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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추적의 명탐정 정약용(20회)

둥지를 노리는 뻐꾸기 <2>

등록|2010.03.12 09:20 수정|2010.03.12 09:20
정약용은 숭인동으로 가는 길에 서리배에게 귓속말로 몇 마디 주문해 어디론가 떠나보내고 송화를 데리고 현장에 당도했다. 금줄을 쳐 일반인 통행을 금지시킨 관원들을 뒤로 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부인의 사체는 방바닥에 내려져 하얀 광목이 덮여 있었다. 감초 즙으로 몸을 닦아내던 송화는 여인의 가슴 쪽에 검붉은 흔적을 발견했다.

"나리, 가슴이 검붉습니다."
"구타 흔적이냐?"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뿐이냐?"
"다른 곳은 없습니다."

"먼저 작성된 검시기록을 살펴라. 죽은 자가 어떤 상태였다고 했느냐?"
"입과 눈이 열리고 손이 흩어졌으며 혀는 나오지 아니하고 이에 닿지 않았다는 내용입니다."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가슴에 멍 자국이 있는 것으로 보아 구타당하고 스스로 목을 맨 것으로 위장됐습니다. 특히 끈을 맨 목 주위 상흔이 어지럽게 짓물러있는 걸 보면 목 매달기 전 요동 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체 곁에 이것이 있었습니다."

선추(扇錘)였다. 흔히 윤도(輪圖)라 부르는 이 도구는 지남철 원리에 따라 점치는 도구로 실용화돼 풍수설 발달과 함께 지상(地相)을 살피는 도구로 활용되었고, 풍류를 즐기는 선비들은 부채 끝에 멋으로 달고 다녀 선추라 불렀다.

"추운 날씨에 부채를 가져왔을 리 만무다. 선추를 옷고름에 매달기도 한다만, 계절이 겨울이니 그 또한 어불성설! 가만 이게 어디 있었느냐?"

"사체를 살피느라 몸을 숙였는데 장롱 아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있었습니다."
"유서를 남겨 자살한 것으로 꾸몄다만, 엉성하기 짝이 없다. 그런 것으로 보면 전문가는 아니다. 너는 이걸 별당으로 가져가 선추를 본 적 있느냐 묻고 오너라."

송화가 방을 나가자 집 안팎을 돌아보았다. 사고가 난 방에 금역을 설치하고 사체를 관아로 옮긴 후 두 명의 포교에게 잠복 근무시켰다.

오후 늦게 관아로 돌아온 관원은 마흔 두엇으로 뵈는 여인과 들어섰다. 잔뜩 두려움이 깃든 여인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조인성 집의 부엌살림과 허드렛일을 도맡은 가정부였다. 그녀는 기가 질린 낯으로 주섬주섬 입을 열었다.

"저야 잘 모르지만 우리 아가씨와 이 도련님이 그렇고 그런 사이란 건 진즉에 알고 있었거든요. 총각 처녀 때부터 워낙 가까이 지냈으니까요. 영감님의 반대가 심해 도련님은 덕석몰이 당한 채 난장(亂杖)을 맞고 쫓겨나고 아가씬 민씨 집안으로 시집갔었지요."

"민승호가 술만 먹으면 이씨에 대해 한이 맺힌 듯 말을 한다는데···. 민씨는 어떻게 그 일을 알았는가?"
"아마, 풍설가가 꾸민 얘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제 생각엔 이씨 도련님이 자기와 시집간 아가씨 문제를 교묘하게 얘기로 꾸몄나 봐요. 그걸 민서방이 잘 다닌 음식점이며 술집 근처에 쫘악 뿌렸답니다. 그런 얘기를 우리 서방님이 한줄 알고 난리를 쳤다지 뭡니까! 그 후 아가씬 집으로 쫓겨 와 별채에 계십니다."

정약용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내 실눈을 비껴 뜨며 질문을 던졌다.

