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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들이여, 오빠가 아니고 아들이라고"

옷 단추 맞추느라 몇 시간 보낸 어머니... 날더러 어쩌라고요

등록|2010.03.13 19:54 수정|2010.03.13 19:54

▲ 똑딱이 단추를 채우려다 실패하고 옷을 벗었다가 다시 입는데 재주도 좋게 당신의 몸을 감춰놓고 쩔쩔매는 우리 장한 어머니 ⓒ 김수복


하루해가 짧다. 가버린 지도 모르게 하루가 지났다. 무엇을 했던가. 무엇이 그렇게도 재미있었던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진만 아마 삼백여 장쯤 찍어댄 것 같다. 기록이다. 밖에도 아니고 방안에서 오직 한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사진에 담았다. 하고 나니 맥이 풀리고, 눈물이 자꾸 나올 것 같고, 온 몸의 구멍을 통해 무엇인가 어쩌면 나 자신 같은 것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전날에 밤을 꼬박 지새우고 말았다. 일제 말기 징용으로 끌려간 남편과 주고받은 어느 여인의 편지를 해독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친정아버지가 신간회 중앙위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중매로 만난 남편은 경성 제대를 졸업했고, 징용이 풀린 뒤에 해방공간을 거쳐 6.25때 총살을 당했다. 징용으로 끌려갔다 해도 어쨌든 일제에 부역한 것은 사실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스물일곱 나이에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살아가야 할 처지가 된 그 여인은 훗날 수많은 고아들의 어머니가 된다. 이 가슴 떨리는 이야기가 요 며칠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창문이 푸르게 물들어가는 즈음에야 밤이 지나버렸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놀란 뒤에는 온 몸에 힘이 쏙 빠지면서 잠이 마구 쏟아졌다. 찬물 몇 바가지를 끼얹고 나니 잠은 달아났지만 할 일이 태산 같았다. 우선 아침부터 먹기로 했다. 김장김치를 물에 씻어 된장과 멸치를 넣고 푹 끓이면 그 맛이 담백하면서도 구수해서 한없이 먹고 싶어진다. 비법이라면 김치가 김치로서의 형태를 잃어버릴 때까지 푹 삶아야한다는 점이다. 이 간단하면서도 오묘한 요리는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인지만 어머니는 이제 그것이 무엇인 줄도 모른다.

"간이 딱 좋네."

밥을 먹을 때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은 그 한 마디 정도다. 그 한 마디를 다섯 번 정도 잊을 만하면 하고 또 하신다. 맛이 없어도 간이 딱 좋다고 하시고, 맛이 있어도 역시 간이 딱 좋다고 하신다. 처음에는 그 말씀이 칭찬으로 들렸지만, 하도 듣다 보니 가끔은 칭찬이라기보다 이게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는 얘기로 들리기도 했다. 어쨌든 아침을 먹고 나니 또 잠이 쏟아졌다. 아무래도 오전은 내내 푹 잠이나 자야되나 보다, 생각하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는데 어머니가 자꾸 뭐라고 하신다.

"아이 이놈의 것이 으째서 이렇게도 말을 안 듣고, 나를 이겨먹을라고 하네."

무슨 일인가 내심 궁금하기도 했지만,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늘어져서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이불을 끌어당겨 푹 뒤집어쓰고는 있었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안정이 되질 않았다. 어머니와의 거리는 2미터가 채 안 되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신경이 가시처럼 일어서고 있었다. 어머니 보시라고 텔레비전을 켜놓기는 했지만 텔레비전 소리와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이상하게도 확실하게 구별이 되어 신경을 긁고 있는 것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해서 이불을 살짝 내리고 보니 어머니가 조끼와 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조끼를 벗어다가 입었다가 도로 벗어놓고 엎었다가 뒤집었다가

▲ 볼수록 재주가 좋으시다. 어쩌면 이렇게도 신선하고 참신한 방식으로 옷을 벗을 수도 있을까 ⓒ 김수복


지난 번 다녀간 옥천의 누이가 사다준 오리털 조끼였다. 재질이 폴리에스텔인데다가 새 것이라서 움직이면 절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식별력이 거의 사라져 버린 와중에도 어머니는 그것이 '딸년'의 선물이라는 것을 명료하게 인식하는 것 같았다. 낮이나 밤이나 당신의 몸에서 떼어놓으려 하지를 않았다. 잘 때도 입은 채로 누웠고, 어쩌다 무심히 벗었다가도 이내 도로 껴입고는 했다.

