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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여행기 1] 제자 만나러 갑니다!

등록|2010.03.05 14:38 수정|2010.03.05 17:50
1시간 째 걷고 있다. 뜨거운 햇볕에 등이 타들어가 걸음이 점점 느려진다. 에어컨 빵빵 틀어주는 차를 타고 싶으나, 그럴 수 없다. 여긴 아프리카 케냐다.

2006년 친구는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 6시간가량 떨어진 카바넷에 있었다. 카바넷에 장애가 있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특수학교(에벤에셀 아카데미)가 개교했는데, 1년 동안 그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올 1월, 3년 6개월 만에 다시 카바넷에 가는 친구를 따라 갔다.

그간 사정이 생겨 친구가 근무했던 특수학교는 문 닫았고, 현재 에벤에셀 아카데미에는 비장애 학생들을 위한 유치원, 초등학교, 고등학교(케냐 학제는 유치원 3년, 초등학교 8년, 고등학교 4년이다)가 있다. 친구는 더이상 학교에선 만날 수 없는 제자들을 만나고 싶어 했다. 당시 함께 근무했던 현지인 보조교사(엘리마)가 몇몇 아이들 집을 알고 있다 해 엘리마를 따라 아이들 집엘 가는 길이다.   

걸어 갈만하다 해서 점심 먹고 출발한 길. 가깝다던 집은 나올 생각을 안 하고 한참 뜨거울 시간이라 걷는 게 점점 힘들다. 더군다나 집을 안다던 엘리마는 정확한 집 위치가 아닌 근처를 안다해 우릴 당황하게 했다. 다행히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 첫 번째 목적지인 데이지네 도착했다. 

싱글 벙글 데이지1시간 걸어 데이지 네 도착! ⓒ 변상화


훌쩍 커버린 데이지는 친구를 기억하는지, 못하는지 연신 싱글벙글이다. 데이지 가족과 인사한 후 데이지를 데리고 두 번째 목적지인 제보이 집으로 향했다. 마침 엘리마가 제보이 어머님과 통화를 해서 제보이 집은 쉽게 찾았다. 집에 들어서니 사람 좋아 뵈는 제보이 어머님이 웃으며 뛰어 오신다. 악수를 청하시나했는데, 일일이 껴안아 주신다. 

제보이 네 가는 길걸어서 걸어서 제보이 네로 간다. ⓒ 변상화


준비 없이 당한 포옹이지만, 기분 좋다. 제보이 어머님 표정을 봤다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인사를 마친 어머니는 마당에 서 있는 우리가 앉을 의자 마련하시느라 바쁘시다. 괜찮다는데도 기어코 인원수 맞춰 의자를 깔아 놓으신 후 친구와 얘기를 시작하셨다. 제보이는 집에서 2~3시간 떨어진 특수학교에 다닌단다. 학기 중엔 기숙사에서 지내기 때문에 제보이는 집에 없었다. 마당을 둘러보던 나는 제보이가 집에 없는 걸 안타깝게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는데, 얘기하는 줄 알았던 어머님은 그새 어디서 났는지 긴 장대를 들고 계셨다.

아보카도 따기어디서 났는지 긴 장대를 들고 오셔, 재빠르게 아보카도 따시는 어머니. ⓒ 변상화


제보이네 마당엔 커다란 아보카도 나무가 있었다. 어머니는 들고 오신 장대로 아보카도를 따셨다. 말리고 어쩌고 할 겨를도 없이 좋은 구경한다 싶은 우리는 어머님 하시는 걸 그저 보고만 있었다. 마당에서 볼일 다 보셨는지, 우릴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신다. 죄송해하는 내게 친구는 '이곳 분들은 손님 오는 걸 좋아해, 그냥 보내는 일이 없다' 며 들어가자 했다. 음료수 한 병과 딱딱한 빵 한 조각이었지만 먹는 물도 부족한 아프리카, 이보다 황송한
대접이 있을까 싶다.  

제보이 네 거실 한쪽 벽에 제보이 아버님 젊었을 때 사진 걸려있다. ⓒ 변상화


집안을 둘러보는데 젊은 남자 사진이 액자에 걸려있다. 궁금해 물으니 제보이 아버님 젊었을 때 모습이라신다. "잘 생기셨는데요." 말 끝나기가 무섭게 어머니는 여러 장의 가족사진을 꺼내 보여 주셨다. 이건 누구고 지금 어디서 뭘 하고, 다 자란 자식들 이야기며 어머니 젊었을 때 이야기까지 한 번 시작한 이야기는 끝날 줄 모른다.

돌아갈 길이 한참이라 음료수 병을 비운 후 일어났다. 마당에 나와 사진 찍고 나서는데, 어머니는 언제 챙기셨는지 찢어지기 직전인 봉지 두 개를 들고 오신다. 봉지 안엔 아까 딴 아보카도와 감자가 한 가득이다. 별 생각 없이 빈손으로 간 게 부끄러워 "저흰 빈손으로 왔는데, 죄송해서 어째요" 했더니 우리가 온 게 어머님께 기쁨이라신다. 돌아오는 길 형편이 어려운 데이지 집에 아보카도와 감자를 떨어뜨려 놓고 왔다.

많이 가져야만 아니 적어도 내 것을 챙긴 후에만 베풀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이 먼 곳에 와서 배운다. 제자 만나러 갔다 스승 만나고 왔다.

빠질 수 없는 단체사진왼쪽부터 언니, 데이지, 나, 오빠, 친구, 제보이 어머님, 엘리마 ⓒ 변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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