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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헤라 지신아!' 지신도 밟고, 밴드 공연도 하고

'구미77밴드'와 함께한 구미시 옥성면 덕촌리 마을잔치

등록|2010.03.13 17:13 수정|2010.03.13 17:13

구미77밴드의 '살을 마을' 공연공연하기에 앞서 자리 잡고 서로 맞춰봅니다. 단원들 뒤로 쌀가마니와 비료들이 층층이 쌓여있는 모습이 퍽 남다릅니다. 산골마을 '살을'에서 공연한 이야기 한 번 들어보실래요? ⓒ 손현희




"이거 날씨가 이래서 내일 공연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네."
"그러게 며칠째 비가 내리니…. 일기예보에는 내일은 비가 안 온다고 하던데 그걸 믿어야지."

며칠 동안 비가 잇달아 내리던 날들이 이어지고 공연 날짜를 잡아놓은 우리들은 몹시 걱정스러웠습니다. 시골마을 새로 지은 집들이에 초대되어 바깥마당에서 우리 '구미77밴드'가 공연을 하는 날입니다. 날이 따뜻해야 마을 어르신들이 춥지 않고 맘껏 공연을 즐길 텐데 보통 걱정이 아닙니다. 농촌마을에서는 씨뿌리기 앞서 내리는 봄비는 반드시 와야 하는 거지만, 오늘 만큼은 해가 반짝 웃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초조했지요.

우리 '구미77밴드'가 공연할 곳은 우리 단원 가운데에 드럼을 맡고 있는 이병길씨(53)의 부모님 집이랍니다. 얼마 앞서 새집을 곱게 지은 뒤, 집들이도 하고 이참에 마을 어르신들까지 모두 모셔서 '위안잔치'를 하는 거랍니다. 우리 단원들한테는 마을 공연이 지난해 석거실 마을에 이어 두 번째랍니다. 합주실에 모일 때마다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공연을 준비해왔지요.

공연 날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창문을 열었습니다. 아직도 빗기가 남아서 땅은 온통 젖어있고 부슬부슬 비가 내립니다. 큰 일 났습니다. 이러다가 어르신들 감기라도 걸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공연할 때에라도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며 모든 건 하늘에 맡기고 서둘러 악기와 앰프 따위를 모두 챙겨서 갑니다.

집들이도 하고 밴드 공연도 하고우리가 공연할 집이에요. 단원 가운데 이병길씨 고향집이랍니다. 이번에 새집을 짓고 집들이도 하고, 마을어르신 위안잔치도 함께 합니다. 산골마을에서 울려퍼지는 밴드 소리에 추운 날씨였지만 매우 흥겨운 자리였답니다. ⓒ 손현희




집들이에 선물 가득 들고...오늘은 집들이 날이기도 하지만, 마을 어르신들 모셔놓고 잔치를 하는 날이랍니다. 우리 구미77밴드도 공연을 하면서 잔칫날 흥을 돋웁니다. ⓒ 손현희




드럼을 맡고 있는 이병길씨오늘은 부모님께 효도하는 마음으로 드럼을 칩니다. 고향 마을 어르신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시고 잔치도 베풀고, 또 공연도 합니다. ⓒ 손현희




"에 헤라 지신아!" 거 박자 좀 딱딱 맞추라니까!

구미시 옥성면 덕촌리, '살을 마을'이란 옛 이름이 무척 정겨운, 더러 새로 지은 집들도 있지만, 거의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마을이랍니다. 우리 밴드가 가서 공연해야 할 집은 이 마을에서도 가장 위쪽에 자리 잡고 하얀 빛깔로 지은 집이랍니다. 너른 마당에는 어느새 마을 어르신 몇몇이 모여서 오늘 이 댁에서 펼쳐질 즐거운 자리를 준비하느라고 바쁘시네요.

다행스럽게도 아침까지 내리던 비는 그쳤어요. 해가 좀 나면 좋을 텐데, 그러지 않아서 걱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비가 안 오니까 오히려 고맙기만 합니다. 마당 한쪽에 곡식들을 쌓아놓은 터 앞에다가 자리를 폅니다. 우리 단원 식구들만 해도 모두 11사람, 거기에다가 77밴드 사부님이신 '김충수 악단' 식구들도 여럿 와주셨어요. 또 우리 밴드에서 공연을 한다니까 일부러 공짜 봉사까지 해주신다고 음향 팀에서도 와서 벌써부터 준비를 마치고 있었답니다.