"용인댁은 10여년을 그 집에서 산 것으로 알고 있네만···."
"그, 그렇지요."
"갑자기 그만둬야할 이유가 있었는가?"
"그것은···."

상대가 망설일 때는 한 걸음 물러나는 게 방책이었다.
"말하기 싫으면 다음에 와서 해도 되네."
"사실은···, 제가 봐선 안 될 걸 보았거든요. 그 날은 비바람이 사나웠어요. 부엌에서 감주 두 그릇을 아씨 방으로 가져갔는데 도란도란 들려오는 소리가 이상했어요. 시집간 아가씨가 부탁하는 것 같았어요. 자신의 일진이 사나우니 그날만 방을 바꾸자는 거예요. 서방님이 돌아오면 자기 방으로 보낼 것이니 하루만 방을 바꾸자는 것이었어요. 몇 번을 안 된다고 했지만 결국 두 분은 그날 밤 방을 바꾸어 잤어요. 이날 어둑새벽 별채를 빠져나가는 사내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그러니까, 자네 입을 막으려 용인에 있는 열 마지기 논배미를 주었다 그 말이렷다?"
"그, 그렇습니다."
"문서는 이씨 성 쓰는 자에게서 받았겠다?"
"예에? 아, 예에."

아낙은 사색이 된 채 눈을 내리깔고 마른침을 수없이 삼켰다.

이날 오후. 관아로 소환된 조인숙은 뒤쪽 조사실에 이창배(李彰倍)라는 젊은이가 정약용과 대좌한 것을 새어나오는 목소리로 알고 있었다. 그가 담담하게 풀어나갔다.

"물론 인숙이를 좋아했던 건 사실입니다. 우리가 혼인했다면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았겠지요. 제 잘못은 그것입니다. 시댁에서 쫓겨난 허물도 내게 있다면 그렇게 알겠습니다."
"담담하군요."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살아가는 데 지쳤습니다. 흥미가 없어요. 뻐꾸기들을 따라다니며 뒷수발 해주는 것도 이젠 지쳤습니다. 고향에 내려가 죽은 아내 넋이나 빌며 살겠습니다."
"내려가시기 전, 몇 가지 확인해 둘 게 있습니다. 조인숙씨가 시가에서 쫓겨 온 후 다시 출입한 건 언제였습니까?"

"글쎄요, 한 차례였으니 생각나질 않습니다."
"그동안 조인숙씨에게 받은 토지 문서는 어찌 했습니까. 고향에 땅 마지기라도 마련했습니까. 아니면···."

"그건 그 여자가 준 겁니다."
"주었다? 하긴 주었으니까 받았겠지요. 내가 알기론 장안의 유명한 풍설(風說)은 죽은 조인성이가 아니라 당신의 솜씨요. 자, 이걸 보시오."

정약용이 내놓은 건 채 한 뼘이 못 되는 조그만 수첩이었다. 그 안엔 시중에 흘러 다니는 온갖 얘기가 자리 잡았다. 그러나 좀더 눈여겨보면 이것들은 한결같이 조인성의 입을 통해 장안에 퍼뜨린 염담(艶談)이었다. 그것을 보자 이창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흥, 변변치 못한 년 같으니. 잠자리에서 내가 물건을 흘렸으면 간수나 잘 할 거지. 보아하니 얼충이 민가 놈이 주워 여편네를 닦달한 도구로 사용한 것 같소이다. 그게 어쨌다는 겁니까, 나으리!"

"그대가 풍설 짓는데 재간이 있다기에 꺼내놓은 것이오. 이번엔 내가 지은 풍설을 들어보시게. 이 수첩을 아내의 방에서 발견한 민승호가 친정으로 쫓았지만 그래도 마음자리에 앙금이 풀리지 않아 취하란 유곽을 찾아가 조인성에게 욕설을 퍼부었네.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를 안다고도 했고, 다른 얘기도 했을 터이나 워낙 술에 취해 해야 할 말은 못한 것이네."

