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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화풍'으로 돌아간 법정스님

법정스님 다비식이 열린 전남 순천 송광사에 다녀왔습니다

등록|2010.03.14 16:36 수정|2010.03.14 16:36
법정스님의 다비식을 참관하기 위해 전남 순천시 송광사 송광면 신평리 송광사를 찾았다. 일주일 전부터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 달팽이관의 고장으로 나들이 하기가 어려웠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분의 육신을 지척에서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자, 그깟 어지럼증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차량진입을 막은 송광사 삼거리부터 남편의 팔을 잡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를 1시간여. 드디어 산문엘 도달했는데 아뿔싸 스님의 운구행렬이 절문을 나서고 있었다.

▲ 법정스님 운구행렬 ⓒ 조명자




스님이 잠들어 계시다는 문수전 앞에서 정성을 다해 삼배를 올리고 싶었는데 그 희망은 물거품이 되었다. 나처럼 책과 친하지 않은 아줌마도 스님 저서 몇 권 정도는 통독을 했을 정도로 스타 문필가시니, 그 분을 흠모하는 애독자 내지는 불자들이 오죽 많을까.

아주 인산인해였다. 기다란 판 위에 고인을 모시고 붉은 가사 한 장으로 육신을 가린 운구행렬. 머리와 발끝까지 솟구치고 가라앉은 육신의 실루엣이 보는 이들의 눈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사실 법정스님이 생존해 계실 때에는 그 분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간결한 문체로 이토록 깊은 사상을 물 흐르듯 풀어쓸 수 있는 문재에 감탄, 또 감탄 했을 뿐이고 외모에서 느껴지는 엄격함과 그 엄격함을 더욱 빛나게 하는 장대한 기골은 우리처럼 별 볼일 없는 중생 기죽이기에 딱 알맞은 사람이라는 느낌뿐이었다.

더구나 말발 세고 행세깨나 하는 멋쟁이 보살들이 법정스님이라면 깜박 죽는 판인데 그 무리에 나까지 합세 할 필요가 있을까. 스님의 공개강연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은 이유 중에 하나다.

스타스님, 법정스님에 대한 편견을 회고하자니 몇 년 전 풍경이 떠오른다. 내가 지도층 내지는 명망가를 기피하는 이유 중에 가장 적나라한 풍경이랄까? 남편의 절친한 친구 중에 이름만 대면 전 국민이 알만한 유명인사의 자제 결혼식이 있었다.

보통 남편과 관계된 지인들의 애경사엔 별로 동참하지 않았는데 그 결혼식만큼은 꼭 같이 가야 한다고 남편이 하도 우기기에 딴에는 내가 가지고 있던 옷 중에서 제일 좋은 옷을 걸쳐 입고 생전 안 하던 분칠까지 하면서 머나먼(?) 서울행을 나선 것이었다.

그 식장에서 마침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당연히 남편은 뒷전이고 그 친구와 합석을 해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하필 친구와 함께 앉은 원탁 테이블 멤버가 정말 나 빼고 모두 잘난 사람들뿐이었다.

식이 끝나고 끼리끼리 담소가 무르익는데 혼주께서 사돈을 대동하고 인사를 다니고 있었다. 마침내 우리가 앉은 테이블에 도착했는데 글쎄 둥그렇게 앉은 8명 하객 중에 나만 빼고 인사를 시키는 게 아닌가.

나만 빠졌다는 모멸감 보다는 졸지에 나 혼자만 투명인간이 되고 만 상황 때문에 미안하고 민망해 어쩔 줄 몰라 하는 내 친구 때문에 더 곤혹스러웠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소개할 만큼 이렇다 할 프로필이 전혀 없는 초라한 시골 아줌마. 그렇잖아도 정신없는 혼주 시야에 들었을 리 만무하리라. 그래도 그렇지. 아주 간단하게 '저와 가깝게 지내는 아무개 선배 부인이십니다' 이렇게라도 소개했으면 그 테이블이 얼마나 부드러웠을까. 혼주의 그릇 크기에 대 실망을 했지만 세상인심이 다 그런 거 아닌가 할 정도의 지각은 있는지라 상처는 없었다.

다시 돌아 와 법정스님으로. 그 분이 해남 태생이시고 장준하, 함석헌 선생들과 유신철폐 운동에 뜻을 함께 하셨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엄혹한 유신 치하에서 '씨알의 소리' 편집동인, '크리스찬 아카데미' 운영위원을 맡아 민주화운동에 동참한 선각자라는 것도 물론 처음 안 사실이었다.

그저 구질구질한 속세와는 가능한 한 거리를 두고 고고하게 글이나 쓰며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식으로 선승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려고 애쓰는 승려 정도라는 생각 때문에 그 분의 저서를 보고 감동이 물밀듯 몰려와도 애써 평가절하 하는 '삐딱이'가 바로 나였던 것이다.

백석의 연인, 길상화보살로부터 거액의 보시를 조건 없이 받았을 때 무소유를 주장한 스님이 과연 그 재산을 어떻게 요리하실까 호기심도 많았다. 중이든 속이든 돈 싫다고 하는 중생을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 법정스님은 확실히 달랐다. 온갖 사연이 차고 넘치는 요정, 대원각 터를 기증받아 길상사를 창건하고 사찰재산을 조계종단에 미련 없이 넘겼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과연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선승이구나 하는 생각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 훨훨 타오르는 불길 속에 '지수화풍'으로 날아가신 스님 ⓒ 조명자




부처님 말씀 중에 이 세상 모든 사물은 '공'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 눈앞에 엄연히 존재하는 육신. 그 자체도 시공간에 떠도는 '지수화풍'의 결합이라고 한다.

자연과 생명을 사랑한, 끊임없이 맑고 향기로운 사바세계를 염원하신 법정스님이 '지수화풍'의 결합에서 마침내 '지수화풍'의 흩어짐으로 우리 곁을 떠나셨다.

▲ 스님, 불길이 아름답지요? ⓒ 조명자




당신이 염원하신 그대로 불필요한 의식도 불필요한 과소비도 사양한 채 남들이 다 입는 수의 하나, 관 짝 하나 마다하시고 한 줌 흙으로 돌아갔다.

훨훨 타는 불빛을 바라보며 이런 세상은 참 아름답고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자연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연으로 소박하게 귀의한 스님이나 그 스님의 유지를 한 치 오차 없이 섬기신 제자 스님들이나 모두가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오늘 하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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