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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쓴 겹말 손질 (85) 초록빛 녹음

[우리 말에 마음쓰기 871] '보다'와 '관찰하다' 사이에서

등록|2010.03.05 14:01 수정|2010.03.05 14:01

ㄱ. 초록빛 녹음

.. 6월 하순의 남산은 사방이 눈이 시리도록 고운 초록빛 녹음으로 아름다운 동화 나라였습니다 ..  <유선진-사람, 참 따뜻하다>(지성사,2009) 15쪽

"6월 하순(下旬)의 남산"은 "6월 끝무렵 남산"이나 "6월 막바지에 이른 남산"이나 "6월 끝물에 다다른 남산"으로 다듬고, '사방(四方)'은 '온갖 곳이'나 '어디나'나 '모든 곳이'나 '둘레 어디나'로 다듬어 줍니다. '초록빛(草綠-)'은 '풀빛'이나 '푸른빛'으로 고쳐씁니다.

 ┌ 녹음(綠陰) : 푸른 잎이 우거진 나무나 수풀. 또는 그 나무의 그늘
 │   - 녹음의 계절 / 녹음이 우거지다
 │
 ├ 초록빛 녹음으로
 │→ 푸른빛 그늘로
 │→ 푸른 그늘로
 │→ 푸른 나무그늘로
 │→ 푸른 잎사귀로
 │→ 푸른 물결로
 └ …

글을 쓰는 많은 분들은 "푸른 잎이 짙푸른 그늘"을 놓고 "푸른 그늘"처럼 적바림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으레 '녹음'이나 '녹음(綠陰)'이나 '綠陰'처럼 적바림합니다. 글을 읽는 이들을 헤아리며 "눈이 시리도록 고운 푸른빛 나무그늘로"나 "눈이 시리도록 고운 푸른빛 잎사귀로"처럼 적으면 더없이 좋을 텐데, 당신들한테 글맛이나 글멋이란 이와 같은 '녹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푸른빛 나무그늘"로 적바림하는 일도 그리 옳아 보이지 않습니다. "푸른빛이 짙은 나무그늘"이라든지 "푸른잎이 짙푸른 나무그늘"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다만, 글맛이나 글멋을 북돋운다면서 '푸른그늘' 같은 새 낱말을 지을 수 있습니다.

 ┌ 눈이 시리도록 고운 풀빛으로 아름다운 동화 나라
 ├ 눈이 시리도록 고운 푸른빛으로 아름다운 동화 나라
 ├ 눈이 시리도록 고운 푸른 물결로 아름다운 동화 나라
 └ …

글이란 꾸민다고 더 멋있거나 맛있지 않습니다. 생각 또한 꾸민다고 더 알차거나 튼튼하지 않습니다. 삶도 마찬가지인데, 꾸민다고 더 높거나 대단해지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아름다울 말이요 생각이요 삶입니다. 꾸미지 않고도 싱그럽고 넉넉한 말이며 생각이며 삶입니다.

그리고, 꾸민다고 할 때에도 겉치레로 꾸미는 말과 생각과 삶이 아니라, 속치레로 꾸미는 말과 생각과 삶일 때에 비로소 아름답습니다. 속가꿈을 하는 말이나 생각이나 삶일 때에 더없이 빛납니다. 속을 다스리고 속을 갈고닦으며 속을 키울 때에 참으로 곱게 새빛을 나누어 주는 말이고 생각이고 삶입니다.


ㄴ. 보고 관찰하고

.. 사진가로서의 신조에 대한 질문에 잔더는 이렇게 답했다. "보고 관찰하고 그리고 생각하는 것." ..  <이자와 고타로/고성미 옮김-사진을 즐기다>(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2009) 112쪽

"사진가로서의 신조(信條)에 대한 질문(質問)에"는 "사진가로서 무엇을 지켜야 하느냐는 물음에"나 "사진가로서 어떤 매무새를 갖추어야 하느냐는 물음에"나 "사진가는 어떤 몸가짐이어야 하느냐는 물음에"나 "사진가로서 지켜야 할 다짐은 무엇이냐는 물음에"로 다듬어 봅니다. "이렇게 답(答)했다"는 "이렇게 말했다"나 "이렇게 이야기했다"로 손보고, "생각하는 것"은 "생각하기"로 손봅니다.

