애 낳으면 지자체에서 돈 몇 푼 준다는 거 말고 뭐가 있나. 저출산 문제 해결한답시고 위원회니 뭐니 자리나 생겼겠지.

또 다른 기사에는 이런 제목이 붙어 있다. "하이힐 폭행과 14억 통장의 진실은?" 서울시 교육청을 비롯한 교육청 비리에 관련된 기사다. 방과 후 학교 강사들에게 돈을 받은 교사, 학교 급식 업체와 교재 납품업체에서 뇌물은 받은 교장들, 장학사 시험 잘 보게 해주겠다며 뇌물을 받은 장학사들... 학부모들과 교육단체, 시민사회단체들이 그렇게 학교 직영급식을 요구해도 이런 저런 이유로 반대해 온 사람들이 벌인 일들이다.

그 중심에는 지난 2008년 서울시민들이 직선으로 뽑은 '공정택'이라는 분이 있다고 한다. 기가 막히지 않은가. 더 큰 문제는 정부와 지자체, 국회와 지방의회에 계신 분들의 다수가 여전히 학교 직영급식에 반대하고 교사들의 문제 제기를 빨갱이라고 비난하며, 그들만의 왕국을 구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교육비 걱정에 학교급식의 안전성과 학교폭력에 노심초사하며 교육감 선거에 무관심한 유권자들이 이들의 왕국을 지켜주고 있는 꼴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건가.

연아를 부러워하다 아직도 옷도 자기 맘대로 못 입고 머리도 자기 마음대로 못 기르고 일부 교사들은 물론 친구들로부터 얻어맞고 사는 학생들이 떠올랐다. 불쌍해도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쉽게 변할 현실은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변화가 가능하다는 희망의 단초라도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지방자치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이광조씨는 현재 CBS PD로 재직중에 있습니다. 이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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