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집에 불이 났다, 나는 뛰어들 수 있을까?
[고창사람들] 무장 죽산가든 가족들의 행복에는 이유가 있었다
우연히 한 번 만난 사람이 문득문득 생각나는 경우가 있다. 어떤 때는 꿈에서도 보이고, 잠에서 깨는 순간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람은 없는 시간이라도 쪼개서 반드시 한 번은 더 찾아가봐야만 한다. 무시하고 넘어가면 두고두고 빚쟁이처럼 떠오르기 마련이니까.
이러한 예감은 거의 틀리지 않는다. 뭔가 존경하고 싶고, 없는 정 빚을 내서라도 나누고 싶어지는, '그 사람'을 알게 된 것이 너무나 고마워서 거기까지 굳이 한 번 더 찾아갈 생각을 했던 나 자신이 대견하고 기특해질 지경에 이르고 만다.
고창군 무장면 <죽산가든>, 지난 해 연말 어느 저녁에 그저 소주나 한 잔 하자고 해서 따라간 집이었다. 이름이야 가든이지만 샌드위치 판넬을 이용한 조립식 건물에 살림집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라 거실을 편의상 중앙홀이라 부를 만했고, 안방은 1호실, 건넌방은 2호실 그리고 마당은 그야말로 '가든'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아이들 소리가 마치 유치원에 온 것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로 요란했다.
아이들이 많지는 않았다. 3살에서 5살, 6살쯤의 고만고만한 아이들 셋이 중앙홀의 탁자 두 개를 번갈아가며 올라갔다 내려갔다 깔깔거리며 뒤집어지고 있었다. 그 활달한 자유분방함이 어찌나 낯설고 인상적이게 부러웠던지 한참이나 우두커니 선 채로 보고 있는데 일행 중 한 사람이 옆에서 한 마디 하고 있었다.
"이 집은 언제 봐도 가축적이라니께."
계산대 옆에 앉아 있던 주인 남자(임만제 65세)는 들어서는 손님을 향해 어서오시라고, 적당히 아무 데나 자리를 잡으시라고 인사를 건네고는 이내 아이들을 쳐다보며 말없이 빙그레 웃고나 있었고, 주방에서는 아이들의 엄마와 할머니가 교대로 한 번씩 아이들을 내다보며 다칠라, 다칠라, 걱정 아닌 걱정이나 하고 있을 뿐 손님 오셨으니 조용하라거나 다른 데로 가라거나 영업집이라면 으레 있을 만한 그 어떤 잔소리도 참견도 없이 하던 일이나 계속 하고 있는데, 순간적으로 나는 음유시인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있었다.
아, 이 사람들이야말로 시인들이다. 시인 중에서도 유행을 거부하는 문제적 시인들이다. 가족 전체가, 식당 전부가, 사람과 건물과 기물들이 한데 어우러져서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야,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뭐 다른 게 있겠어, 하는 제목의 기막힌 시를 낭송하고 있구나.
그런저런 감상에 젖은 채로 소주를 마셨고, 취했고, 이제 그만 돌아가자 하고 일어서서 엄벙덤벙 돈 낼 사람은 계산을 하고 나는 계산할 자신이 없어서 쓸데없이 이것저것 딴전이나 피우는 중인데 어라, 이상하다, 저 아이가 왜 저러지, 하는 꼭 그런 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맨 처음 들어설 때 동생들과 탁자 위를 오르내리며 깔깔거리며 뒤집어지던 꼬마 숙녀께서 손님들이 일어선 뒤의 탁자를 정리하고 있는 거였다. 더 어린 꼬마들은 그 사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데 가장 연장자인 6살쯤의 아이가 작은 쟁반을 들고 탁자 앞으로 다가서더니 소주잔이며 물그릇 같은 간단한 기물들을 치우고 있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뭐 그런가보다 하는 정도였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뭐 그런 정도는 할 수도 있겠지 그런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꼬마 아가씨 그 정도에서 멈추지 않는다. 술병을 치우는가 싶더니 지저분하게 남겨진 찌개냄비까지 치우겠다고 덤비는 것이었다. 꼬마 숙녀의 그런 모습을 보고 내가 그만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 세상에,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는가. 어른들이 시켜서 하는 일 같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마디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거 완전히 아동노동이요, 착취인데, 가르치신 거예요?"
