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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 탐방로 연못 이름이 '썩은물통'?

[1박 2일 제주여행 ②] 15년 만에 개방된 돈내코탐방로

등록|2010.03.05 10:45 수정|2010.03.05 10:45

▲ 돈내코 탐방로에서 바라본 서귀포 시내. ⓒ 전용호


한라산 남쪽 탐방로 돈내코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오전 6시. 한라산 돈내코 탐방로로 향한다. 서귀포 시내에서 가까운 줄 알았는데 차로 가는 길이 꽤 멀다. 한라산 오르는 길이 5곳이 있는데, 돈내코 탐방로는 지난해 말 15년 만에 개방되었다. 오늘 산행은 그 길을 따라 어리목 탐방로로 내려올 계획이다.

돈내코 탐방로 입구인 충혼묘지에 도착하니 6시 30분. 벌써 산행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 사방은 아직 어둡다. 공원묘지를 반듯하게 가로지르는 길로 들어선다. 뒤로 보이는 서귀포 시내는 어둠에 휩싸여 있었고 간간이 노란 불빛들이 모여 있다. 바다 위로 여명이 붉게 물들어 간다.

관리초소를 지나 숲으로 들어선다. 숲은 이슬을 잔뜩 머금고 있다. 전날 비가 온 탓에 한여름 아침 같이 상쾌한 기분이다. 어둠이 조금씩 가시더니 나무사이로 해가 떠오른다. 시간이 넉넉했다면 일출을 기다리다 보고 갔을 텐데. 숲속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열대지방에서나 볼 수 있는 밀림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밀림입구라는 표지석이 보인다. 열대우림지역에 있다는 밀림이 제주에도 있다. 아마존에서 보는 대규모 밀림은 아니지만 산길은 질퍽거리고 상록수들이 빽빽이 자라고 있다. 사시사철 푸른 숲이라서 밀림이라고 했나보다. 상록으로 잎이 큰 굴거리나무가 군락으로 자라고, 송악 덩굴이 나무를 감고 올라간다. 땅으로는 조릿대가 융단처럼 깔렸다. 크기가 작아서 그렇지 밀림 속으로 들어온 기분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 15년 만에 개방된다는 돈내코 탐방로. 산길 초입은 난대 상록수림으로 우거진 밀림지대다. ⓒ 전용호


▲ 한라산 1000m에 사는 적송. 쭉쭉 뻗은 게 너무 아름답고 웅장하다. ⓒ 전용호


밀림지대를 뚫고 지나가는 탐방로 중간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이름이 '썩은물통'이라니…. 깊이는 얕지만 이름과는 달리 물이 깨끗하기만 하다. 산길은 부드럽게 서서히 고도를 높여간다. 힘들지는 않다. 탐방로 입구 해발 500m에서 시작해서 1000m를 넘어서고 있다.

밀림 같은 상록수 지대를 빠져나오면 적송지대를 지난다.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소나무는 한라산에도 산다. 하지만 한라산 1000m가 넘는 곳에서 보는 소나무는 다른 느낌이다. 당당하고 아름답다. 붉은 피부 빛을 자랑하며 쭉쭉 하늘로 뻗어있는 모습이 웅장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소나무는 처음 본다. 미인송이라고 들어는 봤지만 이정도 아름다울까?

돈내코 탐방로는 한라산 정상으로 오를 수 없다

숲을 빠져나오니 나무들이 키가 작아지고 하늘이 열린다. 뒤로 운해가 펼쳐진다. 산행객들은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다'며 하얀 운해에 감탄을 한다. 그러고 보니 높이 올라오기도 했다. 높이가 천 미터를 훌쩍 넘어 섰으니. 이름도 특이한 펭궤대피소(1450m)를 만난다. 간식을 먹고 산길을 재촉한다. 우리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인사를 나누던 일행들은 더는 욕심을 내지 말자며 돌아서 내려간다.

