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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불 정책 폐지, '무조건 반대'하진 않겠어요

[주장] 학벌사회 해소에 초점 맞춘 여러 대안이 있습니다

등록|2010.03.09 15:29 수정|2010.03.09 15:29
3불 폐지(고교 등급제·기여 입학제·본고사 부활)와 관련한 언급이 대학가를 비롯한 교육계를 한 바탕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이번엔 정운찬 총리가 포문을 열면서 불거졌습니다. 지난 2월 28일 정 총리는 "이제는 대학에 자율을 줘야 한다"며 "3불에 대해 잘 연구해보겠다"고 밝힙니다. 3불 폐지 검토를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정운찬 총리의 언급을 전후로 주요 사립대 총장들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총리 발언 이전인 지난 2월 23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차기 회장인 이기수 고려대 총장은 "사회적 합의가 있으면 3불 정책 폐지 가능" 취지의 말을 합니다. 총리 발언 이후인 지난 2일에는 김한중 연세대 총장이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기여입학제는 아직 국민 여론의 지지를 받기 힘들지만, 고교등급제와 본고사 규제 조항은 폐지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뒤이은 3일, 정운찬 총리가 "고교등급제는 이미 현실적으로 무너진 제도"라고 말하면서 3불 폐지를 또다시 시사합니다. 이에 대한 반응은 예의 찬반입니다. 정치인이든 언론이든, 대체로 보수는 '폐지 찬성', 진보개혁은 '폐지 반대'입니다.

'3불 폐지'는 원래부터 2012년 이후

▲ 정운찬 총리 ⓒ 남소연

그런데 3불은 예정대로라면 2012년 이후 폐지됩니다. '대입자율화'가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3단계로 짜여진 이 정책은 지금 한창 1단계가 진행 중입니다. 대교협으로 대입업무가 이양되었고, 입학사정관제는 확대되고 있습니다. 신입생의 출신학교 종류는 특목고 졸업생이나 일반고 졸업생 등의 형태로 공시될 예정입니다.

2단계는 수능과목 축소인데, 구체적인 방안이 지난 2008년 12월에 이미 발표된 바 있습니다. 실시 시기는 2012학년도 입시부터입니다. 내년, 2011년 가을 수능부터 한 과목이 줄어드는 겁니다.

마지막 3단계는 '완전 자율화'입니다. 정부의 로드맵에서는 2013학년도 입시, 즉 2012년 이후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고3 학생은 입학사정관제, 고2 학생은 수능 응시과목 축소, 고1이나 중3 학생은 완전 자율화가 적용됩니다.

이렇게 보면 3불 폐지의 시점은 멀지 않았습니다. 최소 2년 남았습니다. 사회적으로 논의되면서 관련 제도를 고치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남은 시간은 더 짧아집니다. 따라서 정운찬 총리의 발언이 '갑자기' 또는 '뜬끔없이' 나온 것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진보개혁은 껍데기만 남은 3불을 부여잡을 수도

현 정부는 하겠다고 밝힌 정책은 꼭 했습니다. 공사 시점 맞추는 것처럼, 주어진 시기가 도래하면 실시한다고 발표합니다. 대입자율화도 비슷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2012년이면 임기말이지만, 미리미리 사전포석을 깔아두면서 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과 시간표가 아닙니다. 진보개혁세력의 대응입니다. 3불은 전통적으로 찬반 프레임입니다. 보수는 폐지 찬성, 진보개혁은 폐지 반대입니다.

하지만 진보개혁이 승리하여 3불이 유지되어도, 상황은 전과 같습니다. 3불이 유지된다고 해서 우리의 교육이 좋아지지 않는 겁니다. 더구나 본고사는 대학별 고사의 '본고사형 논술'이 있습니다. 고교등급제의 경우는 연고대 등에 외고 학생이 많이 입학한 점에 비추어볼 때 유사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수능점수도 공개되고, 일제고사 점수도 학교별로 공시될 예정이기 때문에, 입학사정관제와 맞물려 소위 '고교 특성 반영'의 형태로 알게 모르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보수세력이 내놓을 '3불 폐지'에 대해 진보개혁세력이 "그러면 안 된다"고 목소리 내는 건 곤란합니다. 3불이 폐지될 경우의 부작용이 만만치 않지만, 자칫 '반대만 하는 진보개혁' 이미지가 고착될 수 있고, 3불 폐지 논란에서 이기더라도 현상 유지이기 때문입니다.

'공정한 경쟁'의 틀에 근거하여 '플러스 알파'를 제시해야

▲ 서울지역 외고 입시가 치러진 지난해 12월 8일 오전 서울 광진구 중곡4동 대원외고에서 수험생들이 고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 권우성


여기서 반면 교사로 삼아야 할 부분은 정두언의 '외고 폐지'입니다. 진보개혁세력의 전통적인 의제를 한나라당 실세 의원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진보개혁의 설 자리가 사라진 바 있습니다.

3불 폐지 논란도 비슷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운찬 총리의 원래 소신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3불 폐지만을 카드로 꺼낼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서울대 총장으로 재직하면서 '지역균형선발'을 도입한 전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뭔가 병행하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학력사회나 학벌사회 해소책과 함께 제시하는 모양새입니다.

이런 이유로 미리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3불 폐지 논란이 벌어지는 시점에 맞춰 "그러면 안 된다"가 아니라 "이렇게 바꾸어 미래를 선도하자"는 그림으로 맞불을 놔야 합니다. 그 구도는 '공정한 경쟁'이 적합하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3불이 폐지될 경우, 경제력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불공정한 대입경쟁이 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대입입시뿐만 아니라 학벌사회에서의 불공정을 시정할 수 있는 방안, 예컨대 대학의 기회균형선발 확대, 공공부문 채용과 승진시 학력과 학벌 안 보기, 이력서에서 학력란 없애기, 지역인재 할당, 국공립대 통합전형이나 공동학위, 서울대 수준의 대학 많이 만들기, 직업교육 트랙이나 평생교육시스템의 획기적인 개혁 등 중에서 현실적인 방안을 내놓는 게 좋습니다. 우리나라 대학의 폐쇄성을 극복하고 대학간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학점교류 확대나 전학 허용도 해볼만 합니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은 매달 열리는 교육개혁대책회의에서 교육부문을 직접 챙기겠다고 밝혔습니다.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무상급식이나 3불 폐지 등이 앞으로 여기서 논의될 것으로 보입니다. 무슨 의제가 어떤 방향으로 튈지 모릅니다. 이 정부는 '서민 행보'나 대학등록금 후불제로 한 차례 재미를 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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