"아이고, 우리도 몰라요. 지 에미, 할미가 노상 하는 일이니께 저도 해보는 것이겠지만서두. 세상에 어떤 부모가 새끼한테 그런 것을 가르치겠어요?"
그래, 그런 질문을 한 내가 어리석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가 아니라 있다, 라는 의식이 나를 조종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랬을 것이다. 서비스라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 중에서도 한 수 아래라는 그런 어떤 관념이 내게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만한 나이쯤의 아이라면 마땅히 그림책이나 인형 같은 것을 들고 있어야 한다는 선입견이 내게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다소는 민망한 기분인 채로 돌아왔고, 그리고 잘 잤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방안 가득 전날의 그 풍경이 펼쳐지는 것이었다. 그 풍경 속에서 나는 주인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두부를 안주로 막걸리를 파는 오십여 평 규모의 술집에 어느 날 불이 붙었다. 한낮이라 손님은 물론 주인도 없었다. 그때 마침 그 옆을 지나가는 삼십대 초반의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연기를 발견한 순간 즉시 차를 세우고 소방서에 전화를 했다. 그리고 불 속으로 뛰어들어 가스통 두 개를 밖으로 꺼내놓고, 소방차가 오는 것을 확인한 뒤에 집으로 돌아왔다. 이 남자가 꼬마숙녀의 아빠였다.
그리고 며칠 뒤에, 꼬마 숙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러니까 죽산가든 주인 내외가 단체손님 예약을 받고 시장을 보러 가던 길에 우사에 불이 붙은 것을 발견했다. "어매 저기 불났나보네." 아내가 소리를 질렀고, 남편은 즉시 차를 세우고 뛰어갔다. 소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처절하게 들리고 있었고, 입구는 쇠사슬로 묶인 채 자물통이 채워져 있었다. 주인은 물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증거였다.
급하게 망치를 가져다가 자물통을 내리쳤지만 끄덕도 하지 않았다. 불은 우사의 중앙에서 타고 있었고, 우사 전체는 두터운 방수천으로 바람막이 겸 울타리가 되어 있었다. 남편이 망치로 자물통을 내려치고 있는 동안 아내는 차 안에서 커터 칼을 가져다가 방수천을 북북 찢어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털에 불이 붙어서 펄쩍펄쩍 뛰는 소들이 눈을 채웠다. 불이 붙지 않은 소들은 겁에 질려서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슬프게 울어대고 있었다. 여기서 무엇을 더 생각하랴. 그녀는 칼로 방수천을 북북 찢어서 소들이 탈출할 수 있도록 유도해 나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러 소방차가 오고 인근 마을 사람들이 몰려왔을 때, 그제야 죽산가든 주인 내외는 단체손님 예약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내고는 부랴부랴 시장으로 달려갔다는 것이었다.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준 이유는 "살다 보니 별 이상스런 일도 다 있어라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들과 그 부모가 사흘 차이로 비슷한 일을 밖에서 겪을 수도 있다는 게 참 신기하다는 뜻이었다. 나 또한 그때는 그런 이야기가 일상생활의 한 부분인 것처럼 여겨졌을 뿐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그 이야기와 함께 꼬마숙녀의 얼굴이 떠오르더니 어딘가에서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아', 하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자, 나는 과연 그런 상황을 발견했을 때 어찌 할 것인가. 나도 그렇게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들 수 있을까.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다. 해서 가까이 지내는 후배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너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후배는 "글쎄요"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무래도 어렵겠지요. 모르는 체하고 그냥 가버리는 일이야 없겠지만, 소방서에 전화를 하는 선에서 끝내지 않을까요?" 하는 것이었다.
