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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버린 우리 말투 찾기 (40) 자체 2

[우리 말에 마음쓰기 878] '그대들 자체', '복귀한 것 자체' 다듬기

등록|2010.03.14 10:51 수정|2010.03.14 10:51

ㄱ. 그대들 자체

.. 이해하지 못하고 오류에 빠진 것은 그대들 자체였다 ..  <헤르만 헤세/김정진 옮김-방황하는 현대>(경지사,1962) 155쪽

 "이해(理解)하지 못하고"는 "헤아리지 못하고"나 "제대로 알지 못하고"나 "살피지 못하고"나 "마음쓰지 못하고"로 다듬어 봅니다. "오류(誤謬)에 빠진"은 "앞뒤가 어긋난"이나 "잘못을 저지르는"이나 "잘못된 생각에 빠진"으로 손질해 줍니다. '것'은 '이'나 '사람'으로 손봅니다.

 ┌ 그대들 자체였다
 │
 │→ 그대들 자신이었다
 │→ 바로 그대들이었다
 │→ 다름아닌 그대들이었다
 └ …

마땅한 노릇입니다만, 우리 스스로 우리 말투를 지키거나 가꾸거나 돌보지 않으면 우리 말투는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터를 지키거나 가꾸거나 돌보지 않으면 우리 삶터는 엉망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넋을 지키거나 가꾸거나 돌보지 않으면 우리 넋은 어지러워집니다.

말을 살리려는 사람은 삶을 함께 살리고 넋을 함께 살립니다. 삶을 살리고자 한다면 말과 넋을 함께 살리기 마련이고, 넋을 살리려 할 때에도 말과 삶을 함께 살리려 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우리 말글을 옳고 바르고 싱그럽고 곱고 힘차고 알맞고 알차게 보듬으려 하지 않는다면, 말글을 비롯하여 삶과 넋 또한 그예 내팽개치고 있기 때문이 아니랴 싶습니다. 말과 삶과 넋이란 어느 한 가지만 돌볼 수 없으니까요. 삶만 가꿀 수 없고 넋만 보듬을 수 없으니까요.

 ┌ 헤아리지 못하고 잘못을 저지르는 쪽은 그대들이었다
 ├ 제대로 읽지 못하고 앞뒤가 어긋난 사람은 바로 그대들이다
 ├ 옳게 살피지 못하고 수렁에 빠진 사람은 다름아닌 그대들이다
 └ …

우리는 우리 말투를 알뜰살뜰 여미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 말을 아끼면 되는데 바로 우리 말을 아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름아닌 우리 글을 사랑하면 되는데 다름아닌 우리 글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얼빠진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같이 넋을 잃은 채 내달리고 있습니다.


ㄴ. 유도로 복귀한 것 자체

.. 어차피 아기를 낳자마자 유도로 복귀한 것 자체가 모험이었어 ..  <나오키 우라사와/서현아 옮김-야와라 (24)>(학산문화사,2000) 15쪽

'복귀(復歸)한'은 '돌아온'이나 '되돌아온'으로 다듬으면 됩니다. "아기를 출산한 직후에"라 안 하고 "아기를 낳자마자"로 쓴 대목은 참 반갑습니다.

 ┌ 유도로 복귀한 것 자체가
 │
 │→ 유도로 돌아온 것부터가
 │→ 유도로 돌아온 일이 바로
 │→ 유도로 돌아온 일이야말로
 └ …

우리는 '바로'나 '다름아닌'이라는 말투를 내버리고 '자체'라는 말투를 널리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 말투가 이와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제아무리 오래된 말투라 한들, 우리 삶이 깃든 말투라 하든, 예부터 익히 써 온 말투라 하든, 살갑다고 하는 말투라 한들, 오늘날 삶자락과 걸맞지 않다면 쓰기 어렵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달가워 하지 않거나 반갑게 여기지 않는다면 쓰기 힘듭니다.

이 글월에서도 "유도로 복귀한 것이 바로 모험이었어"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유도로 복귀했을 때부터 모험이었어"로 손질할 수 있고, 한 번 더 마음을 기울이면 "유도를 다시 할 때부터 모험이었어"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차근차근 손질하면 되고, 하나하나 곱씹으면 됩니다.

 ┌ 유도를 다시 한다고 했을 때부터 모험이었어
 ├ 유도를 다시 하겠다는 생각부터가 모험이었어
 ├ 유도를 다시 하기란 처음부터 모험이었어
 └ …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보여주려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다스릴 좋은 말마디를 하나하나 새롭게 찾을 수 있습니다. 무엇을 나타내고 무엇을 나누고자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추스를 고운 말결을 차근차근 새록새록 붙잡을 수 있습니다.

고운 씨앗 하나가 오랜 나날에 걸쳐 자라면서 우람하고 아름다운 나무가 되듯, 우리들은 고운 말씨 하나를 뿌리거나 나누면서 오래오래 사랑하고 아끼는 동안 알차고 훌륭한 말나무를 우뚝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운 씨앗이 아닌 짓궂은 씨앗을 뿌리면 짓궂은 일들이 주렁주렁 매달리고 맙니다. 얄궂은 씨앗을 심으면 얄궂은 일들이 끊임없이 잇따릅니다.

아무쪼록 사람들 누구나 곱고 맑은 말씨앗 하나를 심고, 따숩고 넉넉한 글씨앗 하나를 돌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곱고 맑은 말씨앗 하나로 곱고 맑은 사랑을 북돋우고, 따숩고 넉넉한 글씨앗 하나로 따숩고 넉넉한 믿음을 일으킬 수 있으면 반갑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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