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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베일에 가려진 스파이 이야기>

등록|2010.03.04 14:05 수정|2010.03.04 16:30
역사적으로 스파이는 두 번째로 오래된 직업이다. 스파이는 원시시대 말기 부락간의 다툼 속에서 처음 등장한다. 중국의 스파이 활동은 하나라 소강 시대에서 기인하며, 고대 그리스 신화의 트로이 목마는 서양 스파이 활동 근간이다. 스파이를 일컫는 한자어 간첩(間諜)을 살펴보면 두 가지 뜻이 모여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예기-천승>에는 정보를 빼내는데 작게 하는 자는 간자(間者)이고 크게 하는 자는 첩자(諜者)라고 했다. 손자는 역사상 첩보이론을  정립한 최초의 인물이다. 그의 저서 <손자병법-용간>은 세계 각국 스파이들의 이론서로 사용되고 있다.
- <베일에 가려진 스파이 이야기> 들어가는 글 중에서

스파이 중에는 남자도 있지만 여자들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스파이의 여왕'으로 불리는 마타 하리, '신시아'란 가명을 쓰는 '베티 소프 파커', '하얀 여우 호엔로헤'는 대표적인 여자 스파이다.

▲ <베일에 가려진 스파이 이야기>겉그림 ⓒ 시그마 북스

스파이 세계에서 여자들은 '제비'에 비유된다. 그녀들은 제비처럼 세계 각지를 날아다니며 미모와 여성 특유의 온화함으로 철통 같은 방어벽을 뚫고 중요한 기밀을 낚아채 오기 때문이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 그녀들의 활약은 눈부셨다.

1차 세계대전 시기에 활동한 마타 하리. 그녀가 입이 무거운 모건 장군과 동거를 하며 독일군에게 절대 필요한 신식 탱크 정보를 빼내고자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마지막 30초에 빼낸 비밀번호 '213515'는 아직도 스파이 역사에서 '기적의 숫자'로 알려지고 있을 정도다.

1942년 6월, 연합군이 마다가스카르를 점령하고 알제리와 모로코로 순조롭게 상륙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영국 최고 미녀 스파이인 '베티 소프 파커'가 프랑스 비시 정부가 사용하는 암호를 도둑질해 영국에 넘겼기 때문이다.

스파이 혹은 간첩, 혹은 첩자 혹은 간자라고도 불리는 그들은 때로는 매혹적인 연인이 되어, 때론 선량한 이웃이 되어 그들에게 다가가 목적 달성을 위한 정보를 캐낸다. 정보를 캐내고자 개인 정보를 빼내거나 도청 장치를 설치하기도 한다. 납치, 암살, 절도, 무기밀매 등의 범죄를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가 하면, 이간질과 중상모략도 거리낌 없다. 심지어는 어린 아이들과 학생들을 정보 전달자로 이용하기도 한다.

<베일에 가려진 스파이 이야기>(시그마 북스 펴냄)는 그동안 일반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스파이들의 독특하고 기이한 이야기 70여 편을 묶은 것이다. 쫓고 쫓기는, 속고 속이는 스파이들의 세계는 스릴 있고 재미있다. 마치 첩보영화를 보는 것처럼.

1960년 5월 23일 오후 이스라엘 거리에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와 감격에 겨운 울음소리, 열렬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모두 축제라도 하는 듯 즐거운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이날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 정보부가 나치 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을 체포한 날이다. 그가 저지른 범죄는 너무나 많고 잔혹하여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는 '유대인 문제'에 있어서 나치 지도자들과 같은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 그의 죄목은 어린이 100만 명을 포함한 580만 명의 유대인을 처참하게 살해한 죄였다. 에스토니아 등 일부 국가에서는 거의 모든 유대인이 처형당했다.
- 아이히만 체포 작전 중에서

'역사적인 살인마' 아이히만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가족들을 데리고 칩거한다. 그 후, 신분까지 철저하게 위장하여 아르헨티나로 도망가 몇 년 동안 숨어 산다. 하지만 결국 모사드(1951년 9월 1일에 창립된 이스라엘의 전국적인 정보기관)의 지도자 하렐에게 잡혀 '인종 학살죄'에 회부된 후 처형당한다.

책에는 아르헨티나에서 이스라엘까지의 1만 6천 킬로, 여차하면 국제법을 어기는 꼴이 되는 와중에 당시의 국제 정세 흐름을 아슬아슬하도록 이용하여 민족의 원수를 잡는 데 성공한 '아이히만 체포 작전'이 자세하게 소개된다.

