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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노동자 만나러 현해탄 건넌 사람들

다시 평택 쌍용차 공장 앞에서... 일본 대학생 방문단과 함께

등록|2010.03.10 11:55 수정|2010.03.10 11:55
3월 3일 일본에서 10여명의 대학생들이 쌍용차를 방문했다. 그들 중 일부는 작년 11월 7일 한국을 방문 한 적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들을 안내하기 위해 평택역으로 갔다. 내 차와 택시 2대에 나눠 타고 쌍용자동차 지부 겸 정리해고자 특별위원회 사무실에 도착했다. 정말 봄기운이 느껴지는 날이다. 마침 사무실 이사 가는 날이었다. 2층 사무실에서 분주하게 이삿짐을 내리고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신임 지부장을 비롯한 간부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몇 차례 방한한 학생도 있었고 처음 온 학생도 있었다. 일본 대학생들은 지난 해 발간 한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 사진첩도 보았고 인터넷 등을 통해 투쟁 전후를 많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구속된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등 연대해 왔다. 일본 주일 한국대사관에 항의방문을 한 적도 있었다. 사무실 짐을 정리하는 탓에 오랜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용역경비에 가로막힌 쌍용자동차 정문

사무실을 나와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시위대가 경찰 물대포와 최루 헬기에 의해 일방적으로 밀려났던 법원 사거리를 지나 3Km쯤 달려 칠괴동 쌍용자동차 공장 정문 앞으로 갔다.

방문단원들은 정문 건너편 정확히 말하면 가족대책위(아래 가대위)가 천막을 치고 농성하던 인도 쪽에 서서 공장을 향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쌍용차 동지로부터 지난 해 투쟁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그러자 공장 정문을 지키던 용역들이 달려와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한다. 곧 이어 정문 수위실에서 경비책임자급 간부가 나와 회사 동의 없이 사진 찍으면 안 된다고 위협한다. 공장 앞 도로에는 가끔 트럭들이 공장을 드나들 뿐 황량함 그 자체였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치열했던 77일간의 투쟁을 모두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소위 죽은 자들이 밀려나고 산 자들이 죽은 자처럼 일하는 절망의 공장 앞에서 동원된 용역깡패들과 실랑이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공장 주변에는 병영기지처럼 건장한 체구의 용역들이 눈을 번뜩이고 있다. 언제든지 폭력경찰이 달려 올 연락망을 갖추고 있었다.

2천여명 쌍용차 노동자 실업에 빠진 평택

운영자금 1000억 원이 없어 공장을 계속 가동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며  쌍용자동차 사측과 산 자들이 만든 노동조합은 정부에 돈을 구걸하고 있다. 가대위 동지들이 절규하며 말하듯 쌍용차 노동자들은 밥 한 공기를 반 공기씩 나누어 먹으며 "같이 살자!"고 요구한 죄 밖에 없다.

그러나 정권과 자본은 노동자들을 일방적 정리해고하고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그리고 90여 명의 구속과 수백억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좁은 지방 도시 평택에 2000여 명의 쌍용차 실업자들이 생존의 바닥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파업 투쟁과정에서 충격을 받은 노동자들과 가족들은 심신이 병들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옥이다. 쌍용자동차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안팎으로 노동자들이 보이지 않을 뿐 전쟁은 치열한 진행형이었다. 동지를 배신한 산 자들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자본과 정권에 있어 산 자들 또한 폐기처분의 순차적 대상일 뿐이다. 자본의 분할 지배에 이용당하는 노동자들 그래서 자본주의 체제에 내면화된 노동자들의 삶은 서럽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자와 죽은 자는 순차적 폐기대상일 뿐

방문단은 다시 사무실 근처로 돌아왔다. 설렁탕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방문단이 점심값을 내기도 전에 지부에서 점심값을 지불했다. 투쟁하느라 재정이 부족할 텐데 어떻게 하느냐고 말하자 해외에서 투쟁을 격려하고 연대하기 위해 찾아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한다. 일본 방문단은 점심값을 대신해 투쟁기금을 전달했다.

점심 식사 후 평택 구치소를 방문했다. 마침 몇 몇 동지들이 수원구치소로 이감되는 말이었다. 호송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평택구치소는 지부장을 비롯해 서너 명만 남게 되었다. 오전에 면회가 끝난 관계로 서신만 넣을 수밖에 없었다.

일본방문단은 한자를 포함해 정성스럽게 편지를 썼고 통역이 대략 우리말로 요약해 첨부했다. 일본노동운동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자본과 권력에 의해 탄압받아 약화되고 체제내화 되었다. 일본의 진보적이고 계급적인 운동진영은 그들의 노동운동을 복원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다. 쌍용차 방문도 그 일환이다. 그런데 한국의 노동운동진영은 지금 쌍용차 투쟁을 기억하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도 치열하게 계속되고 있는 쌍용차 투쟁에 연대하고 있는지 되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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