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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섬에 처박혀 청암이 되리라

자라를 닮은 섬 남면 금오도로 떠난 자전거 여행

등록|2010.03.15 13:41 수정|2010.03.15 13:42

▲ 금오도 초포에서 바라본 초포등대의 모습 ⓒ 심명남




길고 지루했던 모진 겨울도 돌이켜 보면 잠시 찰나의 순간에 지나지 않은 듯 싶습니다.
소리 없이 피어난 봄의 전령사 개나리가 꽃샘추위에 움찔 놀라 고개를 떨어뜨리던 3월 어느날, 지인과 함께 다도해의 섬을 찾아 떠난 자전거 여행. 누군가 '인생이란 잠시 머물다 떠나는 나그네 여행'이라 말했던가?

▲ 금오도 여천항에 도착한 필자가 타고간 자전거 ⓒ 심명남







첫배를 타기 위해 이른 아침 돌산 신기마을을 향했습니다. 우리는 타고온 차를 세워두고 자전거를 꺼내 여객선을 탔습니다. 봄 바람을 맞으며 바다 위를 달리는 기분은 정말 막힌 속이 확 뚫리는 느낌입니다. 바다에서 만난 조그만 고기잡이 어선이 봄철 고기를 잡기 위해 어장터로 나가는 모습이 한가롭습니다. 하루 5번씩 신기와 여천을 오가는 여객선 한림페리호는 30분 후 목적지인 금오도 여천마을에 입항했습니다.

▲ 여객선위에서 본 출어에 나선 고기잡이 어선이 어장터로 향하고 있다. ⓒ 심명남




자라를 닮은섬 금오도(金鰲島)에 입항하다

이번 여행에서는 금오도 여천에서 안도 동고지 선착장까지 왕복 42km이상을 종주하는 마라톤 풀코스와 비슷한 거리를 오가야 합니다.

▲ 남면은 11개의 유인도와 27개의 무인도, 모두 해서 총 38개의 섬으로 42.34km 면적에 5000여 명이 거주하는 섬이다. ⓒ 심명남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 남쪽 해역에 있는 남면은 총 38개의 섬으로 42.34km 면적에 5000여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섬입니다. 이곳에는 사람이 사는 11개의 유인도와 27개의 무인도가 있는데 1981년 12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금호도 주변에는 화태도, 두라도, 나발도, 횡간도가 펼쳐지고 그 아래로 안도, 연도, 부도, 삼도, 형제도, 수항도 등을 보듬는데 이곳 남면의 모든 섬들이 금호열도에 속하지요.



이중 우리가 찾은 금오도는 섬의 모양새가 자라와 비슷하다고 해서 금오도(金鰲島)라 불리며 남면에서 가장 큰 섬입니다. 넓은 면적과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이곳에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120년 남짓 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전입니다.



특히 바다위의 비경을 자랑하는 대부산은 기암절벽을 이룬 해안선의 모습이 마치 한폭의 그림 같아 많은 등산객들이 몰린다고 합니다. 또한 최근에는 금오도와 안도를 잇는 안도대교가 준공되어 낚시꾼과 등반객들의 차량이 줄을 잇고 있다지요. 다리가 놓인 탓에 우리 같은 자전거 여행족도 두 개의 섬을 동시에 일주할 수 있어 최적의 코스로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금오도는 크게 4부락으로 나뉩니다. 유송리 부락(여천·함구미·송고·대유·소유)과 우학리 부락(학동·우실·내외진), 두모리 부락(두모·직포·모아), 심장리 부락(심포·미포·장지)이 있는데 이중 면사무소는 내외진 마을에 위치해 있습니다.

현대판 선녀와 나무꾼나무꾼의 아내가 된 선녀가 나이가 들자 이제 나무꾼이 되었다. ⓒ 심명남

▲ 심포마을 앞 겨우내 소목이감으로 사용되는 마른 고구마순 볕단 ⓒ 심명남

▲ 대유마을 밭에 설치된 농가의 주요 소득원으로 떠오르고 있는 태양광발전설비 ⓒ 심명남







대부산을 타고 내려온 차가운 바람은 바다 위에 사뿐히 내려앉아 파도를 일으킵니다. 이곳 역시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알을 낳는다는 경칩이 지났건만 마지막 꽃샘추위가 아직도 여전합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길에 장작을 짊어진 중년을 넘긴 나무꾼 아줌마의 모습은 유유자적해 보입니다.

들판에는 겨우내 소목이감으로 사용된 마른 고구마순이 볕단으로 수북이 쌓여 있습니다. 또한 이곳은 최근 밭에다 곡식을 심기보다는 태양광발전 설비가 들어서 현재는 11가구가 태양광 에너지를 생산해 한전에 전기를 팔아 소득을 창출해 내고 있다고 합니다.

21km 터닝 후, 자전거 여행의 별미 '백송정식'

▲ 금오도와 안도를 잇는 안도대교 ⓒ 심명남





어느덧 금오도를 지나 안도대교에 이릅니다. 다도해의 섬과 섬을 연결한 안도대교는 규모는 웅장하지 않지만 주변 8개의 유·무인도 섬들과 잘 어울려 조화를 이룬 풍경이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 안도대교에서 바라본 안도마을 ⓒ 심명남



우리는 동고지 방파제까지 21km를 쉬지 않고 달려갔습니다. 그래서인지 배가 제법 출출해 돌아오는 길에 안도 백송식당을 찾았습니다. 주인 아줌마의 인심이 후합니다. 이곳은 풍부한 해산물 덕에 시내보다 싼 가격으로 싱싱한 해산물을 맘껏 먹을 수 있습니다. 맛도 정말 별미입니다.

▲ 안도 백송식당에서 먹은 백송정식의 해산물이 입맛을 당긴다. ⓒ 심명남





점심을 마치고 우리는 배를 타기 위해 여천마을로 향했습니다. 대유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돌탑과 함께 항아리에 새겨진 글귀가 눈에 띕니다. 과거 한때 섬 지역은 벼슬에서 쫓겨난 선비들의 유배지로 속세와 현실도피의 은신처로 기억되던 시절이 있었는데, 새겨진 내용이 영 예사롭지 않습니다.

▲ 지식도 이성도 단절된 세상을 한탄하는 글귀가 새겨진 항아리 ⓒ 심명남



知識(지식)도 理性(이성)도 斷絶(단절)된
世界意識(세계의식) 속에서
絶海(절해) 가운데 외로운 섬에 살매
愚濫(우람)진 波濤(파도) 소리와 반짝이는
별빛 아래 歷程(역정)을 되씹는 청암(靑岩)이 되랴.

그 내용을 해석하자면 지식도 이성도 단절된 오로지 인정도 사정도 없는 권모술수만 요란한 세상살이 등지고 끝없이 멀리 떨어진 외딴섬에서 밀려오는 수많은 파도소리와 무수한 별들을 벗삼아 지나온 역정을 되씹어 하찮음에 당치않은 이래도 푸르고 저래도 푸른 낙락장송이 되고자 한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더러운 세상살이에 신물이 나 있나 봅니다.

▲ 자전거 여행을 함께 떠난 지인이 심포마을 지나면서 굽이굽이 산길을 오르고 있다. ⓒ 심명남



한때 외딴섬에서 살며 처량한 신세를 한탄한 적이 있습니다. 누가 어떤 연유로 이런 글귀를 항아리에 새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내용은 아직도 내 맘속을 떠나지 않고 작은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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