저마다 악기들을 펼쳐놓고 자리를 잡고 보니, 그 모습이 무척 남다릅니다. 등 뒤로 보이는 쌀가마니와 비료들이 쌓여있는 게 퍽 재미있습니다. 화려한 무대는 아니지만, 어느 부잣집 곳간 앞에서 공연을 한다고 생각하니 더욱 살갑고 정겹습니다. 악기와 음향 조율을 마친 뒤, 곧바로 지신밟기에 나섭니다.

에 헤라 지신아~!!!지신밟기를 합니다. 난생 처음 해보는 것이지만 나름대로 음악성이 있는 분들이라 금세 익히고 잘 하시네요. 비록 약식이기는 하지만, 잘 맞춰서 합니다. ⓒ 손현희




"앞소리는 누가 할 거야?"
"어이, 백두 자네가 해봐!"
"아이고 난 그런 건 못하는데 어쩌지?"
"어쨌거나 한 번 맞춰보자고."

그런데, 가만 남의 집 집들이에 왔으니, 이 댁의 복을 빌고 액은 막아주는 지신밟기를 해야 할 터인데, 징과 북, 꽹과리들을 손에 들긴 했지만, 앞소리를 할 일이 걱정입니다. 전문 소리꾼도 아닌데다가 밴드 공연은 몇 번 해봤지만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하려니 큰일 났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무엇보다도 새집 지은 이 댁에 복을 빌어주는 좋은 일인데, 서툴고 모자란 솜씨지만 이해해주시겠지요?

이윽고 저마다 맡은 농악기로 박자를 맞춰봅니다. 한바탕 징, 북, 꽹과리를 두드리며 흥을 돋운 뒤에 박자에 맞춰 소리를 끊어줍니다. 그러면 이어서 앞소리가 나와야 하는데, 허허 이거 박자가 딱딱 맞지 않네요. 몇 번이고 거듭 연습을 하면서 소리를 합니다. 그래도 음악을 하는 분들이라서 그런지 몇 번 맞춰보니 제법 그럴싸해지네요.

마을 어르신들은 소리에 맞춰 벌써부터 흥겨워하십니다. 오늘 공연도 참 잘 될 거란 생각이 드네요. 마당을 한 바퀴 돌면서 '마당밟기'를 하고 집안까지 들어갑니다. 앞소리도 제 박자에 맞춰 잘 나옵니다.

"에 헤라 지신아~!"
"정월 스무 이튿날, 구미시 옥성면 덕촌리~~ ○○댁~"
"새 집짓고 고하노니 부디 만복 내려주시고"
"나쁜 액운은 막아주소서~"

비록 약식이기는 하지만 한바탕 농악을 울리며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 다시 마당으로 나옵니다. '지신밟기'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우리 단원들이지만, 나름대로 퍽이나 흥겹게 했답니다. 마을 어르신들은 차츰 분위기에 휩싸여 어느새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는 분들도 보이네요.

처음엔 쑥스러워하시더니...어르신들이 처음엔 함께 나와서 노시라고 해도 매우 쑥스러워하셨지요. 그러나 이내 흥겨워하면서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십니다. ⓒ 손현희




'길거리 캐스팅'한 조혜정씨한테 어르신들 흠뻑!

몇 달 앞서만 해도 우리 77밴드에 여자 단원이라고는 나 혼자 뿐이었어요. 언젠가 우리 부부가 라이브카페에 갔다가 노래를 매우 잘 하는 이가 있어 그야말로 길거리캐스팅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렇게 보컬로 데려와 한 식구가 된 조혜정(40)씨가 있어요. 노래를 잘 부를 뿐만 아니라 감성이 풍부해서 무척이나 맛깔스럽게 잘한답니다. 또, 통기타를 배우려고 들어온 여자 단원 김영이(38)씨도 있어요. 이 두 사람한테는 이번 공연이 '첫 출전'이랍니다. 그래서일까? 앞날부터 밤잠도 못 잤다면서 공연 걱정에 몹시 긴장을 하더군요.