"나를 체포한 것은 숙련된 전문가의 솜씨였으며 작전은 매우 훌륭했다. 나는 과거 오랫동안 국가안보경찰본부에서 일했던 경험이 생각나 무례를 무릅쓰고 견해를 말해 보았다"

아이히만은 처형 직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직 아이히만을 체포하고자 자신을 전혀 노출하지 않은 하렐의 치밀함은 존경스러울 정도이다. 스파이 이야기를 통해 알아가는 세계사는 흥미롭다. 이처럼 세계사의 한 장면을 쉽게 알 수 있는 것 또한 이 책의 장점이다.

'일본 스파이 마쓰시마 죠한의 최후'는 쓰리게 읽혔다. 그녀는 영국 해군 잠수함의 설계도를 촬영한 필름을 자신의 장기 속에 넣고 죽은 후 시신이 되어 반드시 일본에 귀국해야만 하는 임무를 받았다. 이를 위해 그녀는 일부러 혼절해 영국 간첩선에 타게 된다.

오직 이 임무 하나를 위해 스파이가 된 그녀는 죽어야만 임무가 완수된다. 그녀는 적진 영국에서 사랑을 하고 결혼까지 한다. 목적 달성을 위해 발병도 죽음도 자유자재로 선택하는 그녀는 비정하다. '개인에게 조국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할까?'를 생각하게 했다.

냉전 시대, 소련 KGB 중령으로 23년간 충성을 하다가 영국 정보기관에 매수된 이중 스파이 고르디에브스키. 그가 러닝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까만 봉지 하나 달랑 들고 소련을 탈출한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그는 소련 탈출에 성공한 최초 스파이라고 한다.

007은 바로 우리 이웃, 누군가 일 수 있다

저자 '송옌'은
출간까지 숨은 이야기들이 만만치 않을 책이 있다. <베일에 가려진 스파이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세계적인 스파이들의 이야기를 70여 편이나 소개할 수 있을까? 책을 읽는 내내 몇 번이나 감탄을 하며 저자로부터 이야길 듣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저자는 중국인이다.

송옌은 산동사범대학 졸업, 다년간 역사문화 방면의 연구에 종사하였다. 또한 산동성 기자로 활동했다. 저서로 <소용돌이치는 역사><충신과 간신> 등이 있는데 <보물이 숨긴 비밀>-미궁에 빠진 보물을 둘러싼 45편의 기록(애플북스. 2009)이 국내 출간 됐다.
스파이 혹은 첩자. 그들의 이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암호와 작전명으로 통할 뿐이다. 그들은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어 어디에 존재하는지 알 수 없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들 곁에나 역사적인 사건 뒤에는 언제나 그들이 그림자처럼 붙어 있었다.

또한 그들은 <미션 임파서블>이나 <007>과 같은 스크린 안에서만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와 동떨어진 이와같은 세계에나 존재할 것 같은 그들은 내 이웃 혹은 직장 동료 중 누군가 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지금 이 순간에도 사냥개처럼 킁킁대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스파이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동시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스파이 그들은 누구인가. 어떻게 정보를 캐내고 일을 처리하는가.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베일에 가려진 스파이 이야기>에는 스파이들의 독특한 세계가 다양하게 소개된다.

또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 그 대략만이라도 소개하면 ▲영국, 미국, 소련 정보부의 최대 골칫거리가 된 하얀 여우 '스테파니 본 호엔로헤' ▲스웨덴 스톡홀름, 밤중에 길을 가다 부딪치는 행인 절반은 스파이? ▲목숨을 위협한 작은 메모 하나 ▲런던 거리의 술에 취한 부랑자가 제2차 세계대전의 운명을 바꾸었다?! ▲가장 악취 나는 정보는? ▲어이없는 실수연발 미녀 스파이 누르 ▲소련 정부와 스탈린의 존 웨인 암살작전 ▲우스꽝스럽고 원시적인 스파이 탄포웨이 ▲세계 사상 최대의 보수를 받은 스파이는? ▲아인슈타인이 사랑했던 스파이 여인 마가리타 ▲이스라엘 정부가 80년째 시리아 정부에 요구하고 있는 스파이의 시신은? 등이다.
덧붙이는 글 베일에 가려진 스파이 이야기|송옌 지음|김정자(옮긴이)|시그마북스|2010.1.10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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