그래, 나도 그럴 것 같다. 불이 났든 뭐가 어떻게 되었든 어쨌든 남의 집인 것이다. 주거침입이 되는 것이다. 무엇이 나를 이런 소심한 겁쟁이로 만들었느냐를 따지기에 앞서, 어쨌든 나는 순간적으로 후일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불 타는 집으로 뛰어들었는데 뛰어드는 순간 불이 꺼져 버려서 내가 할 일이 아무것도 없게 되었다면, 나는 그냥 주거침입자가 된다는, 그런 막연한 공포 내지는 피해의식 같은 것이 현대를 사는 내게 침투해 있다는 것을 나는 부인하지 못하겠다. 어쨌든 그것은 지하철 선로에 추락한 행인을 구하기 위해 선로로 뛰어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들 가족은 어떻게 그렇게 선뜻 뛰어들 수 있었을까. 만약에 생각과는 달리 화재가 아니었다면, 화재라 해도 아주 경미해서 금방 꺼지고 말았다면, 그때는 꼼짝없이 무단침입에 남의 재산을 손괴한 범죄가 되고 마는 것 아닌가 말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들 가족은 뛰어들어서 남의 재산일망정 피해를 최소화시켜 주었다. 그렇다면 그 사상적 배경은 무엇인가.
어리석게도 나는 그 뒤로 3개월여가 지난 즈음까지도 그런 생각에나 빠져 있었다. 그러다가 기어이 찾아가서 가르침을 받기로 했다. 그런데 식당에 손님이 워낙 없다 보니 문을 닫고 다른 일을 하는 시간이 많아서 두 번은 헛걸음을 했고, 세 번째에 드디어 만날 수 있었다.
"오매, 시상에나, 나는 폴새 잊어부렀는디, 으찌케 그런 것을 다 기억하고 새통스럽게 물어본다요? 별 꼴을 다 보겠네, 야? 아이고 뭔 그런 것을 다 기억하고 그런다요."
다른 아주머니 한 분과 중앙홀에 엎드려서 이야기꽃을 피우던 중인 주인 아주머니는 내가 찾아온 이유를 꺼내놓자마자 실소를 터뜨렸다. 그리고는 이내 부끄럽고 창피하다는 듯 외면을 하면서 "별라 좋은 일도 아니구만, 아니구만."하고 중얼거렸다.
"그게 좋은 일이 아니면 세상에 뭐가 좋은 일이 되겠어요."
"금메, 글씨라우. 나쁜 일도 아니겠지만, 뭐, 뭔 그런 일이 다 좋은 일이다요."
"불이 타고 있는데 그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칠 수도 있잖아요. 그런 생각은 안 들던가요."
"아따 그런 저런 생각이 으찌케 난다요. 아 생각해 보시오. 천장에서 비닐 같은 것들이 불붙어서 소들 위로 막 떨어지는디, 소들은 손이 없으니께 자기 몸에 떨어진 불똥을 치우지도 못하고, 그냥 소리나 질러대고 그러는디,"
"인정이 봇물처럼, 타는 불꽃처럼, 몸에 그냥 배여 있다고나 하겠네요."
"머시라우? 그것은 또 먼 말씀이다우?"
"아, 예, 허헛, 제가 순간적으로 시를 썼던가 봅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그나저나 그러니께, 그 말을 듣고자 이렇게 오셨다고요?"
"예."
"참말로, 별 꼴을 다 보겄소 잉?"
아주머니는 구경을 하듯이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아주머니네 가족들을 별종으로 생각하는 반면 아주머니는 그런 나를 별종으로 본다는 증거였다. 날로 달로 좁아지고 작아지는 현대라는 이름의 흐름에 나는 충실하게 복무하고 있는 반면 아주머니네 가족들은 거부한다는 생각도 의식도 없이 거부하며 행동으로 자신들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었다.
안타까운 일을 보면 입으로 안타깝다 말하지 않고 직접 뛰어들어 안타까움의 원인을 제거하고자 하는 사람들, 비록 그것이 무모한 행동이었던 것으로 나중에 밝혀진다 할지라도, 자잘하게 후일을 따지기에 앞서 일단 그 일 속으로 뛰어들어 그 일의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되고 보는 사람들, 산술적으로만 계산을 하자면 아무런 이익이 없지만, 인간으로서 인간의 세상을 살고 있다는, 살았다는, 앞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주기 때문에 그 일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말이 좀 되려는지 모르겠다.
