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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평가, 초등 5학년은 점심 굶고 봐라?

[일제고사의 문제⑤] 5교시 시험에 점심시간 0분... 말 많은 교과학습진단평가

등록|2010.03.06 21:18 수정|2010.03.07 21:15
"수업 후 3~5학년 교사들은 모이라"는 이야기에 교무실로 갔다. 9일에 볼 교과학습 진단평가에 대한 협의를 하기 위해서다. 교육청에서 열렸던 회의 결과와 시험날 주의사항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자료를 보다 보니 시간표가 이상했다. 점심시간이 없어진 것이다. 아무리 시험이라도 아이들 밥은 먹여야 하지 않겠냐고 했지만 전국적으로 보는 시험이니 학교 맘대로 시간을 조정할 수는 없어서 안 된다고 하였다.

작년 점심시간은 40분, 올해는 아예 없어

올해 시험은 초등학교 3~5학년이 본다. 3학년은 국어와 수학 2개 과목이고 4~5학년은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영어 5개 과목이다. 이것을 점심도 먹지 않고 다 풀게 하겠다는 의도이다. 4학년은 영어 시험이 20분이라 12시 40분에 끝나는데, 5학년은 1시에야 끝이 난다.

▲ 3월 9일 보는 초등학교 교과학습진단평가 시간표입니다. 3학년은 2교시로 끝나는데 4, 5학년은 점심도 먹지 않고 5교시 시험을 봐야 합니다. 시험이 먼저인지 아이들이 먼저인지 궁금합니다 ⓒ 신은희


보통 아이들 점심 시간은 12시 10분이나 20분에 시작되니 40~50분이나 늦어지는 셈이다. 가뜩이나 시험 볼 때는 긴장하고 탄수화물 소비가 많아지는데 밥 먹는 시간까지 늦어져 5학년 아이들이 힘들게 생겼다. 시험이란 형식 자체가 평소와 다르기 때문에 자기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기가 어려운데 극기훈련까지 해가며 아이들을 제대로 진단할 수 있을까?

점심시간이 문제가 된 것은 올해만이 아니다. 작년에도 점심 시간이 40분밖에 되지 않아 학교마다 문제가 되었다(점심시간 줄여 시험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 학급수가 많아 돌아가면서 먹기 때문에 실제 점심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 올해는 그나마 아예 없애 버리다니 대체 무엇 때문일까?

중학교는 점심시간이 60분이나 되는데

이건 중학교와 비교해도 너무 심하다. 중학교도 똑같이 5개 과목에 시험문제가 30문제씩인데 점심시간이 60분이나 있다. 쉬는 시간도 15분으로 초등학생보다 5분이나 많다. 신체 피로도가 초등학생이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텐데 이렇게 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러고도 교과부 장관과 시도교육감들은 자기들만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을까?

▲ 3월 9일 중학교 진단평가 시험시간표입니다. 중학교는 점심시간이 60분이고 휴식 시간도 15분입니다. 시험문제는 초등학교나 중학교나 모두 30문항입니다. ⓒ 신은희


이 시험은 교과부가 본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도 아니고 대구교육청에서 낸 문제를 시도에서 자율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기본적인 것조차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시행하는 것인지 의아하다.

초등학교 3학년이 어떻게 OMR카드를?

올해 진단평가 계획에서 문제가 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초등학교 3학년은 올해 처음 시행대상에 포함되었는데, 처음에는 기초학력평가라고 했다가 나중에 초등학교 2학년 내용을 보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에 대한 어떤 설명도 없었고, 교과부가 나중에 초등학교 3학년 기초학력평가에 대한 전형을 제시한다고 한다. 그러면 전형을 만들 때까지 가만히 있을 것이지 왜 시험을 보겠다는 것인가?

게다가 일부 지역에서는 3학년까지 OMR답안지를 쓰라고 한다. 오늘(6일)까지 파악해본 결과 충남, 충북, 경기, 인천은 답안지에 쓰는데 서울, 대구, 경북은 OMR답안지를 내라고 하였다. 아이들 수준을 생각한다면 과연 이게 가능할까?

4학년도 처음 보는 시험이지만 3학년 아이들은 이제 막 2학년에서 올라와서 교과 이름들도 낯설고 30문제를 보는 형식도 익숙하지 않다. 학교에서는 보통 20~25문제를 보기 때문이다. 시험지 장수도 8장이라 펼쳐가며 시험지 푸는 것 자체가 고난이다. 1~2학년 때보다 작아진 공책칸에 글씨를 쓰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OMR카드의 작은 칸을 메울 수 있을까? 그것도 써보지도 않았던 수성사인펜으로.

▲ 초등학교 3학년 교과학습진단평가 OMR답안지입니다. ⓒ 신은희


과연 3학년 교실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마 시험지 8장 왔다갔다 하는 것만으로도 미로찾기가 될 것이다. 시험지를 펼치면 책상보다 커질 테니 떨어지고 답에 표시하다 찢어지고 구멍 뚫어지고 당황한 아이들 중에는 우는 아이도 생길 게 뻔하다. 3학년 수준이면 선생님에게 왜 자기에게 이런 걸 시키냐고 화내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OMR카드는 더 기가 막히다. 고학년도 칸 안에 색칠하는 게 쉽지 않고 답을 옮기는 것이 미숙해서 6학년 선생님들도 시험 내내 수정테이프로 고쳐주느라 진땀을 뺀다. 당연히 아직 손가락 근육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3학년에겐 더 무리다. 그래서 2008년도 10월에 본 국가수준기초학력평가의 경우 학생들은 답안지만 작성할 뿐이었고 교사들이 일일이 프로그램에 답을 체크해 넣었다. 그런데 이제 2학년에서 올라온 아이들에게조차 OMR카드 작성을 시키는 의도가 무엇일까?