그런데 이게 웬일이래요? 우리 민요인 '노들강변'을 부르며 공연을 시작했는데, 멍석 펴놓으니까 제 세상 만난 사람 같습니다. 게다가 어르신들께 달려가서 함께 손을 맞잡고 춤을 덩실덩실 추면서 밴드에 맞춰 흥을 돋웁니다. 나는 노래를 부르면서도 그 모습을 보니 무척 즐겁습니다. '이거 내가 복덩이를 데리고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구미77밴드 보컬 조혜정 씨밤잠도 못자고 몹시 긴장했다고 하더니, 막상 공연이 시작되니까 얼마나 잘 하는지 모릅니다. 어르신들과 손을 맞잡고 춤을 추고 흥을 돋우면서 마을 분들을 온통 사로잡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 어르신들이 얼마나 칭찬을 했는지 모릅니다. 조혜정 보컬은 보통 때에도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자원봉사를 많이 다닌답니다. ⓒ 손현희




보통 때에도 성격 좋고 싹싹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던데, 막상 공연을 시작하니 어르신들 마음을 온통 사로잡고 있습니다. 얼마나 기특하던지, 어르신들도 처음엔 쑥스러워하면서 손사래를 치고 앞에 나서기를 꺼려하시더니, 저마다 흥이 나서 함께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십니다. 보기에 참 좋더군요. 나중에 공연이 끝나고 뒤풀이 마당에서 어르신들 칭찬이 끊이지 않더라고요. 알고 보니, 조혜정 단원도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자원봉사를 많이 다닌 이었어요. 어쩐지 어르신들과 마주하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했더니, 퍽 예쁘고 또 고맙기까지 합니다.

한 열 곡 쯤, 77밴드의 공연을 마친 뒤, 이번에는 마을 어르신들이 돌아가면서 나와 노래를 부르도록 했어요. 이때는 한층 더 흥겨운 자리였지요. 지난번 석거실 공연 때에도 느낀 거였지만, 요즘 시골마을 어르신들도 노래를 얼마나 잘 하는지 모릅니다. 우리네 정서가 워낙 신명이 많고 노래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새로 나온 노래도 멋들어지게 부르는 걸 보면 어지간한 솜씨가 아니랍니다.

새집 짓고 마을잔치까지 베푸니매우 흐뭇하신가 봅니다. 이 댁 안 주인이시고, 이병길 단원의 어머님이랍니다. 이날 하루 마을 분들과 우리한테 맛난 것으로 푸짐하게 대접해주시고 모두가 즐거운 날을 만들어주셨답니다. 어머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 손현희




마을 잔치마을 분들을 모두 모셔놓고 잔치를 마련해주시느라 부엌에서는 몹시 바쁩니다. 이 댁 며느님들과 함께 음식 준비를 하면서... ⓒ 손현희




이젠 돌아가며 어르신들도 노래를우리 밴드의 공연이 끝난 뒤, 마을 어르신들이 한 분씩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모두 얼마나 잘 하시는지 모릅니다. 요즘 노래도 무척 잘 부르시더군요. ⓒ 손현희




어르신들 노래에 맞춰우리 단원들이 한 줄로 서서 춤을 추며 흥을 돋웁니다. 모두가 50대 중년아저씨들이랍니다. 어쩌면 귀엽기까지 합니다. 어르신들 앞에서 재롱(?)을 피우는 모습이 말이에요. 마을 어르신들이 무척 좋아하셨지요. ⓒ 손현희




비는 오지 않았지만 날씨가 추워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살을 마을' 골짜기에 난생 처음으로 울려 퍼지는 밴드 연주에 맞춰 흥겹게 노래 부르고 신나게 즐기는 어르신들을 뵈니 무척이나 흐뭇합니다. 또 우리 단원들 스스로도 퍽이나 뿌듯한 하루였지요.

이다음 공연이 또 기다려집니다. 그땐 또 어떤 마을에서 어떤 어르신들과 함께 멋진 하루를 보내게 될지 궁금하네요. 어느 곳이라도 우리를 반가이 맞아줄 어르신들이 계시다면 아마도 틀림없이 멋진 공연으로 보답할 테니까요. 그렇게 하면서 우리 '구미77밴드'도 더욱 발전하겠지요?  
덧붙이는 글 구미77밴드 - http://cafe.daum.net/gumi77b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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