▲ 펭궤대피소 지나 한라산 남벽분기점으로 오르는 길 ⓒ 전용호


▲ 한라산 남벽 아래에 있는 방아오름샘. 물맛이 시원하다. ⓒ 전용호


이제부터는 산길이 허전하다. 나무들은 무릎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높은 산에서 매일 부는 바람과 싸우다 보니 키가 크지 못하고 땅에 붙어 자란다. 철쭉, 눈향나무 등등. 가끔 구상나무들이 군데군데 푸른 빛을 자랑하며 서있다. 한라산 정상부 남벽이 웅장하게 보인다.

점점 다가오는 한라산 남벽. 깎아지른 검은 빛 절벽이 웅장하다. 산마루 뾰족뾰족한 모습이 마치 왕관 같다. 절벽 바로 아래 남벽분기점(1600m) 초소가 있다. 돈내코 탐방로 입구에서 7㎞ 지점. 돈내코 탐방로 끝이다. 한라산 정상을 마주보고 있지만 더 이상 오를 수는 없다.

부드러운 오름 곡선을 보면서 가는 길

번호를 붙여가며 서있는 표지목 이름이 어리목을 바뀌었다. 방아오름샘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한라산(1950m)과 윗세오름(1741m) 사이를 난 나무테크 길을 올라간다. 윗세오름은 높은 지역에 있는 3개의 오름으로 붉은오름, 누운오름, 족은오름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란다. 오름들은 한라산 정상부 주위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봉긋봉긋 솟았다.

▲ 한라산 서북벽 모습. 남벽분기점에서 어리목으로 가는 길에 만난 풍경 ⓒ 전용호


▲ 윗세오름 부드러운 곡선. 아래는 아직 눈이 남았다. ⓒ 전용호


▲ 윗세오름대피소로 가는 길. 아직 눈이 녹지 않은 곳이 있다. ⓒ 전용호


남벽분기점에서 윗세오름대피소까지 2.1㎞. 군데군데 눈이 녹지 않은 곳을 걸어가는 것은 고산지대 협곡을 지나는 기분이다. 부드럽게 오르내리면서 윗세오름 대피소로 향한다.

윗세오름대피소(1700m)에는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햇살을 받고서 앉아 있다. 그 뒤로 까마귀들이 사람들과 어울려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애들이 땅콩을 던져주면 하늘로 날아올라 먹이를 채간다. 바닷가에서 갈매기가 새우깡을 받아먹는 건 봤는데. 까마귀들도 먹이다툼에서 이기기 위해 묘기를 보여주듯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이국적 풍경을 보여주는 오름 동산

어리목으로 내려가는 길은 평평하다. 만세동산까지는 거의 산책로를 걸어간다. 부드러운 곡선미를 자랑하는 오름 들을 보면서 길을 간다. 고원을 걸어가는 기분. 완만한 오름들 풍경이 마치 이국의 초원을 보는 것 같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 윗세오름대피소 풍경. 뒤로 보이는 한라산 정상 ⓒ 전용호


▲ 만세동산에서 본 운해. 운해 가운데 오름이 있다. ⓒ 전용호


고산지대를 내려서면서 숲속으로 길이 이어지고 조금씩 고도를 낮춘다. 숲은 안개에 잠겨있다. 산위에서 보던 운해를 뚫고 가고 있나보다. 무릎이 아파온다. 많이 걸었다. 시간 여유가 있어 쉬엄쉬엄 내려온다.

어리목 탐방로 입구(970m)에 도착했다. 도착시간 2시 25분. 오늘 걸은 거리는 총 13.8㎞로 점심시간을 포함해서 8시간 25분이 걸렸다. 애들도 처음에는 힘들어 했는데, 잘 걸어 주었다. 다리는 뻐근하지만 기분이 좋다. 택시를 타고 제주항으로 달린다. 한라산이여 안녕. 철쭉 핀 봄날 또 오마.
덧붙이는 글 돈내코 탐방로에서 어리목 탐방로로 내려온 길(총 13.8㎞) : 돈내코 입구→펭궤대피소(5.3㎞/2:30) → 남벽분기점(1.7㎞/40분)→윗세오름대피소(2.1㎞/1시간)→어리목입구(4.7㎞/2시간)

어리목 탐방로까지는 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하고 있으며, 제주까지 택시비는 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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