책임 회피하려고 시행 근거도 생략

과연 진단평가 때문에 점심도 굶고 초등학생에게 힘든 OMR카드 작성까지 하면서까지 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것일까? 담임교사가 학기초부터 꾸준히 여러 경로로 아이들을 파악하고 있고 학교 수준에서 자율적으로 보면 될 것을 자꾸 강제로 전국시험을 보게 하니 형식만 강화되고 있다. 휴대폰 수거는 기본이고 책상 줄까지 일일이 규정하고 있다. 영어 듣기 평가도 딱 1번만 들려주란다.

■ 시험실 설치
  ○ 책걸상 배열 : 수험번호 순, 5열×7명(35명 초과 학급은 5열×8~9명)
  ○ 실내 게시물 : 전면의 게시물 제거 또는 은폐
- 강원, 대구 교육청

그러면서 정작 이 시험을 누가 주최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이 없다. 교과부는 7월 학업성취도평가에 대해서만 보도자료를 내고 학교로 온 공문에는 주최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다.

2010년 ㄱ과학습 진단평가 시행 근거
<서울>
○ 교육인적자원부 고시 1997-15(제7차 초․중등교육과정)
○「생애초기 기본학습능력 지원계획」국가인적자원위원회 심의(´07.7.27)
○ 국정과제(2-7-1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 시스템 구축)
○ 서울특별시교육청 초등교육정책과(2010.02.25)

<충북>
○ 교육인적자원부 고시 2007-79(제7차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 충청북도교육청 고시 제2008-14호(2008.12.30.)
○「생애초기 기본학습능력 지원계획」국가인적자원위원회 심의(´07.7.27)
 ○ 국정과제(2-7-1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 시스템 구축)

작년에 비하면 아주 간단하다. 학교의 교육과정이나 평가는 법률로 규정하라고 되어 있는데 자기들이 만든 각종 규정을 근거로 대는 걸 보니 아주 궁색한 논리다. 강원도 교육청은 시행근거를 아예 한 줄도 쓰지 않고 실시요강만 내려보냈다.

2009년 교과학습 진단평가 시행 근거
 ○ 초․중등 교육법 제23조(교육과정등)
○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20조(관장사무)
○교육과학기술부 고시 1997-15(제7차 초․중등교육과정고시)
○교과부 학력증진지원과-220(2009.02.08) 교과학습 진단평가 시행계획
○서울특별시교육청 「학습부진 및 학력격차 해소 방안」(2009.02.17)
○초등교육정책과-3327(2009.02.23) 교과학습 진단평가 시행계획
○진단평가 시행시기변경 협조요청(교과부 학력증진지원과-565, '09.3.1)
- 서울시교육청 시행 근거


작년 12월 중학교 전국연합학력평가 실시 근거를 장황하게 늘어놨던 것에 비해서도 궁색하다(충북교육청, 일제고사 실시 근거를 말하다). 이는 현재 서울과 강원 해직교사 법정에서 교과부 장관과 시도교육감의 평가권에 대해서 다투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정도 시험을 보려면 책임소재는 명확해야 하는 것 아닐까? 나중에 고발당할 게 두려워서 시행 근거조차 제대로 못 밝힌다면 이런 시험을 보는 대한민국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경기도교육청은 학교와 학생 선택권 열어줘

▲ 3월 9일 서울의 해직교사들이 체험학습을 진행합니다. 학기 초 진단활동은 사지선다 시험지로 되는 게 아닙니다. 학생의 댜양한 면을 진단하면서 한 해살이 계획을 세워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국가나 시도교육청이 강제하기보다 학생과 학부모, 담임 교사가 협동해서 이루질 때 제대로 된 진단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 신은희

솔직히 교사나 학부모 처지에서는 아이들에게 이런 시험을 보게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시험 수준이 좋은 것도 아니고 담임 선생님이 잘 가르칠 수 있도록 지원하면 될 것을 불분명한 기준으로 도달/미도달을 가리는 것이 어떤 도움이 될까? 도달이면 도달대로 기분이 안 좋고 학기초부터 미도달로 판정받는 것도 기분이 안 좋은 일이다.

이 때문에 교과부 민원실에 전화를 걸어 학부모로서 교과학습진단평가를 굳이 보게 하기 싶지 않은데 선택권이 있냐고 물으니, 반드시 전수평가를 해야 하므로 없다고 한다. 시험을 안 보면 결석이라고 하였다. 결석을 하지 않고 학교에 가서 시험을 안 보면 되지 않냐고 하니 대답을 못한다. 자율, 자율 강조하면서 책임은 방기하더니 정작 학부모나 학생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는 건 왜일까?

3. 기본방침
교과학습 진단평가 시행여부는 학교 자율로 결정함(학교별, 학생별 선택권 부여) - 경기도 시행 공문

이런 가운데 경기도교육청만 유일하게 학교와 학생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만약 그런데 왜 항상 다른 시도교육청은 교과부가 시키는 대로만 하는 것일까? MB경쟁교육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세술만 남아 있는 시도교육청이 참으로 보기 안타깝다.
덧붙이는 글 교과부는 더 이상 뒤에 숨지 말고 당당하게 밝히고, 시도교육청도 불필요한 일제고사를 당장 폐지하고 교사에게는 평가권을, 학부모에게는 선택권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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