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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게 묻고 아프게 답하는 삶터 소리들

송경동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을 읽다

등록|2010.03.07 18:37 수정|2010.03.07 18:37

송경동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사소한 물음들은 우리 가슴을 아프게 울리고 저들 가슴을 아프게 찌른다 ⓒ 창비


작년부터 슬픔을 가득 담았으나 빛나는 눈빛을 가진 젊은 시인에게서 부쩍 많은 전화를 받았다. 부끄럽지만 한 때 시인을 꿈꿨으나 너무 어려워 가지 않은 길. 그 길을 가는 사람에게 '형님' 소리 들으며 사는 것만으로도 기쁜 일인데 자기랑 같이 걷자고 하니 나는 감지덕지.
그런 그가 시집을 조용히 냈다. 용산 학살 문제가 한 숨 멈추게 될 무렵이었다. 그래서 사실 알리지도 않으려 했다며 조용히 말하던 그가 더 이뻤다.



그러나 그날 출판기념회에는 그가 뛰어다니던 삶터 현장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함께 했었다. 축가를 부르러 나왔던 노래패는 "우리보다 송경동 시인 동원 능력이 더 좋은 거 같다"며 농을 쳤다. 그렇게 왁자한 판에서 받아 왔던 시집 <사소한 물음에 답함>(창비 펴냄)을 잠깐 읽고는 '용산' 책들이 꼽혀있는 책꽃이에 꽂아놨었다.

오늘 책을 꺼내 다시 읽다보니 처음 볼 때처럼 그대로 내 가슴을 울린다.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학생이 아니다
졸업한 지 오래됐다
당신은 노동자다 주민이다
시민이다 국민이다 아버지다
가정에서 존경받는 남편이고
학부모며 집주인이다
환자가 아니고 죄인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 모두다
아침이면 건강쎈터로 달려가 호흡을 측정하고
저녁이면 영어강습을 받으러 나간다
노동자가 아니기에 구조조정에 찬성하지만
임금인상투쟁엔 머리띠 묶고 참석한다
집주인이기에 쓰레기매각장 건립엔 반대하지만
국가 경제를 위한 원전과 운하 건설은 찬성이다
한 사람의 시민이기에 광우병 소는 안되지만
농수산물 시장개방과 한미FTA는 찬성이다 학부모로서
학교폭력은 안되지만, 한 남성으로
원조교제는 싫지 않다 사람이기에
소말리아 아이들을 보면 눈물나고
미군의 아프가키스탄 침공에는 반대하지만
북한에 보내는 쌀은 상호주의에 어긋나고
미군은 절대 철수하면 안된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인가?

종이컵에 그린 송경동 시인. 새해 콜텍콜트악기 노동자들과 만난 술자리에서 그린 송경동 시인. 나도 술에 취해서 그린 탓에 실물보다 너무 잘 그려줬다. ⓒ 이동수

위 시는 송경동 시인(!)의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창비시선 310)에 마지막으로 실려 있는 시다. 다른 시들도 가슴을 울컥하게 하지만 나는 이 시가 특히 마음에 닿아 떠나질 않는다. 아마도 내 스스로에게 하는 아픈 물음이고, 사람들에게 하는 아픈 물음이란 생각이 진하게 남아 있나보다.

시는, 예술은, 창작은 우리의 삶 속에서 나올 터. 그래서 삶 속에 뛰어들어 사는 사람만이 제대로 된 시를 쓰고 창작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삶 속에 뛰어들어 고민하고 문제와 싸우는 과정에서 비로소 문화예술 꽃이 피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요즘 그는 미술판에도 얼쩡대고 있는 듯 하다. 아마도 글쓰기보다 그림 그리는 게 더 쉽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거나(?) 아니면 그림 못그리는 설움을 혼자 삭혀왔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건 나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그를 따라갈 자신은 없지만 그를 모른체 할 자신도 없음을 인정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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