"못한 말이 뭡니까?"
"당신을 조심하라는 당부였소."

이창배는 순간 놀란 표정이었으나 이내 어설픈 웃음을 터뜨리며 주위를 얼버무렸다.
"과연, 풍설이오! 아주 좋습니다. 어디 계속 들어봅시다!"

다시 정약용의 얘기가 이어졌다.
"아마 당신은 흥정을 걸었을 것이야. 장안의 정신 나간 작자들을 규합해 모임을 만들고, 그 자들에게서 경비를 빼내 명문 사대부가의 과부나 처녀들을 납치해 보쌈이란 명목으로 하룻밤 노리개를 삼으라고 말이네. 물론 어느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는 조인성이 음란서생 노릇을 하며 알아냈을 터! 이점을 내세워 흥정을 걸었을 것이네. 그대는 아내가 죽은 후라 혼자 몸이니 시댁에서 쫓겨 온 동생을 만나겠다 했고 조인성은 전날의 일도 있어 못이기는 척 허락해 줬네."

이창배가 발끈했다. 그는 묻지도 않은 예전의 일을 끄집어내며 열화로처럼 타올랐다.
"그 영감쟁이가 날 덕석몰이 할 때 사람들은 모두 구경하고 있었소. 안방마님이란 년은 나를 잡아먹지 못해 날뛰었고, 영감쟁이도 당장 요절을 내라고 발을 굴렀소. 함께 살을 섞은 계집은 제 몸 다칠 새라 방문 걸어 잠근 채 꿈쩍을 않고, 조가 놈은 묵묵부답 한 마디 말을 않고 바라만 보았소!"

비록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이창배의 악의에 찬 목소리를, 건넌방에서 조인숙이 핏기가 가신 낯으로 듣고 있었다. 침통한 표정의 그녀 곁엔 송화가 앉아 있었다.

이창배의 목소리엔 자못 비아냥이 어려 있었다. 그는 모든 사실을 인정하며 관원의 취조를 조롱했다.

"그렇게 궁금하다면 속 시원히 털어놓겠소이다. 처음이야 어쨌는지 나도 내 마음을 알 수 없으나, 덕석몰이 당한 후 마음이 바뀌었어요. 어떻게든 그 집을 쑥밭 내리라 골백번 다짐했으니까. 첫 번째 계획이 순조롭게 되어 조가 계집이 친정으로 쫓겨 오자  하루는 그 계집을 찾아가 일을 꾸몄어요. 집안의 재산은 장가나 그 계집 차지니 이참에 그것을 빼내 멀리 도망가 살자고요. 처음엔 당치않은 일이라고 펄쩍 뛰었으나 자신의 처지를 생각할 때 그 방법이 나을 거란 생각을 한 거죠."

"그래서 방을 바꾸었구?"
"아. 아셨습니까? 그렇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아 사람 출입이 눈에 잘 띄지 않았기에 다행이었어요. 사방이 캄캄하고 천둥이 우르릉대니 홀로 잠자리에 든 계집으로선 얼마나 허전했겠어요. 내가 이불 속을 파고들 때까지 계집은 모르는 것 같았어요. 목덜미를 빨고 젖무덤을 잡았어도 한 마디 말이 없더니 그년의 깊은 곳에 들어가 방아를 찧을 때야 떨리는 목소리로 '누, 누구세요?'가 아니겠습니까."

더 이상 얘기를 들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지만, 이창배의 염담(艶談)이 기세를 탄 연(鳶)과 같아 잠시 내버려두었다.