문제는 다른 옷에 비해 단추 구조가 복잡하다는 점이었다. 한 번에 쓱 채울 수 있는 지퍼가 있고, 지퍼 사이로도 바람이 못 들어가게 여밀 수 있는 똑딱단추가 또 있는데 이 단추는 일단 채웠다 하면 여간한 힘으로는 잘 풀리지가 않았다. 게다가 주머니마다 또 하나씩의 지퍼가 달려 있었다. 어머니는 뭐랄까 결벽증이라고나 할까. 어떤 옷이든 입었다 하면 단추를 반드시 채워야만 직성이 풀리는 쪽이었다.

그래서 평소에는 내 손으로 이 모든 지퍼와 똑딱단추를 채워드리곤 했지만, 잠이 자고 싶어서 안달이 난 나는 도무지 손끝 하나 움직이고 싶지가 않아서 누운 채로 그저 보고만 있었다. 조끼를 벗어다가 입었다가 도로 벗어놓고 엎었다가 뒤집었다가 아주 신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어머니를 한참이나 보고 있던 내 속에서 뭔가가 꿈틀꿈틀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잠을 포기한 채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슬그머니 일어나서 어머니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하고 있었다.

"아니 그것을 왜 꼭 채우려고 해? 어디 가? 아들 두고 여행 떠나려고?"
"아니 그것이 아니라,"
"그러면 추워? 추워서 그래? 하나도 안 춥고만."
"아따 요놈의 잡것이 참말로, 으째서 이렇게도 말을 안 들을까? 요것이 나를 시삐로 본 모양이여, 잉? 그러냐. 참말로 그런 것이여?"

어머니에게 조끼는 이제 하나의 인격체가 되어 있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고, 그러지 말라고 달래보고, 아따 이 잡것아, 짜증스럽게 나무라기도 하면서 어머니는 똑딱 단추 하나를 간신히 어떻게 채워놓고는 지퍼를 올리려고 하는데 그것이 도무지 올라가지를 않는다. 게다가 오른쪽 1번 수컷 똑딱이를 왼쪽 3번 암컷 똑딱이에 맞춰버린 탓으로 행동마저 불편해지고 말았다.

어머니는 아주 이상하다는 듯이, 세상이 왜 이렇게 갈수록 꼬이고 어려워지느냐는 듯이 고개를 왼쪽으로 갸웃해 보고 오른쪽으로 갸웃해 보고, 왼팔을 높이 들어보기도 하고 오른팔을 앞뒤로 내저어보기도 하고, 한참을 그러다가 마침내 중요한 것을 발견했다는 듯 조끼를 머리 위로 올려서 훌렁 벗어놓고는 맞춰보기 시작한다. 방바닥에 조끼를 편편하게 펴놓고 이것을 이렇게 맞춰보고, 저것을 저렇게 맞춰보고, 그러다가 이윽고 똑딱이 단추의 짝이 서로 어긋났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오호라 이놈, 소리도 경쾌하고 신나게 잘못 맞춰진 똑딱이 단추를 확 풀어낸다.

"오빠? 한동안 그 소리 안 하더니 또 오빠?"

▲ 이상하다. 정말로 이상하다. 아무 이상이 없는데 왜 단추가 안 채워지는 거여ㅡ 왜에. ⓒ 김수복


그렇다고 문제 해결이 되었을까. 어머니는 다시 조끼를 몸에 걸치고 지퍼를 올려보지만, 지퍼는 아퀴를 맞추지 못한 탓에 한쪽은 내버려둔 채 다른 한쪽만을 따라서 경쾌하게 쓱 올라가고 만다. 어머니는 이제야 됐다는 듯 낙낙한 표정으로 당신의 매무새를 이리저리 살펴보다가는 지퍼가 아직도 안 채워졌다는 것을 알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다.

"그걸 왜 자꾸 채우려고 해? 그냥 놔둬요."  
"아이 미친년도 아니고, 으찌케 벌려놓고 다녀."
"다니기는 뭘, 엄마는 밖에도 안 나가잖아. 나가자고 해도 방에만 있으려고 하면서 뭘."
"아이 그리도, 누구라도 오면 챙피해서 으찌케 해."
"창피? 허헛 참 내, 그럼 하는 데까지 한 번 해보던가."

어머니는 다시 조끼를 벗어놓고 단추를 맞춰본다. 그 표정이 너무나 진지하고 엄숙해서 내가 시선을 돌릴 수가 없다. 정신이 확 돌아온다고나 할까. 낮잠을 자기는 다 틀렸다. 갈등이 일어난다. 끝까지 그냥 보고만 있자 하는 마음과 얼른 달려들어서 그냥 채워드리고 말자 하는 마음이 팽팽하게 맞선다.

