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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죽어 어디에 누워 이 땅을 떠나게 될까?

[유 경의 죽음준비학교] '세계 장례풍속 특별전'에 다녀와서

등록|2010.03.15 09:53 수정|2010.03.15 09:53
'관을 짜지 말고 평소에 사용하던 대나무 평상에 올려서 화장하라'는 마지막 뜻에 따라 법정 스님께서는 작은 평상 위 얇은 갈색 가사 한 장 덮고 떠나셨다. 그 무엇으로도 감추거나 꾸밀 수 없는 한 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이토록 간결명확하게 보여주시다니, 그 무엇으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을 느낀다.

몇몇 나라의 장례 풍속을 보여주는 전시회에서 마주한 수의, 관, 껴묻거리(부장품), 상여 장식 등의 장례 유물과 장례 풍습 사진들이 각별하게 다가온 것은 이런 까닭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좌식 상여 일본에서 1900년대에 사용하던 좌식 상여 ⓒ 림 박물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오래 전 일본에서 사용했다는 '좌식 상여'였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장례지도사에 해당하는 납관부(納棺夫)였던 '아오키 신몬'이라는 사람이 쓴 책 <납관부 일기> ([유경의 죽음준비학교] 책, 죽음을 말하다(3) 기사 참조)를 읽을 때 궁금한 부분이 있었는데, '좌식 상여'를 눈으로 직접 보며 그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시신이 어두컴컴한 구석 쪽 불단 사이에 꺾쇠(<) 형태로 눕혀져 있었다...허리가 새우처럼 굽어 있어서 관에 난 유리로 얼굴이 보이도록 입관하려면 허리를 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그대로는 무릎이 돌출되거나 이마가 불거져 나와 관의 뚜껑이 닫히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수십 년이나 논밭에서 기어다니듯이 살아온 증거였다. 농촌의 노인 대다수가 허리를 굽히고 구부정하게 걷던 시절, 역시 좌관 쪽이 더 걸맞았으리라 여겨졌다. 특히 둥근 욕조형의 관이 가장 적합했을 것임에 틀림없다.(납관부 일기, 71쪽-72쪽)

그러니 시신을 앉은 자세로 안치해 묘지까지 이동하는 '좌식 상여' 역시 필요했을 것이다. 허리가 기역 자로 굽은 어르신들을 여전히 심심찮게 주위에서 뵐 수 있는 데 그런 분들의 마지막 모습이 떠오르면서 잠자는 자세로 길게 눕히는 보통의 관에 어떻게 모시나 애틋한 생각이 들었다.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놀랍고 신기하기까지 했던 것은 아프리카 가나의 '아트관(棺)'이었다. 예술작품같아서 '아트'관이라고 이름 붙인 것으로 나는 혼자 이해했다. 안내책자에도 아트관이라 이름 붙인 것에 대한 설명은 따로 나와 있지 않았다.

독수리 모양 관아프리카 가나의 독수리 모양 관 ⓒ 림 박물관


물고기 모양 관아프리카 가나의 물고기 모양 관 ⓒ 림 박물관


양파 모양 관아프리카 가나의 양파 모양 관 ⓒ 림 박물관


게 모양 관아프리카 가나의 게 모양 관 ⓒ 림 박물관


'독수리, 물고기, 양파, 게 모양 관'

안내 자료에 따르면 아프리카 가나에서는 고인의 직업이나 소유하고 싶었던 물건 또는 내세에 다시 태어나고 싶은 동물의 모양으로 관을 만들어 매장하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어부의 경우 배 모양이나, 물고기 모양의 관을, 농부면 평소 기르던 작물의 모양으로 관을 만든다고 한다.

아트관은 모두 사람 한 명이 들어가 눕기에 충분한 크기였고, 열고 닫을 수 있게 윗 부분은 뚜껑으로 되어있었다.

사람 사는 일이 거기서 거기면서도 또 이토록 다른 풍습을 보면 내가 얼마나 좁은 세상에 갇혀 내 발끝만 쳐다보며 살아가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내가 독수리와 물고기, 게 뱃속이나 양파 속에 들어가 누워있는 상상을 해본다.

관 속에 들어가 누울 때는 이미 이 땅을 떠나 아무 것도 모르게 되겠지만 살아오면서 품었던 꿈이나 소망 혹은 평생 해왔던 일과 함께 떠나고, 남은 사람은 또 그렇게 떠난 사람들의 꿈이나 소망, 일을 한 번 되새겨보면서 자기들 가슴 속 기억의 방에 떠난 사람을 새겨 넣는 것이리라.

얇은 가사 한 장으로 수백만 마디 말을 대신 들려주신 법정 스님은 물론이고, 갖가지 동물과 식물 모양의 관을 통해 사람이 살아가면서 꾸는 꿈과 정성 들여 해야 할 일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드는 저 아프리카 가본 적 없는 나라의 알록달록 예쁜 관이 내게 묻는다.

'나 죽어 어디에 누워 이 땅을 떠나게 될까….'

내가 확실히 아는 한 가지, 그 대답은 그 누구도 대신 해 주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 삶은 결국 죽음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 물음이다.

세계 장례풍속 특별전독수리 모양 관과 물고기 모양 관 앞에서 ⓒ 유경


덧붙이는 글 <세계 장례풍속 특별전> 2010. 2. 8 - 3. 14 연세장례식장 1층 아트홀, 로비 (주최 : 연세대학교 연세장례식장 / 후원 : 림박물관, (주) 삼포실버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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