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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지리산

또 다른 봄의 여운

등록|2010.03.09 18:53 수정|2010.03.09 18:53
"봄을 찾아왔더니, 눈 덮인 산이 인사하네."

봄이 어디쯤 왔는지 궁금하여 집을 나섰다. 마음에는 이미 봄이 와 있는데, 체감하는 기온은 차갑다. 아직은 봄이 이르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남쪽에는 봄이 왔을 것이란 생각이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게 만들었다. 조급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봄을 찾아 나섰는데, 정작 맞이하는 것은 눈내린 산이었다.

어머니 산지리산 ⓒ 정기상


지리산. 노란 산수유가 피어 있는 고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산에는 눈이 쌓여 있었다. 그러나 지리산 산봉우리 위의 눈은 눈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넉넉한 마음을 가진 할아버지의 하얀 수염처럼 보인다. 누구라도 모두 다 수용하시는 고향 마을의 인자한 할아버지의 얼굴이시다. 바람에 흩날리는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너털웃음을 웃고 있는 것 같다.

산은 할아버지를 닮아 있었다. 고향을 지키면서 평생을 살아오신 할아버지의 가슴은 포근하다. 할퀴고 떠나간 자식들일지라도 원망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 그런 분이다. 고향을 떠나는 자식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분이시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막무가내로 떠나가는 자식들의 앞날을 진심으로 축복해주시는 그런 분이시다.

눈 덮인지리산 ⓒ 정기상


봄을 찾아 나선 길에 조우한 산은 그래서 더욱 더 정겨운지 모르겠다. 생각하지도 않은 만남이지만 아무런 부담 없이 편안하게 대할 수 있는 것은 산의 넉넉함 때문일 것이다. 누구라도 포용하는 산의 여유로움 때문일 것이다. 말없이 바라보고 있지만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믿고 의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산이 믿음직스러운 것은 깨어 있기 때문이다. 자리만을 지키고 있다고 하여 모든 것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니다. 깨어 있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아무리 오랜 세월 동안을 자리를 지키고 서 있어도 깨어 있지 않으면 주인 의식을 가질 수 없다.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없다면 그 삶은 비어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봄의 흥흥겨움 ⓒ 정기상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 된다는 말은 깨어 있어야 가능해진다. 깨어 있다는 것은 자각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자아정체성을 분명하게 인식하고서 나아갈 바를 분명히 알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분명하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삶이 바로 깨어 있는 삶이다. 그런 사람은 산처럼 넉넉함이 배어날 수 있다.

깨어 있는 사람은 포기하지 않는다. 넘어야 할 고개가 아무리 높고 힘들어도 상관하지 않는다. 극복해야 할 아픔이 아무리 크고 힘들어도 중간에서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그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나면 환하게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포기할 수가 없다. 포기하지 않고 일을 마무리 하였을 때의 보람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고향이 그리워지는산 ⓒ 정기상


봄을 찾아 산동에 와서 생각지도 않은 지리산을 보고 고향의 할아버지를 생각하였다. 노란 산수유 향도 좋지만 그에 못지않게 하얀 수염을 바람에 날리고 있는 지리산의 모습도 좋았다. 사람들이 왜 지리산을 좋아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봄꽃이 만발한 가운데에서 하얀 눈이 쌓인 지리산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색달랐다. 또 다른 봄의 여운이었다.<春城>
덧붙이는 글 데일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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