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구 회장님 저 잘 생각했지요?
현대차 울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가 올리는 글
▲ 지난 2005년부터 2006년 1인시위 하던 모습기록이 없어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2005년 초부터 시작한거 같네요. 불법파견 정규직화 구호를 내걸고 매일매일 시간 날때마다 1인 시위를 했습니다. ⓒ 정기훈 매일노동뉴스객원사진기자님
몽구 회장님 안녕하신지요?
저는 지난 2000년 7월 초에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정규직이 힘들다고 못하겠다던 적재 일자리에 하청업체를 통해 들어가 일했던 변창기라고 합니다. 같은 작업을 주야 맞교대로 10여년째 해 왔었답니다.
작업 강도도 힘들었지만 그보다 더 힘들었던 게 뭔지 아세요? 바로 생리현상 해결 문제였어요. 만들어지는 자동차 광고는 첨단을 달리고 있던데 현장에서 일하는 작업자에 대한 사람다운 배려는 그야말로 꽝이더구먼요. 생리현상이란 게 어디 쉬는 시간에만 터지란 법이라도 있던가요? 작업 도중에도 가끔씩은 똥과 오줌이 마려울 수도 있는거 아닙니까?
몽구 회장님은 혹시 똥오줌이 억수로 마려운데도 1시간 넘게 참아 본 적이 있나요? 저는 현대차 울산공장 사내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면서 그런 적이 너무도 많았지요. 제가 하는 일의 특성상 또는 저의 위치상 돌아가고 있는 공정을 정지시킬 수도 없었습니다. 하청이라 잠시 작업 공정을 봐 줄 여유 인원도 없는 상태였지요. 그러다 보니 알아서 해결 해야만 했어요.
처음에 1시간이나 넘게 작업 시간이 남았는데 생리현상이 터진 경우 어찌할 바를 몰라 정말 힘들었습니다. 몸속에서 밖으로 나오려는 똥과 오줌을 참는 일이 굶주림 참는 일보다 더 힘들다는 사실을 저는 그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남은 시간 내내 언제 작업 끝나나, 언제 작업 끝나나 하고 작업 끝날 시간만 기다렸지요. 작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의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저는 쏜 화살보다 더 빠르게 화장실로 달려가서 볼일을 봅니다. 오줌보가 터지려는 것을 참다가 쏟아내는 그 고통, 정말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심정을 헤아리지 못할 것입니다. 꼭 이렇게까지 해서 먹고 살아야 하나 하는 한숨이 절로 나오곤 했습니다.
계속 그러다 보니 나중엔 요령이 생기더군요. 급할 땐 주둥이 큰 음료수 병 하나를 숨겨 뒀다가 오줌이 마려우면 기둥 옆에 숨어 몰래 오줌을 싸고 다시 숨겨 둔 후 쉬는 시간 몰래 화장실에 가져가 부어 버렸습니다. 오줌이 마려우면 그렇게 해결했지만 똥 마려운 건 어쩔 수가 없더군요. 똥구멍에다 힘을 꽉 주고 참았다가 쉬는 시간 작업 공정이 서면 그때서야 무서운 개에게 쫓기듯이 50미터가 넘는 공장내 화장실로 달려가 똥을 싸곤 했더랬어요. 이젠 다 지나간 추억 이야기가 되었네요.
현대차 사내 하청업체에 다니다 보니 참 화 나는 일이 많더군요. 같은 지붕 아래 같이 일하고 같은 식당서 같은 밥 먹는데 원청-하청 간 인간차별이 너무 심하고 월급 차이도 너무 많이 났습니다. 게다가 원청 노동자는 마치 하청 노동자를 하인처럼
매년 원청 노동자는 노조가 있어 임금인상도 되고 복지 혜택도 많았지만 우리 하청 노동자에게는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2003년 5월 경이었던가 한 용기있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나타나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저도 늘 인간차별에 불만이 많았지만 용기가 없어 가만히 지냈는데 이때다 싶었습니다. 당장에 물 만난 고기처럼 임금인상과 인간차별 해소를 위해 거기 모인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하기 시작 했지요. 그 후 2004년 9월 경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게 됩니다.
그 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조합은 불법파견 정규직화 안건을 내걸고 투쟁에 나서게 됩니다. 저도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자 2005년 새해 들어 불법파견 정규직화 몸 벽보를 걸치고 1인 시위에 들어 가게 됩니다. 앞뒤로 몸 현수막을 하고 출근시간, 점심시간, 퇴근시간 할것없이 계속해서 사람들 많은 곳에서 서있게 되었습니다.
