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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일배와 오체투지, 이젠 끝모를 기도

[현장] 수경 스님 여주 남한강가에 '여강선원' 개원..."4대강 사업 참회의 기도"

등록|2010.03.13 20:52 수정|2010.03.13 20:52
다시 봄은 왔고, 겨우내 얼었던 강은 몸을 풀었다. 봄은 저 남녘 섬진강가의 매화와 산수유를 피워내며 조금씩 북진하고 있다. 찬란한 봄. 하지만 지리산 아랫마을에서 올라온 박남준 시인은, 꽃과 바람과 새를 노래하지 못했다.

세상을 향해 가장 예민하고 여린 촉수를 내밀고 있어야 하는 시인만이 아니다. 평생 무소유의 삶을 살았던 법정 스님의 육신이 한 줌의 재로 바뀌고 있던 13일 오후, 수경 스님은 봄 햇살을 받아 반짝이며 흐르는 여주 남한강가에서 눈물을 떨궜다.

수경 스님, 3보1배와 오체투지 이어 여강선원 개원

▲ 13일 오후 경기도 여주 신륵사 입구에서 열린 '여강선원 개원식'에서 수경스님과 참석자들이 현판식을 열고 있다. ⓒ 권우성


경기도 여주군 신륵사 경내에서 여강선원(如江禪院) 개원식이 진행 중인 와중이었다. 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수경 스님이 연 여강선원은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고통 받는 뭇 생명을 위로하고, 인간의 파괴적 물신주의를 참회하기 위한 성찰의 기도 공간"이다.
수경 스님은 다시 이곳 여강선원에서 끝을 알 수없는 참회와 생명을 위한 기도를 시작했다. 새만금사업 중단을 촉구하며 3보1배로 새만금에서부터 서울까지 올라왔고, 오체투지로 이 땅을 기며 생명과 평화를 위해 기도했던 불자가 새로운 '투쟁'을 시작한 셈이다.

수경 스님이 다시 고행에 나선 건 겨울이 가고 봄이 와도 멈출 줄 모르는 4대강 사업 때문이다. 그렇다고 수경 스님이 이명박 정부만을 탓하거나 원망만 한 건 아니다. 그보다 개발과 물신주의에 빠진 우리를 돌아 보자고 제안하고 있다.

이날 개원식에서 수경 스님은 떨리는 목소리로 기도문 <생명의 강을 위한 기도>를 읽어내려 갔다.

"강가에서, 이 땅의 생명줄인 강가에서, 남한강가에서 한강가에서 하늘과 땅과 물과 바람의 혼들에게 온 몸 온 마음으로 기도합니다.(중략) 오늘 우리들의 기도가 탐욕 때문에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고 함부로 물길을 막고 땅을 파헤치는 일 없이, 온 생명이 함께 즐거이 살게하는 자유와 평화의 숨길이게 해주시옵소서."

가장 낮은 자세로 이 땅의 생명을 위해 기도해 온 불자의 눈에서 큼지막한 눈물이 뚝 떨어졌다. 이런 스님의 참회와 기도와는 상관없이 여주 신륵사 바로 위쪽에서 4대강 사업을 위해 동원된 굴삭기는 쉼 없이 남한강을 파헤치고 있었다. 스님의 떨리는 목소리가 중단되길 몇 번. 기도문은 이렇게 끝이났다. 

"오늘 우리들의 기도가 최선을 다한 사람의 마지막 한 방울 눈물이게 해 주시옵소서. 강을 섬기는 사람들 두 손 모으고 천지신명께 고하나이다."

"이명박 정부 탓만은 아닌...생명과 평화 우리 스스로 지켜야"

▲ 13일 오후 경기도 여주 신륵사 입구에서 열린 '여강선원 개원식'에서 수경스님이 '생명의 강을 위한' 기도문을 낭독한 뒤 불태우고 있다. ⓒ 권우성


기도가 하늘에 닿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수경 스님은 기도문을 하늘을 향해 태웠다. 기도문이 다 타들어 가는 동안 개원식에 참석한 지관 스님, 이종걸 민주당 의원,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 구중서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최열 환경재단 대표 등 약 100여 명의 시민들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스님이 눈물로 기도를 했다면, "이 봄날, 도저히 꽃과 바람과 새를 노래하지 못하겠다"는 박남준 시인은 격문에 가까운 시 <다시 또 여강에 몸을 던져>를 읊었다.

"하루아침이면 말이 바뀌는 경박하다 못해 야비하고 쥐새끼처럼 사특하고 탐욕스러운/ 이명박 정권만을 탓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맑은 강가에 반짝이는 모래밭, 알록달록 조약돌들/ 어찌 그것뿐이겠습니까/ 모든 눈부신 것들은 우리 곁에 다시는 흔적 없을 것입니다/(중략)

생명과 평화는 스스로의 마음 속에서 한 그루 나무를 심는 일입니다/ 그 나무에 물을 주고 햇빛과 바람의 시간에 귀 기울이는 일입니다/ 너와 내가 더불어 푸른 나무 그늘에 앉아/ 지는 해와 뜨는 해 바라보는 일입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아직 내 안으로 바로 너, 생명으로 가는 길 잃지 않고 있으니/ 평화로 가는 길 이어지고 있으니/ 생명이 샘처럼 넘실거릴 것입니다/ 평화가 따뜻한 품안으로 깃들 것입니다/ 다시 여강에 몸을 던집니다"

여강선원 개원식에서 기도와 시로만 생명과 평화를 이야기한 게 아니다.

▲ 13일 오후 경기도 여주 신륵사 입구에서 열린 '여강선원 개원식'에서 레게그룹 '원디시티'가 축하공연을 하는 가운데, 4대강 사업을 비판하는 포크레인 퍼포먼스가 벌어지고 있다. ⓒ 권우성


래게 음악 전문밴드 '윈드시티'는 즉석에서 공연을 펼쳤다. 윈드시티 리더 김반장(30)은 노래를 부르며 "물을 건드려서 우리가 뭘 얻겠다는 것인가, 탐욕에 눈 멀어 뭘 얻겠다는 것인가"라며 "이제 그만 잠과 착각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말해 불자 등 참석자들에게 큰 박수를 받았다.

이렇게 4대강 사업에 맞서 스님은 기도로, 시인은 시로, 그리고 음악인들은 노래로 중단없이 저항하고 참회할 것을 다짐했다.

개원식의 마지막 순간에 모든 참석자들이 남한강가를 함께 거닐었다. 신륵사 지척에서 굴삭기는 여전히 부지런하게 강을 파헤치고 있었다. 짧은 행진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윈드시티는 다시 모든 참석자들에게 래게 음악을 '생'으로 들려줬다.

몸을 흔들게 만드는 래게 리듬은 신륵사 경내로, 여강선원으로, 그리고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르지 않을 남한강으로 스며들었다. 봄은 왔고, 눈물과 웃음의 새로운 싸움은 다시 시작된 듯했다.

▲ 13일 오후 경기도 여주 신륵사 입구에 마련된 '여강선원 개원식'에 참석했던 수경스님과 종교단체, 환경단체 회원과 일반시민들이 남한강변을 걷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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