이러한 예감은 거의 틀리지 않는다. 뭔가 존경하고 싶고, 없는 정 빚을 내서라도 나누고 싶어지는, '그 사람'을 알게 된 것이 너무나 고마워서 거기까지 굳이 한 번 더 찾아갈 생각을 했던 나 자신이 대견하고 기특해질 지경에 이르고 만다.
▲ 작고 소박한, 살림집이 곧 식당인 집,이 작은 집 안에 행복의 원리가 들어 있다고 한다면 과장일까 ⓒ 김수복
아이들이 많지는 않았다. 3살에서 5살, 6살쯤의 고만고만한 아이들 셋이 중앙홀의 탁자 두 개를 번갈아가며 올라갔다 내려갔다 깔깔거리며 뒤집어지고 있었다. 그 활달한 자유분방함이 어찌나 낯설고 인상적이게 부러웠던지 한참이나 우두커니 선 채로 보고 있는데 일행 중 한 사람이 옆에서 한 마디 하고 있었다.
"이 집은 언제 봐도 가축적이라니께."
계산대 옆에 앉아 있던 주인 남자(임만제 65세)는 들어서는 손님을 향해 어서오시라고, 적당히 아무 데나 자리를 잡으시라고 인사를 건네고는 이내 아이들을 쳐다보며 말없이 빙그레 웃고나 있었고, 주방에서는 아이들의 엄마와 할머니가 교대로 한 번씩 아이들을 내다보며 다칠라, 다칠라, 걱정 아닌 걱정이나 하고 있을 뿐 손님 오셨으니 조용하라거나 다른 데로 가라거나 영업집이라면 으레 있을 만한 그 어떤 잔소리도 참견도 없이 하던 일이나 계속 하고 있는데, 순간적으로 나는 음유시인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있었다.
아, 이 사람들이야말로 시인들이다. 시인 중에서도 유행을 거부하는 문제적 시인들이다. 가족 전체가, 식당 전부가, 사람과 건물과 기물들이 한데 어우러져서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야,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뭐 다른 게 있겠어, 하는 제목의 기막힌 시를 낭송하고 있구나.
그런저런 감상에 젖은 채로 소주를 마셨고, 취했고, 이제 그만 돌아가자 하고 일어서서 엄벙덤벙 돈 낼 사람은 계산을 하고 나는 계산할 자신이 없어서 쓸데없이 이것저것 딴전이나 피우는 중인데 어라, 이상하다, 저 아이가 왜 저러지, 하는 꼭 그런 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맨 처음 들어설 때 동생들과 탁자 위를 오르내리며 깔깔거리며 뒤집어지던 꼬마 숙녀께서 손님들이 일어선 뒤의 탁자를 정리하고 있는 거였다. 더 어린 꼬마들은 그 사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데 가장 연장자인 6살쯤의 아이가 작은 쟁반을 들고 탁자 앞으로 다가서더니 소주잔이며 물그릇 같은 간단한 기물들을 치우고 있는 것이었다.
▲ 아주 익숙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식탁을 정리하는 꼬마 아가씨. ⓒ 김수복
▲ 처음에는 저 아이가 왜 저러나, 했었다. ⓒ 김수복
처음에는 뭐 그런가보다 하는 정도였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뭐 그런 정도는 할 수도 있겠지 그런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꼬마 아가씨 그 정도에서 멈추지 않는다. 술병을 치우는가 싶더니 지저분하게 남겨진 찌개냄비까지 치우겠다고 덤비는 것이었다. 꼬마 숙녀의 그런 모습을 보고 내가 그만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 세상에,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는가. 어른들이 시켜서 하는 일 같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마디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거 완전히 아동노동이요, 착취인데, 가르치신 거예요?"
"아이고, 우리도 몰라요. 지 에미, 할미가 노상 하는 일이니께 저도 해보는 것이겠지만서두. 세상에 어떤 부모가 새끼한테 그런 것을 가르치겠어요?"