신기하다. 최소한 한 시간 간격으로 화장실 출입을 해야만 하는 어머니가 조끼에 관심을 집중하면서는 두 시간, 세 시간, 네 시간이 넘어도 화장실 같은 것은 아무 중요할 이유가 없다는 듯 그 일에만 매달린다. 이 신기함이 나로 하여금 어머니의 그 심각한 작업을 그저 구경이나 하고 있게 했을 것이다. 텔레비전에서는 조금 전에 12시 뉴스가 나왔던 것 같은데 벌써 오후 2시 뉴스가 나온다.

김치전 두 장을 부쳐 나눠먹고 난 뒤에도, 아니 그것을 먹고 있는 순간에도 어머니는 조끼를 만지작거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다는 듯,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을 잇달아 깜빡이며 한숨을 내쉰다. 이 또한 신기한 일이다.

어떤 일이든 그 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고, 잊었던 것을 나중에 발견하고도 그것을 거의 못 알아보시는 어머니가 조끼는 한시도 잊을 수가 없다는 식이다. 그것이 혹시 오랜만에 나타난 '딸년'의 선물이라서일까, 그런 것일까. 생각의 방향을 그쪽으로 돌려놓고 은근히 긴장해 있는데 어머니의 입에서 갑자기 오빠 소리가 나온다. 

"인제 보니 나도 참 속이 없었네. 오빠가 해주면 되겠고만. 잉? 오빠가 해주시오."
"오빠? 한동안 그 소리 안 하더니 또 오빠? 안 해. 오빠도 아닌 내가 왜 해." 
"아따 그러지 말고 오빠가 좀 해주시오."
"나는 오빠 아니랑게."
"오빠가 오빠 아니면 누구다요?"
"나는 아들이여, 아들. 오빠가 아니고 아들이라고."
"오빠도 참말로, 뭔 그런 쓸데없는 말씀을 다 하신다요."
"오빠가 아니고 아들이라고, 수복이라고, 그렇게 해봐. 그러면 단추 채워줄게."
"아따 오빠도 참말로 으찌 그리도 동생을 놀리기만 해싸시오. 죄로간당게요."

한밤중에 이게 뭐냐? 살다 보니 참 별난 일도 많구나

▲ 다시 용감하고 씩씩하게 조기를 몸에 걸치고, 똑딱이를 채워보지만, 그러나 끝내 성공은 못한 채로 잠이 들고 말았다. 못된 아들은 이렇게 사진이나 찍다가 옆으로 쓰러져서 같이 잠들고....... ⓒ 김수복


아, 돌겠다.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웃음과 눈물이, 눈물과 웃음이 한데 어우러져 춤을 춘다. 대단하시다. 단추를 채워야 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빠를 오빠라고 불러야 한다는, 여기에 있을 것은 여기에 있어야 하고 저기에 있을 것은 또 저기에 있어야만 한다는 어머니의 그 확고한 분별력을 나는 문득문득 존경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아들이 어머니로부터 오빠 소리를 듣고도 아무 저항 없이 넘어간다면 이게 또 여간 괴롭지가 않다. 이름이란 그저 이름일 뿐이라고, 호칭이란 단지 기호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 자신을 아무리 설득하고자 해도 잘 안 되는 것을, 아, 음, 난들 어쩔 것인가.

눈앞이 아롱아롱 아지랑이가 끼는 것 같아서 그저 멍하니 앉아나 있는데 어머니가 손등으로 눈을 몇 차례 비비는가 싶더니 모로 쓰러진다. 그리고는 이내 코고는 소리를 낸다. 피곤하셨던가 보다. 하긴 그렇기도 할 것이다. 두세 시간씩 주무시던 낮잠을 오늘은 단 십 분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

잠든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비로소 잠이 쏟아진다. 저녁도 굶은 채로, 텔레비전도 켜놓은 채로 얼마나 곤하게 모자가 나란히 누워서 잠을 자 버렸던가. 눈을 뜨니 텔레비전이 그림은 아무것도 없는 채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 아이고 이게 몇 시냐. 3시도 넘었다. 배가 고프다. 잠든 어머니를 깨워서 밥을 먹고 나니 문득 웃음이 나온다. 한밤중에 이게 뭐냐? 살다 보니 참 별난 일도 많구나. 아니다. 이런 별난 일이 가끔 생기는 맛으로 살아가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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