"계집이란 게 그래요. 처음엔 온갖 격식을 따지고 모양새를 만들다가도 막상 발가벗고 잠자리에 들면 요부가 따로 없어요. 아무리 생면부지 사내라 해도 제 몸 안에 들어오면 그것이 나가지 못하도록 여러 방법을 쓴다니까요. 조가 계집도 어지간히 색을 밝히는 처지지만 그 계집은 한술 더 떴어요. 오히려 내가 지쳐 나동그라질 정도였으니까요. 요본과 감창은 두 말할 나위없고 사내의 힘이 되살아나게 하는 방법까지 알지 뭡니까! 그러고 보면 장가가 집에 안 들어가는 건 이유가 있었던 거죠. 아까운 계집이지만 그것으로 끝내는 게 좋았어요. 아 참, 수사에 도움이 될 사항을 말씀드리죠. 며칠 전 조가 계집에게 멀리 떠나자고 했거든요. 물론 사람을 어떻게 죽여야 하는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일어난 사건 하나를 풍설로 엮어 들려줬을 뿐이지요. 어떻습니까, 이제 그만 가봐야겠습니다. 얼충이 사내놈들이 내 얘길 들으려고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은 죽은 조가를 대신해 내가 얘길 하기로 했거든요."

이창배는 소매 속에서 선추 달린 쥘부채를 꺼내 요란하게 펼쳐들었다.
"아하하하, 정히 궁금하시면 시생의 뒤를 따라오십시오. 아주 흥미로운 얘길 엮어드리겠습니다."

정약용이 물었다.
"부채 끝에 달린 건 뭔가?"
"아, 이거요? 선추외다. 오랜만에 염담을 엮으려는 판에 쥘 부채를 펼쳤더니 선추가 도망가고 없질 않습니까. 해서, 명례방에서 하나 구해가지고 왔습니다. 궁금하시면 명례방의 '취하'란 유곽으로 오십시오."

이창배가 나간 후 조인숙이 들어왔다. 그녀의 낯엔 이미 핏기는 없었다. 무엇을 생각하는 지 창밖을 바라보기도 하고 눈을 감은 채 골똘해졌다. 정약용의 말이 조심스러웠다.
"올케의 죽음은 한 사람만의 힘으론 불가능합니다. 스스로 목을 맸다면 모르거니와 상대를 실신시켜 목을 매단 건 어지간한 사내라도 힘이 부칩니다. 그 점으로 보면 이창배가 도와주었을 것이고···."
"아니에요!"

"아니라뇨?"
"그 사람은 그 시각 다른 곳에 있었어요. 관원들이 조사하면 어디에 있었는지 아실 거예요. 일을 처리하는 방법은 그 사람이 가르쳐 줬지만, 올케의 목을 매단 건 저와 용인 댁이에요. 용인 댁을 불러 울면서 그 사람과 올케 사이를 말했더니 무척 화를 내며 도와줬어요. 모든 일 처리는 용인 댁이 했지만요."

"망원정 가까이에서 오라버닐 만났습니까?"
"네에. 술에 만취해 내게 삿대질을 하다 강물 속에 미끄러지는 걸 보고 돌아왔었죠. 거긴 얕은 곳이기에 돌아가시리라곤 생각을 못했지요."

"토지 문서 등의 재산은 어딨습니까?"
"그 사람한테 있겠지요."

"이 일은 모두 이창배가 꾸몄습니다. 덕석몰이를 당한 한이 얼마나 깊었기에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복수하려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이창배에게 건네진 재산입니다. 그걸 찾아야지요. 이창배는 이번 사건을 통해 조인숙씨 집안을 거덜내려 일을 꾸몄습니다. 장차 용인댁과 조인숙씨가 어찌될 지도 계산해 넣었으니 이창배는 희희낙락이겠지요. 어차피 용인댁과 조인숙씨는 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창배가 이번 사건을 주도하고 함께 살자고 꾸몄음을 고변하십시오. 재산은 관아에서 적몰해 가난한 사람을 위해 쓰게 한다면 전하께 차자(箚子)를 올려 선처를 구하겠습니다."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정약용은 서랍에서 쥘 부채에 달았던 선추(扇錘)를 꺼내놓았다. 죽은 자의 방에서 나온 해묵은 물건이었다.

[주]
∎차자(箚子) ; 간이상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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