그래, 그런 질문을 한 내가 어리석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가 아니라 있다, 라는 의식이 나를 조종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랬을 것이다. 서비스라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 중에서도 한 수 아래라는 그런 어떤 관념이 내게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만한 나이쯤의 아이라면 마땅히 그림책이나 인형 같은 것을 들고 있어야 한다는 선입견이 내게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다소는 민망한 기분인 채로 돌아왔고, 그리고 잘 잤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방안 가득 전날의 그 풍경이 펼쳐지는 것이었다. 그 풍경 속에서 나는 주인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두부를 안주로 막걸리를 파는 오십여 평 규모의 술집에 어느 날 불이 붙었다. 한낮이라 손님은 물론 주인도 없었다. 그때 마침 그 옆을 지나가는 삼십대 초반의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연기를 발견한 순간 즉시 차를 세우고 소방서에 전화를 했다. 그리고 불 속으로 뛰어들어 가스통 두 개를 밖으로 꺼내놓고, 소방차가 오는 것을 확인한 뒤에 집으로 돌아왔다. 이 남자가 꼬마숙녀의 아빠였다.
그리고 며칠 뒤에, 꼬마 숙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러니까 죽산가든 주인 내외가 단체손님 예약을 받고 시장을 보러 가던 길에 우사에 불이 붙은 것을 발견했다. "어매 저기 불났나보네." 아내가 소리를 질렀고, 남편은 즉시 차를 세우고 뛰어갔다. 소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처절하게 들리고 있었고, 입구는 쇠사슬로 묶인 채 자물통이 채워져 있었다. 주인은 물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증거였다.
급하게 망치를 가져다가 자물통을 내리쳤지만 끄덕도 하지 않았다. 불은 우사의 중앙에서 타고 있었고, 우사 전체는 두터운 방수천으로 바람막이 겸 울타리가 되어 있었다. 남편이 망치로 자물통을 내려치고 있는 동안 아내는 차 안에서 커터 칼을 가져다가 방수천을 북북 찢어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털에 불이 붙어서 펄쩍펄쩍 뛰는 소들이 눈을 채웠다. 불이 붙지 않은 소들은 겁에 질려서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슬프게 울어대고 있었다. 여기서 무엇을 더 생각하랴. 그녀는 칼로 방수천을 북북 찢어서 소들이 탈출할 수 있도록 유도해 나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러 소방차가 오고 인근 마을 사람들이 몰려왔을 때, 그제야 죽산가든 주인 내외는 단체손님 예약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내고는 부랴부랴 시장으로 달려갔다는 것이었다.
▲ 주인아주머니. 맞은편에 내가 앉았는데도 나를 안 보고 옆에 다른 사람을 보고 얘기를 하신다. 내외를 하듯이 ⓒ 김수복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준 이유는 "살다 보니 별 이상스런 일도 다 있어라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들과 그 부모가 사흘 차이로 비슷한 일을 밖에서 겪을 수도 있다는 게 참 신기하다는 뜻이었다. 나 또한 그때는 그런 이야기가 일상생활의 한 부분인 것처럼 여겨졌을 뿐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그 이야기와 함께 꼬마숙녀의 얼굴이 떠오르더니 어딘가에서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아', 하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자, 나는 과연 그런 상황을 발견했을 때 어찌 할 것인가. 나도 그렇게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들 수 있을까.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다. 해서 가까이 지내는 후배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너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후배는 "글쎄요"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무래도 어렵겠지요. 모르는 체하고 그냥 가버리는 일이야 없겠지만, 소방서에 전화를 하는 선에서 끝내지 않을까요?" 하는 것이었다.