 ┌ 관찰(觀察) : 사물이나 현상을 주의하여 자세히 살펴봄
 │   - 관찰 결과를 빠짐없이 기록하다 / 특히 세심한 관찰이 필요합니다
 │
 ├ 보고 관찰하고 생각하는 것
 │→ 보고 살피고 생각하기
 │→ 바라보고 살펴보고 생각하기
 │→ 보고 느끼고 생각하기
 │→ 바라보고 껴안고 생각하기
 └ …

한자말 '관찰'은 "바라볼 觀 + 살필 察"로 짜여 있습니다. 이 낱말은 "바라보고 살피다"를 뜻한다고 하겠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바라보다'로 쓰고, 곳에 따라서는 '살피다(살펴보다)'로 씁니다.

국어사전 보기글을 돌아본다면, "관찰 결과를 빠짐없이 기록하다"는 "살펴본 결과를 빠짐없이 적다"인 셈입니다. "특히 세심한 관찰이 필요합니다"는 "더욱이 꼼꼼히 살펴보아야 합니다"인 꼴입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보고 관찰하고"를 이야기합니다. '보다'와 '바라보다'는 같은 말이 아니고, '보다'와 '살펴보다' 또한 같은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보고 살펴보고 생각하기"처럼 읊는 이야기는 잘못이라고 여길 수 없습니다.

다만,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서 돌아보자면 바라보든 살펴보든 눈여겨보든 들여다보든 쳐다보든 '본다'는 테두리에서는 매한가지입니다. 가벼이 보든 찬찬히 보든 대충 보든 깊이 보든 '본다'는 틀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사진을 하는 사람으로서 지킬 만한 다짐을 든다고 할 때에는 "보고 느끼고 생각하기"라든지 "보고 껴안고 생각하기"라든지 "보고 받아들이고 생각하기"처럼 갈래를 나누어서 적바림할 때가 한결 잘 어울리지 않으랴 싶습니다. 또는, "보고, 또 보고, 생각하기"처럼 적으면서 '본다'는 대목을 좀더 힘주어 나타낼 수 있습니다.

 ┌ 보고, 또 보고, 생각하기
 ├ 보고, 다시 보고, 생각하기
 ├ 보고, 거듭 보고, 생각하기
 ├ 보고, 자꾸 보고, 생각하기
 └ …

글을 쓰는 사람으로 돌아본다면, "읽고, 새겨읽고, 생각하기" 또는 "읽고, 또 읽고, 생각하기"가 되리라 봅니다. 보기는 보되 차근차근 깊이깊이 본다고 할 때에는 '살펴보기'요, 읽기는 읽되 곰곰이 찬찬히 읽는다고 할 때에는 '새겨읽기'입니다. 또는 '살펴읽기'처럼 새 낱말을 빚어서 가리킬 수 있습니다.

'살피다'에서 다시금 가지를 치면 '살펴듣다'나 '살펴알다'가 나옵니다. '살펴먹다'와 '살펴쓰다'가 나올 수도 있겠지요. 아무것이나 대충 먹지 않고 우리 몸과 땅을 살리는 먹을거리를 올바르게 찾아서 먹는 몸가짐이라 한다면 '살펴먹다'라 할 수 있습니다. 좋은 노래를 차근차근 찾아서 듣고자 한다면 '살펴듣다'입니다. 아무 물건이나 대충대충 사서 쓰고 버리고 하지 않는 매무새라 한다면 '살펴쓰다'입니다. 아무 책이나 숫자채우기처럼 마구잡이로 읽는 몸짓이 아니라, 마음밥이 될 만한 책을 잘 가려내어 읽으면서 내 머리를 슬기롭게 가다듬고자 한다면 '살펴알다'입니다.

생각을 하면 내 생각이 알알이 담기는 말마디를 얻습니다. 생각을 안 하면 내 생각은 한 줌조차 안 담기는 껍데기 말마디만 쏟아집니다. 사진을 하건 글을 하건 그림을 하건 춤을 하건 똑같습니다. 생각하는 사람한테는 길이 열립니다만, 생각을 안 하는 사람한테는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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