정문앞, 구정문앞, 식당 앞에도 서있었으며 야간조일 땐 아침 8시 퇴근 후 노동부, 법원, 경찰서를 찾아가 그 앞에서도 한 두 시간 서있다가 집에 가곤 했지요. 여름 한날엔 소나기가 퍼붓는 가운데 공장 밖을 맨발로 한바퀴 돌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1인 시위를 한 건 정규직이 되고 싶어서였어요. 하지만 1년 후 법정에서 합법 도급 판정을 내려버리고 말았습니다. 누가 봐도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냉엄한 현실 앞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1인 시위를 그만 두었어요. 1년 만에.
▲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정문앞에서 1인시위이 뒷면 사진과 앞면 사진은 지난 2006년 1월 16일경 현대자동차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할 때 매일노동뉴스 정기훈 객원사진기자님이 오셔서 찍어준 사진입니다. ⓒ 정기훈 매일노동뉴스객원사진기자님
"변창기 너 앞으로 조심 해"
그래서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 뭘 조심하느냐고 항의했죠. 그러자 경비 간부가 느닷없이 "이자식" 하면서 제 멱살을 잡더니 앞으로 힘차게 잡아 당겼어요. 제 허리가 굽혀지는 순간 뒤에 줄을 서있던 경비들이 우르르 달려 나오더니 저를 마구 두들겨 팼습니다. 땅에 엎어진 저를 마구 짓밟기도 했지요. 그 때 저는 무서웠어요.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는 집단 폭력으로 말려 들지 않기 위해 가만히 있었구요.
불법파견이니까 당연히 정규직 시켜 주는게 도리에 맞지 않느냐 하는 게 저의 주장이었습니다. 그걸 주장하는 게 이리도 몰매 맞을 일인가요? 그후 한동안 두려워 1인 시위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2년간인지 3년간인지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에 앞장선 10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해고되고 간부는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불법파견 정규직화 문제는 어정쩡하게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슬펐어요. 꼭 정규직이 되어 가족과 함께 정년 퇴직까지 잘 살아보고 싶었는데 물건너 가버린 상황이 되었으니까요. 그 후로도 원청,하청에서 갖가지 압력이 들어 오더군요. 원청에선 저의 지난 1년간의 1인 시위를 문제 삼아 명예훼손 운운하며 걸고 넘어지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하고 하청업자는 해고 위협을 가해 왔습니다.
2년 전 다시 업체장이 바뀌었습니다. 업체명도 엠00에서 세00기업으로 바뀌었고 1월 1일부로 신규 입사자로 처리 되었습니다. 새로 바뀐 하청업체 사장님은 소장님을 통해서 이런 주문을 했습니다. "회사 계속 다니고 싶으면 비정규직 노조 탈퇴 하시오." 저는 처자식과 함께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1인 시위도 중단하였고 얼마 후 비정규직 노조도 탈퇴하고 말았지요.
저는 40대 후반에 접어 들면서 마땅히 할 것도 없었고 갈 곳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비정규직 노조 탈퇴하고 열심히 일하면 정년 퇴직까지 다니게 해주지 않겠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2년 후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구형 공장을 걷어내고 신형 공장으로 만들어야 한답니다. 그래서 3월 14일까지 생산이 종료되고 정규직은 1년간 유급 휴직에 들어 가고 비정규직은 정리해고 되고 말았습니다.
"해고는 살인이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도 그 문구 앞세워 무급 휴직이라도 해서 1년 후 다시 새 공장 가동되면 들어가 일하게 해달라고 농성이라도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제가 일하는 곳에서는 15명 정도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리해고 되는데 그들에게 함께 농성 들어가자고 말해 보았지요.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 형 말처럼 농성해서 이겼다고 쳐. 1년 후 다시 일하게 되었다고 해 봐. 그런다고 평생 일자리 보장 되나? 형처럼 10년 후 이런 일이 다시 생기면 그 땐 또 어떻게 해? 형처럼 나도 나이들어 오갈 데 없으면..."
저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럴 경우 뾰족한 대책이 없으니까요. 모두 고향 가거나 다른 일자리 찾아 떠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가만히 생각해 보았어요. 무엇보다 가족의 생계가 걱정 되더라고요. 그래서 농성하는 걸 포기하고 조용히 정리해고를 받아들이기로 했지요. 우선 정리해고 되면 고용보험에서 실업급여가 조금 나오잖아요. 6개월 정도 나온다니까 부족하지만 그것으로 생계비를 충당 하면서 다른 일자리를 또 찾아 다녀 봐야죠.
몽구 회장님 저 잘 생각했죠? 그런데 왜이리 속이 아려 올까요?
▲ 2004년 9월경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고불법파견 투쟁에 들어가 모두 열심히 농성 했습니다. 그러나 2006년 2월경 법원은 합법 도급으로 판결하고 맙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었지만 1인시위를 접었습니다. ⓒ 현대차비정규직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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