그래, 나도 그럴 것 같다. 불이 났든 뭐가 어떻게 되었든 어쨌든 남의 집인 것이다. 주거침입이 되는 것이다. 무엇이 나를 이런 소심한 겁쟁이로 만들었느냐를 따지기에 앞서, 어쨌든 나는 순간적으로 후일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불 타는 집으로 뛰어들었는데 뛰어드는 순간 불이 꺼져 버려서 내가 할 일이 아무것도 없게 되었다면, 나는 그냥 주거침입자가 된다는, 그런 막연한 공포 내지는 피해의식 같은 것이 현대를 사는 내게 침투해 있다는 것을 나는 부인하지 못하겠다. 어쨌든 그것은 지하철 선로에 추락한 행인을 구하기 위해 선로로 뛰어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들 가족은 어떻게 그렇게 선뜻 뛰어들 수 있었을까. 만약에 생각과는 달리 화재가 아니었다면, 화재라 해도 아주 경미해서 금방 꺼지고 말았다면, 그때는 꼼짝없이 무단침입에 남의 재산을 손괴한 범죄가 되고 마는 것 아닌가 말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들 가족은 뛰어들어서 남의 재산일망정 피해를 최소화시켜 주었다. 그렇다면 그 사상적 배경은 무엇인가.
어리석게도 나는 그 뒤로 3개월여가 지난 즈음까지도 그런 생각에나 빠져 있었다. 그러다가 기어이 찾아가서 가르침을 받기로 했다. 그런데 식당에 손님이 워낙 없다 보니 문을 닫고 다른 일을 하는 시간이 많아서 두 번은 헛걸음을 했고, 세 번째에 드디어 만날 수 있었다.
"오매, 시상에나, 나는 폴새 잊어부렀는디, 으찌케 그런 것을 다 기억하고 새통스럽게 물어본다요? 별 꼴을 다 보겠네, 야? 아이고 뭔 그런 것을 다 기억하고 그런다요."
다른 아주머니 한 분과 중앙홀에 엎드려서 이야기꽃을 피우던 중인 주인 아주머니는 내가 찾아온 이유를 꺼내놓자마자 실소를 터뜨렸다. 그리고는 이내 부끄럽고 창피하다는 듯 외면을 하면서 "별라 좋은 일도 아니구만, 아니구만."하고 중얼거렸다.
"그게 좋은 일이 아니면 세상에 뭐가 좋은 일이 되겠어요."
"금메, 글씨라우. 나쁜 일도 아니겠지만, 뭐, 뭔 그런 일이 다 좋은 일이다요."
"불이 타고 있는데 그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칠 수도 있잖아요. 그런 생각은 안 들던가요."
"아따 그런 저런 생각이 으찌케 난다요. 아 생각해 보시오. 천장에서 비닐 같은 것들이 불붙어서 소들 위로 막 떨어지는디, 소들은 손이 없으니께 자기 몸에 떨어진 불똥을 치우지도 못하고, 그냥 소리나 질러대고 그러는디,"
"인정이 봇물처럼, 타는 불꽃처럼, 몸에 그냥 배여 있다고나 하겠네요."
"머시라우? 그것은 또 먼 말씀이다우?"
"아, 예, 허헛, 제가 순간적으로 시를 썼던가 봅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그나저나 그러니께, 그 말을 듣고자 이렇게 오셨다고요?"
"예."
"참말로, 별 꼴을 다 보겄소 잉?"
아주머니는 구경을 하듯이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아주머니네 가족들을 별종으로 생각하는 반면 아주머니는 그런 나를 별종으로 본다는 증거였다. 날로 달로 좁아지고 작아지는 현대라는 이름의 흐름에 나는 충실하게 복무하고 있는 반면 아주머니네 가족들은 거부한다는 생각도 의식도 없이 거부하며 행동으로 자신들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었다.
안타까운 일을 보면 입으로 안타깝다 말하지 않고 직접 뛰어들어 안타까움의 원인을 제거하고자 하는 사람들, 비록 그것이 무모한 행동이었던 것으로 나중에 밝혀진다 할지라도, 자잘하게 후일을 따지기에 앞서 일단 그 일 속으로 뛰어들어 그 일의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되고 보는 사람들, 산술적으로만 계산을 하자면 아무런 이익이 없지만, 인간으로서 인간의 세상을 살고 있다는, 살았다는, 앞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주기 때문에 그 일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말이 좀 되려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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